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마라톤에서 한국이 죽을 쓴 모양이다.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다는데 7등 14등 해버렸으니 우울할 만도 하다. 지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이봉주가 아쉬움을 던져준 이후라서 국내 육상계가 나름대로 충격을 먹은 듯하다. 벌써부터 언론에는 한국마라톤의 몰락 운운하는 기사가 둥둥 떠다닌다.
이번에 1등 먹은 애가 카타르 친구라는데, 케냐 녀석을 카타르가 픽업하여 국적 바꿔 버린 놈이란다. 마라톤 뿐 아니라 아시안게임 육상종목에 아랍으로 귀화한 아프리카 출신들이 맹활약하고 있다니, 오일달러가 무섭긴 무섭다. 하기야, 언젠가 마라톤에서 아프리카 애들 뛰는 거 보니 '와 재들을 어떻게 이겨'하는 생각이 불쑥 들더라.
이제 육상은 아프리카 판이 되지 않았나 싶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단거리나 높이뛰기 같은 종목이야 아직 몇몇 돈 많은 나라들의 잔치판이긴 하지만, 중장거리는 벌써 아프리칸들의 독주가 당연시되고 있다. 어디가서 욕먹을 소리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스포츠는 인종이 좌우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남자허들 110m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버린 중국의 류시앙같은 존재도 있긴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극히 예외적인 천재의 등장으로 쳐도 괜찮겠고.
하여간 지난 올림픽도 그렇고 이번 아시안게임도 그렇고, 한국 마라톤이 기대만큼의 성적을 내지 못한 것은 '몰락'도 아니고 '참패'도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놈의 '기대'가 너무 높았던 것이다. 아시안게임 4번 우승했으니까 이번에도 뭐 어떻게 하다보면 우승하겠지, 이런 거 말이다. 아프리카 애들이 국적 바꿔 출전한다는 거를 나같은 사람이야 미처 몰랐지만 마라톤 관계자들은 다 알고 있었을텐데, 어떻게 "금메달 따오겠습니다"하는 소리가 나왔는지, 참 대단들 하다. 사정 모르는 사람들은 거기에 다 속아 넘어간 거다. 아, 정말 사기들 좀 치지 마라.
또 하나, 최근 한국마라톤이 좋은 성과를 냈던 데에는 정봉수라는 탁월한 지도자의 힘이 컸다. 정감독의 지도 스타일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어쨌거나 그의 존재가 한국마라톤을 여기까지 끌어왔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다. 반대로 말하면, 그의 사후 한국마라톤계가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마라톤 감독이 누구인지 아나? 황영조다, 황영조.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히로시마의 영웅 황영조, 그 황영조.
황영조가 마라톤 감독인 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고 저렇게 다섯 번이나 이름을 적었냐고? 때로는 망각이 우리를 편안하게 하지만, 가끔은 다른 동물보다 조금 더 괜찮은 기억력을 우리에게 선사한 조물주의 뜻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1992년 올림픽과 1994년 아시안게임에서 시상대 가장 윗자리에 올라섰던 황영조만 생각하지 말고, 5년전의 '황영조 파문'도 제발 좀 기억해내자.
'황영조 파문'이란, 2001년, 황영조가 감독을 맡고 있던 국민체육진흥공단 소속의 마라톤 선수들이 집단적으로 팀을 이탈하고 탄원서를 내며 감독의 교체를 요구한 사건이다. 그들이 왜 이탈까지 했냐면... 참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는데... 암튼 돈문제에 인격모독, 거기에 결정적으로 여자 문제까지 겹치면서 황영조는 완전 인간 말종으로 결판나게 되었다. 여자문제라고 하니 그저 애정관계가 복잡했던 것쯤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는데, 이건 그런 게 아니다. (전말이 궁금하신 분은 여기를 눌러서 확인해보시라.) 영웅의 몰락이라는 것이 별로 드문 스토리도 아니지만, 황영조는 정말 심했다. 그냥 소문 혹은 음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 내용으로 보면 정말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이 사건 이후 육상연맹에서 "탄원서의 내용이 일부 인정"된다며 황영조를 강화위원직에서 물러나게 한 것을 보면 이는 헛소문도 아니고 음해공작도 아니었다.
사실 정봉수 감독도 생전에 그렇게 말했었다. 가장 아끼고 기대했던 제자도 황영조이고, 가장 속썩고 힘들었던 제자도 황영조라고. 그 타고난 재능이 정말 대단했기에 지도자로서 탐을 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워낙 말을 안 들어서 지도하기는 정말 어려웠다고. 정감독의 말을 들을 때에는 '얼마나 독하게 몰아붙였으면 황영조가 그렇게 반항을 했을까'라고도 생각했었지만, 황영조의 행각을 본 다음에는 정감독이 측은해지더라.
암튼, 이렇게 할 짓 안 할 짓 다 해가면서 살아온 그에게 다시 마라톤대표팀 감독이라는 감투가 내려졌다. 나는 이런 부분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정말로 이 사회는, 스포츠맨에게, 최소한의 도덕성도 요구하지 않는 것일까? 일세의 영웅이라 할 지라도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모범이 되지 못하면 사회적 지탄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니 오히려 사회적 혜택을 입은 영웅이기 때문에 그 처신 역시 더욱 철저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칠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일까?
오늘 아시안게임에서 우리 선수들이 입상권에서 멀어지자 황영조는 화를 내며 자리를 박찼다고 한다. 그리고는 온통 선수들에게만 욕을 해댔단다. 마라톤이 힘들어서 아무도 안 하려고 하고, 그나마 있는 선수들도 정신력이 틀려먹었으며, 자기가 했던 훈련의 절반만 시켜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하여간 "요즘 애들 생각은 많고 독기는 없다"는 것이다. 그래놓고 "훈련 방법에 문제는 없었다"고 한다. 말하는 폼새가 아주 쪼잔하기 그지 없다. 경기의 부진을 선수에게 돌리는 행동도 참으로 꼴사납지만, 과연 황영조가, 선수 숙소에 여자들을 줄줄이 데려와 불타는 밤을 보냈다는 황영조가 자기의 선수들에게 저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하긴 2001년에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수들이 고된 훈련을 견디지 못해 이탈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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