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와 일루미나티의 연관성

[스크랩] 한류와 엘리트 세력

그리운 오공 2011. 6. 28. 21:21

한류와 엘리트 세력

 

작성자 : 켄지 / 아고라

 


 

이수만 SM 엔터테인먼트 사장이 필리핀 드 롯실드 부인으로부터  '와인 기사(?)'작위를 받는 모습


 

 

  귀찮아서 먼저 사진부터 올립니다. 글쓰는 중간에 올리면 집중력이 감퇴되더군요. 이 사진은 금융제국 로스차일드의 와인 사업부를 맡고 있는 필리핀 드 롯실드(로스차일드) 부인이 SM엔터테인먼트와 그 사장 이수만을 자신의 전략적 파트너, 좀 비꼬아 말하면 하수인으로 인정하는 입문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체 이수만이 와인과 무슨 관계가 있길래?

 


mk 뉴스 - 이수만, SM 주식 팔아 와인사업?


 

 이런 추측성 기사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와인 기사 작위를 받은 사실에 근거할 뿐이므로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 이 롯실드 부인이 기거하는 곳이 프랑스이고, 프랑스가 현재 한류의 유럽 진출 교두보이니만큼 당연히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르 몽드','피가로' 등 프랑스 좌우익 양대 신문 문화란에 대문짝처럼 장식된 한국 KPop가수들의 공연소식은 로스차일드의 지원 하에 작성된 것이고, 그 보다 몇개월 전 프랑스의 메이저 방송국에서 한국 관련 특집 다큐를 편성하고는 한국, 특별히 상당 분량을 삼성에 할애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또 우연이 아닌 것은 일본 지진 문제입니다. 예전부터 강조했던 바 도요타 리콜 사태 등 일련의 사태의 연장선상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상징조작으로서, 일본을 죽이고 한국을 살리기 시작한 명백한 징후들입니다. 이미 흑선 사건과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을 때 엘리트 자본은 일본 내부에 침투해서 일본의 성장을 지원했습니다. 일본이 조선통신사를 보내가며 동아시아의 선진문물을 배우려 했지만 조선이 그것을 저버렸기에 실패했습니다. 반면 20세기 초 대거 인재들을 영국과 유럽에 보내 산업시설과 군사시설을 시찰하고 공부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기는 커녕 매우 잘 받아들여졌을 뿐 아니라 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았습니다. 이유는 무엇인지 모두 잘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전에 우끼요에 판화로 대표되는 '일류(日流)'가 이미 유럽에 존재했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 일류는 유럽 문화에 상당한 영감으로 작용했고 음악, 미술, 문학 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것도 엘리트의 사전 작업에 불과합니다. 무슨 이유로 이런 작업을 하는 걸까요?


 

그것은 이 문화적인 사전 작업없이는 성공적인 통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화는 일반인에게는 삶의 위로 내지는 마취제가 되어주고(대중문화가 특히 그렇죠) 예술가나 지식인에게는 영감과 작업 기회를 가져다주지만 엘리트들에게는 사업 기회와 세련되고 완벽한 통치의 기회를 줍니다. 십자군 전쟁사를 들여다 보면 유럽인들에게 사전 각인되어 있는 예루살렘의 이미지는 중동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열망을 낳았고, '인도'에 대한 갈망이 콜럼부스 함대가 신대륙을 점령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이성만 가지고는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거기에 불타는 갈망이 심어져야 사람들 사이에서 그곳에 가고 만지고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러고 나면 물자와 돈이 움직이며 어떤 형태로든 양자사이의 연결관계가 수립됩니다. 십자군 원정이 사실상 더럽고 타락한 금권을 위한 전쟁이었지만 거기 참여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순수한 열망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그 중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어린이 십자군


1212년 독일과 프랑스에서 계시를 받은 소년의 선동에 의해 소년, 소녀 3만 여명이 모여서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지중해까지 행진하였다가 일부는 난파 때문에 죽고, 일부는 상인의 농간으로 북아프리카에 노예로 팔려갔다는 것을 말한다.

