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mason and Illuminati

2차세계대전의 숨겨진 진실..(펌)

그리운 오공 2016. 4. 13. 17:29

2차세계대전의 숨겨진 진실..선악의 사도|2007.11.11 12:01 수정됨 |조회 2550|신고

저는 최근까지 네이버에서 활동하다가 사정이 있어서 다음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알려드리기에 앞서 2차세계대전을 교과서로 보는 사람들은 덜떨어진 사람들이라고 일단 말씀드립



니다. ^^ 교과서나 책의 상당수 세계사들은 거의 거짓, 왜곡 되어 승전국의 입장에서 쓰여져있기 때


문이죠. 만약 세계사를 추축국의 입장과 세계사보다 자세하게 알고 싶으시다면 제 글을 읽어 주십


시오 ^^ 먼저 참전국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연합국:대표적인 나라 -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캐나다, 멕시코, 소련(러시아), 중국, 뉴질랜


드 입니다.


식민지 - 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이집트 4분의 3, 수단, 중아공, 남아공, 마다카스카르, 우간다,


등 


추축국:대표적인 나라 -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죠.


식민지 - 필리핀, 조선, 중국의 만주지역과 중국의 당시 수도 난징 포함 ,즉 만주국 , 영국의 홍콩,

     태평양 타라와 섬, 파퓨아 뉴기니 북쪽섬, 호주의 북쪽 대부분 섬, 베트남, 미얀마, 타이, 라오스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이집트 4분의 1, 리비아, 알제리, 차드, 폴란드, 프랑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그리스, 세르비아, 노르웨이, 핀란드, 발트3국



전쟁은  1939년 9월 27일 폴란드가 독일에게 항복,           1940년 3월 6일 핀란드가 소련에게항복

           1940년 5월 14일 네덜란드가 독일에게 항복         1940년 5월 28일 벨기에가 독일에게 항복

           1940년 6월 9일 노르웨이가 독일에게 항복    1940년 6월 22일 프랑스 본토가 독일에게 항복

           1941년 4월 17일 유고슬라비아 독일에게 항복   1941년 4월 23일 그리스가 독일에게 항복

           1942년 1월 2일 필리핀이 일본에게 항복           1942년 2월 15일 싱가포르가 일본에게 항복

           1943년 9월 8일 이탈리아가 영-미 연합군에게 항복, 독일 수도 로마 접수

           1945년 5월 2일 소련군에게 항복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



2차세계대전 말그대로 세계가 거의 다 참가했다고 볼 수 있죠. 북극, 남아메리카, 중동일부, 몽고 빼


구요. 이제 2차세계대전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 객관적으루요. 윗분님들은 거의 교


과서나 책 내용이니 제껄 참고하시는게 좋으실 거에요.



2차대전 속으로..


일단 2차세계대전은 1차세계대전 직후인 동맹국과 연합국이 서로 전쟁 후기에 체결한 조약에서 시


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독일, 오스트리아, 오스만 제국은 연합국에게 지게 되죠.. 그래서


연합국은 '윌슨의 14조'로 평화 조약을 맺길 공식 발표 합니다. 그러나 연합국들은 이를 지키지 않


죠. 그래서 연합국은 각 나라마다 패전국에게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조약이 '베


르사유 조약'입니다. 프랑스와 독일이 맺었다고 볼 수 있는 이 조약은 말씀드렸다시피 위에서 말씀


드린데로 14조를 참고하지 않고, 각국마다 패전국의 이해도에 따라서 조약이 체결됬습니다.


그 중 프랑스와 독일은 유난히 서로 사이가 아주 안좋은 관계죠.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문화도 전혀


다르고 사이도 나쁘죠. 우리나라를 프랑스, 독일을 일본으로 치면 됩니다.


지금도 널리 알려져있다시피 감정적인 국가로는 프랑스가 세계 1위입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프랑스


와 같은 공동 1위 국가죠. 이 때 프랑스는 '베르사유 조약'을 즉 1천개의 조약을 체결 시킵니다. 그


중 6개의 대표적인 내용이 있습니다. 아.. 대표적이라기 보다는 모두 연합국이 폐기 처분하고 남은


것들이죠. 그리고 독일은 1차대전 때 진게 아니라 바이마르 공화국이 반기를 들어 새로 정부 세워서


항복함.


