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등소평

[스크랩] [전원책] 더는 보수를 욕보이지 말라

그리운 오공 2012. 2. 21. 15:18

[憲政] 2012.2월호

 

더는 보수를 욕보이지 말라

 

전원책

 

 

 

1.보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용어를 뺄 것인가라는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한나라당이 보수정당인가라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보수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은 이젠 없다. 보수 정신에 충만한 정치인도 없고, 정당도 없다.


아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보수정당이라고 불렸던 한나라당은 처음부터 보수정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보수정신을 몰랐으며 보수정책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권력을 잡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고, 표가 된다면 무슨 정책이든 내놓을 수 있는 정당은 이미 보수정당이 아니다. 그건 포퓰리즘에 빠진 정상배의 집단에 불과하다. 권력만을 좇다 보니 마치 마피아처럼 보스에 충성하고 보스를 따라 움직이는 패거리들에 불과하다. 그러니 한나라당 정강에서 ‘보수’를 빼든 말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우리는 지금 전세계에서 승부가 끝난 이념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전쟁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서의 좌우대결, 즉 서구에서 벌어지는 것과 같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다. 지구상에서 소멸한 공산주의와 그 사이비도 못 되는 김정일의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집단주의 혹은 전체주의자들과 자유주의들과의 대결이다. 이 나라의 소위 좌파들은 진보라는 가면을 쓴 채 철 지난 진보정책들인 보편적복지를 들고 나왔다. 거기에 이념과는 거리가 먼 기회주의자들이 한편이 되면서 보수주의는 백척간두에 서게 됐다.

 

 

2. 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이 나라의 보수주의자들은 산업화세력과 기득권 옹호세력 그리고 자유주의에 기반한 원류 보수주의자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다수의 정치인들은 보수주의부터 오인한다. 보수주의를 단순히 반공과 연결짓기도 하고 성장우선주의로만 여기기도 한다. 심지어 스스로 보수로 전향했다는 이들 중에는, 집단주의적 평등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종교인도 있다. 놀라운 것은 보수의 모자를 쓴 자들 대다수가 자신의 영달과 출세에 목맨 자들이라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우선 헌법정신에 승복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헌법정신의 두 기둥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주의다. 오늘날 서구의 진보주의도 대개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하면서 다만 시장경제주의의 보완책으로 빈부격차를 해소하는 국가부문의 확대를 두고 보수주의와 다툴 뿐이다. 그리고 보수주의는 개인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삼으며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다하는 정신이다. 공동체를 위해 의무를 다하고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사람을 대우하는 정신이다. 흔히 보수가 강조하는 성장은 창의성을 존중한 결과이며, 법치는 자유에 수반하는 책임을 지는 방법론이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번이라도 이런 보수주의에 입각한 정부와 정당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제도적 민주주의가 완성된 문민정부 들어서도 우리 정당들, 그 중에서 보수주의를 표방한 한나라당조차 엄격히 말해 보수이념에 충실한 보수정당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선 보수주의의 바탕인 도덕성을 의심받았다. 기득권을 옹호하고 부패를 외면했으며 함께 부패했다. 더욱이 공동체를 위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들이 보수를 자처했다. 최소한 보수정당에서 병역을 면탈한 자가 득세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도 국민들 대부분은 한나라당을 보수정당이라고 믿어 왔다. 그것은 산업화세력과 일부 민주화세력들이 한나라당의 주류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3. 민심은 왜 한나라당을 떠났는가


이명박 정부 들어 한나라당은 철저히 보수를 배신했다. 이 대통령은 처음부터 이념적이지 않았다. 그는 이념에 무지했다. ‘이념을 넘어 중도실용으로 간다’고 천명하면서 ‘친서민’ 같은 포퓰리즘적 정책기조를 내세우고 ‘공정한 사회’니 ‘공생발전’이니 구호만 요란했을 뿐, 성과주의에 빠져 경제의 외형만 키우는 고환률정책으로 일관하는 등 정책실패를 거듭함으로써 중산층을 붕괴시켜 결과적으로 좌파가 득세하는 환경을 조성했다. 교육 개혁은 시작조차 못했으며, 법치를 확립하지도 못했고, 안보를 소홀히 했다. 무엇보다도 기회가 공평히 주어지지 않는 사회를 방치했다.


