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야기들

마를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 그리고 장미꽃 ( 펌 )

그리운 오공 2012. 5. 31. 22:25

출처 커다란 떡갈나무의 블로그 | 희망지기
원문 http://blog.naver.com/amdg77/100026867609
백치미, 3번의 결혼과 이혼, 20세기 최고의 섹스 심벌, 대통령 형제와의 염문, 36세 의문의 자살....

 

Marilyn Monroe라는 이름에 따라 붙는 많은 수식어들 중 일부만 나열해 본 것이다.  

 

마릴린 먼로는 짧지만 굵게 살다가 여자라고 할 수 있다. 1926년에 태어나 1962년에 만 36살로 죽기까지 모두 3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일생 동안 3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그녀를 팔자가 기구한 여자라고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매 결혼마다 남편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고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첫번째 결혼은 그녀의 나이 불과 16세에 했다. 당시 공장 노동자였던 James Daugherty라는 사람과 했는데 20살이 될 때까지 4년간 지속된 결혼생활이었다.

 

두번째는 제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는데 뉴욕 양키즈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Joe DiMaggio와의 결혼이다. 불과 274일만에 이혼했다. 그녀의 나이 29살 때였다.

 

마지막 결혼은 '세일즈맨의 죽음'(Death of Salesman)으로 유명한 극작가 Arthur Miller와 했다. 조 디마지오와 이혼하자마자 바로 그 다음해에 결혼했는데 3년 반 동안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세번째 결혼이 1961년 1월에 파경을 맞고 다음해인 1962년 8월에 의문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전성기를 보냈던 여배우라 그런지 그녀가 관능미의 화신이라는 식의 극찬이 별로 와닿지 않았다. 섹시함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지난 세대에게 어필한 섹시함이 다음 세대에게도 그대로 호응을 얻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마릴린 먼로의 경우에는 시대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섹시함을 지녔다. 그녀의 관능적인 사진이 지금도 매년 약 100억원 어치씩 팔리고 있다는 것이 좋은 증거가 된다.

 

왼쪽 상단의 사진을 보면 흔히 말하는 백치미가 느껴진다. 하지만 바로 아래 사진을 보면 표정만 살짝 바꿨을 뿐인데도 이지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우측 상단의 사진에서는 전형적인 모델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우측 하단의 사진에서는 발랄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사실 그녀는 '섹시함'이라는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너무 다양한 색깔을 지녔다. 

 

내게 관능미라는 단어에 제일 근접한 여배우는 이보희다. 이장호 감독의 영화 '무릎과 무릎 사이'를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아줌마 역할로 요즘도 TV 드라마에 나오는 모양인데 한 때 수 많은 남자들의 몸을 설레게(?) 만들었던 장본인이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는 뭐가 있게?" 대답은 '과'다. 그녀로 인해 이렇게 유치한 조크까지 유행했었다.

 

세번의 결혼 중 제일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락내리락한 것은 위대한 야구선수 조 디마지오와의 두번째 결혼이다. 겨우 9개월간 지속된 짧은 결혼생활이었는데 결혼 자체보다 마릴린 먼로가 외롭게 죽은 후 평생 동안 그녀의 무덤에 장미꽃을 바쳤다는 조 디마지오의 로맨틱한 행동이 더 이야기 거리가 되었다.

 

