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

[스크랩] [과학다큐] 니콜라 테슬라 의 위대한 업적 -1부-

그리운 오공 2013. 10. 18. 15:18

시대를 앞선 비운의 천재 전기공학도 니콜라 테슬라 와 비열하고 악독한 사업주 에디슨

 

유럽,미국,...그리고 한국 대기업 공학 명장도 죽었다 깨어나도 범접할수 없는

세계일류의 위대한 과학자!! "니콜라 테슬러" ..

그가 있었기에 과학이 발달될수 있었고 오늘날 현대문명의 우리가 있는것. 그의 업적은 실로 대단했으며

모든 실생활 제품이나 기체,기계,공업,산업에 그의 기술이 들어가 있다.

UFO, 귀신혼령현상, 순간이동, 타임머신이론, .....등 미스터리 에 관한 연구에도 쓰였을 정도로 창의적인 발명가 였고.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발명가 이자 과학자 라는 수식어와 찬사가 많다.

테슬라는 1856년 이 당시에 나올수 없는 발명과 최첨단 기술로

자기 융합 발전 시킬수 있는 전기적인 발전장치를 만들었다.

고도의 천재성을 갖추었으며,

아직까지도 미국의 테슬라 전기자동차도 테슬라의 기술이 쓰이고 있다.

에디슨 과 아인슈타인 보다 대단한 인물이었음을 알수있다.

니콜라 테슬라는 세상을 이롭게 한 위대한 과학자 였다. 

그리고 자신은 사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체 온갖 피해와 설움등을 견뎌야 했던 인물임이 밝혀진다.

 

 

니콜라 테슬러(Nikola Tesla)라고 하면 우리에게는 형광등과 네온사인을 발명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데요.(혹은 레드얼럿을 떠올리는 분도 있을 것이고.)

교류발전기, 라디오, 형광등, 네온사인, 공진형변압기, 점화플러그, X선 튜브, 레이더, 자동차 속도계, 전자현미경, 수력발전...수없이 많은 업적을 남긴 니콜라 테슬러. 근대의 천재 과학자들이 대게 그랬듯이 그도 상당히 심한 수준의 오덕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이 오덕 과학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르비아의 100디나르 지폐. 유고슬라비아 당시에는 5디나르였다가 2003년부터 100디나르로.

잘 보면 T=Wb/m^2이 써 있다. 뒷면에는 회로도까지...

 

 

니콜라 테슬러는 1856년 당시 헝가리(지금의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납니다. 부모는 모두 세르비아인이었습니다.(이 때문에 세르비아의 100디나르 지폐에 테슬러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테슬러는 어린 시절부터 벙상치 않은 아이였는데 너무 공상에 집착한 나머지 환각을 보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소년 시절에 우주인과 미확인비행물체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우주인에 대한 자료를 모아서 열독하고, 우주인과 교신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우주인과 교신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우주인과 교신하기 위해서는 역시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서 전기공학에 심취하게 됩니다.

 

역시 오덕이 한 가지 일에 심취하면 그 집중력은 초인적인 경지에 이르는 법! 테슬러는 오스트리아 제국그란츠에 다니던 1880년, 24살의 어린 나이로 교류전기유도의 원리(페러데이의 법칙의 교류 버전)를 발견합니다. 하지만 학비가 없어서 1881년 학교를 중퇴하고 헝가리국영전신국에 취직을 합니다.

 

전신국에서 일하던 테슬러는 얼마 후 에디슨사(지금의 GE)의 프랑스법인에서 일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을 하면서 전기공학에 대한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데요. 이 소문이 미국에 있는 에디슨의 귀에도 들어갑니다.

 

에디슨은 위인전기들을 통해 상당히 이미지가 많이 왜곡되어 있는 인물인데요. 괴인에 가까운 행동을 하는 비운의 천재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지만, 사실 에디슨은 비열하고 악독한 사업주였습니다.

  에디슨은 100년에 1명 태어날까말까한 천재였고, 그 특이한 이력 때문에 세간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인이 된 에디슨은 이러한 자신에 대한 관심을 마케팅에 활용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천재성에 더욱 신비주의를 가미하기 위해서 기자들을 돈으로 매수하고, 자신의 발명품을 정부 기관에 납품시키기 위해 정치가를 매수하거나 경쟁사의 기술자를 돈으로 매수하는 등의 행위를 일삼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에디슨의 가장 질나쁜 악행이 무엇이었는가 하면 지금의 대한민국 사업주들이 아주 많이 하고 있는 이른바 "단물 뽑아 먹기"였습니다. 이름 좀 날린다는 엔지니어가 나타나면 일단 스카웃 해와서 연구를 시키고, 그 연구의 결과물인 발명품이 나오면 특허를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한 뒤 연구자를 쫓아내는 식이었죠.

실제로 에디슨의 발명품 중 다수가 이런 식으로 빼앗은 아이디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심지어는 전구나 축음기도 에디슨의 발명품이 아니라고 하죠.)
아무튼 에디슨은 새로운 먹이감인 테슬러가 매우 마음에 들었고 프랑스지사에서 근무하는 이 청년을 미국 본사로 불러들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단물을 빼먹을려고 불러들인 테슬러가 에디슨의 생각보다도 좀 심하게 천재였던 겁니다. 그 천재성은 에디슨 자신을 능가할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천재성 뿐만이 아니라 오덕질에 있어서도 에디슨의 스케일을 훨씬 뛰어 넘는 괴인이었던 겁니다.

 

테슬러의 오덕질은 대게 이런 식이었습니다. 워낙에 공상과학에 심취해 있던 테슬러였던지라 자신이 좋아하던 SF작가들과 만나 "내가 이런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당신이 소설 좀 써봐"라고 의뢰를 한다거나 "내가 끝내주는 영감이 떠올랐는데 당신이 이것 좀 노래로 작곡해봐"라는 식으로 자신이 관심을 갖던 분야에 깊게 관여했고,

각종 공상과학 관련의 신비주의 단체에 직접 참여해서 자신의 과학 실험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미국 오덕들에게 있어서 테슬러는 거의 오덕의 신이었던 셈이죠. 실제로 테슬러는 마크 트웨인과 휴고 건즈백(휴고상의 그 사람)의 절친한 친구로 이들의 소설에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과학적인 부분의 감수를 해주는 등의 역할을 했습니다. 휴고가 <모던 일렉트로릭스>를 창간할 때 자금을 지원한 것도 테슬러였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디슨은 재능에서도 오덕질에서도 자신을 능가하는 테슬러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에디슨의 불만은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됩니다. 바로 전기송수신 시스템을 개발하게 되면서 사내에서 에디슨과 테슬러가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본래 전기 송수신은 교류로 하는 것이 당연히 유리합니다. 고전압으로 송신해야만 전기 손실이 적고 멀리까지 전송이 될 수 있는데요. 문제는 교류는 고전압이라서 매우 위험하고, 교류를 전기 제품에 사용하기 위해서는 고압전류를 강압하는 변압기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고전압 교류를 110V 수준으로 강압하는 변압기가 개발되어 있지 않았고, 이걸 만들만한 기술력도 없었습니다.


이에 에디슨은 현실적으로 교류는 사용할 수 없으니 110V의 직류를 바로 송출하는 게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직류에 대한 특허들을 모두 독점합니다.

그러나 테슬러는 자신이 곧 변압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교류를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 때문에 에디슨사 내부에서도 연구원들이 '에디슨-직류파'와 '테슬러-교류파'로 나뉘어 대립하게 됩니다. 여기다가 사회주의적인 사상에도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던 테슬러는 슬슬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테슬러가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테슬러를 퇴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그 퇴출 방법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아주 큰 프로젝트 하나를 던져주고 성공시에 상당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약속한 뒤 실제로 프로젝트가 끝나면 말을 바꿔서 인센티브를 주지 않는 것이었죠. 결국 3년여만에 테슬러는 에디슨에게 크게 실망해서 회사를 나오게 됩니다.