 

 

유럽인들이 소위 '일류'를 통해서 일본 예술의 가치를 발견한 것, 그리고 다른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는 것 자체는 엘리트들의 조작을 떠나 있습니다. 엘리트가 고흐더러 '저 판화를 베끼라'고 명령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일본을 아시아의 포스트 국가, 즉 아시아 전체의 지배를 위한 대리국가로서 준비하기 위한 상황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재가 되는 것입니다. 사실상 아시아 문명권에서 가장 거대하고 눈부신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존재는 싫으나 좋으나 중국인데, 그것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을 지지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후 일본에 대한 지원을 끊고 궁지에 몰린 그들이 독자적으로 '대동아공영권'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준 이후 진주만에서 모든 것을 뻔히 아는 채로 주요 함대는 숨겨두고 카미카제로 난리를 부릴 때 그것보다 더 엄살을 부리면서 참전을 했던 것은 너무 뻔한 수순이었습니다.


 

일본은 이런 식으로 이미 몇백년에 걸쳐 엘리트의 길들임에 저항도 하고 복종도 해가면서 결국은 그 완전한 대리국가가 되어 온 것입니다. 그리고 아시아 지정학 구도 상의 그러한 영향력은 줄어들고 있고, 그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상황의 변화 때문입니다.


 

이것은 엘리트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데 아시아 국가들, 특히 한국과 중국의 일본에 대한 반발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마디 곁들이고 싶은 것이 있는데 한국의 이러한 반발은 사실 굉장히 예외적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상황이 예외적이고(이웃 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전례없는 사례), 한국인의 심리구조가 예외적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그 본국에 해당했던 국가와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가집니다. 이것은 처음에 상호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경제적 의존성에 의해 본국-식민 관계가 이루어진 것을 생각해 보시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미 그들 사이에는 상호 의존할 만한 요소들이 있었는데 그것이 무력과 강압적 지배로 나타난 것이 제국주의 침탈이고, 이후 그런 정치-경제적 관계는 그대로 남아서 그 의존성을 이어나간다면 영연방이든 프랑스 연방이든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는 한국과 일본도 예외가 아닙니다. 예컨대 제가 음악이라는 것에 몸담기 때문에 수많은 곡들을 알고 있습니다. 저는 한 번 들은 곡은 미세한 패드의 사용, 베이스 라인, 멜로디 등 거의 대부분의 곡 정보가 입력되어 거의 평생을 갑니다(실제 작업은 대중음악과 관계없는 것을 합니다만). 따라서 80, 90년대 그리고 2000년 이후 소위 가요톱텐 같은 순위 프로그램에 올라오는 1~10위까지의 베스트 곡중 절반 이상은 제가 거의 완벽한 표절이라고 정의 내리는 상황에 맞아떨어지는 것들이었고, 재미있는 것은 90년대 중반까지는 대부분 일본 음악을 베끼다가 이후 문화가 여러 방면에서 개방되자 베끼기의 대상이 미국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시점까지 한국은 모든 면에서 일본에 의존적이며 '베끼기' 경제를 벤치 마킹(즉, 역시 베끼기)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당시 미적 기준도 일본형에서 미국형으로 바뀌었죠.

 