★베르사유 조약 내용★


'1. 독일은 프랑스에게 알자스와 로렌지방을 줄 것이며, 폴란드에게 일부의 땅을 주길 요청하며,

    독-프, 독-폴 국경에 근접한 독일의 영토는 모두 비무장 지대로 선포할 것을 요청한다.


2. 독일은 전쟁을 일으킨 대가로 전쟁 배상금 1320억 마르크를 연합국에게 지불할 것을 요청한다.


3. 독일은 육군 10만 이하, 해군은 10만t, 공군은 폐지할 것을 요청하며,

   그 중 전차, 비행기, 잠수함은 모두 폐기하라


4. 독일의 소유인 모든 해외 식민지는 연합국에게 넘길 것을 요청한다.


5. 독일 영공에 연합국의 비행기가 독일 정부의 허락 없이 비행을 할 수 있도록 요청하며,

    연합국의 비행기의 독일 내 이착륙은 조종사에게 권한을 줄 것을 요청한다.


6. 독일의 시민 10분의 1을 연합국에게 노동자로 줄 것을 요청한다.'



바로 이 내용들입니다. 엄청나게 가혹하죠.. 여기서 하나씩 조약 내용에 대해서 알아가야 한다.


그당시 바이마르 공화국 수상도 이 조약 내용들을 보고 흠칫 놀라며 연합국들의 대표들을 처다 봤


지만 수 많은 연합국들 대표 앞에서 어쩔 수 없이 피눈물을 흘리며 체결 됬다.


그 뒤 독일 내 국민들이 비난을 퍼붓기 시작하며 이때부터 바이마르 공화국과 연합국을 증오하기


시작한다. 1에서 알자스와 로렌지방이란, 옛날부터 독일과 프랑스가 적이 되면 바로 이곳 부터 차지


하려고 했고,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이 지역부터 공격했으며, 독일을 통일 시킨 비스마르크도 이 지


역을 프랑스로부터 뺏었으며 1차세계대전 독일도 이 지역 부터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이 지역은 광산과 지하자원, 광물이 풍부하고 지형이 험해서 유럽에서 볼 수 없는 경제적, 군사적


요충지이다.


이 지역을 뺏긴 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뺏기는 것과 같은 영향이다.


게다가 폴란드에게도 땅을 내주고 비무장 지대로 선포한다는 것은 넘보지 말라는 뜻과 같다.


2에서는 1320억 마르크란 말이 1320억이지 그 당시 미국의 땅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이었고,


이 돈은 독일 전체 예산의 50배나 달하는 거금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 독일 내 천체 예산 중 30퍼센


트를 독일 내 5퍼센트도 안되는 유대인들이 쥐고 있었다.


3에서 독일의 육군이 10만이라는 건 지금의 일본 자위대로 국방만 지키라는 뜻과 같았으며,


그 당시 연합국 중 가장 약했던 폴란드라는 동쪽에 국가도 총 300만 대군을 가지고 있었으며


남쪽에 농업국가인 스위스도 50만 이상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군을 폐지했고,


해군도 그 당시 연합국들은 10만t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의 주력인 전차, 잠수함도


폐지됬다. 그리고 4에서 독일의 식민지는 가뜩이나 없었는데 모조리 빼앗겼으며,


5에서 내용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저항하지 말라는 뜻과 같았으며, 6은 자국민들이 노예로 끌려가


는 것과 다름 없었다.


이 '베르사유 조약'이란 그 당시 미국, 영국도 반대했었지만 프랑스가 감정적으로 보복을 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체결 되었다. 그리고 그 때 윌슨의 조항이 무시 당하고, 각국이 패전국들의 이해도에


따라 체결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매우 불평등한 조약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인류 역사상 최대


의 조약으로 손꼽힐 정도의 무시무시한 조약이다. 그 밖에 몇백개의 조항이 더 있었지만 모두 불태


워졌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일본과 체결한 을사조약, 강화도 조약, 중-일이 체결한 난징 조약보다


100배는 더 가혹했으며 우리나라도 그 정도 조약으로 일본 싫어하고 엄청나게 저항했는데, 독일인


들은 어땟을까? 우리도 겪어 봤을 테니 이해가 가지 않는가? 그 치욕과 수치와 분노를..