 

테슬러가 에디슨과 심하게 대립하긴 했지만 사실 에디슨의 회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테슬러는 에디슨을 매우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왜냐면, 달걀을 부화시키기 위해 품었다던가 1+1은 왜 2냐고 선생에게 물어봤다던가 하는 에디슨에 대한 도시전설들은 당시 과학 오덕들에게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것이었고, 외계인과 교신할 방법을 연구하던 테슬러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테슬러가 만난 에디슨은 돈에 미친 악덕 사업주였고 그런 에디슨의 모습에 너무 크게 실망해버린 것입니다.


테슬러는 에디슨사에서 나온 뒤 '테슬러 일렉트로닉 라이트 컴퍼니(Tesla Electric Light Company)'라는 회사를 차려서 교류 전기에 대한 각종 특허를 획득하고 교류발전기(지금의 발전기 시스템의 원형)를 발명합니다. 그런데 '테슬러 일렉트로닉 라이트 컴퍼니'는 말이 독립회사지 사실은 테슬러 개인의 이름뿐인 법인이었고, 테슬러는 낮에는 알바하고 밤에는 연구하며 교류발전기를 만들어 냅니다.

 

에디슨은 직류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변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데다가 테슬러에 대한 강한 시기심 때문에 끝까지 직류를 고집합니다. 그런데 직류는 전압이 낮아서 발전소에서 10km만 떨어져도 제대로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의 전기 사용자층을 고려해봤을 때는 이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발전소에서 10km 떨어진 곳까지 전선을 깔아줄 자본도 없었고, 전기 수요도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으니까요. 이제 세상은 에디슨의 뜻대로 돌아가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뜻하지 않는 문제가 생겨버립니다.

 

1888년 당시 철도용 에어브레이크 시스템을 만들던 웨스팅하우스일렉트로닉스(WHE)가 테슬러를 영입해서 전기사업에 뛰어든 것입니다. WHE는 에어브레이크 시스템으로 큰 돈을 벌었기 때문에 자금력에서는 에디슨에 뒤질게 없었는데, 테슬러를 영입해 교류로 전기를 공급하겠다고 나서면서 에디슨을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왜냐면 에디슨 자신도 교류 방식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변압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직류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쫓아냈던 테슬러가 1년 만에 변압기를 만들어서 문제를 해결해 버렸으니 에디슨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었던 것이죠.

 

에디슨은 평소에 늘 하던대로 언론을 이용하기 시작합니다. 교류가 얼마나 후졌고, 직류가 얼마나 우수한지를 언론사 기자들을 매수해서 대대적으로 홍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류의 기술적인 우수성 때문에 에디슨은 고전을 면치 못합니다. 이런 때에 에디슨의 머리에는 너무나도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됩니다. 바로 네거티브 전략을 이용해 상대방을 죽여버리겠다는 것이었죠.

 

교류의 문제점은 변압기를 거치지 않으면 고압 때문에 전기기구가 설치된 집이 통채로 타버릴 수도 있을 만큼 위험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테슬러가 고안한 교류 시스템은 매우 안전한 것이었지만 교류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2000볼트 정도만 가지고도 사람 한 명 잡는 거야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에디슨은 이것에 착안해서 진짜로 전기로 사람잡는 기계를 만들기로 합니다. 이것이 미국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문제의 '전기의자'인 것입니다.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 정도를 죽일 수 있는 기계를 만들고, 점차 연구를 거듭해서 사람을 한 방에 보내버릴 수 있는 전기의자를 발명하는데 성공한 에디슨은 곧바로 언론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 전기의자를 사용하면 교수형보다도 고통 없이 더 빠르고 깔끔하게 사형을 집행할 수 있습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2000볼트의 아주 위험한 교류전기를 흘려보낼 뿐이죠."

 

이런 에디슨의 멘트와 전기의자에 대한 각종 소개 기사가 신문을 통해 퍼져나갔고, 심지어는 뉴욕주에 로비를 해서 주지사로하여금 전기의자를 통한 사형 집행을 법제화하는데까지 성공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윌리엄 캐믈러'라고 하는 미국 역사에 기록된 살인마입니다. 도끼 살인마로 유명한 인물인데, 이 사람이 에디슨의 전기의자를 이용한 첫 피실험자로 선택됩니다.


WHE 입장에서는 캐믈러가 전기의자에 사형된다면 교류전기 진영의 타격은 매우 심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WHE와 교류전기를 지지하는 여러 회사들이 약 10만달러의 돈을 모아(당시돈으로 10만 달러) 변호인단을 구성해 캐믈러를 변호합니다.

그러나 이미 에디슨이 주정부와 법정을 모두 매수해놨기 때문에 캐믈러는 사형을 언도받고 전기의자의 첫번째 희생자가 됩니다.(그러나 정작 이 첫 사형은 아주 멋들어지게 실패를 해서 에디슨에게 제대로 망신을 줍니다.-_-)

 

교류를 이용해 사형을 집행할 수 있다는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교류에 대한 안 좋은 인상을 갖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이 때문에 WHE와 테슬러는 점차 궁지에 몰립니다. 에디슨은 이제 꼴보기 싫은 테슬러가 드디어 몰락하고 자신이 테슬러보다 더 천재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고 기뻐합니다. 이런 때에 에디슨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건이 터지고 맙니다.

 

교류전기 진영이 위기에 몰리고 WHE가 파산 직전의 상황이 되자 테슬러는 갑자기 교류전기와 관련된 자신의 모든 특허를 포기하고 교류전기에 관련된 모든 장치와 기술을 누구나 자유롭게(공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를 해버린 겁니다. 라이선스 비용에 대한 부담이 없는 교류는 직류보다 더 빠르게 퍼져나갔고, 당연히 직류와 교류의 대결에서 교류가 완승하게 됩니다.


"경제만 살리면 되지~"식의 자본주의 신봉자였던 에디슨에게 있어서 테슬러의 결정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는 미친짓이었던 겁니다. "자기 재산권을 포기하다니...이X 완전 빨갱이잖아."...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되면서 테슬러에 대한 에디슨의 증오는 더욱 깊어집니다.

 

 

에디슨이 테슬러를 그토록 증오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에디슨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 말인데,사실 이 말은 에디슨이 한 말이 아닙니다. 본래 에디슨이 한 말은 "천재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은 쓸모 없는 것이다."라고 말했고, 이것을 기자가 잘못 옮겨 적으면서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다."로 알려진 것이죠.

 

그렇습니다. 에디슨은 천재가 되기 위해 99%의 노력을 한 사람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을 과시하는 걸 좋아했고, 천재가 아닌 인간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테슬러는 아주 전형적인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천재였던 것이죠.

매일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다음날 새벽 5시까지 연구하고, 집에도 가지 않고 회사에서 거의 생활하면서 연구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닙니까! 에디슨은 그런 테슬러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천재는 1%의 영감이 없으면 99%의 노력이 쓸모 없지만, 너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지. 테슬러 넌 1%의 영감이 있어도 99% 노력이 쓸모 없어."

 

에디슨으로서는 자신의 가치관과는 완전히 대립하는 테슬러가 자신보다 더 잘났다는 걸 용납할 수가 없었던 겁니다. 이 때문에 에디슨은 죽을 때까지 테슬러를 괴롭힙니다.

 

1893년 테슬러는 무선 트렌스미터, 즉 라디오를 발명합니다. 그런데 이 테슬러의 무선 트렌스미터는 에디슨의 방해공작으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마르코니, 에디슨, 카네기(철강왕) 등의 공작으로 특허권을 마르코니에게 빼앗깁니다.