아무튼 식민지 이후 이런 Post-의존성이 다시 생기면서 보통은 실익만 챙기고 말든지 대만처럼 '강간한 사람을 사랑하는' 역겨운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이 세계의 현실인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사실은 한번 삐치면 보통이 아닌 성질과 물어뜯기 시작하면 시시콜콜히 따지고 공격하는 예민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 근저에 깔린 것은 '자존심' 문제였습니다. 박대통령의 한일수교협정 시에도 엄청난 반대가 있었고 뒤끝(?) 안좋게도 문서 서명도 다 끝났는데 이후로도 몇십년간 일본을 욕하고 물어뜯게 된 그 엄청난 복수심의 배경은 바로 자존심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은 조선 시대 이후 소중화를 자처하며 주변 모든 민족에 대한 조공 관계를 요구했던 오랜 시간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nullLY 미국 빼고는, 아니, 실수입니다, 只 중국 외에는 감히 조선을 농락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도 없었고, 중국과 한국 외에는 오랑캐라는 것인데 이런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남아 '현대의 중국'인 미국과 조공관계를 유지하며 나머지 국가들은 물로 보는 독특한 정신체계를 가진 것이 한국인이라는 것을 엘리트들은 잘 몰랐던 것입니다('일본을 우습게 보는 유일한 나라'가 아니라 원래 일본=오랑캐였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또 이런 정신세계는 소위 극소수 명문대=王으로 군림하고 나머지는 그 주변을 눈치보며 돌아야 하는 주변대의 관계라든지, 딱 하나의 '지존'을 세워놓고 그것에 반항하는 쪽을 열심히 때려주어 충성심을 보이는 식의 인간관계 코드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런 중국-한국의 관계가 미국(엘리트)-일본의 통치전략으로 정확하게 바뀌어 활용되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또한 이것을 모르고 일본인의 우수성과 조선인의 한계를 논해온 것은 바보짓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배경에 각각 중국이나 미국을 업고 내가 누구보다 태생적으로 우월한 듯 착각을 하는 것도 바보짓이라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아무튼 한류로 돌아가서, 엘리트들은 일본을 이용해 아시아를 통치하려고 했습니다. 중동에서 사우디를 통해 통치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역사갈등이었습니다. 소위 '일류'를 아시아 통치에 활용하기엔 여건이 적당하지 않았습니다. 캄보디아에선 킬링필즈 일어난지가 엊그제이고, 중국/북한은 폐쇄정책에, 한국 역시 일본에 대해서는 확고한 쇄국정책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수준높은' 일본 대중문화가 침투할만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이 되지를 않은 것인데, 이 마지막 부분은 실제로 현재까지도 어느 정도 현실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근대의 대중문화의 발달 단계를 보면('대중'을 강조합니다) 먼저 사람들이 즐길만한 연극과 음악극 류에서 이후 영화로, 영화는 다시 음악으로 하는 식으로 체험->시각->청각의 추상화 경향을 띄는데 일본은 이미 구로자와 아끼라의 영화들 이전에도 대중문화가 발달해 가는 것이 거의 서구 유럽 수준이었고, 아끼라의 전성기 이후로는 JPOP이 발전했으며, 이후로는 각각의 시장은 커지지만 창작은 지지부진한 소진기를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비슷한 사례를 유럽의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자 주요 거점인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 갈등이 매우 거칠게 터져나오고 에너지가 분출하는 발전 단계에서는 (선진국들의 60~80년대) 그에 걸맞는 대중 예술 작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프랑스 누벨바그니, 독일 표현주의니 일본의 영화, 음악 황금기가 이런 시대를 경험한 혹은 경험 중인 걸출한 인물들에 의해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들이 시스템으로 정비되고 갈등이 표면상 잘 봉합되어 가면 사회는 성숙기를 맞이하며 개인의 체험을 중요시하게 되지 다른 사람에게 어떤 것을 알리고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즉 극도의 개인주의 사회로 가는 것인데 이런 사회의 특징은 인건비가 매우 높고, 작품 당 마진도 날이 갈 수록 떨어져 가고(정확하게는 다른 사회비용 지출이 극도로 높아져 매력이 감소함), 순진한 대중들이 아니기 때문에 관중 몰이같은 것도 되지가 않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아시아와 너무 동떨어진 발전노선을 걸어왔고, 한국의 사회나 문화적 여건은 정확하게 측정하자면 일본의 70년대 후반~80년대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 수준 격차가 여러 부분에서 상당히 좁혀지고 있지만 '경험'은 단숨에 좁혀지지가 않습니다(물론 한국 사회가 조로증상을 보이므로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일류는 아시아에 절대로 먹히지를 않고 할리우드 영화로 아시아와 남미 등 개발도상국들을 경략한답시고 내내 뻘짓을 하던 엘리트들은 어느날 갑자기 한국이 달리 보이게 된 것입니다.


 

아니면, 이러한 문화적 분수령이 된 서태지라는 사람 배후에 엘리트의 힘이 작용하는 것일까요? 확률은 높습니다. 직접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당시 김대중의 '대중문화론'은 서태지와 연결관계에 있고, 김대중은 엘리트의 직접적 연결선상에 있어왔기 때문에 결국은 서태지까지 연결될 수 있습니다. 현재는 그 역할을 타블로가 맡고 있는데, 둘다 신비스럽고, 학력 논란(군대포함)과 표절 논란같은 것들에 휘말리곤 했지만 그것을 매스컴의 강력한 서포트 하에 살아나곤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역할은 대중문화계 곳곳에 한 명씩 뿌리박아 내부적 감시자, 조율자, 메시지 전달자 등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타블로는 엘리트들과의 관계를 너무 많이 자랑하고 다닌다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유대인이지만 사이언톨로지에 푹 빠진 톰 크루즈 등이 임무수행 중입니다.


