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

[스크랩]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1856.7.9~1943.1.7)

그리운 오공 2011. 6. 15. 15:05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1856.7.9~19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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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나오는 상당수 자료중,,,

초인발명(=마법사,무협지상의 무술고수,슈퍼맨,드래곤볼의 손오공이 되는 발명)과

광속의 수백배~무한배로 날아가는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

초고전압하에서의 중력과 관성이 소멸되는 현상,

자체적인 인공중력의 발생,

정전기의 소용돌이를 이용한 공간이동 효과,구전번개를 만드는법,

등등의 것은,,,,,


제대로 된 자료를 그 어느곳에서도 구할수 없었다,

그러나 본인은 다양한 책을보며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중에,,,

희미하게나마 테슬라의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외의 과학지식을 결합해 새롭게 재조명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인발명의 상당수부분과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의 상당수부분은

본인의 지식이라고 주장할수 있다고 본다,

선진국들에게는 상식이라고 해도,,,

후진국들은 그러한 상식을 모른다,

그렇기에 알려진 상식도 재산이 될수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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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유고 슬라비아의 세르비아 크로아티아(Croatia),스밀리얀(Smijlan) 출생,

유도코일(induction coil) 1851년 H.D.룸코르프 발명,
테슬라코일(Tesla Coil) 1891년 니콜라 테슬라 발명,
이상한점: 둘다 같은 구조,같은 고전압발생기이다,

그런데 어째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는지 이해할수 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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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동유럽은 터키가 대권을 장악하고 있었고
이에 대항한 독립운동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세르비아 정교회의 신부인 아버지로부터 지적인 지도를 받았고,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혜로웠던 어머니에게는
세상의 근본원칙과 인간의 기본적 도리를 배웠다.
그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잘 드러나 있다.  
그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 했지만, 훌륭한 음악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즐겼으며,
세르비아의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가장 친한 문학가이며 언론인이었던
친구 부인과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이나
음악가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y) 같은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고
심지어는 이들과 동업하여 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테슬라의 아버지는 집안의 오랜 전통 대로 그리스 정교 성직자가 되어
마을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서 지역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한편 테슬라의 어머니는 발명가로서의 재능을 갖고 있었으며
집안의 가구 등을 비롯한 여러 발명품을 고안하였다.


테슬라의 어머니 듀카는 일곱형제중에서 맏딸로 태어남,
학교교육을 제대로 받은적이 없었다,
고전유럽시 전집 전체를 암송할정도로 놀라운 기억력을 갖고 있었다,
그녀의 넷째아들이 니콜라 테슬라,
그리고 12살 때 불의의 사고로 죽은 테슬라의 형도 자타가 공인하는 뛰어난 천재였다.


니콜라 테슬라는 어린시절부터 특이했다,
한번 읽은 책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외워버렸으며
그릇이나 찻잔의 속부피를 계산하고 있었다,


어렸을적부터 그의 특이한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
그 기발한 재능은 당시에 형 다니엘이 죽고 상심한 부모님을 위로하는데 쓰이곤 했다,
입학을 했으나 ,그는 그 과정을 시시하다고 느껴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그의 관심은 잘 꾸며진 물리학 실험실에 쏠렸다,


그는 거기서 지금까지의 것보다 훨씬 개선된 기능을 가진 새로운 원동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그는 그의 물건을 시각화하는 범상치 않는 능력을 인지 하게 된다,

정신적인 눈으로 기계를 발명,


" 나의 방법은 다르다, 나는 곧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는다,
내게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는 곧 이미지로 그것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설계를 바꾸고 개선을 하고,만들어진 기계를 머릿속에서 작동시켜 보는것이다,"


놀랄만한 기억력을 가졌으며 4세의 나이에 6개 국어를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천재성은 자연과학 분야에만 한정되는것이 아니었다,
언어나 문학에도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영어,불어,독어,이탈리아어,
이외에도 몇몇 슬라브언어를 구사할수 있었다,

말년에는 12개의 언어를 완벽하게 구사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처럼 집안의 천재성을 물려받은 테슬라는
다섯 살 때 만든 물레방아(=수(水)차)를 발명,
그 물레방아는 보통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물레방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걸름막이가 없고 밋밋한 것이었지만,

물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돌아갔다.

훗날에 그는 같은 원리로 날개 없는 터빈을 발명했다.

친척들에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에너지를 얻는 계획을 설명했다고 한다.


한번은 지붕 위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각도를 맞춰 우산을 폈고,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 그는 분명히 우산을 이용하면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땅바닥에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그를 그의 어머니가 방으로 옮겨야 했다.


또 한번은 풍뎅이를 잡아서 엔진을 만든 일이 있다.
16개의 가는 막대기로 부챗살 모양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가운데 축을 고정하여 가볍게 돌게 하고 각 살 끝에 풍뎅이의 발을 풀로 붙였다.
한 방향으로 향한 16마리의 풍뎅이들이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수레가 돌아가는 엔진을 고안한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웃의 한 친구가 찾아와

병 속에 가득 잡아 놓은 풍뎅이들을 마구 먹어 치워 버렸다.
그것을 보고 니콜라는 그 다음부터는 아예 이런 발명을 하지 않았다.


전통에 따라 그리스정교성직자가 되길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등과정을 마친 후

그라츠(Gratz)로 가서 폴리테크닉 공대(Polytechnic Institute)에서

수학, 물리학,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4년을 보냈다.


1875년 테슬라는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시작했는데,
그는 당시의 새로운 발명품인 그람기계로(GRAMME MACHINE)로
실험을 하는 유명한 푀실 교수의 강의를 들었다,
그는 강한 불꽃전류로인해 에너지 손실이 큰 그 기계를 개선하고

직류대신 교류로 작동을 해보고자 하였다,
그의 이 생각은 몇년후 교류발전기를 만드는데 기초가 된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대단한 경지에 있었다.
스티아치치(Stjiacic) 라는 세르비아의 한 신부가 세르비아 연방의 젊은 작가시절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 도서관에서 당시 유명했던

세르비아 시인 즈마이-요반(Zmai-Jovan)의 시집을 찾은 그는
번역자가 니콜라 테슬라임을 확인했다.
훗날 스티아치치 신부가 라도 박사의 안내로

메트로폴리탄 빌딩 20층에 있는 테슬라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을 때 “테슬라씨, 당신이 시에도 능통한 줄은 몰랏습니다.” 했더니,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매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세르비아 사람들 중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후 전기 공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헝가리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교류 모터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였으며

체코의 프라하 대학에서 본격적인 전기기술 교육을 받았다.


1881년 공부를 마친 테슬라는 부다페스트의 한 전화회사에 직장을 얻었다,

어느날 부다페스트의 시립공원을 거닐던 그는
세상을 바꿀만한 전광석화와도 같은 깨달음을 얻게된다,
전류를 수백킬로미터 떨어진곳으로 운반하는것을 가능케하는,
유도모터=자기감응모터(INDUCTION MOTOR)를 착안하여

거의 완성할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친척의 소개로 파리로 직장을 잠시 옮겨 에디슨과 절친한 베첼러와 함께

에디슨의 유럽 지사에서 전기 기술자로 근무하게 되었다.

베첼러는 에디슨이 24세에 처음 회사를 차릴 때 고용되었던 기사였으며
에디슨이 프랑스에 파견해 유럽 대륙에 세운

‘대륙 에디슨 회사(Continental Edison Company)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에디슨 회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세계적인 회사였다.  
테슬라는 주변에서 천재로 인정해 주는 기술자였을 뿐 아니라
여러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므로 문제 해결사로 여러 곳에 파견되었다.
1880년대는 새로운 과학의 이기인 전화를 가설하는 것이 각 국가의 커다란 사업이었다.
그가 일하던 파리의 회사는 에디슨 회사와 함께

독일에 전화시설을 설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독일 알사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전화 설치를 끝내고
개통식 행사를 하기 위해 황제 빌헬름 1세가 참석한 자리에서
전화선이 누전으로 폭발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독일은 이것을 고의적인 사고로 오해했고,
프랑스와의 정치관계까지 악화시키고 말았다.


그 여파로 테슬라가 일하던 프랑스 회사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하고 계약을 파기당할 상태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해결사로 파견된 테슬라는
기존 시설을 자기가 고안한 감응모터의 원칙을 이용한
교류전기로 바꾸어 송전하는 시설로 대치하여 모든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했다.


당시 전기는 반 마일 이상을 송전하는 것이 불가능한 직류뿐이라고 여겨지던 때였다.
테슬라는 이러한 직류의 단점에 착안하여
거리에 관계없이 송전할 수 있는 교류방식을 생각하고 그 방법을 제시했으나
아무도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던 터에,
이러한 좋은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발명을 증명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에디슨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할 수 있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어
테슬라의 공은 에디슨에게로 돌아갔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건진 장본인은 결국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되어 교류문제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잊혀져 버렸다.


테슬라가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에디슨은 약속한 돈을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베첼러는
테슬라에게 미국으로 가서 에디슨 밑에서 일하면서
그를 통해 교류전기를 상용화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하면서

에디슨에게 소개편지를 써주었다.


1884년 6월, 테슬라는 돈 몇 푼과 책 몇 권,

반중력 비행기 설계도와 즐겨 쓴 시집,

자신의 학술논문집,

가장 중요한 베첼러의 소개편지를 들고 미국에 도착했다.


그 편지에는

“나는 이 세상에서 두 사람의 위대한 사람을 압니다.
하나는 에디슨 당신이고,
다른 하나는 이 편지를 가져가는 테슬라라는 젊은이입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미국에 도착한 테슬라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겨우 차비를 충당하여

에디슨이 있는 뉴저지로 가서 소개장을 그에게 보여주게 되었다.
에디슨은 편지를 읽고 곧 테슬라를 채용했다. 

===>반중력 비행기 설계도:

1891~1900년사이,니콜라 테슬라는

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를 이용한 실험을하는 와중에 추진엔진으로서의 가망성을 발견,

이것을 이온크래프트엔진의 발명으로 연결됨,

원판형태의 마이너스극,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으로 구성된 이온크래프트엔진을 발명,

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를 이용한 실험을 하는 와중에 전류방패막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

단극유도발전기의 대출력을 알고 있었던 니콜라 테슬라,,,

그는 그것을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에 적용함,

1891~1900년 사이,탄소제거기=초고전압 전기집진기를 발명,

(테슬라이전에 유럽인들중 누군가가 먼저 탄소제거기를 발명,

한참후 테슬라가 뒷북을 침).