마르코니는 1909년 라디오를 발명한 업적으로 노벨상까지 받게 되죠.(물론 1943년 미국 대법원에 의해서 라디오의 특허권은 테슬러에게 되돌아갔고, 무선 트렌스미터의 공식적인 발명자는 테슬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무선 트렌스미터는 테슬러가 우주인과 교신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드는 과정에서 태어났다는 겁니다. 물론 테슬러 자신은 이걸로 우주인과 교신이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당시의 SF오덕들은 테슬러를 매우 존경하고 있었고 당연히 무선 트렌스미터로 우주인과 교신이 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테슬러는 1898년에는 점화플러그로 미국내 특허를 취득합니다. 이 점화플러그는 테슬러 코일의 원리를 응용한 것이었습니다.(현재 내연기관에 사용되는 점화플러그는 테슬러가 발명한 것)

테슬러 코일이란 일종의 공진형변압기입니다. TV등에서 전기를 이용해 번개나 스파크를 인위적으로 발생시키는 실험을 많이 보셨을겁니다. 그게 바로 테슬러 코일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무엇이었는가 하면, 이 테슬러 코일을 발명한 테슬러 본인조차도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명확한 원인을 알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이것도 우주인과의 교신을 위한 장치를 만들던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인데요. 테슬러를 지나치게 존경하던 당시의 과학 오덕들은 여기에 자신들만의 가설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테슬러 코일 효과

 

당시 과학 오덕들이 세운 가설은 테슬러는 사실은 우주인이고, 자신의 본성과의 교신을 위해서 지구의 뒤쳐진 과학기술을 응용해 무선 트렌스미터라는 교신장치를 만듭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해 본성과 교신이 성공해서 본성의 좌표를 얻게 되었고,

이제는 본성에 돌아기가 위해서 우주선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우주선을 위해서 동력원이 필요한데 그 동력원으로서 만들어진 것이 바로 테슬러 코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테슬러 코일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면 물체를 순간이동 시킬 수 있다는 이론까지 나오게 됩니다.

 

이 테슬러 코일에 강력한 자기장을 걸었을 때의 현상은 여러 도시전설과 사이비과학의 소재가 되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허치슨 효과'라는 것입니다.

허치슨이라는 사람이 테슬러 코일을 마주보게 설치한 뒤 강력한 자기장을 걸어주었을 때 물질의 순간이동에는 실패했지만 그 사이 공간에 중력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 현상을 발견한 것입니다.(진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기의 힘으로 얼마든지 중력의 영향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 실험도 자기가 할 때는 재현되는데, 남이 똑같이 하면 재현이 안 되는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결국 저게 진짜인지 증명을 못 한다는 이야기.

 

 

에디슨은 테슬러의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를 이용했습니다. 테슬러의 각종 연구에 신비주의적인 색채를 덧씌워서 테슬러와 우주인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드는데 언론을 활용하고, 어떻게든 테슬러를 깍아내리려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죠.

이 때문에 테슬러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이미지는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테슬러는 이런 이야기가 나오건 말건 신경을 끄고 계속 연구에만 몰두해서 에디슨을 더 열받게 합니다.

 

테슬러는 에디슨 말고도 아주 많은 적을 만듭니다. 철강왕인 앤드루 카네기, 억만장자였던 J.P.모건 등이 테슬러의 가장 큰 적이었습니다. 이들이 테슬러의 적이 된 것은 테슬러 자신에게 책임이 있었습니다.

 

억만장자인 J.P 모건은 천재 공학자인 테슬러에게 깊은 흥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건은 테슬러를 지원해 거대한 무선송신탑을 개발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무선송신탑을 개발하는 동안 모건의 집에 빈번하게 드나들면서 모건의 딸이 테슬러에게 홀딱 반해버린 겁니다. 모건의 딸이 테슬러에게 반한 것이 충분히 납득이 가는 게, 테슬러의 젊은 시절의 사진을 보면 클라크 케이블을 닮은 엄청난 미남에 키도 상당히 컸다고 합니다. 여기다가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를 비롯해 거의 전 유럽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공식적으로 8개국어를 구사했다고 합니다),

평소에 음악과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어서 모르는 음악이나 미술작품이 없었을 정도로 교양도 높았다고 합니다. 테슬러는 당시에 시인으로서도 상당한 명성을 얻고 있었고, 직접 작곡도 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공학자였으면서도 우주인의 존재를 믿고 공상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거침 없이 하는 등
,

부잣집에서 화초처럼 자란 영애의 눈에 테슬러라는 남자가 어떻게 비추었는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죠. 테슬러와 모건의 딸과의 관계 때문에 테슬러와 모건의 관계는 악화되고 송신탑의 건설이 끝나고 1905년이 되자 모건은 자금 원조를 끊어버립니다.

 

왼쪽이 젊은 시절의 에디슨, 오른쪽이 젊은 시절의 테슬러.

테슬러 생긴 걸 보십시오. 여자들이 안 넘어갈 거 같으세요...-_-(그야말로 엄친아)

 

그를 원조하던 억만장자들의 대부분이 모건과 비슷한 이유로 사이가 악화되어서 테슬러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합니다.(게다가 그렇게 테슬러를 증오하는 권력자들끼리 연합해서 테슬러를 괴롭힙니다.) 그런 테슬러에게 결정타를 날린 것이 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테슬러는 1차대전의 원인을 제공한 세르비아계의 인물이었고 공식적으로는 미국인으로 귀화했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인물이었습니다. 세르비아계 헝가리인이라는 그의 태생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문제가 되어서 많은 박해를 받게 됩니다. 여기에 테슬러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이미지가 결합하면서 각종 괴소문이 나돌게 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괴악한 것이 무엇이었냐면 테슬러가 테슬러 코일을 이용해 기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테슬러가 기상병기를 개발했고, 이것을 오스트리아로 반출하려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테슬러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것이 전기를 이용해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이른바 '지진병기'와 전자파를 이용해 빔을 발생시켜 이것을 발사하는 '빔병기'였습니다. '지진병기'는 테슬러가 실제로 연구에 몰두하기도 했고, '빔병기'의 경우는 테슬러가 그 원리를 발견했다고 말하며

유럽 각국에 특허를 팔려는 시도를 했기 때문에 모두 실존했을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지진병기'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아무래도 일종의 도시전설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것은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는데요. 좀 과장된 일면이 있었죠. <언더시즈 2>라는 영화를 보면 인공위성을 이용해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진병기가 나오는데요. 이것의 원전이 바로 20세기초 테슬러의 기상병기입니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테슬러의 불행은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미국 정부에 위험인물로 간주되어서 감시를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테슬러는 너무 앞서가는 연구를 하다보니 20세기 초에 이미 전기를 이용해 움직이는 자동차를 개발하는데 성공합니다. 당시의 목격자들은 이것이 시속 90마일 정도로 달렸다고 하는데, 사실 그 정도 속도는 무리였을 것 같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였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전기 자동차도 여러 이익집단과 충돌하게 되면서 테슬러를 압박하게 되고, 스스로 이 자동차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폐기하게끔 만듭니다.

 

결국 수많은 적을 만들고 미국정부마저 적으로 돌린 테슬러는 연구에만 몰두하다가 1943년 맨하탄의 한 호텔에서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테슬러가 죽자 FBI가 출동해서 테슬러의 모든 연구 자료와 각종 발명품을 압수해갔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미국 정부에서는 테슬러의 시대를 앞선 초과학적인 연구들이 공산주의 진영에 흘러들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말년에는 반중력 에너지 발생장치(소위 말하는 반중력엔진)를 연구했다고 하는데요. 이것도 FBI가 자료를 몰수했기 때문에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습니다.

 

 

 

 

 

 

 

 

 

 

 




니콜라 테슬라.............

그는 1856년 7울9일 크로아티아의 스밀랸이란 곳에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그는 특이한 재능을 보였는데,다섯 살 때 수차를 발명하고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할 만큼 과학에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하지만 그가 과학분야에서만 소질을 보인것은 아니었다.