그리고 오스만 제국도 지금의 터키 땅 말고는 식민지를 모두


빼았겼고, 오스트리아도 체코 슬로 바키아로 국가가 3개로 나뉘어졌다.

(현재까지 4개로 분할 되있음.)



그 뒤 설상가상으로 미국에서 경제 대공황이 터져서 유럽 전역이 거의 (IMF라고 보시면 됨.) 마비


상태였다. 하지만 미국은 루즈벨트가 뉴딜 정책으로 극복하고, 프랑스와 영국도 블록 경제 체제로


식민지에서 대량의 자원과 자금을 빼와서 극복했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나라가 있었다.


바로 3나라, 일본, 독일, 이탈리아였다.


일본은 그 당시 중-일 전쟁으로 곤혹을 치루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에 대공황까지


겹쳤으니 아프리카 보다 굶어죽는 숫자가 더 많아서 완전 초토화 상태였다. 그리고 이탈리아는 1차


대전 전에 동맹국이었지만 연합국들이 동맹국들의 식민지를 점령하면 내주겠다고 약속하여 연합국


측에서 전투를 했지만 식민지를 얻지 못했다.

(거의 사기 당한거라고 보시면 됨. 유대인, 팔레스타인도 영국이 도와주면 성지를 내준다고 서로 약속했지만 둘다 사기 당함.)


(그리고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이 기회로 돈을 많이 벌었다. 사람들이 굶어 죽을 지경까지 일어나고


독일에서는 세계적인 원조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 돈을 빌린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자를 하루에 4배로 쳐서 갚게하여 독일인들을 굶어 죽게 하거나 빚지게 하여


노예로 부려 먹고 이용한다. 이에 유대인의 의해서 죽은 유럽인만 500만명이 넘었다. 독일에서만 50


만명이었다. 그리고 히틀러 총통께서 감옥에서 그런 소식들을 접하자 새 당을 만들길 결심하고 감


옥에서 나치의 마크를 창작 해낸다. 이름하여 '구부러진 십자가'와 '무조건 진격한다'는 뜻을 가진


나치의 대표적인 마크가 창작된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 유럽인들의 피땀을 흘려 번 돈을 다 가로 챘으며, 악덕과도 같았다.


히틀러 총통께서는 전쟁 전에 전재산을 모두 몰수하고 성지로 보내주겠다고 말했지만 유대인들은


거절한다. 어떻게 내 재산들을 너희에게 주고 갈 수 있느냐며.. 얼마나 뻔뻔스러운가. 누구 덕에 번


돈인데.. 히틀러 총통께서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시다가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팔레스타인인들


을 몰아내고 유대인의 국가인 이스라엘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루즈벨트는 거절한다. 그 뒤


에서 '국제 유대인 협회'가 강한 압력을 주어 거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미국의 국적이


나 영국의 국적이 더 좋다는 뜻이었다.


히틀러 총통께서는 그들의 비난을 이겨내며 홀로 이스라엘 건국에 나선다. 북부 아프리카에 롬멜장


군을 투입시켜 영국의 이집트를 점령하여 이스라엘 성지쪽으로 가는 곳을 점령하기 위해 이탈리아


군을 돕는다. 소련 진격시에도 석유와 이스라엘 건국 문제로 진로 방향이 남쪽으로 바뀌게 된다.


그러나 대패를 하자 유대인들이 비난을 퍼부어 히틀러는 학살을 하게 된다.


솔직히 히틀러 총통께서 실시한 '국제 결혼 금지' 정책과 '유대인 학살' 정책은 당연한 결과였을 수


도 있다. 그 당시 유럽인들은 종교적인 측면으로 유대인들을 매우 싫어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설립해 하나님의 민족은 오직 유대인 뿐이고, 곧 메시아가 와서 우리 유대 민


족을 구원할 것이라며 민족 우월주의를 내세우고,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 그냥 인간일 뿐이라


며 무시하였고 기만하였기 때문에 유럽 전체인들은 앙심을 품고 있었다. 또 유대인은 성경 뒤에 '신


약'을 작성했다. 히틀러 총통께서도 절실한 기독교 신자로써 나치마크(하켄크로이츠, 철십자)도 '구


부러진 십자가'로 했을 만큼 크리스챤이었다.