겉으로만 보면 타고난 바람기를 참지 못한 아내로 인해 결혼생활이 일찌감치 파탄 났는데도 순정파인 남편은 죽은 전처를 평생 한결같이 그리워한 아름다운 이야기 같다. 하지만 막상 내막을 알고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마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당시 조 디마지오는 부상으로 그간 선수로 활약했던 Yankee Clipper(New York Yankees의 전신)에서 은퇴한 상태였다. 한 시범경기에 게스트 자격으로 출전했는데 마릴린 먼로가 그 경기에 초대되어 다른 선수들과 화보촬영 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한 눈에 마릴린 먼로에게 반한 조 디마지오는 사람들을 통해서 데이트 신청을 했는데 첫 데이트에 마릴린 먼로가 2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아무리 잘 나가는 여배우였지만 당대 최고의 야구선수인 조 디마지오를 2시간 씩이나 바람을 맞췄으니 분위기가 영 어색했다. 하지만 마침 데이트 장소인 식당 안에 있던 한 남자 배우가 두 사람이 있던 테이블로 와서 분위기를 돋궈준 탓에 무난하게 첫 데이트가 마무리 되었다. 마릴린 먼로는 사과도 할겸 자신이 직접 운전해서 조 디마지오를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마릴린 먼로에게 온 정신을 뺏긴 조 디마지오는 첫 데이트 다음 날부터 매일 전화를 해서 '애프터'를 신청했지만 계속 거절당했다. 2주 동안 매일 전화했는데 거절당하자 조 디마지오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마릴린 먼로가 조 디마지오에게 먼저 전화를 해서 데이트를 하자고 했다.(남자 다루는 법이 아주 수준급이다) 그 이후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져서 1954년 1월에 결혼에 이르게 된다.  

 

결혼식은 세간의 이목을 피해 샌프란시스코 시청의 작은 홀에서 친구 부부 1쌍만 참석한 가운데 간단하게 올려졌다. 주례는 판사가 섰고 결혼식은 약식으로 치러졌다. 비록 결혼식은 간단했지만 두 수퍼스타의 결혼을 취재하려는 미디어의 열기는 장난이 아니었다. 시청 청사 앞에는 수 백명의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갓 결혼한 두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청 청사에서 약식 결혼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마릴린 먼로와 조 디마지오.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것이냐는 질문에 마릴린 먼로는 최소한 6명은 낳겠다고 했다. 영화는 계속 찍겠지만 현모양처 노릇도 제대로 하고 싶다고 했던 그녀의 기대는 1년이 못가 깨져버렸다.

 

       결혼식은 소박했는지 몰라도 두 사람의 결혼소식은 모든 미디어를 대대적으로 장식했다.

 

여러모로 대칭적인 캐릭터인 두 사람의 결혼은 완벽한 결합으로 비쳤다. 서로 상대방이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개성이 강한 두 사람이 융합되기에는 서로의 차이가 너무 컸다.

 

조 디마지오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집안에서 조용히 자신을 챙겨줄 수 있는 스타일의 아내를 원했다. 반면 마릴린 먼로는 자신이 영화배우로써 더 성공할 수 있도록 외조해주는 남편을 기대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상대방의 일에 관심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조 디마지오에게는 야구가 인생의 전부였는데 마릴린 먼로는 스포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한편 조 디마지오는 영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다.

 

많이 알려진대로 두 사람의 파경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 것은 뉴욕에서 촬영 중이던 영화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이었다. 지하철 송풍구에서 올라온 바람이 마릴린 먼로의 하늘거리는 드레스를 날려올리고 그녀가 섹시한 모습으로 치마를 누르는 문제의 그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사의 명장면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마릴린 먼로가 그러고 있으니 별 상관이 없는 것이지 내 아내가 그러고 있었다면 분명히 심기가 편치 않았을 것이다. 문제의 장면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보수적인 조 디마지오의 불편한 심경이 충분히 공감된다. 다음 날 모든 신문에 자기 아내의 치마가 들춰지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렸으니 그도 그럴만하다. 그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이 수근댈 말이 뻔히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둘은 집으로 가서 크게 싸웠고 이 싸움의 불씨는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기분전환을 위해서 뉴욕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갔지만 부부싸움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조 디마지오가 분을 참지 못하고 손찌검을 하고만 것이다. 마릴린 먼로는 당장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조 디마지오와의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동료배우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내의 치마가 올라가는 것을 뚫어지듯 보는 장면을 옆에서 응시하고 있었던 조 디마지오. 그날 밤 대판 부부싸움을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의 마음을 돌리려고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마릴린 먼로가 그를 아예 상대해주지 않자 프랭크 시나트라와 같은 지인들에게 둘을 재결합시켜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하지만 한 번 돌아선 그녀의 마음은 그의 어떤 노력에도 돌이켜지지 않았다.