언어나 문학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 독일 불어 이태리어뿐만 아니라 슬라브언어 계통의몇몇 언어도 구사할수 있었다고 한다.
말년에는 12개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할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전통 의 그리스정교회, 목사가 되길 원했지만, 테슬라는 고등교육을 마치고 그라츠로 가서 기계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875년 장학금을 받으며, 그 당시 의 새로운 발명품이라는 "그람 기계"를 발명한 푀실 교수및에서 강의를 받았는데 테슬라는 강한 불꽃전류로 인하여 에너지 소비가 큰 기계를 개선하고 직류대신 교류로 작동을 해보고자 했는데,이는 훗날 그의 위대한 발명중 하나인 교류발전기를 만드는 기초가 된다.

 

또다시 흥미로운건 1900년 이 학자는 주목할만한 논문을 발표하는데,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 의 대재앙을 막기위해 인류는 이제 재생되는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해 연구해야 한다는 그 의 주장이다.

놀랄만하지 않은가... 이미 그 시기에 화석연료로 인한 자연환경파괴 의 위험성을 주장한것이다.그 는 역시 앞을 내다 보는 현인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은 씨알도 않먹였다.

 
 
미국의 주간지 ‘라이프 매거진’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의 한 사람으로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꼽았다. 이보다 앞서 2005년 말 크로아티아는 테슬라 탄생 150주년을 맞아 2006년을 ‘니콜라 테슬라의 해’로 정했고, 세르비아는 2006년 3월 베오그라드 국제공항이름을 ‘테슬라 공항’으로 바꿨다. 

테슬라를 두고 미국, 크로아티아, 세르비아가 서로 자기 나라의 발명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856년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으로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테슬라의 특이한 이력 때문이다.


 

 

 

기이한 삶처럼 그의 성격도 특이했다. 식사 전 광택이 나도록 스푼을 닦아야 하는 결벽증이 있었고, 손수건은 하얀 비단으로 된 것만 썼다. 호텔방의 호실은 3의 배수여야만 했고, 비둘기에 집착해 말년 그의 호텔방에는 비둘기 새장이 가득했다고 한다. 평생 독신으로 살며 발명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던 테슬라는 1943년 뉴욕의 한 호텔에서 쓸쓸히 숨을 거뒀다. 

그러나 세상은 시대를 앞서갔던 테슬라를 잊지 않았다. 1961년 국제순수 및 응용물리학 연맹(IUPAP)의 표준단위 및 그 정의에 관한 위원회는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테슬라의 이름을 딴 T(Tesla)를 쓰기로 했다. 전기를 이용한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었던 테슬라의 이름에 걸맞는 단위라 하겠다.

 

 

 

 

 

 

 

 

 

 

 

 

 

대체 에너지.........

이 대체 에너지란 무었인가?
요약 하자면 한마디로 "석유의 대체물(代替物)로서의 연료" 를 말하는게 아닐까 싶다.
석유의 대체..........시커먼 매연을 뿜고 냄새로 인해 구토를 일으키는 지구상의 널리 쓰이는 가장 확실한 에너지원이라 불리는 석유~ 그 석유대신에 새로운 에너지원을 쓸수있는 물체를 말한다.

그리고 현재 각국의 과학자들은 앞으로 석유자원의 고갈에 대비하여, 자동차용 대체연료 개발에 힘쓰고 있다. 이 대체연료로서 유망한 것은 알코올·식물성 기름·어유(魚油)·석탄액화유 등이다. 이미 브라질과 미국에서는 알코올과 가솔린을 혼합한 가소올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브라질에서는 순수 알코올로만 움직이는 자동차도 선보였다.

 

대체에너지들이 대중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문제점이 있다. 현재 미국의 에탄올 사용비율은 휘발유 사용량의 3%에 불과하고 2025년에도 4.3%까지 밖에 늘지 않을 것이라는 게 미국 에너지부의 전망이다. 

그리고 무었보다 위에 열거한 에너지원을 경제화시키기엔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으며,세계경제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중동산유국 의 입김도 과히 무시못한다.왜그러냐하면,요최근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 미국이  중동 석유 의존도를 2025년까지 75% 줄이겠다고 발표하자 세계 1위 석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이 7일 “값비싼 대체 연료는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 뿐”이란비난과,또 엑손 모빌 등 미국 주요 석유기업 대표들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구상을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몰아세우며 강하게 반발한적이있다. 

또한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 석유장관은 미 휴스턴에서 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 주최로 열린 국제 회의에 참석해 “유가 안정을 위해 하루 석유 생산량 1100만배럴을 2009년까지 1250만배럴로 늘릴 계획인데 우리 석유를 안 사겠다는 미국정부 의 얘기가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의 대체 에너지 정책 때문에 사우디가 유가 안정에 적극 나서지 않을 수도 있다는 협박성 메시지도 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어 “환경 보호란 명분으로 값비싼 대체 에너지를 강요하는 것은 사람들의 생활수준을 떨어뜨리고 빈곤 극복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행위”라며 각국의 대체 연료 개발 및 의무화 방침을 폄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클로드 맨딜 사무총장은 “미 정부가  마침내 미국의 석유 중독을 인정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지만 중동 석유 의존도를 대폭 낮춘다는 식의 발언은 중동 산유국에 석유를 증산토록 설득하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엑손 모빌의 스튜어트 맥길 수석부사장은 같은 회의에서 연설을 통해 “미국은 앞으로도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수입 석유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부시 정부는 석유 의존도 감축 정책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의 에너지 독립 정책은 불가능한 구상”이라며 “단기적,중기적으로 어떤 대체 에너지도 석유를 대신할 경제성을 가질 수 없다”고 덧붙였다.

위의 애기들은 대체에너지의 활용도는 그 기술적인 면을 떠나 각국의 이해관계 와 현실적으로 경제를 쥐고있는 세력들의 이해없이는 결코 활용도는 생각조차 할수없다는 것을 알수있다.
지구 의 경제 체제안의 원동력은 바로 석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체에너지안의 확고한 걸림돌을 안고살아가고 있는 우리 지구인들은, 사실 수많은 과학자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결실은 세계경제를 쥐고있는 세력들의해서 접해보질 못하고 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전기자동차는 직류모터를 사용하는데, 이에 반하여 테슬라는 교류모터를 사용했고 차 뒤에는 18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안테나를 장착하였다. 

1931년 피어스-애로사와의 계약하에 진행된 테슬라의 자동차를 시험 운전한 사람은 테슬라와 같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으로 오스트리아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으며, 테슬라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피타 사보(Petar Savo) 라는 32세의 청년이었다.

1960년대에 와서 사보가 증언한 바에 빠르면, 그들은 버팔로의 어느작은 차고에 들어가서 자동차 본넷을 열고 가져온 진공관 12개를 장치에 꽂고 무언가를 조금 조종하고 시동을 걸었다.

전기를 일으키는 장치는 길이 60센티미터에 폭 30센티미터 높이 15센티미터의 상자처럼 생겼으며, 사용한 진공관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후에 3개는 70L7-GT 진공관으로 밝혀졌다. 사보가 운전대에 앉고 테슬라는 보조석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시동스위치를 켰는데 아무 소음이 없었고, 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앞으로 굴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버팔로 시내를 거쳐 시외에 까지 다니면서 시험운전을 했다. 속도계는 120마일 (시속192km)까지 있었으나 90마일(시속145km) 까지 밟았고 그런 고속에서도 자동차는 아주 조용했다.
시험운전을 마친 테슬라는 확신을 얻고 자동차에 대해 설명했다. 그 자동차는 연료가 전혀 필요 없으며, 여기에 사용된 원리는 자자동차를 움직일 뿐 아니라 가정에 전기도 공급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차 선박, 비행기에도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터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그의 장치는 단순히 에테르에 있는 신비스런 방사선을 받는 장치일 뿐이며, 그 방사선은 공중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므로 인간은 대기에 그런 에너지가 한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 말했다.

