Freemason and Illuminati

[스크랩] 미국 시민들의 우둔함을 계획하고 실행해나가고 있는 프리메이슨의 300 인 위원회

그리운 오공 2008. 8. 22. 18:55
 
 
미국에서는 순도 높은 고체 코카인으로 날마다 몇천 명의 마약 중독자들이 늘어나고 있고, 낙태가 충격적으로 증가하여 그 희생자 수가 양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때의 미군 사망자들을 모두 합친 수보다 훨씬 더 많다.

호모 섹스와 레즈비언이 공인되어 매년 그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더 많은 보호를 받고 있다.  에이즈라고 하는 끔찍한 전염병이 마을과 도시를 휩쓸었고 교육제도는 붕괴되고 이혼율은 급격히 증가했다.

외국에까지 끔찍한 충격을 안겨주는 사악한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수천명의 어린이들이 성도착자들에 의해 거리에서 유괴되어 실종되며, 포르노는 각 가정에서 시청하는 텔레비전 화면에서도 범람하고 있다.  누가 이 나라를 위기에 빠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지식층은 미국의 교육과 그에 관련된 것들을 비난한다.  9세에서 15세까지의 범죄자들이 많아지고 겨우 10세 밖에 안되는 강간범까지 빈번하게 나타나는 지경이 되었다.  사회문제 전문가  교원조합, 기독교는 입을 모아 현재의 교육제도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력시험 성적이 얼마나 떨어지는지 보라, 전문가들은 미국의 교육수준이 세계 39위에 있다고 한탄한다.

원인이 명백한데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인가?  우리 교육제도는 자멸하도록 꾸며져 있다.  NATO 가 알렉산더 킹을 미국에 보낸 것은 이 목적때문이었다.  휴고 블랙 (Hugo Black) 판사가 NATO 의 명령을 수행했다.

그러나 사실은 300인 위원회가 청소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게 계획하고 미국 정부가 이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현재 이는 결과본위교육이라고 하는 어리석은 원칙에 의해 보증되고 있다.  프리메이슨의 휴고 블랙판사, 알렉산더 킹, 군나르 뮈르달 ( Gunnar Myrdal) 과 그의 아내가 미국 어린이들에게 가르친 것은 "범죄는 요령껏 저지르면 되고 중요한 것은 사리사욕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미국의 법률은 불평등하며 그래야만 마땅하다고 가르쳤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10년에 걸쳐 부패한 교육을 받았다.  로널드 레이건과 조지 부시는 탐욕에 사로잡혀 완전히 부패했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실패하지 않았다.

킹, 블랙, 뮈르달의 지도 아래 실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에 따른 것이었다.  300인 위원회는 우리의 교육 시스템에 기뻐하고 이를 바꿀 생각이 전혀 없을 것이다.

스탠퍼드 연구소와 윌리스 하몬의 주장에 의하면, 교육을 비롯한 '장기침투계획'에 의한 정신적 상처는 47년 동안 지속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음융한 압박을 받고 날마다 세뇌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1950년대 뉴욕에서 일어난 수수께끼 같은 갱 전쟁 ( Gang Wars) 은 음모자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이 좋아하는 파괴적 요소를 만들어내어 뒤에서 조종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한 예였다.  그러한 갱 전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게 된 것은 1980년대 일부 연구자들이 이른바 '사회현상'을 이끌었던 암흑의 지배자들을  폭로했을 때였다.

갱 전쟁은 스탠퍼드 연구소가 세밀하게 계획하여 사회에 충격을 주고 혼란의 파급효과를 노린 것이었다.  1958년에는 무려 200개가 넘는 갱단이 있었다.  그들이 유명하게 된 것은 뮤지컬과 할리우드 영화로 알려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West Side Story> 때문이었다.

그들은 약 10년 동안 화제를 불러일키다가 1966년 들어 뉴욕, 로스앤젤레스, 뉴어크, 뉴저지, 필라델피아, 시카고의 거리에서 갑자기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1994년이 되어 그들은 다시 나타나서 1958년과 마찬가지로 대도시의 일상생활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규모는 그때만큼 크지 않았다.

10년에 가까운 갱단의 폭력을 통해 대중은 스탠퍼드 연구소가 기대했던 대로 반응했다.  사회는 전반적으로 갱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사람들의 반응도 마찬가지였다.  갱들의 전쟁이 스탠퍼드 연구소의 사회공학과 세뇌실험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만한 현명한 사람이 있었다면 음모자들의 계획은 폭로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없었고, 또 있었다 치더라도 협박을 받아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언론매체는 스탠퍼드 연구소와 손잡고 우리 환경에 대한 '신시대' 의 공격을 폭로했고, 이것은 타비스톡의 사회공학자와 신과학 학자들이 예언한 대로였다.