 

아무튼 이후 한류에선 박진영이 미국에 가서 비를 띄우려다가 실패하고 왔는데 정확하게 뒷사정은 모르겠지만 이미 Times 100명의 세계 인물안에 비가 들어간 것은 그 사전작업입니다. 수만씨와 똑같은 상황인데, 먼저 상부터 줍니다(초딩 때 교장선생님 훈화를 떠올려 봅시다. '잘 해서 준다기보다, 더 잘 하라고 주는 것입네다')


 

 당시 미국 인구 0.00001%정도나 비를 알았을까요, 어쨌든 미국과 아시아 양쪽 다 노린 것인데 미국쪽은 쪽박이고 아시아는 '한류'라는 각인효과를 주었으니 기획 자체가 성공적입니다. 이것은 '유대자본 이원론'적 시각(록펠러vs로스차일드)으로 보면 확실히 록펠러의 기획입니다. 저는 일원론(같은 넘들, 사실상 로스차일드 우위) 시각이자, 정확히는 그것을 넘어서는 시각이기 때문에 결국 다 같다고 보지만 그래도 담당구역은 미국이니 록펠러의 기획으로 보입니다.


 

반면 유럽에서 일어난 한류는 로스차일드 부인이 친히 사진도 같이 찍어주었으니 배후가 누구인지는 뻔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로스차일드 부인은 여간해선(사진빨 잘 안받으면) 같이 서주는 분이 아니신데 왠일로.... ( 로칠드 남작부인 인터뷰 뒷얘기 )


 

재미있는 것은 박진영은 연대를 나와서 확실히 미국 쪽이고, 이수만은 서울대 출신이니 어디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학문 스펙트럼이나 성격상 유럽 쪽이 맞아 보인다는 겁니다(사실 박진영이 먼저 터뜨려놓아서 남는 게 하나밖에 없을 수도 있지만요). 혹 모르니 그 두 대학 뒷심으로 작용하는 인물, 재단, 영향력 관계를 조사해 보면 추측이 맞을 수도 있겠습니다. 엘리트들 이것들은 학벌주의자입니다. 이것들은 학벌을 믿어서가 아니라 그 권력과 그룹의 연대감이 만드는 집단 이기주의의 힘을 믿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학벌의 가장 부정적인 면을 이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고, 실제로 수많은 미국대학들은 엘리트 정책의 직접적인 관리 하에 있습니다(시간나면 다루겠음). 이런 면에서 나름 한가닥씩 하는 누구누구 기획사가 그 쌍두마차 만큼의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능력을 차치하고서라도(엘리트는 능력주의자이기도 함) 그가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들고 또 이렇게 복잡한 정치를 모를 것이라는 판단이어서일 것입니다.

 

 

아무튼 한류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무지무지 길어지는군요. 한류가 정치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결국 이 한류 뒤의 자본, 그리고 그 운영, 그 안의 메시지를 통해 아시아를 통치하려는 보이지 않는 황제들의 손에 의한 것입니다. 최근 중국이나 대만에서 한류 반대 반응이 상당히 나오는데 걔들은 이미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구글을 쫓아낸 것도 같은 맥락이죠. 현재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전쟁이 수행 중이라 할 수 있는데 이미 자본은 상당히 잠식당했겠지만 정치나 사회문화 등에선 공산당의 힘이 여전하거든요. 중국에서 엘리트들은 천안문, 티벳, 파룬궁, 천안함 등으로 압박하고 중국은 무력진압(박/전 님에게 배운 듯. 거의 데자뷰수준이죠)이나 외국회사 벌주기, 동북공정 등등으로 열심히 대응 중입니다.


 

이런 중국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이는 것은 자본의 힘 하나로도 가능하지만 그런 것은 무력과 더불어 강압력이고, 결국 소프트 파워를 써야 노예들이 그들의 가짜 신을 찬양하며 자발적으로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바칠 것이기 때문에 한류가 필요한 것입니다.


 

일본에서 한국정부에 의해 한류가 조작되었다는 얘기가 나오고, 그것에 코웃음을 치며 반대 증거 자료를 내놓는 네티즌들이 나오는데, 둘다 바보짓입니다. 독자분들 중 유튜브를 가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유튜브 클릭에는 첫째 국적이 없고, 둘째 최초 조회수가 높을 수록 클릭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만명을 보게 하고 싶으면 최초 클릭수를 한 10만 건 정도만 올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어차피 아시아에 볼것이 하나도 없고 일본은 저작권 철저 보호에 진출같은데는 관심도 없고 하니 한국 영상을 아시아 팬들이 알아서 백만건 정도 눌러주면 전세계에서 주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댓글들이 인상적이더군요 '대체 이 (한국)영화는 왜 이렇게 조회수가 높은거야?'