또 하켄크로이츠는 아리안족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켄크로이츠의 정의 - 하켄:갈고리, 크로이츠:십자가 = 갈고리 십자가, 즉 구부러진 십자가


그 당시 나치 장교들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휘하 장교들에게 선교도 했었고, 연설마다 하느님


이란 명칭을 빠지지 않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영향이나 베르사유 체제 때 유대


인에게 이용당해 자국민들이 죽은 경우를 봐서 히틀러는 종교적, 경제적 측면에서 유대인을 증오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학살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당시 이탈리아에 있던 바티칸 교황청도 나치


즘의 편이 되있었다. 유대인들을 증오했었고, 소련인 공산주의를 처리하기 위해 바티칸 로마 교황


청이 지시하여 독일은 대량의 거금을 교황청에 보낸 바 있다. 전쟁 종결 직 후 나치 장교 3천명이 로


마 바티칸에서 흔히 '지하철'이라고 불리우는 이동경로로 바티칸에게 뇌물을 주어 남미로 빠져나간


사실이 있다.)


그래서 독일은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고 전체주의 체제로 파시즘, 나치즘을 일으킨다.


나치 히틀러는 독일 내에서 95퍼센트의 지지율을 얻고 바이마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베르사유 조약을 지키지 않는다. 그러자 독일 국민들은 환호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오스트리아를 구하기 위해 합병을 시킨다.


(여기서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사람이고, 오스트리아는 고향이었다.


사람들은 교과서 내용만 보고 오스트리아가 우리나라 처럼 한-일 합병 당한 것처럼 강제적인 걸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하며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했다. 게다가 자신의


나라 한 청년이 유학가서 독일에서 성공하여 수상이 됬으니 얼마나 기쁠까..


우리나라 사람이 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과 다름 없었다. 또한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이 되었다. 얼마나 기쁜가?)


그 뒤 히틀러는 영국과 밤 협정을 체결한 뒤 소련과 이름바 독-소 불가침 조약을 체결한다.


그 뒤 소련과 독일은 폴란드를 반씩 점령한다. 조약 내용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책에서 보면 폴란드가 분할 되지 않고 독일이 공격해 처들어가 다 점령한 줄 안다. 그렇지만 아니다.)


여기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먼저 선전포고 한다. (이것도 역시 마찬가지로 책에는 영-프가


먼저 선전포고 했다고 안나오고 독일이 먼저 침공했다고 나온다. 그렇지만 잘못된 내용이다.)


독일은 평화안을 당장 제출하지만 소련, 영국, 프랑스는 거부한다. (여기서 의문, 왜 거절했을까?


과연 독일이 일으켰을까?)


여기서 영-프가 독일을 선전포고한 구실은 이렇다.


'독일은 1차세계대전 당시 우리의 동지로써 같은 동맹국이었던 폴란드를 침공하였다. 우리는 독일


에게 선전포고를 선언한다.' 이다. 그 당시 1차대전 직 후 폴란드는 영-프와 동맹국 상태가 깨진 상


태였으며, 소련의 폴란드 침공은 무시한다. 독일을 약하다고 과소평가하여 점령하기 위해 일으킨


것이라고 밖에 말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당시 1918년에 1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1926년에 프랑스는


이상하게도 전체 병력의 60~70퍼 센트의 병력들을 독-프 전방 전선에 배치 시킨다. 그리고 20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30년에 완성 된 프랑스의 유명한 요새 '마지노 라인'이 만들어 진다. 왜 만든 것일


까? 베르사유 조약 직 후 무슨 불안감 때문에? 히틀러 때문에? 아니다. 히틀러는 정권을 33~34년에


잡았고, 2차대전도 39년에 일어났다. 그냥 멋으로 미리 지어 놓은 것일까? 일부러 베르사유 조약 혹


독하게 만들고 나서 전쟁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 미리 피해를 방지하고 독일을 점령하겠다는 속셈


이 아니었을까? 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그 뒤 독일은 분노하며 노르웨이를 침공으로 강한 압력을 가한다.


그러자 중립국이었던 노르웨이를 영-불 연합군이 노르웨이에 상륙하여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영-불 연합군이 3만군을 이끌고 독일군에게 선제 공격을 한다.