테슬라는 자신의 초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가 광속을 넘어서는것을 알지 못했다고함,

그러나 후일 필라델피아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설계했던 구축함 엘드릿지호의 공간이동사건을

접하고나서야,,,1891~1900년사이, 발명했던 초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가

광속의 수백배~광속의 무한배로 추진할수 있다는것을 깨달음,

공간을 뛰어넘기 때문에 광속의 수백배~광속의 무한배로 추진이 가능함,


그러나 불행히도,,,,

테슬라의 1891~1900년사이 발명된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 1호는

미국 또는 영국등의 어느 선진국에서

1917년 파티마사건에 사용, 가짜 기적을 연출함,
(17년이란 시간은 상당히 긴 시간임,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기껏해야 2년미만임),


테슬라의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 특징:

초고전압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중력과 관성이 소멸된다고함,

그렇기에 조종사의 몸에 g가 안쌓임,

중력과 관성이 소멸된 상태이기 때문에 작은 힘으로도 초고속으로 가속됨,

급격한 초고속상승, 초고속하강,초고속전후이동, 초고속좌우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비행기와는 다른 형태의 비행을 하게됨,


초고전압의 전기를 사용해서 비행하기 때문에

지구에서 보는 태양처럼 고열을 사방으로 발산,

눈뜨고 볼수 없을정도로 밝은 빛을 사방으로 발광.


초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를 밑으로 대량으로 방출하기 때문에,

질병이 있는 사람의 몸에 대량의 마이너스정전기가 노출될경우

질병이 급속히 치료되는 현상발생,


테슬라의 무선송전 기술은

파티마의 세아이들의 머리속에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용됨,

테슬라코일의 콘덴서 또는 스위치부위를 넓게 만들고나서

그 부위에 말을 하면 초고전압의 전기에 음성을 실을수 있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해 초고전압의 전기를

파티마의 세아이들의 머리에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함,


그런데 초고전압의 전기는 인간의 몸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고

트랜스(=무아지경)상태로 만드는 효과가 있슴,


그때문에 파티마의 세아이들의 눈앞에서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려도 아무런 반응이없었다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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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기적은 빙글빙글도는 빛을 동반하지 않는다,
트랜스 상태의 아이들의 몸에 바늘을 찌른다든가 카메라 플래쉬를 터트리는 행위등은
파티마사건이 진정으로 신의 기적이라면 절대로 용납되지 않을 시험행위이다,
그러므로 파티마사건은 테슬라의 발명품을 악용한 사기 날조극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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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에디슨은 당시 직류발전기인 다이나모 발전기를 개량하여 효율을 높이고
고장 빈도를 줄여 발전단가를 낮추려고 고심하던 중이었다.
이를 본 테슬라는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에디슨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만일 그 일을 성공하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욕심에
테슬라는 밤잠을 설쳐가며 여러 날 일한 끝에
에디슨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월등한 기계를 만들어 냈다.

에디슨은 물론 이에 대만족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약속한 5만 달러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결국 돈 이야기를 꺼낸 테슬라에게
에디슨은 그것은 농담이었다고 하면서
테슬라가 아직 미국의 대화방법을 습득하지 못했다며,
그의 어깨를 두두리며 깔깔대고 웃었다고 한다.  


테슬라는 이 때문에 대단히 실망하고 좌절감마저 갖게 되었다고 후에 술회했다.

그럼에도 테슬라는 계속 교류전기의 개발을 종용했다.
그러나 끝까지 직류가 우월하다고 믿은 에디슨은
굳이 교류전기를 발전시킬 필요가 없다면서 완고한 태도를 유지했다.


두사람은  성격,열정 그리고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정반대였다,
에디슨은 직류에 모든것을 걸고 있는데 반해 테슬라는 교류를 선호했다,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자신의 많은 발명품에 특허를 신청하지 않았다,
그의 생각은 인류가 다같이 공유해야한다는것이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기대와는 달리 에디슨은

자신이 발명한 전구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직류 방식을 주장하였다.


두 사람 사이가 금가는것은 예정된 수순이었고

일년동안의 공동작업 끝에 테슬라는 사표를 내고 만다,

에디슨에 대한 많은 실망으로
그를 통한 교류전기의 발전계획을 단념하게 된 테슬라는

에디슨을 떠나 독립된 연구소를 운영하며

교류 발전기와 교류 모터 등 교류 송, 발전 시스템을 완성하였다.


후일 그는 에디슨을 평하여

“에디슨은 볏짚 속에 바늘이 떨어지면
지체하지 않고 볏짚 하나하나를 뒤지기 시작해서
찾을 때가지 꿀벌처럼 일할 사람이다.

나는 약간의 이론과 계산법으로
그가 들이는 노력의 10퍼센트만으로 원하는 것을 찾는 법을 알기에
그의 아둔함을 측은하게 여겼다.”라고 말했다.(New York Times, October 19, 1931)  


1887년 그 발명가는 뉴욕에   "Tesla Electric Light Company" 를 설립했다,
한결같이 밤낮으로 일했고 1887년과 1890년 사이에 40개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는 강의를 하기 시작했고 그 명확성과 이해도는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점차로 테슬라는 학계의 중심에 서기 시작했다,
산업계의 거물 조지 웨스팅하우스도 그를 주목했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던 웨스팅하우스는 
별 손실없이 먼 곳으로 운반이 가능한 교류시스템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이미 많은곳에 세워졌거나 세워지고 있는 직류발전소였다,
또한 에디슨 상회와 톰슨-휴스턴 상회는 교류에 대해 대대적으로 대항하고 있었다,
모든 상황이 테슬라에게 불리하게 시작되긴 했으나
교류시스템은 그 모든것을 넘어설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 당시는 에디슨의 유명한 백열전등이 각광을 받고 많은 돈을 벌어들이던 때라
백열전등 이외에 다른 방법을 통한 전등을 발명해 보려고 애쓰던 과학자들이 많았다.
테슬라는 이미 아크전등을 발명하여 특허를 낸 후라
몇몇 회사로부터 함께 사업하자는 제의를 받았으나
역시 실권과 이득은 모두 그 사람들이 갖고
자신에게는 아무 이득이 없다는 것을 알고 그만두게 되었다.  
이때 에디슨과 같은 나이의 젊은 전기기술자이며
사업가적인 기질과 자본을 갖춘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의 사주
‘조지 웨스팅하우스’를 만나게 된다.

그는 테슬라의 교류전기 이론에 심취하고,
그 역시 교류전기만이 유일한 전기보급법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동안 가난에 시달렸던 테슬라는 조지 웨스팅하우스로부터 100만 달러의 제의를 받고
그때까지 등록한 모든 특허들을 웨스팅하우스에게 팔았다.

이때부터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직류, 교류 싸움이 시작되었다.  
학계에서도 이미 익숙해진 직류의 장점을 고수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교류의 장점을 이해하여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아주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데,
역사상 처음으로 시카고 ‘세계박람회’가 1893년 5월 1일에 열린 것이다.
박람회장에는 25만 개의 전등이 켜질 예정이었고,

당연히 각 전기회사들은 이 일을 따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게 되었다.
결국 낙찰을 받은 회사는 테슬라의 기술을 사들인 ‘웨스팅하우스’였다.
당시 에디슨은 전등 당 18.5달러에 입찰했고 웨스팅하우스는 4.32달러에 입찰했다.  


이를 계기로 웨스팅하우스는 박람회장 내에
테슬라의 ‘다상자기감응’ 원리를 이용한 발전기를 설치하고,
직류발전기로는 이런 싼값에 전기보급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여러 개의 직류발전기를 설치하지 않고도
장거리를 전깃줄로 송전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교류를 실용적인 전기로 완전히 인식시켰던 것이다.
이 일은 교류가 직류를 능가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고,
에디슨의 직류를 향한 아집도 막을 내리는 사건이 되었다.


1880년대 이후 전기분야 발전은 그야말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니콜라 테슬라는 자신의 특허를 팔아 부자가 되어 있었고

1881년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였다,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테슬라는 처음으로 교류방식으로
박람회장 전체에 전기를 공급했다고 언급했다.

당시 전기기계의 세계적 권위자였던
독일 베를린 피지코 테크니컬 학회(Physico-Technical Institute)의
헬름홀츠(Herman von Helmholtz) 수석감사가 이 현장으로 구경을 왔다.

그는 테슬라에게 무선송전 방식에 관해 설명을 듣고,
이것이 대단히 실용적인 방식임을 인정했다.


그런 와중에 많은 과학자들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폭포 가까이에 있는 버팔로 시민들도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버팔로까지의 거리가 22마일이나 되어
직류로는 송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러던 중 시카고 박람회에 이어 독일에서도
삼상 교류발전기를 이용해 108마일 떨어진 곳까지 송전이 가능해지자,
점차 사람들은 버팔로뿐만 아니라 뉴욕시까지도 송전할 수 있고
실상 거리에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미 시카고에서 그것을 증명한 웨스팅하우스사가 공사를 맡아
1895년 4월 20일 버팔로시 가정들은 전기등불을 켜게 되었고,
이후 값싼 에너지와 전기를 이용한 여러 산업이 버팔로시에 몰려들게 되었다.

즉, 일종의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리하여 1903년에는 세계의 모든 발전소가
테슬라의 원리를 이용하여 교류전기를 만들게 되었다.  


그는 또한 공명(共鳴)과 관련하여 지대한 발명을 했다.

*원격지구 역학진동(telegeo dynamic oscillation):

땅을 규칙적으로 두들기면 공명이 일어나 인공지진을 일으킬수 있다고함,

다이너마이트를 터트리면 지구반대편까지 충격파가 가는데,

하루가 지난후 다시 터트리면 되돌아오는 충격파를 두배로 만들수 있다,

이런식으로 반복하면 지구를 두조각 내는것이 가능하다고함,


땅의 광물의 성분에 따라 충격파의 진행속도가 다르다,

그러므로 이러한 충격파의 되돌아오는 시간을 측정하면

지하의 광맥을 찾을수 있다,

적 잠수함의 위치를 찾거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파괴할수 있다,


 

맨하턴 실험실에서 테슬라는 지구를 전기튜닝포크로 만들었다.
그는 그가 위치한 바로 아래의 땅과 같은 주파수로 진동시기키 위해
증기로 작동되는 진동장치를 작동시켰다.

그는 여러 형태로 시범을 보였지만 사람들은 보고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그중에 하나가 신문기자들 앞에서 보여준 시범이다.
그는 100톤을 견딜 수 있다는 두께 5센티미터, 길이 61센티미터,

폭 30센티미터 철판의 양끝을 고정시켜 놓고
그 위에 탁상시계 크기의 전기진동기를 올리고 한참을 조정했다.
잠시 후 철판과 진동기의 주파수가 서로 맞았을 때
철판이 떨기 시작하더니 점점 그 정도가 심해져 결국 철판은 부러지고 말았다.