 

이런 것이 한국이나 한국의 문화현상을 폄훼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이런 현실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대중문화 관련 순위들 대부분이 조작이라는 것. 그리고 출판계의 공공연한 비밀은 출판사가 직접 발행한 책을 되사는 비용까지 설정해서 책을 내놓는다는 것. 일본도 최근에 '천재 뮤지션'이었다가 저번 1월달에 사기혐의로 잡혀가 막장된 코무로 테츠야가 참여한 앨범이 그 음반사 사장에 의해 조작되어 음반판매순위 1위를 했다는 혐의가 트위터에서 포착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죠? 이런 관행은 비일비재하고 남의 곡 통째로 들어다 앉혀놓는(베끼는) 것도 일상다반사입니다.


 

그럼 프랑스 한류에 나온 그 관중들은 뭘까요? 전 그 관련 유튜브 동영상을 봤는데 글쎄요, 소위 말하는 '순수 프랑스인'은 별로 눈의 띄지 않는 것이 특이했습니다. 그 영상과 사진들을 보고는 '검증 기준'이라 불리는 '백인'이라고 '인정'하는(재수없어서 따옴표를 썼습니다) 그 백인들이 많다고 착각 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자세히 들어다 보면 그 중 80%가 아랍계입니다. 본토박이 프랑스인들도 꽤 되긴 하지만 뭐 그 정도야..... 나머지 소위 유색인종들은 흑인과 베트남계, 중국계였습니다. 제가 파리에 살아서 잘 압니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 대부분은 아랍인과 유럽 백인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한국 CD, 영화가 너무 잘팔린다고 나온 그 전문점도 제가 아는데 일본거, 한국거 찾는 사람들이 대부분 여기 사는 아시안들인지라 파리 13구 차이나 타운 내에 있습니다. 뭐 그래서 어쩌라고? 하시면 곤란하고 아무튼 그것을 지적하는 이유는 아랍인, 베트남인, 중국인들은 여기서 프랑스 문화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본토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사람들이 대부분인 그런 플래쉬몹이나 유럽 각 도시에서의 '시위'는 조작이 아닐지라도(한류가 비틀즈보다 더 인기가 좋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요?)  '프랑스 내 한류 열풍'은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이미 프랑스 내 '프랑스인들'이 한국 영화와 드라마는 상당히 좋아하고 있으니 결국은 일류의 상당 부분을 한류가 잠식해 들어가는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프랑스 내 공연과 언론에서의 부각은 2가지 효과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1. 프랑스 사회와 평민들의 의식개조 2. 아시아내에서의 수만씨의 입지 확고화. 2번은 누구나 이해할 것이므로 생략하고, 1번은 결국 미국 영화와 팝으로 아무리 공격해도 끄떡없던 수준높은 문화강국 프랑스를 다른 방식으로 공략해 본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현재 엘리트가 가장 아끼는 말로써, 주요 타겟들이 미국처럼 경계하지도 않고, 의기소침한 일본처럼 다루기 까다롭지도 않으며 시키는대로 다하는 충성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류 POP의 움직임은 시작에 불과하고 어쩌면 이런 시스템 자체가 프랑스 내에 도입되는 것에 한몫할 가능성도 있으며 사실은 제가 너무나도 싫어하는 이런 노예시스템과 음악같지도 않은 쓰레기 음악으로 전락해 가는(그렇다고 미국 힙합이나 영국의 팝처럼 수준이 높지도 않은) 음악사업을 그래도 문화 다양성을 잘 보존하고 있는 프랑스 내에 도입해 움직임을 만들어보겠다는 이해당사자들의 합의가 자꾸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시기 바랍니다. 도요타를 현대차가 밀어내고 있으며 유럽 언론들은 현대차 띄우기에 바쁩니다. 한-EU FTA 발효가 이제 몇일 남지 않았습니다. 한국 백성들은 생활고와 초과근무, 경쟁에 시달려도 그노무 민족주의 때문에 한국이 잘 나가기만 한다면 노예계약도 문화의 질도 아무것도 상관없고 좌우 가릴것 없이 쌍수 환영입니다. 물론 좌우가 다 같은 넘들이긴 합니다만...


 

-끝-

출처 :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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