1989년 , 환경 변화를 일으키는 사회적 요소인 갱 전쟁이 로스앤젤레스 거리에서 다시 커졌다.  사건이 처음 일어난 지 몇 달도 안 되어 로스앤젤레스 동부에는 몇백 명의 갱단이 나타났다.  

강도와 매춘이 급증하고 거리는 마약을 파는 사람들로 득실거렸다.  눈엣가시 같은 사람이면 누구든 쏘아 쓰러뜨렸다.  언론의 탄식은 높아만 갔다.  스탠퍼드 연구소가 타깃으로 삼았던 대중 그룹들은 구호를 외치며 자신들을 지키기 시작했다.

이야말로 타비스톡이 제 1단계로 부른 반응이어서 대상이 된 그룹들은 위기의 근원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비틀스, 분열을 이끌어내다>

갱 전쟁에 의한 위기의 제 2단계는 '분열' 이었다.  갱이 출몰하지 않는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는 갱이 없으니 천만다행이야"라고 말한다.  이것은 그들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위기는 계속되며 로스앤젤레스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무시한 태도이다.

타비스톡이 꾸미는대로 갱 전쟁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탈했다.  위기의 근원을 꿰뚫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부적응' 과정이라는 분열 기간이 생겼다.

마약 매매의 증대는 별개의 문제로 한다 치고, 그렇다면 갱 전쟁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목표가 된 그룹들에게 자신들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어 불안에 떨게 한다.  둘째, 조직된 사회가 이러한 폭력과 마주쳐도 무력하다는 걸 보연준다.  셋째, 사회질서가 붕괴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스탠퍼드 연구소의 세 단계가 끝나면 물밀듯한 현재의 갱 전쟁은 시작할 때처럼 갑자기 사라질 것이다.

비틀스의 '출현' 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사회적 조정의 두드러진 본보기였다.  이는 스탠퍼드 연구소가 타깃으로 삼은 대중 그룹들에겐 달갑잖은 변화로 인식되었다.  미국에 출현한 비틀스는 사회 실험의 일부로서 대중 그룹들을 부지불식간에 세뇌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타비스톡이 비틀스를 미국으로 데려왔을 때 아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문화적 재해가 그들 뒤를 따라 함께 들어왔다.  비틀스는 물병자리 음모의 중요한 일부로서 '인간 이미지 변혁' 에서 솟아나온 생명을 지닌 기폭제였다.

비틀스 현상은 지성 사회제도에 대한 젊은이의 자발적 반항이 아니었다.  실은 무대 뒤에 잠입한 음모자들에 의해 세심하게 짜여진 계획이었다.  대중 그룹들의 의지를 거슬러 변화를 주입하려는 대단히 파괴적, 분열적 요인이 비틀스였다.

타비스톡이 마련한 신조어가 비틀스와 함께 미국에 소개되었다.  음악과 관련된 록 ( rock) 이란 말과 함께 틴에이저 (teenager), 쿨 (cool), 디스커버드 (discoverd), 팝 뮤직 ( pop music) 이라고 하는 말들은 마약을 용인하는 은어가 되었다.  마약은 비틀스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으며 10대들 (teenagers) 에 의해 발견 (discoverd) 되었다.

사실 틴에이저라는 말은 비틀스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가 지어낸 말이기 때문이다.

갱 전쟁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언론, 특히 전파매체의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음모자들이 지시한 대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해냈던 교활한 에드 설리번 ( Ed Sullivan) 의 협조도 주효했다.

언론의 지나친 보도가 없었다면 리버풀에서 건너온 잡동사니 동아리와 그들의 12음 기법 무조 (無調) '음악' 은 사람들의 주목을 전혀 받지 못했을 것이다.  12음 기법 무조 음악은 무겁고 강한 반복적인 음을 기초로 했으며 실은 테오 아도르노 (Theo Adorno) 가 디오니소스 컬트 (Dyonisis cult) 집단과 바알 (Baal) 신의 제사음악을 재구성한 것이다.

엘리자베스 2세의 특별한 친구이며 300인 위원회의 회원인 테오 아도르노는 그 음악에 '현대적인 ' 맛을 가미하여 세상에 내보낸 것이다.

타비스톡과 스탠퍼드 연구소는 음악과 관련된 새로운 유행어를 창조하여 그것이 록 음악과 팬들에게 일반적으로 사용되도록 했다.  유행어는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그룹을 형성했고, 그들은 사회적 구조와 의식의 변화에 따라 자신들이 비틀스를 정말 좋아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록과 관련하여 만들어진 유행어는 새로운 타킷으로 삼은 미국의 젊은이들을 조종하기 위해 계획된 것이었다.