사보는 그후8일 동안계속 그 차로 시내와 시외를 운전하고 다녔으나 피어스-에로사의 휘발유 차종 8기통 125마력(bhp), 366in³(6000cc)짜리 차의 성능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운전을 끝낸 그들은 자동차를 다시 버팔로에서 20마일 떨어진 교외의 어느 비밀 장소에 갖다 놓고, 시동키와 전기장치를 떼어 집으로 가져 갔다.

  그런데 테슬라의 비서가 허락 없이 차에 대한 소문을 퍼뜨린 덕에 테슬라는 어떻게 배터리 없는 전기자동차를 만들수 있으며 전원은 어디에서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이에 대해 테슬라는 주변에 널려 있는 에테르에서 얻는다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그때 테슬라가 미쳤다는 사람도 있었고 악마를 신봉하는 조직과 연루되어 마귀의 힘을 빌려 괴상한 이적 행위를 한다는 말도 있었다
피어스-애로사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정 때문인지 이 전기자동차는 결국 햇빛을 보지 못했고 이로 인해 테슬라는 다시 뉴욕 시로 돌아가면서 그 장치를 분해 해서 없애 버렸다,
참고로 에테르에 대해 설명을 좀 하고 넘어가겠다. 원래 에테르는 하나의 가설로, 19세기에 빛.열.전자파 같은 것을 전달하는 매체이자우주공간을 채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켈슨-몰리(Michelson-Morley)나 아인슈파인(Aibert Einstein) 같은 과학자 덕분에 불필요한 가설이 되었고, 지금은 마치 전기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말하는것과 마찬가지로일종의 가정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사회의 통념을 따라 '에테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그가 말한 것은 '슈만공명'을 의미했다. 

그는 지구 표면에서 전리층(고도 약 80킬로미터) 사이를 '슈만층(Schumann Cavity) 이라 하고, 슈만층에는 7.83헤르츠의전자기 파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슈만공명 또는 '지구 자장의 맥박' 이라고 했다. 이 파장은 지구 표면의 슈만층 어느 곳에나 전혀약화됨 없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동차에 사용한 무료전기는 바로 이 슈만 공명을 잡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의미였고, 누구나 간단한 변환기만 있으면 지구 어느곳에서나 쉽게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놀라운 것은 그가 이미 그 기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자동차는  구동 에너지를 기존의 자동차와 같이 화석 연료의 연소로부터가 아닌 전기에너지로부터 얻는 자동차보다 더뛰어나고, 지금으로서도 새로운 기술로 탄생된 " 에테르 연료 자동차 "는 테슬라 의 평판과 그 자동차의 실용성에 의문을 품었던 "피어스-애로사" 와의 알수없는 협상을 통해 결국 완전분해된는 결과를 맞이한다.

정말 알고싶은건 그 미스테리한 자동차가 실존했으며 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그 신비한 자동차를 "피어스-애로사"는 왜 무시했는가 이다.

단지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피어스-애로사"는 이 자동차의 존재를 절대 인정치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에너지원을 바꿔야한다는 결론은 그 들 뿐만이아니고 ,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다른 생산업체도 인정치못했을 테니까..............

세계의 화석연료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피할 수 없는 '연료 대란'을 목전에 둔 현실에서, 테슬라가 영원히 무료로 사용할수 있는대기 중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고성능의 자동차를 버팔로 시내에서 질주 했다는 것은 생각 있는 과학도들에게 자극제가 될것이다.

 

어찌되었던 니콜라 테슬라는 이 석유라는 문제에 있어 이미 60여년전에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그 해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에디슨 의 직류전기가 테슬라 의 교류전기보다 더 상업적으로 활용돼었듯(물론 나중에 교류전기도 상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잘 알려지지도 못한채 창고에서 분해되고 말았다.

테슬라와 함께 사라진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그의 이론과발명품들이 너무도 많다. 만약 그의 업적이 교류전기 하나로 그쳤다면, 우리는 지금 전기에 관해 에디슨보다 테슬라를 떠올리고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언뜻 듣기에 모순처럼 들릴 것이다. 그의 업적이 한두가지에 그쳤다면 잘 알려졌겠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모른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말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고, 인간세상에서는 이런 모순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테슬라의 경우를 보고 재차 확인하게 될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의 발명품들은 대단한 것들이었지만, 누군가의 돈벌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도 할뿐더러, 자기네들만의 무기로 사용할 만한 가공할 위력을 가진 것이기에 세상에 숨긴 것이 아닐까 한다.

인류를 위해 좋은 발명을 하고도 매장된 이가 테슬라만은 아니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전자기파 비밀무기와 너무나 중요한 관련이 있기에 여기 소개한다.

테슬라는 역사 속에 묻혀 버린 무명의 여느 과학자가 아니다. 이 사람은 제2의 산업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마차 시대에 살면서 달에 로켓을 보낼 수 있는 이상의 미래를 개척한 과학자였다. 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을 산 사람이지만 , 21세기인 지금에도 세상 사람들이 아는 최첨단 과학기술보다 훨씬 더 앞선 과학을 만들었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90여 년 전에 녹음기, 마이크로피쉬, 홀로그램, 팩스 따위의 필연적 발명을 예견했고, 1928년 이미 텔레비전 설계도를 잡지에 발료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올듯 싶은 미래사회를 묘사한 [랄프124C41 +] 라는 소설을 쓴 휴고 건스백(Hugo Gernsback, 1884~1967)은 이런 테슬라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세상에서 가장 훌룡한 과학자라고 평했다. 

 

 

 

미국 미시건 주 앤아버의 초등학교 교사인 와그너(John Wagner)는 3학년 학생들에게 테슬라에 대해 가르치고 그의이름을 되살리기 위해 구리로 그의 흉상을 만들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해 줄 것을 요구한 일이 있다. 테슬라가 받은 특허번호와 모터가 에디슨관에서 에디슨의 흉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상은 박물관에 진열되지 못하고 예일 대학교에 진열되었다. 

이들의 진정에 의해 레빈(Carl Levin) 이란 상원의원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압력을 넣어 겨우 남자화장실 옆 복도 어두컴컴한 구석에 테슬라의 유물이 담긴 작은 유리상자 하나가 진열되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발간한 [발명책(The Smithsonian Book Invention)] 에도 니콜라 테슬라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 책에는 에디슨이나 경질고무 발명가인 굿이어(Charles Goodyear) 를 위시해 전동칫솔이나 자동토스트기의발명은 물론이고심지어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요리법을 특허낸 샌(Sanders)대령 같은 사람까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테슬라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미국 고등법원에서 라디오 발명가는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가 이니고 테슬라임을 오래 전에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르코니가 라디오 발명가로소개되고 있을 정도다. 일련의 사건들로 볼때 이것은 고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니콜라 테슬라는 세르비아 혈통으로현재 크로아티아의 스밀리얀이라는 곳에서 1856년 7월 9일 태어나 1943년 1월 7일 미국 뉴욕호텔 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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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뉴요커에 있는 테슬라를 기념하는 동판- 

그가 태어난 19세기 후반 동유럽은 터키가 대권을 장악하고잇었고 이에 대항한 독립운동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세르비아 정교회의 신부인 아버지로부터 지적인 지도를 받았고,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혜로웠던 어머니에게는 세상의 근본원칙과 인간의 기본적 도리를 배웠다. 그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했지만, 훌룡한 음악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즐겼고, 세르비아의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살면서가장 친한 문학가이며 언론인이었던 친구 부인과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소설 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이나 음악가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y) 같은 사람들과친분을 나누고심지어는 이들과 동업으로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가 다섯살 때 만든 물레방아가 있는데, 그의 물레방아는 보통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물레방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걸름막이가 없고 밋밋한 것이었지만 , 물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돌아갔다. 훗날 에 그는 같은 원리로날개 없는 터빈을 발명했다. 그의 시도가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번은 지붕 위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각도를 맞추어 우산을 폈다 .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 그는 분명히 우산을 이용하면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땅바닥에 정신을 일고 누워 있는 그를 그의 어머니가 방으로
옮겨야 했을 뿐이다.