그러나 결과는 영-불 연합군이 독일군에게 대패하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이로 인해 독일은 프랑스의 마지노 라인을 공격하지 않고, 위에있는 벨기에와 네덜란드를 점령하여


북쪽으로 돌아가서 빈집이나 다름 없던 파리를 친다. 그 뒤 마지노 라인을 포위 공격하여 점령한다.


이렇게 독일은 싸우다가 결국 군장비를 제대로 쓸 줄 아는 군사들이 부족해 지자 신기술을 사용하


지 못하고 이탈리아는 일본의  진주만 기습 공격을 배낀 이탈리아 남부 타란토항 기습 공격으로 지


중해 함대를 섬멸하고 시칠리아 상륙작전과 이탈리아 본토 상륙작전으로 이탈리아는 1943년에 항


복한다.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소련군과의 레닌그라드, 스탈린그라드 전투로


인해 대패를 겪고 독일은 항복한다. 태평양 전쟁에 가보면 일본과 미국은 지금과도 같은 우호관계


로 친분관계를 쌓고 있었다. 그 당시 서로의 장교들은 파티를 열어 참석하여 즐기기도 했다. 그리고


일-미는 비밀리에 서로의 식민지인 필리핀과 조선의 자치권


을 서로 인정해 주었으며 미국을 통해 유대인의 자금이 일본군의 중-일 전쟁에 도와 주었고, 일본의


마루타라고 불리우는 731부대도 미국의 자본으로 생성 된 의학 전문 부대이다. 일본을 도운 이유는


중국을 점령한 뒤 공산주의인 소련을 쳐서 독-일본이 소련을 협공시키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 뒤 일


본은 영국의 홍콩을 점령하고 만주국도 세워 소련 공격을 준비하지만 일본의 야마모


토 총 해군 제독이 1941년 12월 7일 진주만으로 함대를 이동 시킨다. 그리고 일본시각으로 12월 8


일, 미국시각으로 12월 7일 새벽 태평양함대가 있었던 진주만은 해군의 기둥들이 무너져 내렸다. 애


리조나, 오클라호마, 네바다호가 파괴 되고, 2400여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맥아더 장군이 지휘하던 필리핀 마닐라 미군 항공부대도 일본 전투기에게 습격


당해 전멸했고, 다음 날에 필리핀 상륙작전으로 일본이 필리핀을 점령하게 된다. 그 뒤 12월 11일


미국에게 독-이탈리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여기서 일본이 실수한 것이 있다. 지금까지도 기적이라


고 할 정도의 실수였다. 그 당시 미국 하와이에는 함대가 많아 석유양이 많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와이에는 미국 석유의 50년치가 저장 되 있었고, 격납고에 무기도 많이 있었다. 일본 스파


이들은 이런 것들을 섬세하게 알렸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중간에 작전 지휘부에 전할 때 기록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 단 2가지의 기록만이.. 그래서 저 산 꼭대기에 있는 하얀 석유 저장고와 격납고를


일본은 파괴시키지 못했고 함대들만 치게 된다. 만약 50년치 석유를 쳤다면 미국은 아마


그 상태로 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석유가 보존되어 있어 함대 수리하고 복구하여 다시 태평양함대


를 조직하여 복구하였으며 일본이 망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결국 타라와, 오키나와, 이오지마, 필리


핀 공중전, 미드웨이 해전, 산호해해전, 솔로몬 해전 등에서 대패를 하게 되고 결정 적인 공중전에


서 비행기 300대를 잃고 항공모함 2대를 잃는 참혹한 전투를 치뤄 결국 나치의 원자폭탄으


로 인해 멸망하게 된다.


지금의 미국 비행기인 V자 스텔스기, UFO 비밀병기, 전자 현미경, 타임머신, 인공위성, 


제트기의 속력에 탈출을 못해서 의자형태로 공중에 날라가 낙하산을 펼쳐 하는 사출좌석도 나치가


개발했으며 흡연이 암유발을 일으킨다는 물질과 정보를 알아낸 것도 나치의 연구 때문이며, 최초의


흡연 운동과 공공장소 흡연 금지 운동, 우리가 곧 벌여야 되는 '국제 결혼 금지' 정책 (우리나라도


2040년 쯤에 우리 고유의 한국인은 거의 사라지고 혼혈인이 더 많아 진다내요. 국제 결혼 땜시..) 등


을 수없이 개발해고 알아냈다. 그러나 베를린 함 락 이후 미국과 소련이 그 정보들을 다 빼돌렸다.