이를 목격한 벤슨(A. L. Benson) 기자는
아무리 큰 망치로 두들겼어도 불가능한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테슬라는 이어 뉴욕의 고층빌딩 건축장에 가서도
이 조그마한 진동기(=휴대용 인공지진 발생기,손바닥만한 크기였다고함,)를 철근에 부착시켜
그 위에서 일하던 인부들이 지진이 난 줄 알고 혼비백산하게 만든 일도 있다.

빌딩들은 흔들렸고 창문이 부서지고 벽에서 회반죽들이 떨어졌다.

*동적전자감응전구:1894년 특허(U.S. Patent 514170)  
테슬라가 자기 방에서 전깃줄 없이 불이 켜진 전등을 쥐고 있는 사진도 유명하다.
이는 100만 볼트라는 고압의 전류를 직접 자기의 몸을 통하여 전등이 켜지게 한 것이다.
이것이 테슬라가 개발한 또다른 전등
'동적전자감응전구‘(Electro Dynamic Induction Lamp)로

전깃줄 대신 감응으로 켜지는 전등이다. 

테슬라는 에디슨의 백열전등을 아주 조잡하고 미개한 것으로 여겼다.
그가 시범을 보인 전등은 성능이나 품질 면에서 훨씬 더 다양하고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명한 전등을 상용화하려고 노력했으나 실패,

또 그는 친구인 음악가 스토코프스키와 작가인 트웨인,
부호의 아들 전기기술자 해몬드(Jack Hammond Jr.) 등과 동업으로 회사를 만들어
전등은 물론 형광등을 이용한 사진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을 벌인 일이 있다.
이때 마크 트웨인이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형광등을 켜보이는 사진
(1894년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이 친구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전등을 손에 잡고 손수 실험을 해보고 있는 장면)이 지금도 남아 있어
테슬라가 에디슨의 백열등보다 훨씬 진보된 전등을 만들었다는 증거가 되고 있다.  


그는 X-레이도 처음 만들었다.
1895년 12월 독일의 렌트겐(Wilhelm roentgen) 교수가
X-레이의 발견과 유용함을 발표하였을 때
테슬라는 자기가 이미 X-레이를 이용하여 머리를 찍은 사진을 렌트겐에게 보냈다.
렌트겐은 이를 숨기지 않고 큰 관심을 표명하면서 일반에 공개했다.
이 때문에 테슬라는 유명해져 잡지사에 기고도 여러 번 하게 되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테슬라는 렌트겐 박사에게 영광을 돌리면서도, 그 위험성도 함께 경고했다.

테슬라의 밑에서 지도를 받으며 잠시 공부한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는
1900년 12월 21일 영국의 콘월에서 캐나다 뉴파운드랜드로
짧은 파장을 이용하여 ‘S'라는 글자 하나를 송신하는데 성공했다.
이로인해 ’마르코니‘는 무선통신의 선구자와 영웅이 되어 라디오의 발명가로 판정이 되었고,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보다 2년 전인 1898년 테슬라가

이미 무선통신 라디오의 원리를 특허낸 일이 있었다.
테슬라가 이에 대해 고소하여 승소했으나,

일단 유명해진 마르코니의 인상이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고,

재벌을 배경으로 한 언론 덕택에 마르코니가

테슬라의 기술을 슬쩍 가져갔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


테슬라도 이를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테슬라는 자기가 그때 실현시키려고 했던 방법이

잘 설비된 철로에서 달리는 호화여객차라고 한다면,
대기를 매체로 짧은 파장을 이용한 마르코니의 방법으로 알려진 그 방법은
마치 촌길을 가는 두 바퀴 마차에 비유할 수 있다고 신문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때 테슬라는 계속해서 설명하기를 마르코니의 대기를 통한 송전방법은

대기 상태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거리를 고려해야 하며

전파는 대기의 상태 여하에 따라 많은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자신의 방법은 긴 파장을 이용한 저주파로 지표면을 사용하므로
거리의 제한이나 기후조건에 의한 제약이 전혀 없다고 했다.



*스칼라파  
테슬라가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의 실험을 통해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스칼라파’라고 하는 ‘종파’(縱波, longitudinal wave)에 대한 이론이다.
테슬라가 지구에 이미 존재하는 전기에너지를
지구 어느 곳이든 쉽게 보낼 수 있다고 한 것은
전자파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종파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테슬라가 호언장담한 것으로 보아
이미 완전히 독자적으로 이론뿐만 아니라 실용단계까지 도달한 것 같다.  
1960년대에 미 국방성 소속 과학자 리치몬드(Walter Richmond)와
비어든(Thomas Bearden) 중령이 이 ‘스칼라파’를 발견했다.
비어든 중령의 말에 의하면,

1963년 소련이 미국의 원자력잠수함 트레셔(Thresher)호를 격파시킨 것이
이 테슬라의 원리를 이용하여 만든 소위 ‘사이코트로닉 무기’ 덕분이었다고 말했다.  
1999년 봄 이름을 밝히지 않은 미 육군의 한 장성은
아트 벨(Art Bell)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광선속도(초석 30만 킬로미터)의 4.7배나 되는 속도로
통신이 가능한 단계까지 종단파를 개발했다고 발표하면서,

이것은 해저 어느 곳에 있는 잠수함도 찾아 폭파시킬 수 있고,
실내 온도에서 바위를 녹일 수도 있는 정도라고 말했다.
물론 이것은 21세기 과학에 해당하는 첨단과학이며, 극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1895년 3일 3일 미국의 뉴욕시에서
전기를 증폭시켜 강력한 전류를 발산하는
테슬라 코일의 변압기 성능을 실험하던 테슬라가
이상한 현상을 목격한 일이 있었다.

그 현상이란 초강력 전류가 흐르는 자기장 물체가
속도와 방향을 특정 패턴으로 회전할 시
해당 지역의 시간, 그리고 공간이 전류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당시 회전하는 자기장의 영향을 받은 부분 내부에

시간과 공간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세계가 보이는 것을 확인한 그는
재빨리 변압기의 작동을 멈추고 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려 하였다고 한다.


1895년 3월 12일 평소에 테슬라와 친분이 있던

뉴욕 헤랄드 신문기자 A는 커피를 마시려고 인근 카페를 방문 하였다가
그곳에서 테슬라를 만났다고 합니다.

처음에 테슬라가 자신을 못알아보고
어깨가 아픈지 이를 만지며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본 A는
무슨일이 있었냐고 묻다 테슬라가 몇백만 볼트의 전류를 어깨에 맞았다며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수도 있었다는 말을 하자
수첩을 꺼내 그가 말하는 내용을 빠짐없이 적기 시작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테슬라가 말한 내용은

테슬라 코일에서 발산된 강력한 전류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데 영향을 줬다는 것이었고
그는 일주일간 조수와 함께 이와 같은 실험을 계속 진행하다
전류를 어깨에 맞고 그 과정에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한꺼번에 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테슬라는 타임머신을 연구했다고함,

그의 이론인즉,,

과거 부터 미래의 종말의 시간까지의 모든 시간이 하나로 겹쳐 있다고 한다,
마치 하나의 시간대에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집중시켜놓은 형태라고한다,
그 말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오직 직접 실험해보는수 밖에 없다,

말년에는 시간여행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해서 완성시켰다고한다,

또, 1897년 뉴욕에 온 영국의 켈빈 경은
테슬라의 실험실에서 무선송전 시범을 보고 너무나 놀라
“그렇다면 당신은 헤르츠파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오?” 하고 물었다.
테슬라는 이에 “물론 아니지요. 이것은 전류가 아니라 방사선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가지 켈빈 경은 무선송전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나
직접 목격한 순간부터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로봇
테슬라가 고안한 미래형비행기는 무선에너지에 의해 기계적으로 유도됨,
이 개념을 이용해 미사일을 공중으로 쏘아올려

수천마일 떨어진 목표지점에 정확하게 떨어지게 할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스스로 지능을 가진것처럼 행동하는 로봇이 만들어질것이다,
그 로봇의 출현은 혁명을 몰고 올것이다,라고 말했다,


1898년 새해가 되자, 에디슨과 테슬라는

누가 더 엉뚱한 주장을 해서 일반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지에 대해
막상막하의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에디슨은 사람의 생각을 사진으로 찍을수 있다고 발표,
테슬라는 한 뉴욕신문에서 자신이 태양광선을 동력으로 끌어냈으며

앞으로 그 동력을 이용해 기계를 돌리고 열과 빛을 얻을 계획이라고 진술,

안개에 영사기를 이용해 화면을 나타나게 하는 안개스크린을 에디슨이 발언,

테슬라는 전리층에 전자파를 발사해 화면이 나타나게 하는 방법을 발언,

이것이 훗날 입체영상 화면과 텔레비전 설계도로 이어졌다,



하늘을 나는 스토브
헬리콥터를 닮은 프로펠러를 가지고 있어 곧장 위로 이륙할수 있었으며,
조종사가 동체를 앞으로 기울이면 프로펠러가 앞쪽으로 이동하면서 비행기가 앞으로 나갔고,
날개를 수평으로 바꾸어도 조종석은 언제나 똑바른 상태를 유지하도록 되어 있었다,

산업계에서 형광등이 발명되기 40여 년 전에 그의 실험실에서 형광등 발명 및 사용,
1898년에 그는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세계최초의 무선조종 모형보트를 시연했다.
(무선조종 모형보트 발명했다는 말임).


니콜라 테슬라는 “전선이 필요 없는 등화(wireless lighting)"를 시현해 보였고,
기타 고주파전류와 관련된 업적을 이루어 보였다.


1899년 변압기는 약 1200만 볼트, 1100암페어를 달성,
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에 놓여진 50와트 백열등을 점화시킨다.
재벌의 원조를 얻은 테스라는 롱아일랜드의 워딘클리프에서 거대한 송신탑 건설에 나섰다.
-전선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에너지 정보네트워크의 실현- 그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을 때
200개의 전등을 발전소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전깃줄 없이 켜보이기도 했고,
역시 전선 없이 전기를 전달하여
마치 필라멘트처럼 40미터 길이의 두 갈래로 된 불꽃을
탑과 탑 사이에 일어나도록 하여 운동장만한 크기의 지역을 밝히기도 했다.