비틀스는 이 일을 완벽하게 해냈다.  어쩌면 타비스톡과 스탠퍼드 연구소가 임무를 잘 해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비틀스는 다만 잘 훈련된 로봇처럼 '친구들의 도움을 약간 받아 (그들의 노래에 With a little help for my friends 라는 곡이 있음)' 마약을 이용하고 그 것이 '멋진 (cool)' 것처럼 반응했을 뿐이었다.

타비스톡의 전문용어를 빌리면 비틀스는 매우 시각적인 '새로운 타입'이 되었다.  그들의 복장, 헤어스타일, 말투까지도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스타일로 받아들여지자, 의도한 대로 기성세대는 당황하게 되었다.  이는 윌리스 하몬과 사회과학 연구팀, 유전공학 전문가들이 꾸미고 행동에 옮긴 '분열과 부적응' 과정이었다.

대중 그룹을 성공적으로 세뇌하기 위해서는 인쇄매체와 전파매체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1966년 로스앤젤레스의 갱 전쟁은 언론이 보도하지 않자 끝나버렸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갱 전쟁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거리의 갱들은 언론의 보도가 시들해지면 힘을 잃고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1966년처럼 화젯거리가 '소진'될 것이다.  거리의 갱들은 교란과 불안을 조성한다는 목적을 달성했다.  록 음악도 이와 똑같은 패턴을 되풀이한다.  언론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것이다.

타비스톡 인간관계연구소가 편성했던 비틀스에 뒤어어 나타난 다른 '영국제' 록 그룹들도 비틀스처럼 테오 아도르노에게 컬트적 가사와 '음악' 을 쓰고 작곡하도록 했다.  나는 음악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비틀스광' 과 관련하여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마치 호모들의 상호행위에 연인이라는 말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다.  록을 음악이라고 부르는 건 모욕이며 '록 가사' 도 마찬가지로 시에 대한 모욕이다.

타비스톡과 스탠퍼드 연구소는 300인 위원회가 위임한 대로 제 2현상을 일으키는 작업에 착수했다.  새로운 현상은 미국의 변화를 위한 압력을 증가시켰다.  비틀스가 미국 무대에 나타나자마자 사회를 분단, 분열시키기 위해 계획된 유행어처럼 비트 제너레이션 (beat generation) 이라는 말이 나타났다.

언론은 이제 비트 제너레이션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밖에도 타비스톡이 만들어낸 말들이 난데없이 등장했다.  비트족, 히피가 미국의 어휘에 더해졌다.  사회에서 '이탈'하여 더러운 청바지를 입고 감지도 않은 장발로 돌아다니는 게 유행하였다.  비트 제너레이션은 미국의 주류사회와 단절하고 비틀스가 그들보다 더 깨끗하고 나아보일 정도로 악명이 높았다.

새로 나온 록 그룹들과 그들의 생활양식은 수백만 명의 미국 젊은이들을 컬트에 물들게 했다.  젊은이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급진적인 혁명을 껶고 있는 동안 기성세대은 위기의 근원을 알 수 없어서 무기력하게 바라보기만 했다.

그들은 대마초, 환각제인 LSD 등 모든 종류의 마약들이 일으키는 현상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LSD는 화학자 알베르트 호프만 ( Albert Hoffman) 이 합성 에르고타민 제법을 반견한 후 스위스의 제약회사 산도스가 편리하게 공급한 것으로 강력한 환각 증상을 일으키는 약이다.  300인 위원회는 계열 은행인 S.C. 워버그 은행을 통해 그 프로젝트에 자금을 공급했고, 철학자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 로 하여금 그 약을 미국으로 반입하도록 했다.

새로운 '특효약'은 곧 견본 크기로 포장되고 전국의 대학 교정과 록 공영장에 무료로 배포되어 그곳을 마약 복용의 거점으로 만들었다.  '마약단속국 ( Drug Enforcement Agency : DEA) 은 그때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하고 사람들은 탄식한다.  마약단속국이 상황을 알고 있었지만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정황증거가 있다.

많은 영국 '록' 밴드들이 미국으로 연이어 건너오자 록 공연은 미국 젊은이들의 연중행사가 되었다.  이러한 공연과 더불어 젊은이들의 마약사용도 점점 증가했다.  불협화음의 무거운 미트 음으로 악마 같은 소동을 벌이면 청중들의 신경은 마비되어 "모두가 다 하니까" 라고 말하며 새로운 마약에 쉽사리 손을 대었다.

자신이 소속한 그룹으로부터의 압력은 대단히 강력한 무기이다.  앞잡이 언론들이 "뉴컬트 (mew culture)' 을 최대한으로 보도해준 덕분에 음모자들은 동전 한 닢도 쓰지 않았다. 
출처 : 황우석의 진실과 음모의 덫
글쓴이 : 천년지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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