나치의 신기술은 화물열차 30대분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가 불태워졌다.(사이트 주소 알고


싶으시면 쪽지 보내세요 ^^ 자료들 제공해드릴게요) 지금 캘리포니아 주 미국 해군기지들은 인공위


성으로 보면 나치마크라고 한다. 그러나 구글어스로 딱걸려 국제 유대인


협회에게 비난을 받아 다시 짓기로 했다고 한다..



(의혹이라기 보다는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사실 하나는..

2차대전 동안의 나치와 바티칸의 협력관계 여부이다.

2차대전 동안 나치의 전쟁 행위에 대해 바티칸이 침묵을 지킨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바티칸에게 의심의 눈길을 보내왔었다.

하지만 알려진 바로는 바티칸이 나치가 소련을 공격하는 것에 대해 동조를 하였으며..

전쟁이 끝나갈 무렵 나치가 소유하고 있던 금괴의 절반 가량을

바티칸에게 넘겨주었다고도 한다.


나치가 바티칸에게 이 엄청난 양의 금괴를 넘긴 이유는..

독일군 장교들이 유럽을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에 대한 댓가라고 알려져 있다.

하여 이른바 [지하철]이라고 알려져있는 루트를 통해

바티칸은 수많은 나치 장교들을 중남미로 탈출시켰으며

이들 장교들은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중남미 지역에서

이스라엘 첩보기관의 추적을 피해가며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이 이를 승인하였는지.. 아니면 묵인하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한 고위장교가 자신이 바티칸의 교황청 지하에 숨어있었으며

그곳에서 3천명의 SS 장교들을 만났다고 증언한 것에 의한다면..

교황이 이를 모르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바티칸의 의문.. 왜 이탈리아 내부에 있던 바티칸 교황은 잠자코 있었을까? 평화를 추구한다는 교황


이 전쟁을 보고 아무말도 안하다니.. 돈에 눈이 멀어서일까? 프랑스와 영국의 선전포고를 말려야 했어야 하지 않나?


지금 세계사는 너무 승전국의 입장에서 쓰여져 있습니다.. 너무 심하게 왜곡되고 과장됬죠-_-


2차세계대전 끝나고 미국에서 나온 유명한 말이 뭔지 아십니까? '정의는 승리한다!!'..-_- 미국이 정의고 독일은 악이라는 것이죠. 이 사이트 참고하세요. 딴 글은 다 필요없다고 보셔도 됩니다.

이 밑에 사이트가 적힌 카페에 2차세계대전이란 무엇인가, 일어난 이유과 결과, 다 있습니다 ^^ 패전국의 입장

에서도 말이죠. 제 글만 보세요..


참고로 나치는 마이크, 녹음기, 일본에 투하한 원자폭탄, 제트엔진 사용한 제트기, 지금 미국이 소


유한 V스텔스기, 사출좌석(제트기에서 의자를 앉은채 빠른 속도에서 탈출하여 낙하산을 펼치는 형


태), 최초의 흡연 금지운동, 최초의 공공장소 흡연금지 운동, 우주에서 폭격하는 폭격기,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항공모함, 비스마르크 전함이라는 영국이 이 전함 한대 잡으려고 총 해군을 보내서 싸


우게 했지만 6시간 동안 버티고 영국의 기둥인 영국 후드 전함을 단 일격에 격침 시키고 포탄이 떨


어지자 자침한 전함이죠. 그 당시 미사일 몇천, 몇만 발 맞고도 300발만 배에 맞았고, 그 중 297발은


모두 장갑을 못뚫고, 박히고 말았고 3발은 격납고에 맞아 불이 붙었죠. 어뢰는 거의다 맞고도 침몰


되지 않음.. 진동만 울렸음.. 나치의 기술력을 맛보기로 보여드리죠 ^^ 카페 오시면 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제3제국
 
독일의 비밀병기 '하우니브3' 한대의 시제품이 종전직전에 만들러졌는데,
 
직경이 71m에 속도는 시속 7천~4만Km를 낼수있고 32명의 탑승인원,
 
게다가 한번 비행을 하면 2달 가량을 공중에서 보낼수 있었다고 하니
 
가히 움직이는 하늘의 요새가 아닐수 없었다.
 