그에 의하면,
햇빛은 태양에서부터 9천 4백만 마일 되는 거리를 통과해
지구에 도달하는 진동에 의한 것으로서,
자기가 태양광선을 형성하는 진동과 흡사한 진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태양광선과 비슷한 광선도 만들 수 있다.
더군다나 이 광선은 구름이나 다른 방해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태양광선은 우주의 공간 ‘에테르(ether)에서 1초에 500조 번 진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진동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자기의 기기로 어느 정도까지 진동을 만들었으니 조금 더 개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로 동적전자감응전구를 말한 것이다.


니콜라 테슬라의 확대송신기(Magnifying transmitter):
테슬라의 확대송신기에서,
에너지는 지구와 반사커패시턴스 사이에서

지구의 자연적(고유) 진동수의 배수율로 계속적인 왕복운동을 한다.
교류전류는 자계가 변화할 때마다 전자파를 발생한다.
교류전압기를 대형화하면 전선에 의지하지 않고 전기에너지를 공급
하는 것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것이다.
그는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설립한 연구소에서 장치의 개발에 몰두했다.


1899년 그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연구실에서
그는 에너지 파동을 지구의 모든 방향으로 보냈고
그 파동들은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지진의 진원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에 관한 이론을 제공하였다.
파동들이 되돌아올 때, 그는 거기에 전기를 추가했다.
결과는? 인간이 만든 인공번개 중에 기록된 적이 없는
130 피트(약 40 미터)의 인공번개를 만들어내었으며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실제는 다르다,
2007년,선진국들은 인공번개의 길이를 태양계 길이이상으로 늘릴수 있다고함,),


그와 동반된 천둥소리는 22 마일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며
그의 연구실 주위의 모든 초원은 이상한 푸른 발광현상을 나타내었고
그것은 St. Elmo"s Fire와 유사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의 실제 실험에 대한 워밍업에 지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역 발전소의 장비를 파괴시켰고
그는 그 실험을 다시는 행할 수 없게 되었다.


*레이더발명:

레이더가 발명되기 25년전에 테슬라가 발명함,

라디오파와 저주파등을 이용한 방식이기 때문에 바닷물속의 잠수함을 찾아낼수 있다고함,


세계 1차 대전 초기에 미국정부는
필사적으로 독일잠수함의 항로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부는 적당한 방법을 찾는 일에 토마스에디슨이 일하도록 하였다.
테슬라는 이 배들을 찾기 위해 에너지 파동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1899년과 1900년 사이 약 1년간 그의 변호사의 배려로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가 있게 되었다.
이 도시에서는 크나큰 기대를 가지고 그를 환영했으며 그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덕분에 그는 높이 51미터, 직경 18미터나 되는 탑을 건설하고
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게 된다.
이 실험을 통해 많은 분야에 확신을 가지게 된 그는 1900년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J.P. 모건의 경제적인 후원을 약속받고, 유명한 ‘워든클리프 타워’를 계획하게 된다.

테슬라가 여기에서 발표한 중요한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지구는 표면이 한 극이 되고 또다른 한 극이 전리층
(電離層, 지상 40~400킬로미터 정도에 형성된 기류층)이 상호 작용하는
거대한 전기적 공명체(resonator)이다.

● 지구 자체는 엄청난 전기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도관을 연결하듯이 뽑아서 쓰는 기구만 만들면 무료로 전기를 사용할 수 있다.

● 무선전기 전송 시스템은 지구표면과 전리층에 있는
기본전파 혹은 고정전파 형태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전송할 수 있다.  


1900년에 자본가 J. P. Morgan으로부터 15만불의 후원을 받았던 테슬라는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그가 "Wireless Broadcasting System"라고 부르는 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1901년 초부터 롱아일랜드에 지상높이 57미터, 지하깊이 37미터의 탑에
직경 21미터 무게 55톤이나 되는

버섯모양의 금속관을 씌운 워든클리프 타워의 착공에 들어갔다.
1900년 1월 에 완공,


그는 이 탑으로 전기는 무제한으로 무선전송할 수 있고,
방송국 역할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목표는 누구나 필요할 때 아무데서나 무제한의 전기를
아주 싼값에 얻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사람들이 심한 육체노동의 사슬에서 풀려나
평화와 번영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자기 실험실에서 26마일 떨어진 곳에
전깃줄 대신에 땅을 통해 전기를 보내 200개의 전등을 켜보였다.


테슬라에 따르면 ‘워든클리프 타워’는
모든 종류의 전신과 음성과 글자를 자유자재로

세계 어느 곳이든 무선으로 보낼 수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전화와 전신 송신소들의 설비를
개조하지 않고도 모두 연결시켜 줘서 전화 가입자는

전화 하나로 세계 어디서든 통화가 가능하며,
같은 원리로 수신기만 가지고 있으면 육지나 바다에 관계없이 세계 어느 곳에서도
다른 곳에서 들려주는 음악이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 방송타워는 전화, 전신 서비스 및 화상전송,
주식정보, 날씨정보등을 전세계적으로 연결시킬 계획이었다.
모건은 그것이 전세계에 대한 프리에너지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금을 끊어버리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은 그 타워가 독일의 유보트의 항로를 잡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미국정부가 세계 1차대전당시 그 타워를 파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후원을 약속한 모건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착공에 들어가 이미 기술자들가지 채용한 테슬라는
특허이익의 51퍼센트를 모건의 소유로 한다는 조건으로
15만 달러의 착수금만 겨우 받았을 뿐이었다.

결국 ‘워든클리프 타워’ 공사는 좌절되고

이에 따른 경제적 압박이 테슬라를 괴롭혔다.
그의 이론을 이해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다만 몇 명의 돈 없는 친구들만이 그를 위로해 주었을 뿐이었다.

모건이 지원을 중단한 이유가
자신이 요구한 시설비가 마르코니가 제시한 것에 비해 너무 많아
경제적으로 수지 타산이 맞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듣고

테슬라는 마르코니의 목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것이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은 결코 아니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테슬라는 그 프로젝트에 대한 모건의 자금이 끊긴 후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그 타워는 채권자들에게 고철로 팔리게 되었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목소리, 화상, 전기의 전송에 대해서 귀담아 들어주질 않았다.


테슬라는 콜로라도에서 지구 어디든지
무선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완벽한 기계를 만들었고,
사진을 세계 각지로 보낼 수도 있으며,
대기를 통해 음악도 보낼 수 있다고 서술했다.

목소리와 이미지를 전파에 실어서 공기를 통해 전송하는 방법을 말함,
AM,FM등의 라디오 주파수에

음성신호,이미지신호를 실어서 보내는 방법이라고 보면된다,
테슬라는 이러한 방법을 이용해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화,
즉 무선인터넷화를 계획했다,
무선으로 이미지,목소리,뉴스,날씨,주식등을 알려주는 그런 계획이다,

무선인터넷,라디오,텔레비전,위성방송,휴대용TV,
휴대용DMB,위성DMB,핸드폰등을 발명함,
그야물론 오늘날의 것과는 좀 다른 원시적인 모습이었다,

지구 자체가 거대한 도체이기 때문에
당시 유선으로 가능한 일의 대부분이 무선으로 가능하게 된다는 뜻이다.  



테슬라 코일로 규칙적인 전자기파를 발생시킨다, 
반대편 테슬라 코일로 그 에너지를 수신해서 증폭시켜서
전등을 밝히거나 모터를 작동시키거나
그외의 여러가지 일상생활과 산업에 사용할수 있다고한다,


테슬라의 무선송전 장치를 작게 축소해서 만들면
헨리 모레이의 무한동력 발전기가 된다고한다,


무선조종 로봇,무선조종 잠수함,무선조종 비행기,
무선조종 미사일, 날개없는 터빈,

지구에서 전기를 끌어내는 무한동력발전기,
핵폭탄과 유사한 형태의 신무기발명,분자충격램프발명,
레이저 발명, 태양광 레이저 발명,태양광발전기 발명,
열을 이용한 자석식 발전기 발명,
유도전동기류 발명,무선송전 발명,
입자가속기 발명,핵파괴기 발명.

테라헤르쯔 투시기 발명,감마선 발생기 발명,


세계최초 반도체,다이오드,집적회로,컴퓨터발명,

네온조명등발명,인공기상제어장치 발명,

인공위성에 장착하는 형태의 인공기상제어장치발명,
인공위성에 장착하는 형태의 인공지진기계장치발명,
인공위성발명,레일건 발명,플라즈마레일건 발명,입자가속기 발명,
다양한 형태의 무한동력발전기 발명,신소재발명,
분자충격램프발명,고효율 송풍기,환풍기 발명,
미사일 발명,리모컨 발명,레이저 레이더 발명,

전파를 이용한 잠수함탐지장치 발명,
공간입체영상 발명,전기를 이용한 물리치료기 발명,
공기를 이용한 조명등 발명,무선송전을 이용해 발광하는 백열전구 발명,
무선송전을 이용해 작동하는 로봇,무선송전을 이용해 작동하는 잠수함,
무선송전을 이용해 작동하는 비행기,무선송전을 이용해 작동하는 선박등을 발명,
무선송전기술을 이용해 수천대이상의 로봇,비행기,
미사일,잠수함,선박등을 조종하는 방법 발명,스피드메타,

자동차 점화시스템발명,

수조와트=수십억킬로와트의 전력을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실어서 발사하는 죽음의 광선무기,
인공지진기계, 휴대용 인공지진기계,

인공위성에 장착할수 있는 형태의 인공지진기계,
원격인공지진발생장치, 전자레인지 발명,
테슬라 코일발명, 지구의 극을 바꾸는 방법 발명,
지구를 두조각 내는 방법 발명, 공간이동방법 발명,
뉴트리노통신법 발명, 무선인터넷 발명, 휴대용 TV발명,

핸드폰 발명,휴대용TV나오는 핸드폰 발명,텔레비전 발명,
라디오 발명,광속을 초월하는 전파 만드는 방법 발명,

가장 뛰어난 형태의 송풍기,환풍기 발명,
무선리모컨 발명, 마인드콘트롤장치 발명,
전파를 이용해 사람의 머리속으로 직접 소리를 전달하는 텔레파시장치 발명,
무한동력 발전기 다량 발명(정확한것은 직접 참조바람),
레일건 발명,플라즈마 레일건 발명,
다양한 형태의 플라즈마 레일건 발명,

무선송전 기술을 다양하게 응용한 제품들 발명,
전기선과 연결되지 않았는데  저절로 작동이 되는 잠수함,

어뢰,로봇,백열전구,형광등,등등,,,

병렬처리컴퓨터기술 최초발명,
브라운관 TV발명,새로운형태의 신소재발명,

동시에 수백,수천개의 무선조종무기들을 조종하는 장치 발명,
홀로그램 발명, 모든것을 막아내는 전류방패막 발명,
원격으로 전자장치를 정지시키는 장치 발명,
수력발전소 발명, 죽기전에 우주전함 발명,