또 한번은 풍뎅이를 잡아서 엔진을 만든 일이 있다. 16개의가는 막대기로 부챗살 모양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가운데 축을 고정하여 가볍게 돌게 하고 각 살 끝에 풍뎅이의 발을 풀로 붙여 놓았다. 한방향으로향한 16마리의 풍뎅이들이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수레가 돌아가는 엔진을 
고안 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웃의 한 친구가 들러서 병 속에 가득 잡아 놓은 풍뎅이들을 마구 먹어 치워 버렸다. 그것을 보고 테슬라는 그 다음부터는 아예 이런 발명은 하지 않았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대단한 경지에 있었다. 스티아치치(Stijiacic) 라는 세르비아의한 신부가 세르비아 연방의 젊은 작가 시절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 도서관에서 당시 유명했던 세르비아 시인 즈마이-요한 (Zmaj-Jovan) 의시집을 찾은 그는 번역자가 니콜라 테슬라임을 확인했다.

훗날 스티아치치 신부가 라도박사의 안내로 메트로폴리탄 빌딩 20층에 있는 테슬라의사무실에 서 그럴 만났을 때 "테슬라 씨, 당신이 시에도 능통한 줄은 몰랐습니다." 했더니,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매우 재미있다는 정으로 ............."세르비아 사람들 중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것이지요" ..................라고 대답햇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란 것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토대로 만든데 비해서 
니콜라 테슬라는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과학을 창조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를 능가할 과학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대담무쌍한 담력으로 이룩한 기초지식과 혁명적인 과학 발견은 
지식세계에서 또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대한 과학자가 어째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소개하는 테슬라의 자취는 수박 겉핥기 밖에 안되지만, 
읽어 가면서 그 원인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조작하고 왜곡한 사실을 절대 진리이자 진실의 역사로 믿는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1903년에는 세계의 모든 발전소가 테슬라의 원리를 
이용하여 교류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는 또한 공명(共鳴)과 관련하여 지대한 발명을 했다. 
그는 여러 형태로 시범을 보였지만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중에 하나가 신문기자들 앞에서 보여준 시범이다. 
그는 100톤을 견딜 수 있다는 두께 5센티미터, 길이 61센티미터, 폭 30센티미터 철판의 
양끝을 고정시켜 놓고 그 위에 탁상시계 크기의 전기진동기를 올리고 한참을 조정했다. 
잠시 후 철판과 진동기의 주파수가 서로 맞았을 때 철판이 떨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정도가 심해져 
결국 철판은 부러지고 말았다. 
이를 목격한 벤슨(A. L. Benson) 기자는 아무리 큰 망치로 두들겼어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이어 뉴욕의 고층빌딩 건축장에 가서도 이 조그마한 진동기를 철근에 부착시켜 
그 위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지진이 난 줄 알고 혼비백산하게 만든 일도 있다. 
그는 이 원리를 원격지구 역학진동(telegeo dynamic oscillation) 이라고 명명했는데, 
이 원리를 이용하면 적 잠수함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고, 지하 광맥을 찾을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지구도 쪼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X-레이도 처음 만들었다. 
1895년 12월 독일의 렌트겐(Wilhelm roentgen) 교수가 
X-레이의 발견과 유용함을 발표하였을 때 
테슬라는 자기가 이미 X-레이를 이용하여 머리를 찍은 사진을 렌트겐에게 보냈다. 
렌트겐은 이를 숨기지 않고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일반에 공개했다. 
이 때문에 테슬라는 유명해져 잡지사에 기고도 여러 번 하게 되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테슬라는 렌트겐 박사에게 영광을 돌리면서도, 그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다. 
테슬라의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잠시 공부한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는 
1900년 12월 21일 영국의 콘월에서 캐나다 뉴파운드랜드로 
짧은 파장을 이용하여 ‘S'라는 글자 하나를 송신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인해 ’마르코니‘는 무선통신의 선구자와 영웅이 되어 라디오의 발명가로 판정이 되었고,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2년 전인 1898년 테슬라가 이미 무선통신 라디오의 원리를 특허낸 일이 있었다. 
테슬라가 이에 대해 고소하여 승소했으나, 일단 유명해진 마르코니의 인상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고, 재벌을 배경으로 한 언론 덕택에 마르코니가 테슬라의 기술을 슬쩍
가져갔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테슬라도 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자기가 그때 실현시키려고 했던 방법이 잘 설비된 철로에서 달리는 호화여객차라고 한다면, 
대기를 매체로 짧은 파장을 이용한 마르코니의 방법으로 알려진 그 방법은 
마치 촌길을 가는 두 바퀴 마차에 비유할 수 있다고 신문기자들에게 설명했다. 

마르코니의 이 방법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통신방법이며, 100여 년 전인 그때 
테슬라가 말한 방법은 아직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소개되지 않았다. 
그때 테슬라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마르코니의 대기를 통한 송전방법은 대기 상태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거리를 고려해야 하며 전파는 대기의 상태 여하에 따라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방법은 긴 파장을 이용한 저주파로 지표면을 사용하므로 
거리의 제한이나 기후조건에 의한 제약이 전혀 없다고 했다. 
마르코니가 짧은 파장으로 무선통신과 라디오를 개발하고 있을 때 
테슬라는 롱아일랜드에 ‘워든클리프 타워’를 세우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자기가 말한 방법을 증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시대를 앞선 발명- 테슬라는 1899년과 1900년 사이 약 1년간 그의 변호사의 배려로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가 있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크나큰 기대를 가지고 그를 환영했으며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는 높이 51미터, 직경 18미터나 되는 탑을 건설하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된다. 
이 실험을 통해 많은 분야에 확신을 가지게 된 그는 1900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J.P. 모건의 경제적인 후원을 약속받고, 유명한 ‘워든클리프 타워’를 계획하게 된다. 

테슬라가 여기에서 발표한 중요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지구는 표면이 한 극이 되고 또다른 한 극이 전리층
(電離層, 지상 40~400킬로미터 정도에 형성된 기류층)이 상호 작용하는 
거대한 전기적 공명체(resonator)이다. 

● 지구 자체는 엄청난 전기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도관을 연결하듯이 뽑아서 쓰는 기구만 만들면 무료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 무선전기 전송 시스템은 지구표면과 전리층에 있는 
기본전파 혹은 고정전파 형태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전송할 수 있다. 
테슬라는 1901년 초부터 롱아일랜드에 지상높이 57미터, 지하깊이 37미터의 탑에 
직경 21미터 무게 55톤이나 되는 버섯모양의 금속관을 씌운 워든클리프 타워의 착공에 들어갔다. 
그는 이 탑으로 전기는 무제한으로 무선전송할 수 있고, 
방송국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누구나 필요할 때 아무데서나 무제한의 전기를 아주 싼값에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심한 육체노동의 사슬에서 풀려나 평화와 번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기 실험실에서 26마일 떨어진 곳에 전깃줄 대신에 
땅을 통해 전기를 보내 200개의 전등을 켜보였다. 
그러나 후원을 약속한 모건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착공에 들어가 이미 기술자들까지 채용한 테슬라는 특허이익의 51퍼센트를 모건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으로 15만 달러의 착수금만 겨우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워든클리프 타워’ 공사는 좌절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압박이 테슬라를 괴롭혔다. 
그의 이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만 몇 명의 돈 없는 친구들만이 
그를 위로해 주었을 뿐이었다. 
모건이 지원을 중단한 이유가 자신이 요구한 시설비가 마르코니가 제시한 것에 비해 
너무 많아 경제적으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듣고 
테슬라는 마르코니의 목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것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에 따르면 ‘워든클리프 타워’는 모든 종류의 전신과 음성과 글자를 자유자재로 
세계 어느 곳이든 무선으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전화와 전신 송신소들의 설비를 개조하지 않고도 
모두 연결시켜 줘서 전화 가입자는 전화 하나로 세계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며, 
같은 원리로 수신기만 가지고 있으면 육지나 바다에 관계없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른 곳에서 들려주는 음악이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지구 자체가 거대한 도체이기 때문에 당시 유선으로 가능한 일의 대부분이 무선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테슬라는 공사 좌절 이후 특히 1905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1907년과 1908년에는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기록하여 여러 개의 트렁크 속에 넣어 
약 20여 군데에 분산 보관했다. 