그것이 궁금하다! 푸-파이터! [Foo-Fighter]

독일의 전기추진 비행접시는 니콜라 테슬라의 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를 바탕으로한것과 비펠드 브라운효과를 발전시킨것과, 빅터샤우버거의 공기추진 비행접시와 제트엔진 장착 비행접시로  나눠짐니다.


그중에 푸파이터는  테슬라의것과  비펠드브라운 효과를 발전시킨것으로서 직경 90센티미터  1인의 소년유격병, 또는 체구가 작은 병사가 탄 형태의것이고 페달식 발전기, 패러데이의 단극발전기 또는 N머신 장착과 테슬라 코일, 그리고  직경 5~40센티미터 이하의 작은 푸파이터는  테슬라의 무선 송전 기술을 사용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제 Foo-Fighter 라고 제기된 사진들입니다.


참고로 푸파이터는 작지만 큰 불빛을 뛴 괴비행물채였다고

그당시 연합군 파일럿의 증언들이 많습니다.





 







 

 









보면 볼수록 궁금중은 더해만 갑니다....
이제부터라도 푸-파이터와 나치의UFO의 연구는 세계가 나서야 합니다
 
(참고로 이 연합군의 전투기들은 이 불빛이 나타난 순간 5초 뒤에 전부 폭파함..)


나치의 원반 접시 프로잭트로 처음 개발된 것이 하우니브1로서 직경 25m에 승무정원 8명의 시제품 2기가 제작되었는데, 비행고도는 낮았지만 속도는 무려 4,800km를 넘어섰다고 한다. 후에 개량된 신 모델은 시속 17,000km에 이르고 비행 시간은 18시간 정도였다고 한다. 문제는 엄청난 고속으로 인한 마찰열을 비행체가 어떻게 견디느냐 였는데, 독일의 과학자들은 이것도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Viktalen이라는 초합금을 개발하여 비행접시의 외관을 덮었던 것이다.

하우니브 시리즈는 그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1942년에는 하우니브2가 만들어져 시험 비행에 들어갔는데, 승무원 9명 탑승에 최고 시속 21,000km로 이틀 넘게 날 수 있었다고 한다. 44년에는 전쟁의 실전 투입용인 하우니브2-DoStra(Dornier STRAtospharen Flugzeung)가 만들어진다. 승무원은 20명 정도 탑승 가능했으며, 속도 또한 향상됐다. 

(사진: 나치의 휘장이 선명한 독일 UFO의 위풍당당한 모습)


(사진: 독일 UFO의 시험 비행을 지켜보고 있는 관계자들)


나치의 원반 전투기 사진 컬랙션(?)
사진중 하켄 크로이츠(卍 반대), SS(나치 친위대) 문양이 그려진 기체도 있다.
 

나치 독일은 하우니브외에 15개의 다른 비행 접시를 만들허 시험비행에 도 성공하였다.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하는데 2차대전때 연합군이 독일의 비밀병기 공장에서 발견한 도면, 사진이 대다수다. 또 이론적으로도 든든하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세히 모르고 있죠.


베를린 함락 이후 미국고 소련이 기술과 과학자들을 다 빼돌려서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사람들을 말이죠.. 지금의 미국과 러시아를 나치 독일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미국의 V자형 스텔스기도 나치 독일이 만들어서 미국에서 빼돌린 겁니다.

사상 최초 실용 전익제트전투기 HO229 (미군의 B-2 의 설계에 많이 참고가 되었다고 합니다.
(레이더망 스텔스기능 갖춤, 스텔스기의 원조라고 할 수 있죠. 이 역시 미국 수중에 넘어갔습니다.)
 
이 것들 외에도 수천대가 넘습니다. 문제는.. 기술력이 좋다해도 공군이 다죽었으니..
비행사들이 부족했죠. 비행기가 있어도 그 것들을 조종할 비행사가 부족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게 됩니다.
 