직렬연결 샌드위치형태의 태양전지 최초 발명,

태양광 용광로 발명,태양광발전기 발명,레이저 발명,교류모터발명,
날개없는 테슬라터빈 발명, 열을 이용해 발전하는 발전기 발명,
테슬라는 110V 또는 220V로 각 가정에 전송되는 전기공급방식인 교류전류 시스템과,
다양한 색을 자랑하는 네온등, 형광등, 자동점화장치, 전자레인지, 자동차의 속도계,
리모트 컨트롤, 유도전동기발명, 교류발전기, 변압기, 전동기,
전자레인지등 800여개의 발명특허권을 보유했다.
그의 노트에 적혀 있는것까지 포함한다면 그가 발명한것은 우리가 생각한것 이상이다,


1890년경,,

테슬라는 에디슨과의 전류전쟁중에

자신의 발명품이 안전하다는것을 증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그때 고전압의 전기로부터 인간의 몸을 보호할수 있는 금속그물옷을 발명,

자신의 몸의 겉으로 흐르는 고전압의 전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을하는 와중에 구전번개를 발견,

구전번개를 어떻게 만드는지 연구하다가 결국 자유자재로 구전번개를 만드는데 성공함,


*구전번개:

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로 몸을 대전시킨 상태에서 검지손가락을 퉁겨주면

손가락 끝에 공모양의 전기덩어리가 생겨난다,

이것이 그 유명한 구전번개이다,


몸전체에 존재하는 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는 검지손가락을 퉁겨주는 순간,,,

순식간에 손가락끝으로 몰려들어 검지를 통해 외부로 방출되려고한다,

이때 검지손가락 끝에는 공모양의 자기장이 형성되는데,

이 자기장안에 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가 갇히게 되어

공모양의 전기덩어리인 구전번개가 만들어진다,


구전번개를 땅으로 굴리면 통통튀기며 굴러간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펑하는 소리와 함께 강렬한 빛을 사방으로 발산하며 폭발한다,

냉장고 안에 구전번개를 가둬두면 냉동된 닭을 순식간에 익혀버릴수 있다고한다,


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를 몸에 대전시킨 상태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던 니콜라 테슬라,,

그런데 마이너스 정전기는 인간의 몸을 천하장사처럼 강하게 만들어준다고함,

이러한것들로인해 니콜라 테슬라는 결국 <초인발명>을 하게 됨,


마이너스 정전기로 인간의 몸을 대전시키면

그는 손으로 번개를 발사해 적을 제거할수 있고,

펄스적으로 전기를 발사하면 물체를 얼려버리는 냉동광선으로 사용할수 있다고함,

구전번개에 펄스적으로 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를 주입하면

구전번개는 극도로 차가워져 모든것을 얼려버리는 아이스볼이 된다고함,

마이너스 정전기를 하늘에 발사해 비구름을 만들거나 태풍을 제거하고,

눈구름을 만들거나 하늘을 슈퍼맨처럼 날수 있게 한다거나,,


그가 어느정도까지 발명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테슬라의 초인발명을 토대로 해

무협지의 초절정고수의 무공의 정체는 마이너스 정전기를 이용한것이라는것,

판타지소설의 마법의 정체는 마이너스 정전기를 이용한것이라는것,

그리고 그것을 응용하는 방법등을 알아 내었다,


1891~1900년 사이

초고전압을 이용한 뉴트리노 통신을 발명,

간단히 말해서 초고전압을 이용해 라디오파를 송신하면

광속이상의 속도로 전파를 송신할수 있다고함,


다수의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로봇,

다수의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비행기,

다수의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잠수함,

다수의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미사일,

다수의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

등의 무기들을 한개의 콘트롤 타워를 이용해 제어 및 적을 공격케하는 방법 발명,


1891~1900년 사이

반도체,다이오드,집적회로,컴퓨터등을 세계최초로 발명,

이러한 컴퓨터를 두뇌로하는 로봇도 발명했다고 전해짐,

원시적인 형태의 Led스크린 발명


1891~1900년사이

테라헤르쯔투시기 발명,

간단히 말해서 초고전압의 테슬라코일에서 발생되는 전자기파는

테라헤르쯔 영역의 전자파라고함,

모든 물체를 투과해서 그 에너지중 일부를 반사해서

사람이나 측정장치등이 볼수 있게 한다고함,


1891~1900년사이

*이온크래프트 엔진:

원판형 마이너스극,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초고전압의 전기로 작동,

원판형 마이너스 극에서 분출되는 초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는 플러스극에 의해 가속됨,

그런데 마이너스 극과 초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는 서로를 밀어내는 반발력이 있다,

이로인해 강력한 추진력을 낼수 있다고함,


이것이 후일 1938년 나치독일에 특허난

광속의 수백배~무한배로 추진하는 초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 제2호버젼에 적용됨,


1891~1900년사이

*탄소제거기(=파이프형태의 초고전압전기집진기) 발명,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의 중앙에 굵은 실모양의 마이너스극이 존재하는 형태,

코로나 방전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상태에서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코로나방전에 의해 탄소가 제거된 깨끗한 산소가 발생된다고함,

(그러나 테슬라이전 과거 정전기실험을 하던 유럽인들중 누군가가

탄소제거기(=초고전압전기집진기)를 발명,

그이후 누군가가 발명,

그이후 니콜라 테슬라발명,

그이후 비펠드 브라운 효과의 타운젠트 브라운이 발명,

그이후 선진국들의 모든 전기추진비행접시,우주전함,핵잠수함등에는

탄소제거기를 기본적으로 사용중이라고함,).


1891~1900년사이,

날개없는 터빈 발명,

짧고 굵은 못형태의 마이너스극,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에 초고전압을 가하면.

마이너스극에서 방출되는 초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는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에 의해 가속되어 분출되는데,,,

이때 날개없는 형태의 원기둥형 금속물체에

초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가 부딪혀 회전하게 만든다고함,

이것이 바로 날개없는 터빈의 정체임,


마이너스 정전기를 뿜어내어서 풍차형태의 모형을 회전시키거나

정전기의 분출방향을 제어하다가 이것을 이용해 화면을 구현할수 있다는것도 발견,

이러한 발견이, 텔레비전,공간입체영상,레이더등의 발명으로 이어짐,


1891~1900년 사이

자석을 이용한 열발전기 발명,

자석에 열을 가하면 자기장이 소멸됨,

그러나 다시 식혀지면 자기장을 회복

이러한 원리를 이용한 열발전기를 발명,

(정식명칭은 열발전기가 아님,).


1891~1900년 사이

태양광발전기 발명,

실린더형태의 반투명 거울을 사용,

안에 미리 물을 가득 채운 상태여야함,

외부의 태양광을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 광공진을 일으켜 물을 수증기로 만들어

발전기를 돌리는 방식임,


태양광레이저 무기 발명,

태양광 발전기를 무기로서 사용할경우 태양광레이저 무기가 됨,

나치독일은 테슬라의 발명을 무기로서 사용함,


1891~1900년 사이,

테슬라는 화성과 금성으로부터 라디오 신호를 수신했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실제로 머나먼 별들로부터 신호를 받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우주에 대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 대신에 언론계는 그의 엉뚱한 주장들이라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화성과 금성을 비롯한 달과 지구와 모든 전 우주의 모든 행성과
태양같은 항성들은 모두 전기신호를 발생한다,


모든 행성과 태양같은 항성들의 둘레를 전리층이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전리층들은 항상 규칙적으로 진동한다,
이로인해 생겨나는 전기신호가 전 우주로 퍼져 나가는것이다,
테슬라는 자연적으로 발생되는 전파를 외계의것으로 오해했다,

이러한 오해로인해 니콜라 테슬라는
다른 세계의 생명체와 만나 서로 대화를 나눠보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한다,
그것이 그를 진보된 형태의 초광속 전기추진비행접시를 만들게된 동기이다,


1900년, 시대를 앞서가는 이 학자는
석탄이나 석유같은 화석연료의 연소에 대한 자신의 가장 중요한 논문중 하나를 썼다,
그에 따르면 지구를 대재앙으로 이끄는것을 막기 위해서 인류는 이제
재생되는 에너지원에 대한 연구에 투자를  해야했다,

1898년 테슬라는 라디오파에 대한 실험을 하기 위해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향했다,

(레이다가 40년은 먼저 발명되었을 상황아닌가~!)
은행가 J.Pierpont Morgan이 후원자로서 동참했으나
구글리엘모 마르코니가 모르스신호를

대서양을 건너 송신했다는 뉴스를 듣고 후원약속을 취소했다,


*자유에너지 수신기: 방사에너지 응용장치,1901년 특허,

" 태양, 다른 방사성에너지원과 마찬가지로, 우주방사선과 같다."
밤에도 작동이 가능한 것은 우주방사선이 밤에도 이용가능하기 때문이다.
테슬라는 또한 "지구는 음전기를 담는 거대한 그릇이다." 라고 설명했다


테슬라의 "solar panel"은
금속판의 표면에 투명한 플라스틱 스프레이를 코팅한 형태,
이 안테나의 한쪽은 공중에 설치하고, 높을수록 좋다,
커패시터의 한쪽에 연결한다.
다른 한 쪽은 그라운드 시킨다.
이제 태양으로부터의 에너지는 커패시터를 충전시킨다.
커패시터에 어떤 종류의 변환기를 장착하면
이것은 리드미칼한 방전을 하고, 전기를 출력한다.

절연판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태양빛이 없는 야간에도 전기를 생산.


1901년 특허, 극저온 액체와 전기를 사용한 실험들은 초전도체에 대한 기초를 제공.

*삐퍼와 시커 로켓
니콜라 테슬라의 많은 혁신적 발명품 중 하나인 삐퍼 로켓은
작은 AP로켓으로 발신기가 달려있다.
목표 기체에 발사되었을 때, 삐퍼는 그저 표면적인 손상만 입힌다.
대신에 목표물에 자신을 붙이고 수분간 유도용 신호를 송출한다.
한편, 시커 로켓은 삐퍼 로켓의 유도 신호를 쫓아
삐퍼 로켓과의 거리가 가까와 지면 폭발한다.
시커 로켓은 본질적으로 소형의 무선 조종되며,
로켓추진되는 항공기로 아주 복잡한 장치이다.
시커 로켓이 삐퍼를 쫓아 움직일 정도로 "똑똑하긴" 하지만,
다른 장애물과의 충돌을 회피할 정도로 정교하진 않다.
(따라서, 파일럿들은 삐퍼로 꼬리표를 붙인 목표물에 시커를 발사하는 경우
목표와 장애물이 없는 시야를 확보하여야 한다.
이 무기들은 사용하기 어렵지만,
적절히 사용할 경우 매우 위력적이다.
높은 G가 걸리는 기동으로 시커 로켓을 따돌릴 수는 있지만,
그런 적극적인 회피 기동 또한 기체에 손상을 준다.
개들이 삐퍼 로켓에 의해 송출되는 고주파를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파일롯들은 애완견을
-이 독특한 무기에 대한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써- 비행기 화물칸에 싣고 다닌다.