그가 살던 뉴욕 가버너 호텔에는 1만 달러를 들여 만든 금고까지 있었다. 
그는 1943년 1월 7일 아무도 없는 방에서 외롭게 숨졌고, 시체는 호텔 청소부에게 발견되었다. 
그가 미국에 온지 59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죽자 FBI는 외국인 자산관리소를 시켜 그의 모든 소지품을 차압했다. 
이에 대해 테슬라를 추모하는 단체들은 그가 남긴 모든 자료를 가져갈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이 길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10년 후에야 유고슬라비아에 사는 그의 조카가 
상속권을 인정받고 남은 물건들을 돌려받았다. 
이 유물들은 지금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테슬라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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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거리 통신 

테슬라의 무선송전 주장에 대해 당신 많은 과학자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무선송전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많이 했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테슬라는 처음으로 교류방식으로 박람회장 전체에 
전기를 공급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전기기계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독일 베를린 피지코 테크니컬 학회(Physico-Technical Institute)의 
헬름홀츠(Herman von Helmholtz) 수석감사가 이 현장으로 구경을 왔다. 

그는 테슬라에게 무선송전 방식에 관해 설명을 듣고, 이것이 대단히 실용적인 방식임을 인정했다. 
또, 1897년 뉴욕에 온 영국의 켈빈 경은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무선송전 시범을 보고 너무나 놀라 
“그렇다면 당신은 헤르츠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테슬라는 이에 “물론 아니지요. 이것은 전류가 아니라 방사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까지 켈빈 경은 무선송전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직접 목격한 순간부터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1900년 1월 테슬라는 콜로라도에서 지구 어디든지 무선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기계를 만들었고, 
사진을 세계 각지로 보낼 수도 있으며, 대기를 통해 음악도 보낼 수 있다고 서술했다. 
1915년 10월 <타임>에 실린 테슬라 특집의 내용이다. 
“테슬라는 목소리를 5천마일 이상이나 떨어진 곳에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아주 깨끗하게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1899년 콜로라도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테슬라가 답답해하는 것은 15년이 지난 오늘(1915년)에도 사람들이 아직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중에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전화가입자들이 뉴욕시에 있는 전화교환소에 
등록만 하면 세계 어디서든 같은 전화로 다른 가입자와 통화가 가능한데, 원리는 목소리를 
담은 전류가 지각(地殼)을 통해 전화하는 지역에서 일단 무한의 속도로 시작하여 약 6천마일 
지점에서 광속으로 늦추어졌다가 다시 빨라져 전화받는 지역으로 무한의 속도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 신기한 무선이란 것은 마치 폭풍이 불어오듯 인간생활에 찾아와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전 세계에 6개 정도의 무선전화 교환소만 있으면 
목소리뿐만 아니라 영상까지 서로 교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즉, 오늘날의 TV, 팩스 따위를 능가하는 것들을 1899년에 그는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 1926년 1월 30일에 그가 호텔 객실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적은 글이 있다. 

“모든 실체가 리듬을 가진 분자로서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무선이 완전히 적용되는 날에는 인류는 거리 감각을 잊어버리고 즉각적으로 누구와도 
교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원거리 전화(tele-phone)와 원거리 영상(tele-vision)으로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과 다름없이 교신할 것이며…… 
그때의 TV전화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보다도 훨씬 더 간단해져서 
사람들은 윗옷 호주머니에 그 TV전화기를 넣고 다닐 것이다……. 

필경 가장 가치있는 무선 에너지의 원리를 적응시켜 만들 수 있는 이기(利器)는 
연료 없이 현재의 비행기나 비행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비행기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또 각 가정에 배달되는 종이신문 대신에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무선으로 각 가정에 
신문이 직접 배달되어 집에서 인쇄된 신문을 읽게 되는 일은 꿈이라기보다 현실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동차들의 주차문제와 겸하여 상용도로와 개인용무를 위한 도로를 별도로 
사용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벨트로 장치된 고층 주차장 빌딩을 세우고 도로는 필요한 대로 겹으로 증폭시키면 된다. 
그러나 자동차와 바퀴를 날개로 대치하는 문명이 도래하면 그런 도로마저 결국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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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광선 

1915년 테슬라는 5천만 볼트의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원거리에 보내 목적물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며, 자신은 이미 그 무선송신기를 만들었음을 증명할 수 있고, 이 기구는 세계 아무 곳이나 
원하는 목적물을 정확하게 겨냥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황당하게 여겨져 그의 발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9년 후인 1924년 갑자기 세계 여러 곳에서 살인광선을 발명했다는 
과학자들의 발표가 잇따랐다. 
1924년 5월 19일 영국의 과학자 그린델매튜스(Harry Grindell-Matthews)는 파리에서 원거리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가공의 전자방사선 기구를 발명했으며, 이 가공할 방사선
(한국어로 광선 또는 방사선이라는 것은 영어로 ray, 또는 beam을 말한다). ray를 흔히 ‘광선’이라고 
번역하지만 ‘광선’이란 용어는 빛을 가진 선이란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데 반드시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radiation, 즉 방사(放射)하는 파(波)를 말하기 때문에 위에서 death ray를 ‘살인광선’ 또는 
‘죽음의 방사선’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살인광선’은 빛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선(beam)도 포함한다.)은 전 군대의 행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의 발표가 너무 과장됐으며, 4마일이나 7~8마일 정도의 
거리라면 몰라도 그 이상의 거리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 군대의 움직임을 마비시킨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그린델매튜스는 이미 독일군은 이러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그리고 같은 달 24일에는 독일의 과학자 볼레(Herr Wolle)가 독일은 ‘죽음의 커튼’이라고 
부르는 전자무기를 세 개나 만들었다고 발표했으며, 다음날인 25일 미국의 과학자 월(T. F. Wall)은 
전기에너지를 사용하여 무선으로 비행기나 자동차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특허신청하면서 
같은 원리를 외과수술이나 다른 과학 부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일 후인 5월 30일 그 전날 뉴욕에서의 발표를 인용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신문에는
테슬라가 1900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을 때 이미 발명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접촉되면 
운행중인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하게 된다고 설명한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만 있었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10년이 지난 1934년 테슬라의 78세 생일날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살인광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그 죽음의 광선은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서, 1억만분의 1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방사선으로 250마일 거리에 있는 비행기 1만 대를 단번에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 장치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200만 달러 정도이며 건설하는데 3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미국 전역 12곳에 이런 기지를 설치하여 전자망을 치면 마치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아 국가를 보호하듯이 미국은 어떠한 외세의 침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방사선은 가스, 디젤, 오일 등 어떠한 연료를 사용하든지 관계없이 모든 엔진을 녹여 버리므로 
이 방사선에 대한 방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방사선을 농축하여 사용하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군인이나 장비는 모두 삽시간에 죽고 파괴된다고 한다. 
망원경의 조망권 내에서 또는 지평선의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목표를 겨냥하고 파괴하며,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는 효과적인 무기라고 한다. 