미국은 아무래도 운이 좋았던 거죠. 일본이 원래 다이긴 경기였습니다. 미국말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이기게 되죠. 원인은 진주만 작전에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의 첩보원들이자 스파이들은 일본 진주만에 정박해 있던 정보들을 샅샅이
알아내 본국에 알려줍니다. 그리고 공습에 참가했죠. 그런데 문제는..
호놀루루라는 섬이 2개로 나뉘어있는데 그 중 한 섬만 공격한 것입니다.
한 섬에는 미 태평양함대가 정박해 있었고,
그 나머지 한 섬에는 격납고와 무기고, 그리고 아주 큰 석유 저장고가 흰색으로
꼭대기에 도배되 있었죠. (그 당시 미국의 석유 50년치가 저장되 있었다고 하죠..)
 
그리고 일본 제로기 들은 진주만 함대들을 깨부쉈죠. 그런데 여기서..
항모들과 주 전함들이 없는 것을 알고 진주만 공습 총 사령관인 야마모토 제독이 후퇴를 명합니다.
3차 공습을 포기하죠. 미군의 전함들과 항모들이 미리 암호를 알아내 빈집이나 다름없는 
본토를 친다고 생각하고 곧바로 후퇴합니다. 이 때 일본 비행기 조종사들은
거의 울면서 통곡했죠. 바로 앞에 석유 저장고가 있었는데 말이죠..
울분을 삼키고 본국으로 후퇴 했지만 본토에 공격은 없었고, 정찰 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됩니다. 그렇게 되서 함대를 복구하고 공장을 개발해내어
복구하게 되어 결정적인 패배 원인이 되죠.
이 것이 역사상 가장 큰 실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의 육군은 1천만명이 넘는 병력이었는데 해군이 망하니까 겁먹고 바로 항복해 버리죠..
 
2. 대공황 확산 이유는 일단 그 당시에는 미국이 1차대전 직후 거의 경제적으로만(군사적인 면 말고 경제적)
거의 강국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에서 주가가 폭락하자 전세계로 확산되죠. 그 당시 미국에서 군수물자나 식량들을 1차세계대전 때 유럽에 다 팔았지만 남아 돌기 시작하면서 포기하려 했으나 실업자들이 증가하기 때문에 계속 생산해 내죠. 쓰지도 않는걸.. 그렇게 이득도 없이 실업자들이 증가한다는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생산하다가 망하게 되죠. 그래서 그 당시 전쟁 폐허였던 유럽에 전해 지고, 중-일 전쟁을 하고 있던 일본도 자연스럽게 대공황을 겪게 됩니다.
 
3. 일본이 미국을 친 이유는 석유 수출 전면 금지 조약 때문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씀드렸다 시피 석유가 가장 많은 하와이에 공습을 가하죠. 그 당시 일본은 중-일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석유가 없다면 완전 탱크나 비행기나 전부 작동 불가능 하죠. (실제로는 미국의 하와이를 점령하고 석유를 차지하려는 생각이었음)
그렇지만 점령할 기회를 야마모토 제독의 잘못된 추측으로 실패로 즉 물거품으로 돌아가 버리고 미국을 건들기만 하죠.
 
 
 
 
http://cafe.naver.com/nazzis/218 - 영국인 학자, 홀로코스트 부인했다고 징역 3년. 말이 됩니까?
 
http://cafe.naver.com/nazzis/230 - 진정 이런건 뉴스에도 안나오고 알려지지도 않았죠..
미국 조상들의 인디언 학살 무려 8천만명~1억명, 덮여진 역사
 
http://cafe.naver.com/nazzis/232 - 6.25전쟁 때 보도연맹원이 학살한 수, 100만명 추정(남한사람) 이 역시 교과서에 실리지도, 알려지지도 않았다.
영국의 악마, 죄? 무죄다. 오히려 훈장까지 받았다. 묻혀지고 승전국의 입장에서 쓰여진 세계사
 
 
 
맛보기로 보여드리죠. 이건 제 카페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가르치기 위함과 동시에 우리나라를 좋은 국가로 만들기 위해 모인 분들이 있는 카페입니다 ^^ 왼쪽에 전체 공개 코너는 가입 안하셔도 볼 수 있으니까 많이 보세요 ^^
가입하시고 싶으시다면 가입신청하세요. 물론 강요는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튼 여러분 한테 좋은 정보였으면 좋겠내요^
 
 
이 글은 절대 카페 홍보물이 아니라, 그에 대한 내용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다음 사이트에서 이 글을 보고 카페에 가입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을 거부하라고 한다면
 
저는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