테슬라는 공사 좌절 이후 특히 1905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1907년과 1908년에는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술회했다.


*전류방패막이론:1901~1908년사이,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폭발사고:1908,7,30, 오전7:17,발생,

텅거스카지방의 사람이 살지않던 숲속에,
세계최초의 250만와트(=2500Kwh)의 전력으로  전류방패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구조:

테슬라 코일을 세운 상태로 작동시키면

막대한 전력으로인해 테슬라 코일의 주변을 감싸는 공모양의 전류방패막이 만들어진다,

지구 둘레를 감싸고 있는 전리층과 흡사한 형태라고한다,


그가 실험을 하고있던 전류방패란,
당시 테슬라박사가 250만와트의 전력을 형성,
포탄을 막아내는 실험을 하던 전력장치로,
그 실험장치는 포탄을 막아내는 실험중에
그때 일어난 폭발로 인해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고한다,
1908년후 테슬라박사는 전류방패를 만드는 일을 일시적으로 포기,


시베리아 퉁구스카 사건

사건당시 그지역에는 니콜라 테슬라의 전류방패막 연구소가 있었다,

250만와트=2500Kwh의 전력으로 작동되는 전류방패막에

포탄을 발사해서 방어하는 실험이 있었다고한다,

그때 하늘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한 불덩어리를 많은 이들이 목격했다고한다,

포탄은 전류방패막과 충돌해서 그때 생겨나는 반발력으로 튕겨져 하늘로 날아간것이다,

포탄과 전류방패막의 충돌시 전류방패막은 급격한 진동을 일으켰다,

이러한 진동은 즉 제동복사효과를 일으켜

막대한 양의 가시광선,자외선,적외선,전자기충격파,공기의 충격파를 발생했다,

그때 발생된 파괴력은 15메가톤의 핵무기와 맞먹는다,

(제주도면적에 파괴를 입히는 위력)


1908년 6월 30일 오전 7시 17분

바이칼 호수 북쪽 시베리아 포드카메나야 퉁구스카 강 지역

상공 8킬로미터 지점에서 이상하고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퉁구스카 강 주변은 툰드라가 끝난 남쪽의 광대한 침엽수 원시림 지역이었다.

이 폭발로 바로 밑에 있던

2,150 평방킬로미터 면적에 초속 60킬로미터 강풍에 해당하는 공기파와

섭씨 1,660만도 정도의  열파가 덮쳤으며,

다음 약 8천 평방킬로미터 지역에 8천만 그루 이상 되는 나무들이 불에 탔다.  


폭발의 충격파는 런던 지진관측소에까지 감지되었는데,

그 위력은 진도 5의 지진 또는 TNT 10~15 메가톤에 해당하는 것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의 약 2천 배 규모였다.

이 지역은 광활한 무인지대로 알려져 있으나,

그 속에는 원주민들이 간헐적으로 작은 마을을 구성하고 살았으며,

많은 사슴떼도 살고 있었다.

즉, 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 것이다.  


1960년 우바로프(Valery Uvarov) 박사의 조사 때에도

인근에서 약 3천 명의 목격자들이 살아 있었다.

이들에 의하면 북북동쪽 하늘이 밤새 오렌지색을 띤 강력한 노란빛이었고

다음날 아침 동이 틀 때까지 훤했으며,

빛이 번쩍이거나 깜빡거리는 일도 없었고,

무지개나 오로라처럼 빛줄기가 나타나는 경향도 전혀 없었다고 한다.

(The Fire Came By,Spenser Russell.The Royal Meteorological Society Quaterly,1930.)

세계적인 과학자들로 구성된 조사단이 여러 차례 답사하여

땅을 40미터나 파보았는데도 운석이나 분화구의 흔적이 없었기 때문에

핵폭탄이나 유성이 떨어진 것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어떤 이들은 블랙홀이나 반물질(antimatter) 같은 설을 주장하지만,

모두 모순이 많아 여전히 과학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상태이다.  

한편 이 사고에 대해 테슬라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중 니켈슨(Oliver Nichelson)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는데,

테슬라가 무선으로 엄청난 양의 전기를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누누이 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


테슬라가 퉁그스카 폭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근거는 1900년부터 약 10년간이

테슬라가 가장 극심한 좌절감으로 고심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모건을 위시한 모든 재벌가들이 재정 지원을 거부했고,

과학계마저도 그의 논리에 동조하지 않았다.


그는 절박한 심정에서 무선송전이라는 그의 발명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보여주기 위해

인명 피해가 없는 지역을 선택하여 시범을 보였고,

그것이 1908년 퉁구스카 폭발이라는 것이다.  

평화주의와 인본주의 사상이 투철했던 그가

많은 짐승과 원주민들을 죽이는 일을 했을리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필경 테슬라 자신도 예기치 않았던 훨씬 큰 위력이 나타난 것일 수도 있고,

테슬라가 원했던 장소에서 빗나간 것일 수도 있다.


목표가 빗나갔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 피어리(Robert E. Peary)는

10여 년 동안 계속해서 북극 지역을 측량하고 탐험했는데,

(1902,1906,1909년 북극 정복)

그 탐험팀의 기지가 캐나다의 최북단 엘레스미어 섬의 앨러트였다.  

이 앨러트는 지구본에서 워든클리프 타워와 퉁구스카를

북극을 통해 직선으로 연결하면 바로 그 선상에 있었다.


그래서 혹시 테슬라의 원래 의도는

피어리 탐험팀이 가까이에 있는 북극 어느 곳을 목표로 해서

그로 하여금 폭발의 규모를 증언하도록 하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설도 있다.

 자신의 발명이 위대함을 증명해 보이고 자기주장의 중요성을 대대적으로 펼쳐

여론을 몰아 자본가나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러 보려 했으나,

뜻하지 않은 인명 피해와 자연파괴 때문에

오히려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입을 다물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하는 것이다.  


*고비사막사건

1910년 7월 8일 고비사막에

원폭에 가까운 위력의 폭음이 반경 600km에 퍼졌고,
수백 평방km에 달하는 수목이 까맣게 타버린 사건이 있었다,

1908년 6월30일 퉁구스카에서 니콜라 테슬라가 전류방패막실험을 하고난후

2년뒤인 1910년 7월 8일 고비사막에서 대폭발이 일어났었다,

고비사막의 폭발은 니콜라 테슬라의 죽음의 광선무기 실험으로 인해 생긴것이다,

고비사막의 진범은 니콜라 테슬라인것이다,


그 당시 테슬라의 실험으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 핵폭발과 유사한 폭발사고가 났었다고한다,

이러한 테슬라의 실험을

일부 역사학자들과 과학자들은

고대인들이 핵무기를 사용한것이라고 착각한것이다,


고비 사막에 청조 말기 핵실험(?) 흔적
스포츠조선 | 기사입력 2006-07-25 12:10    
 

1950년 중국의 공산 정권은 국가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핵개발에 열을 올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핵실험 장소 확보.
중국정부는 인적이 드문 고비 사막을 후보지로 설정하고 조사에 나섰다.
고비 사막은 핵 실험지로는 만점이었다.
그런데 주위를 살펴본 결과 이상한 것이 발견됐다.

초고온으로 용해된 모래와 급격히 차가워진 녹색, 흑색 유리 모양의 결정체.
이미 폭발 실험이 있었던 것이다.


인민 정부가 버티고 있는데 누가 이곳에서 감히 핵 실험을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조사결과 1910년 7월 8일 원폭에 가까운 위력의 폭음이 반경 600km에 퍼졌고,
수백 평방km에 달하는 수목이 까맣게 타버린 사건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기후조종  

1914년 테슬라는 대기 중에 있는 습기에 존재하는 전기를 조작하여
바다에서 무제한의 수분을 끌어오는 것이 가능하며,

전자기파 조작만으로도 산불도 끄고, 짐승이나 곤충, 미생물 등

생물의 멸종이나 파괴를 막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주장하기를 지구의 크기도 조정할 수 있으며,

우주의 행로를 바꾸어 계절을 조절할 수도 있고,

지구를 다른 행성과 충돌시킬 수도 있으며,

유사 태양을 만들어 빛과 열을 생성하여 공급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지 않고,

항상 천재에서 미치광이 사이를 오락가락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테슬라가 이런 원칙을 이용하여

기후를 조종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1915년 10월 <타임>에 실린 테슬라 특집의 내용이다.

“테슬라는 목소리를 5천마일 이상이나 떨어진 곳에 보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리를 아주 깨끗하게 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1899년 콜로라도에서 이미 보여주었다.
테슬라가 답답해하는 것은 15년이 지난 오늘(1915년)에도
사람들이 아직 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는 나중에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전화가입자들이 뉴욕시에 있는 전화교환소에 등록만 하면
세계 어디서든 같은 전화로 다른 가입자와 통화가 가능한데,
원리는 목소리를 담은 전류가 지각(地殼)을 통해
전화하는 지역에서 일단 무한의 속도로 시작하여
약 6천마일 지점에서 광속으로 늦추어졌다가
다시 빨라져 전화받는 지역으로 무한의 속도로 전달되는 것이다.

이 신기한 무선이란 것은 마치 폭풍이 불어오듯
인간생활에 찾아와 그 기능을 완전히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전 세계에 6개 정도의 무선전화 교환소만 있으면
목소리뿐만 아니라 영상까지 서로 교환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즉, 오늘날의 TV, 팩스 따위를 능가하는 것들을
1899년에 그는 이미 계획하고 있었던 것이다.


1915년 11월 6일자 뉴욕타임스는 에디슨과 테슬라가

노벨물리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기사를 내보냈지만

정작 수상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돌아갔다.

스웨덴 한림원이 막판에 수상자를 바꾼 이유는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또, 1926년 1월 30일에 그가 호텔 객실에서 자기 신세를 한탄하면서 적은 글이 있다.  