1935년 2월호 <리버티>지에 테슬라가 살인광선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한 일이 있다. 
“나의 발명에는 큰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그 시설이 완공되면 200마일 이내에 접근하는 적의를 가진 사람이나 기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파괴시킬 수 있다. 
우리보다 강한 어떠한 적이 침략해 온다고 해도 이들을 막아낼 장막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의 발명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살인광선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의 살인광선은 다량으로 만들 수도 없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약해지지만
자신의 것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뉴욕에서 소비되는 총 전력량이 200만 마력(15억 와트)이었는데 이 전력을
모두 사용해도 20마일 밖의 사람은 죽일 수 없는 미약한 양이었다. 

후에 다른 과학자들은 테슬라가 말한 다른 살인광선은 그린델매튜스의 것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린델매튜스의 살인광선은 높은 전류로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자외선을 이용한 것이었고,
자외선 서치라이트의 성능 한계는 테슬라의 것에 비해 훨씬 약했던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벌써 20세기 초에 테슬라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발표를 여러 번 했는데, 
지금은 그 아이디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어린이 공상과학만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 때 소련의 고르바초프 수상과 대결하여 최신과학을 동원하는 소위 
‘스타워즈’를 전개하겠다고 호언하던 그 과학은 과연 21세기의 최신 과학이었는가. 
아니면 테슬라를 위시한 1920년대의 여러 과학자들의 망상에 불과한 것인가? 
또는 그때 그 자료들을 세계의 모든 정부들을 좌지우지하는 누상(樓上)의 엘리트들이 빼앗고,
지상에서는 그 누구도 사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없던 일로 만든 것인가?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로서는 나름대로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는 이 의문은 또다른 끝없는 질문과 
상상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콜럼비아 대학에서 무기를 연구하던(현 워싱턴 DC에 소재한 국방분석 연구소 소속) 
젊은 과학자 타운스(Charles Hard Townes)는 아주 짧은 초단파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한 끝에
4년 만인 1950년에 메이저 
광선을 만들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1958년 하워드휴즈 항공사에서는 레이저 Emission of Radiation)> 광선을 만들었는데, 그렇다면 이 광선들은 이미 테슬라가 반세기 이전에 
말하던 가공할 광선의 일종인가? 

테슬라는 태양광선보다 50배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을 개발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또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영상을 포함한 모든 통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요즘엔 레이저 하나가 TV 프로그램 2만 5천 개를 동시에 송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테슬라가 이미 개발했다고 말한 그 단계에 도달하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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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등 

테슬라는 에디슨의 백열전등을 아주 조잡하고 미개한 것으로 여겼다. 
그가 시범을 보인 전등은 성능이나 품질 면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전등을 상용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비-헤르츠파 전등과 유사한 형광등이 반세기가 훨씬 지나서 세상에 선을 보이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 세상에는 그가 제시했던 전등이 소개되지 않고 있다. 

또 그는 친구인 음악가 스토코프스키와 작가인 트웨인, 
부호의 아들 전기기술자 해몬드(Jack Hammond Jr.) 등과 동업으로 회사를 만들어
전등은 물론 형광등을 이용한 사진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을 벌인 일이 있다. 
이때 마크 트웨인이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형광등을 켜보이는 사진
(1894년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이 친구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전등을 손에 잡고 손수 실험을 
해보고 있는 장면)이 지금도 남아 있어 테슬라가 에디슨의 백열등보다 훨씬 진보된 전등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테슬라가 자기 방에서 전깃줄 없이 불이 켜진 전등을 쥐고 있는 사진도 유명하다. 
이는 100만 볼트라는 고압의 전류를 직접 자기의 몸을 통하여 전등이 켜지게 한 것이다. 
이것이 테슬라가 개발한 또다른 전등 '동적전자감응전구‘(Electro Dynamic Induction Lamp)로
전깃줄 대신 감응으로 켜지는 전등이다. 
21세기에 들어선 현재의 테크놀로지로도 상상하지 못하는 발명품인데, 
이것을 테슬라는 1894년 특허까지 받아 놓았다.(U.S. Patent 514170) 

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을 때 200개의 전등을 발전소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전깃줄 없이 켜보이기도 했고, 역시 전선 없이 전기를 전달하여 마치 필라멘트처럼 40미터 길이의 
두 갈래로 된 불꽃을 탑과 탑 사이에 일어나도록 하여 운동장만한 크기의 지역을 밝히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햇빛은 태양에서부터 9천 4백만 마일 되는 거리를 통과해 지구에 도달하는 
진동에 의한 것으로서, 자기가 태양광선을 형성하는 진동과 흡사한 진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태양광선과 비슷한 광선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 광선은 구름이나 다른 방해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태양광선은 우주의 공간 ‘에테르(ether)에서 1초에 500조 번 진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진동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자기의 기기로 어느 정도까지 진동을 만들었으니 
조금 더 개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로 동적전자감응전구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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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제어 어뢰 


1907년 3월 20일 <뉴욕타임스>에 ‘테슬라의 무선어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그 내용은 테슬라가 멀리서 전파로 조종할 수 있는 어뢰를 만들어 실험도 끝냈지만, 
무선으로 전파를 보내 직접 파괴하는 것이 훨씬 더 위력이 크다면서, 자기가 만든 기구로 전기에너지를 
농축시켜 원하는 지점 어디에나 낙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레나(Lena)라는 프랑스 선박이 이상하게 전기불꽃이 튀면서 폭발한 사고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를 때 <뉴욕타임스> 기자가 테슬라에게 질문을 했던 것이다. 
테슬라는 이어서 어뢰를 원격조종하기도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어뢰를 공중의 비행체나 수중 잠수체로 
변형시켜 이곳으로부터 강력한 전파를 발사하여 목표물을 폭발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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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조종 



1914년 테슬라는 대기 중에 있는 습기에 존재하는 전기를 조작하여 바다에서 무제한의
수분을 끌어오는 것이 가능하며, 전자기파 조작만으로도 산불도 끄고, 짐승이나 곤충, 미생물 등 
생물의 멸종이나 파괴를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주장하기를 지구의 크기도 조정할 수 있으며, 우주의 행로를 바꾸어 
계절을 조절할 수도 있고, 지구를 다른 행성과 충돌시킬 수도 있으며, 유사 태양을 만들어 
빛과 열을 생성하여 공급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항상 천재에서 미치광이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테슬라가 이런 원칙을 이용하여 기후를 조종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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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UFO나 초상현상에 관련된 각종 사이비과학이론들은 대부분이 테슬러의 연구를 베이스로 한 것들입니다. 테슬러 자신은 우주인을 믿기는 했어도 매우 이성적인 과학자였는데요. 그의 추종자들은 유사과학에 빠져 있다는 게 좀 아이러니...(물론 이건 거의 에디슨, 모건, 카네기 등의 테슬러를 증오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미지지만요.)

 

PS3. 테슬러는 1915년 에디슨과 함께 전기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지명되었고 사실상 수상이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테슬러와 에디슨 양쪽에서 "저 놈과는 함께 상을 못 받겠다."라고 나오는 바람에 결국 1915년의 노벨상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갑니다.

이후 테슬러는 1930년에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지명되었지만 당시의 신비주의적인 테슬러의 이미지 때문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아서 결국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PS4. 에디슨한테 찍혀서 평생 괴롭게 산 사람은 테슬러 한 명이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에디슨에게 찍혀서 아웃사이더로 살아야 했고, 대표적인 사례로 에디슨의 조수였던 딕슨이 있습니다. 에디슨의 발명품 중 상당수는 딕슨의 것이었다고 합니다.

 

출처 : 군대·무기
글쓴이 : 로닌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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