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판결 조봉암의 반역은 무죄 아니다
朝鮮共産黨 創黨 過程에서 조봉암
예비역2/이승현 네티즌 논객
[석사학위논문] 朝鮮共産黨 創黨 過程에서 박헌영과 조봉암
(예비역2 시스템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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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25남침을 도운 박헌영과 같이 일했었던 조봉암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1. 우익
2. 중도
3. 좌익
4. 기타
이 논문을 읽고, 조봉암이 남로당 대표 박헌영과 같이 공산주의 활동을 주도적으로 했던 것을 알게 됐고, 조봉암, 박헌영이 각각 조선일보, 동아일보에서도 일했던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일제시대부터 조선일보, 동아일보에도 공산주의자가 자기 정체를 숨기고 활동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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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학위논문] 정태영, 일제하 민족해방투쟁과 조봉암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한 연구, 고려대학교 정책과학대학원 국제관계학과, 1991년 6월
제3장 朝鮮共産黨과 民族解放鬪爭
제3절 朝鮮共産黨 創黨 過程에서 박헌영과 조봉암
조선공산당(국내당) 조직을 위한 노력은 여러 가지로 전개되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블라디보스톡의 꼬레뷰로에서 1922년 김재봉, 신철이 파견되어 이미 활동하고 있었는데, 다시 이르쿠츠크파 고려 공산당 상해지부의 김만겸은 따로 김단야, 박헌영, 임원근 등을 조선공산당 조직 사업을 위해 국내에 파견했다.
그러나 이들 3인은 1922년 3월 국내로 잠입하다가 그만 왜경에게 체포되어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는다. 이렇게 해서 형을 마치고 나온 것이 1923년 1월 18일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난 박헌영은 1924년 4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했다. 바로 1924년 봄에 모스크바 동방노력자 공산대학에서 수학한 조봉암이 같은 조직사업의 사명을 띠고 국내로 잠입했다. 조봉암은 일본 유학시절부터 당시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던 고학생 동우회, 무산자 동맹 간부들과 어울린 바 있었다. (25) 경성지방법원검사국, “여운형 조서”, 1930. P.101. 김준엽 ? 김창순, 앞의 책「한국공산주의운동사2」, pp. 372~373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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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활동력이 특출했던 그는 모든 사상단체 연구단체 운동단체 등에 닥치는 대로 관계를 맞으며 자기의 꿈을 펼 수 있는 조직을 편력한 일이 있었다. 그러한 조봉암이 똑같은 조직사업을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들어감으로써 국내 공산주의 운동은 아연 활력을 띠기 시작했다. 이해 9월에 박헌영은 조선일보 사회부 기자로 옮김과 동시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동맹 조직을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조봉암과 힘을 합쳐 주로 청년 조직 쪽에 힘을 기울였다. 조봉암이 콤소몰 고려지부책으로 활동하였으니 그 때에는 아마 조봉암의 지휘 하에 있었을 것이다.
블라디보스톡 꼬레뷰로의 김재봉, 이르쿠츠크파 상해지부의 박헌영, 거기에 모스크바 코민테른 본부에서 파견된 조봉암이 가담한 것이다. 주역은 대담하고 정력적인 활동가이며, 이론적으로 완전히 무장한 조봉암이었다. 반합법단체였던 각종연구단체, 사상단체에 조직적으로 가담해, 대중 집회 ? 강연회 등의 연사활동으로 대중조직을 하나의 목적을 향해 동원하는데 불철주야 뛰어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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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마처럼 엉킨 청년운동단체의 전국조직을 위해 헌신했고, 노임분쟁과 소작분쟁의 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운동과 농민운동에도 가담하여 그들의 전국조직과 노농동맹체(勞農同盟體) 조직을 위해서도 뛰어다녔다.
고려공산청년동맹의 모체가 될 신흥청년회가 1924년 2월 11일에 결성되었고, 이 신흥청년회와 약간 우파적인 서울청년회가 중심이 되어 마침내 청년조직의 총집결체로서의 조선청년 총동맹(청총: 靑總)이 1924년 4월 12일에 결성되었다. 조봉암은 최상섭 ? 신태악 ? 김단야 ? 정백 ? 박의용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에 선출되었고, 박헌영은 한진교 ? 주종건 ? 최순탁 ? 강재모 등과 함께 중앙 심사위원으로 앉았다.
이렇게 해서 신흥청년회=화요회의 중심인물이었던 조봉암과 박헌영은 굳게 손을 잡고 청총의 실력자로 부상했다. 뒤에 조선공산당과 고려공산청년동맹이 결성되고 난 뒤는 민족통일 청년동맹체로서의 청총의 중요성에 비추어 조봉암은 청총 문화부책이라는 집행부서에 잔류하고 박헌영은 고려 공산청년동맹(공청)쪽을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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