“모든 실체가 리듬을 가진 분자로서
전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두뇌처럼 작동하게 만드는
무선이 완전히 적용되는 날에는 인류는 거리 감각을 잊어버리고
즉각적으로 누구와도 교신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원거리 전화(tele-phone)와 원거리 영상(tele-vision)으로
마치 얼굴과 얼굴을 맞댄 것과 다름없이 교신할 것이며……
그때의 TV전화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전화보다도 훨씬 더 간단해져서
사람들은 윗옷 호주머니에 그 TV전화기를 넣고 다닐 것이다…….
필경 가장 가치있는 무선 에너지의 원리를 적응시켜 만들 수 있는 이기(利器)는
연료 없이 현재의 비행기나 비행선이 가지고 있는 여러 한계를 벗어나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비행기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또 각 가정에 배달되는 종이신문 대신에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에
무선으로 각 가정에 신문이 직접 배달되어 집에서 인쇄된 신문을 읽게 되는 일은
꿈이라기보다 현실에 훨씬 가까운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동차들의 주차문제와 겸하여 상용도로와 개인용무를 위한 도로를
별도로 사용하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벨트로 정치된 고층 주차장 빌딩을 세우고 도로는 필요한 대로 겹으로 증폭시키면 된다.
그러나 자동차와 바퀴를 날개로 대치하는 문명이 도래하면
그런 도로마저 결국 사라질 것이다.”


*에테르 연료 자동차

교류모터를 사용,
차 뒤에는 180센티미터 정독 길이의 안테나를 장착했다.
1931년 피어스-애로사와의 계약하에 진행된 테슬라의 실험중
자동차를 시험운전한 사람은 유고슬라비아 태생의 오스트리아 공군 조종사 출신이었으며,
테슬라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피타 사보(Petar Savo)라는 32세의 청년이었다.


1960년대에 와서 사보가 증언한 바에 따르면,

그들은 버팔로의 어느 작은 차고에 들어가서
자동차 본네트를 열고 가져온 진공관 12개를 장치에 꽂고
무언가를 조금 조종하고 시동을 걸었다.


전기를 일으키는 장치는 길이 60센티미터에 폭 30센티미터,
높이 15센티미터의 상자처럼 생겼으며,
사용한 진공관은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후에 3개는 70L7-GT 진공관으로 밝혀졌다.

사보가 운전대에 앉고 테슬라는 보조석에 앉아
지시하는 대로 시동스위치를 켰는데 아무 소음이 없었고,
전진기어를 넣고 가속페달을 밟으니 앞으로 굴러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버팔로 시내를 거쳐 시외에까지 다니면서 시험운전을 했다.
속도계는 120마일(시속 192km)까지 있었으나 90마일(시속 145km)까지 밟았고
그런 고속에서도 자동차는 아주 조용했다.


시험운전을 마친 테슬라는 확신을 얻고 자동차에 대해 설명했다.
자동차는 연료가 전혀 필요 없으며,
여기에 사용된 원리는 자동차를 움직일 뿐 아니라
가정에 전기도 공급하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기차, 선박, 비행기에도 사용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모터의 원리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나
그의 장치는 단순히 에테르에 있는 신비스런 방사선을 받는 장치일 뿐이며,
그 방사선은 공중에 무궁무진하게 존재하므로
인간은 대기에 그런 에너지가 한없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보는 그 후 8일 동안 계속 그 차로 시내와 시외를 운전하고 다녔으나 피어스-애로사의
휘발유 차종 8기통 125마력(bhp), 366in³ (6천cc)짜리 차의 성능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마지막 시험운전을 끝낸 그들은
자동차를 다시 버팔로에서 20마일 떨어진 교외의 어느 비밀장소에 가져다 놓고,
시동키와 전기장치를 떼어내 집으로 가져갔다.

그런데 테슬라의 비서가 허락도 없이 차에 대한 소문을 퍼트린 덕분에
테슬라는 어떻게 배터리 없는 전기자동차를 만들 수 있으며
전원은 어디에서 얻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되었다.


이에 대해 테슬라는 주변에 널려 있는 에테르에서 얻는다고 마지못해 대답을 했다.
피어스-애로사와 협상이 잘 되지 않았거나 다른 사정 때문인지

이 전기자동차는 결국 빛을 보지 못했고
이로 인해 테슬라는 다시 뉴욕시로 돌아가면서 그 장치를 분해해서 없애 버렸다.

참고로 에테르에 대해 설명 하겠다.
원래 에테르는 하나의 가설로, 19세기에 빛, 열, 전자파 같은 것을 전달하는 매체이자
우주공간을 채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로 이해되고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켈슨-몰리(Michelson-Morley)나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같은
과학자 덕분에 불필요한 가설이 되었고,

지금은 마치 전기가 양극에서 음극으로 흐른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가정에 불과하다.


테슬라가 사회의 통념을 따라 ‘에테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 그가 말한 것은 ‘슈만공명’을 의미했다.

그는 지구 표면에서 전리층(고도 약 80킬로미터) 사이를 슈만층(Schumann cavity)이라 하고,
슈만층에는 7.83헤르츠의 전자기파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슈만공명 또는 ‘지구 자장의 맥박’이라고 했다.
이 파장은 지구 표면의 슈만층 어느 곳에나 전혀 약화됨이 없이 돌고 있다는 것이다.
테슬라가 자동차에 사용한 무료전기는

바로 이 슈만공명을 잡아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킨다는 의미였고,
누구나 간단한 변환기만 있으면

지구 어느 곳에서나 쉽게 전기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그가 이미 그 기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 cosmic-ray motor:1932년 특허,
테슬라는 방사에너지와 그것의 자유로운 이용가능성에 매료되었다.
그는 크룩의 radiometer(진공유리관 내의 바람개비가 태양빛을 받으면 돌아가는 장치)를
"아름다운 발명품" 이라고 불렀다.
그는 자연으로부터 직접 에너지를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의 76세 생일을 맞은 회견에서,
테슬라는 "cosmic-ray motor"를 발표.
그것이 크룩의 radio meter보다 더 강력히 돌아가는가하는 질문에
그는 "몇 천배가 더 강력하다"고 대답했다.


위쪽의 극판 (+) 과 접지된 판 (-) 사이의 전위차로부터,
커패시터에 에너지가 축적되며, "적정한 시간이 경과" 후,
축적된 에너지는 "스스로 강력한 방전"을 하여 일을하게 된다.
커패시터는, 테슬라가 말하길, 충분히 정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용량"을 가져야 하며,
그것의 유전체로는 "최고품질의 마이카(운모)"가 사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전위차를 견딜 수 있고 깨어지지 않아야 한다.
테슬라는 여러 가지 형태의 변환장치를 소개했다.
한 가지는 테슬라회로 조절기를 닮은 회전형 스위치이다.
다른 하나는 진공중에 장착된 매우 가볍고 얇은 박막의 도체로 이루어진 정전장치이다.
이것은 커패시터 내의 에너지 축적을 감지하여,
하나의 양극으로, 다른 하나는 음극으로 되어,
어느 일정 충전레벨에서 서로 잡아당겨 접촉됨으로서 커패시터를 방전시킨다.
테슬라는 또 다른 변환장치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그것은 아주 작은 간극 또는 약한 유전체필름을 사용하여
일정 전위에 도달했을 때 방전되는 형태이다.


테슬라는 공사 좌절 이후 특히 1905년 이후에는 이렇다 할 일을 해내지 못했다.
세상 사람들이 그의 천재적인 능력은 인정하면서도 아무도 그에게 투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에 그는 1907년과 1908년에는 심리적으로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고 술회했다.


이때 러시아로간 테슬라는 소련의 도움을 받아

전류방패막연구소를 시베리아의 퉁구스카지역에 설치한다,

1908년 포탄을 전류방패막으로 막아내는 실험중에 대폭발이 발생,

2000제곱킬로미터(=제주도면적)가 소멸되었다,

(15메가톤급 핵폭발과 같은 위력)


1938년 나치독일로 간 니콜라 테슬라,

광속의 수백배~무한배로 추진하는

초광속 전기추진 비행접시 제2호버젼을 1938년 나치독일에 특허를 냄,


그동안 자신이 발명했던 레이저레이더,전자기모터,컴퓨터,Led스크린등을

보다 발전시킨 형태의것을 설계도에 추가했었다고함,

단극유도발전기를 개조한 형태의 것을 발전기로서 사용했을것으로  추정됨,


원반형태, 연꽃문양, 중앙에는 구멍이 여러개가 난형태,

원반형 테슬라 코일을 장착 전도대방전을 이용해 겉을 감싸는 형태,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를 분사하는 이온크래프트 엔진을

비행접시의 위와 아래의 중앙에 설치된 형태,

예전에 발명했던 레이저 레이더를 극도로 발전시킨 형태의것을 추가적용됨,

전자기모터를 극도로 발전시킨 형태의것을 추가적용됨,

과거에 발명했던 컴퓨터를 보다 발전시킨 형태의것을 추가적용됨,

테슬라가 발명한 Led 스크린 기술이 적용됨,

탄소제거기(=파이프형태의 초고전압전기집진기)가 장착되어 있었다고함,


*탄소제거기(=파이프형태의 초고전압전기집진기):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의 중앙에 굵은 실모양의 마이너스극이 존재하는 형태,

코로나 방전을 지속적으로 일으키는 상태에서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코로나방전에 의해 탄소가 제거된 깨끗한 산소가 발생된다고함,


*이온크래프트 엔진:

원판형 마이너스극, 파이프형태의 플러스극,

테슬라 코일을 이용해 초고전압의 전기로 작동,

원판형 마이너스 극에서 분출되는 초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는 플러스극에 의해 가속됨,

그런데 마이너스 극과 초고전압의 마이너스 정전기는 서로를 밀어내는 반발력이 있다,

이로인해 강력한 추진력을 낼수 있다고함,


전도대방전으로인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던 초고전압의 마이너스정전기는

원반형 자기장에 갖히게 되어

초광속전기추진 비행접시 제2호버젼의 둘레를 감싸는 전류방패막을 형성함,


이러한 전류방패막은 중력과 관성을 소멸시키고,

조종사의 몸에 g가 안쌓이게 만든다고함,

게다가 자체적으로 인공중력을 발생시킨다고함,

초고온의 플라즈마, 엑스선,감마선,중성자,방사능등을 막아내는 효과가 있다고함,

전류방패막은 강력한 고열과 눈을 멀게할정도의 강한 발광을 낸다고함,


히틀러는 테슬라의 특허를 재빨리 받아들여

나치의 과학자들을 동원해 만들게 했다고함,


히틀러의 밀어붙이기식 과학정책 + 나치독일의 과학자들 + 테슬라의 발명품들
이것들이 합쳐져 나치독일을 선진국수준의 과학기술력을 가지게 만들었다,

이때 이러한 테슬라의 발명품을 공모양으로 만든 푸파이터들이 만들어졌고,

몸에 장착할수 있게 개조되어져서 나치독일의 비행병들의 몸에 장착됨,

작동시킬경우 나치독일의 비행병의 온몸에서는 푸르스름한 발광현상이 발생함,

비행병들은 하늘을 마하1의 속도로 날아서

연합군의 전투기,폭격기등에 달라붙어 기계를 망가뜨렸다고함,

그것을 본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녹색괴물로 여겨 그렘린이라고 이름을 붙임,