한나라당도 애초부터 보수정신이 없었다. 그들 대다수는 6.15선언을 지지하면서 그 선언이 김정일의 적화통일전략에 불과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수용한 것을 간과했다.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아래서의 평화통일을 명령하고 있는데도 전체주의 독재체제를 연방으로 수용하겠다는 위헌적 발상에 동의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게다가 한나라당 친박계는 수도를 분할하는 세종시안에 앞장 선 세력이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 정책조차 사실상 전면 수용했다. 무상보육 반값등록금 같은 문제는 오히려 민주당보다 한발 더 나갔다. 그들에겐 그 어떤 비판도 눈 앞의 표 때문에 마비된 이성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이런 정당을 누가 보수정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도덕성조차 갖추지 못해 온갖 비리가 터져나오고, 공동체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한 인사가 총리에 오르고 당 대표로 나서는 정권을 어찌 보수정권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3. 비대위의 천박한 모습


한나라당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한 일이었다. 보수정신을 외면해서 부패하고 타락한 정당이 어찌 온전하겠는가. 기가 막힌 것은 이런 당의 위기를 두고 소위 쇄신파로 불리는 ‘소장파’ 의원들이 보수를 버리자며 ‘좌클릭’을 외친 것이었다. 그러니까 당의 정체성 상실로 인한 위기에서 이제 정체성을 완전히 내던져서 탈출하자는 것이다. 소장파는 보편적 복지를 수용하자고 나섰으며, 길거리의 시위 현장에서 터져나오는 좌파들의 주장에 동조했고 좌파들이 점령한 SNS의 방언(放言)에 매달렸다. 한나라당은 포퓰리즘에 맞서 싸워야 할 서울시장 보선에서 오히려 포퓰리즘을 수용하면서 무력하게 패배했다.


이 망칙한 변신의 끝에 마침내 비대위란 것이 출범했다.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라는 명분으로 친이계에 밀려 늘 ‘약자’로 행세하던 박근혜 의원의 일인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그녀를 위해 당규까지 바꿔, 박의원은 당권과 함께 사실상 대권후보까지 예약했다. 민주정당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변칙적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도 한나라당 의원 어느 누구도 이 참혹한 사태에 저항하지 못했다. 박근혜 의원을 지지한다면 오히려 비민주적으로의 이행을 막아야 할 친박계 의원 중 아무도 그녀가 빠질 것이 뻔한 허방을 직언하지 못했다.


그리고 박의원은 계파를 초월한다면서 자신과 가까운 외부인사를 영입했다. 당적을 바꾸면서 비례대표를 네 차례나 한, 부패전력을 가진 분과 보수와 대립하면서 촛불시위에 동조하고 천안함의 유언(流言)에 일조한 분이 비대위원이 됐다. 청년층과 소통을 명분으로 자파 의원실에서 인턴을 한 20대도 등장했다. 비대위원들은 완장을 찬 것처럼 마구 여기저기 말을 쏟아냈다. 정강에서 보수를 빼겠다고 하고, 당대표를 지낸 이는 책임지고 물러가라고 외치고, 대통령이 보낸 난을 치워버렸다고 떠벌였다.


이들이 과연 한나라당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한나라당은 보수정신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둘 다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하나 남는 진실은, 한나라당이 망해도 이 나라 보수정신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아버지들에게서 이어져온 보수정신은 반드시 살아나 그 대안을 찾을 것이다. 그때 한나라당은 소멸하고 없을 것이다. 그러니 더는 보수를 욕보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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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개구라닷컴
글쓴이 : Louis-XIV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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