 

한편 조 디마지오와 헤어진 후 마릴린 먼로 또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남자 저 남자의 품을 전전했고 케네디 형제와 동시에 정사를 벌인 것도 바로 이 시기였다. 뭇 남자들과 연애를 했지만 그녀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허전함은 달래지지 않았다.

 

방황하던 그녀의 마음이 안식처로 다시 찾은 곳은 조 디마지오였다. 순간의 실수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하던 조 디마지오에게 그녀의 완고하던 마음의 문도 다시 활짝 열렸다.

 

두 사람은 재결합을 공식화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을 늘려갔다. 당시 두 사람이 데이트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서로에게 깊이 빠져있었다고 전한다.

 

재결합을 향해가던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다. 1962년 8월 4일 마릴린 먼로가 자살을 한 것이다. 지금도 마릴린 먼로의 자살에 대해서는 타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죽기 직전까지 조 디마지오와의 결합을 위해 들떠있던 그녀를 생각하면 전혀 근거가 없다고 부인하기 힘들다.

 

그녀가 죽은 뉴욕의 아파트 관리자들은 마땅히 연락할 곳이 없어서 조 디마지오에게 연락을 했다. 그는 모든 이들을 물리치고 혼자서 그녀의 장례를 준비했다. 장례식에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수퍼스타의 장례식이니만큼 최소한 영화사 관계자들과 동료 배우들만이라도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당신들이 아니었다면 마릴린은 여전히 멀쩡히 살아있을 것이오"라며 일축했다.

 

뉴욕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장례식이 끝나고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의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오"라고 몇 차례나 흐느꼈다고 한다.

 

두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 중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하는 대목은 조 디마지오가 죽기 직전까지 그녀의 무덤에 매주 두 번씩 장미꽃을 바쳤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그가 매일 장미꽃을 바쳤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매주 두 번씩이었다. 횟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마릴린 먼로의 무덤에는 지금도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사진 속의 장미꽃처럼 조 디마지오도 그녀를 위해 장미꽃을 꽂아서 외롭게 죽어간 마릴린 먼로의 영혼을 위로했으리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조 디마지오는 마릴린 먼로가 살해당했다고 굳게 믿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좀더 이해심이 넓었다면 그녀와 이혼을 했을리도 없고, 이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죽이고자 했던 세력으로부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남은 인생 동안 마릴린 먼로에 대한 죄책감과 그녀에 대한 그리움에 시달려야만 했다.

 

마릴린 먼로와 달리 조 디마지오는 오래 살았다. 세기말의 소란스러움이 가득했던 1999년 3월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평생토록 가슴에 품어왔던 마릴린 먼로에 대한 사랑도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둠으로써 겨우 식었을 것이다.

 

노신사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죽은 아내의 무덤을 찾아 조용히 장미꽃을 바치는 모습은 상상만해도 사람들을 숙연하게 만든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3년만 지속되어도 다행이라는 남녀간의 사랑이지만 우리는 얼마든지 예외를 확인한다. 아니 사랑은 영원히 지속되어야 하는 것인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끊임없이 예외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마음으로나마 평생 장미꽃을 바치고 싶은 대상이 있을 것이다. 오늘만이라도 그 마음 속의 연인에게 장미꽃 한송이를 바쳐보는 것이 어떨까.

 

사족 두 마디.

 

마릴린 먼로는 백치미의 상징처럼 여겨졌다. 그녀는 그런 세간의 평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런 편견에 맞서고자 했다. 죽은 후 알려진 것이지만 그녀의 아파트에는 200여 권의 책이 책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마릴린 먼로가 특별히 좋아했던 것은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와 영국의 시인 존 키이츠였다고 전해진다.

 

금발의 미인들은 머릿 속이 비었다는 편견이 있다. 백치미로 상징되던 마릴린 먼로도 금발이었는데 사실은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졌다. 금발로 염색한 것이다. 머릿 속이 빈 금발여자은 영어로 dumb blonde라고 한다. 그리고 백치미인 여성을 지칭하는 bimbo라는 단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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