테슬라의 발명품을 시가형태,거대한 모선형태,

소년유격병이 탈수 있을정도로 작은 반지름45~50Cm이하의 푸파이터,

무선송전으로 작동되는 초미니 푸파이터,거대한 비행접시형태,

작은 비행접시형태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었다고함,


그뿐만 아니라 비펠드 브라운효과를 응용한 다양한 형태의 비행접시도 제작되었다고함,

빅터샤우버거의 공기를 압축해 추진하는 비행접시도 그때 만들어졌다고함,

이 모든것을 위장하기 위해 제트엔진으로 하늘을 날으는 비행접시도 만들어졌다고함,


나치독일은 일본에 많은 기술을 전수해줬다고함,

그때 일본은 나치독일의 전기추진비행접시와 푸파이터등을 보고서

나름대로 우주선을 만들었는데,

잠수함의 원리로 하늘을 날으는 진공우주선을 발명,

정식명칭은 알려지지 않았슴,


1938~1945년사이 나치독일은 남극과 달,태양에 기지를 건설,

태양둘레에 직류플라즈마 레일건 위성을 다수설치,

수소가스를 전리화시켜 태양둘레를 핵융합로화함,

이로인해 태양둘레에 수백만도의 코로나장벽이 생겨나게되었슴,

흑점폭발의 이유:

도넛형태의 인공블랙홀 발생장치가 공간이동의 문을 열때 발생,

플라즈마레일건위성이 초고전압으로 전리된 수소가스로 태양둘레를 핵융합로화할때

소모되는 수소의 양이 천문학적이라고함,

그때문에 수소가스를 보급하기위한

전기추진 보급선을 코로나장벽안으로 출입시켜야하는데,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통과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함,

그때문에 공간이동의 문을 인공적으로 만들기위해

나치독일은 도넛형태의 인공블랙홀발생장치를 코로나 장벽 근처에 배치함,

전기추진비행접시를 응용한 형태라고만 알려져 있을뿐 자세한것은 정보부족으로 알수없슴,


일본은 한국에서 발생된 6.25로인해 막대한 돈을 벌게됨,

이러한 돈이 일본의 우주진출에 크나큰 공헌을 하게되었다고함,

일본은 패전후 백인들에 대해 자존심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음,

그때 역도산이 프로레슬링을 하여 동양인이 백인을 가볍게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

(짜고치는 것이었지만,).

이때문에 많은 일본인들이 프로레슬링을 보려고 몰려들었고,

일본정부는 이것을 일본국민의 자존심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텔레비전을 대량양산하게 지시,

그때문에 일본의 전자공학이 극도로 발전하게되는 계기가 되었슴,


그후 베트남전당시 한국과 일본은 많은 돈을 벌수 있게 되었슴,

베트남전은 한국과 일본의 과학발달에 많은 도움을 줬슴,


일본의 우주진출역사는 대략 6.25와 베트남전 사이임,

선진국들중에 식민지행성의 숫자가 가장적은 나라가 일본임,

현재 일본은 금성을 독점,그외의 식민지행성 다수보유

미국은 화성을 독점, 그외의 수백개?이상의 식민지행성 다수보유,

영국은? 알려지지 않았슴,

소련은 목성을 독점,그외의 식민지행성 다수보유,

소련과 나치독일,그리고 일본은 서로 손잡고 있는 상황이라고함,

목성을 제2의 태양화하려던 소련의 계획은 소행성의 목성충돌로 인해 망하게됨,

어느 선진국의 소행이라고하는데 미국정부가 관련된것으로 추정됨,



1978?년쯤이 되어 독일에서 누군가가 그 설계도를 공개,
그때 전 세계에 퍼져나가서 후진국인 한국에까지 전해졌다고한다,



*필라델피아 프로젝트:1943년 7월 20일

니콜라 테슬라의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 기술을 엘드릿지호에 적용 설계,


2차 세계대전 때 미 해군은

독일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기 위한 피닉스 작전의 일환으로,

테슬라를 위시해서 폰노이만(John Von Neumann), 허친슨(John Hutchinson),

커텐아워(Emil Kurtenhour),

아인슈타인 같은 당시의 석학들을 소집하여 무지개 작전이라는 실험을 했다.


이 작전은 필라델피아 해군 항만에서 이루어 졌는데

보통 ‘필라델피아 실험’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테슬라가 책임자로 있어 다른 과학자들은 그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과학자들이 고집을 피워 테슬라를 따르지 않게 되자

테슬라는 사임하고, 그의 뒤를 이어 폰노이만이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폰노이만은 헝가리에서 태어난 수학 신동으로,

6살 때 암산으로 8자리 나눗셈을 할 정도였으며,

당대 가장 뛰어난 수학자 중 하나였다.

그는 독일과 스위스에서 연구하다가

1930년에 미국으로 건너와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그는 폰노이만 기계라는 최초의 컴퓨터를 만든 사람으로

 ‘폰노이만 대수’, ‘오퍼레이터 이론’, 게임이론 등을 개발했고,

독일 물리학자 하이젠버그(Werner Heisenberg)의 ‘불확실성 원리’를

‘양자물리학의 수학적 기본’이라는 이론으로 증명하기도 했으며,

시간은 과거-현재-미래로 흐르는 선상(線上)의 움직임이 아니라고 증명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그가 남긴 업적은 수없이 많다.  


1903년대에 들어서면서 니콜라 테슬라는 이미 수명의 다른 과학자들과

 ‘시공간 연속체’라는 다른 차원으로 옮겨 다니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전기를 이용하여 물체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은

시카고 대학에서도 이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한편 이보다 먼저 아인슈타인도 ‘중력과 전기의 통일장 이론’을 발표하고,

이 원리를 이용하여 바다에서 전자기파로 배를 위장하는 방법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아인슈타인은 1925년~1927년 사이에 독일어로 이 논문을

프러시아 과학저널에 발표했으나 후에 완전하지 못하다고 철회했다.)  

폰노이만이 있었던 프린스턴 대학의 진보학문연구소(Institute of Advanced Studies)는

1939년 작은 물체를 보이지 않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소는 이를 미 정부에 알렸으며,

군에서는 당시 전쟁에 돌입한 상황을 고려하여 이를 실전에 이용하려고 계획했다.


이것이 ‘무지개 작전’으로 구체화되었고,
결론은 테슬라 코일 4개를 작동시켜 자장을 만들고

그 자장으로 소위 ‘과도공간기포’(Hyper Space Bubble)를

물체 주변에 조성해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함선 주변에 아주 강력한 자장을 만들어 감싸면

태양빛 같은 광선이나 레이더 등에 사용하는 전파는

마치 아지랑이처럼 굴절하게 되어 보이지 않게 되며,

혹시라도 적이 어뢰를 발사하면 그 진로가 굴절되어 옆으로 빗나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 실험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옷을 몸에 입히는 것처럼

배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그때 아인슈타인과 테슬라는

만약 이런 기술이 개발된다면 인류를 위해 사용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경고를 했다. 

 드디어 1943년 여름, 뉴욕 해군 항만기지 소속

엘드리지(USS Eldridge DE 173) 경구축함에

75Kwh(1500억V로 승압)발전기 두 대,

자장을 만드는 테슬라 코일 4개를 위시한 여러 전기기구를 가득 싣고

필라델피아 해군 항 앞바다에서 실험이 시작됐다.

1943년 7월 22일 오전 9시에 함상의 발전기를 발동시켰고,


곧 선박 주변이 초록색 안개로 가려지면서 선박은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얼마 후 안개 자체가 걷히면서 선박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이를 주시하던 해군 고위 장교들이나 과학자들은

선박이 레이더망만 잡히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도 볼 수 없다는 것에 대단히 만족해했다.


얼마 후 발전기를 끄도록 명령하자

다시 초록색 안개가 서서히 나타났다가 그 안개가 가라앉으면서

엘드리지 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육지에 있던 관련자들이 승선해 보니 무언가 매우 잘못되어 있음을 알았다.

갑판에 있던 선원들은 얼이 빠져 있었고,

매스꺼움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그래서 당국은 선원들을 모두 교체시키고,

앞으로는 레이더에만 감지되지 않게 만드는 방향으로 실험을 변경했다.  


10월 28일 오후 5시 15분, 다시 실험이 시작되었다.

발전기를 발동하고 테슬라 코일이 작동하여 전기자장이 일어나자

함선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해 뱃머리만 약간 보일 정도였다.

얼마 동안은 모든 것이 예상대로였지만

갑자기 선박에서 파란불이 번쩍 일면서 배 전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불과 수초 사이에 함선은

약 400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버지니아주 노포크함 앞바다에

수 분 동안 나타났다가 다시 필라델피아 해군기지 앞 바다에 돌아왔다.

이번에는 모두 181명이 승선했었는데 그중 120명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으며,

40명은 죽고 21명만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생존자 중 일부는 미쳐 버렸고

산 사람 모두는 신체적으로도 매우 심한 이상 증세를 보였다.

그리고 가장 이상한 일은 그중 다섯 명이

함선의 철판에 박혀 버려 철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애초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게 하려던 실험이

뜻하지 않은 선박과 선원 전체의 텔레포테이션을 맛보는 사고로 끝을 맺은 것이다.


이에 대해 해군 당국은 그런 실험을 한 일이 없으며,

 ‘엘드리지’라는 함선이 없어진 일도 없다고 주장하고,

그 함선의 일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실험으로 당국과 실험 당사자들은

많은 것을 배웠을 것이고 호기심 또한 커졌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우월한 무기를 가지려는 욕망이 이를 포기했을 리가 없다.

알려진 바로는 미 해군이 1950년대에

‘팀머맨(USS Timmerman)이란 함선으로 또다시 실험을 했으며,

이번에는 엘드리지호 때처럼

400헤르츠를 사용하지 않고 1천 헤르츠를 사용했다고 한다.

이 이론을 비행기에도 적용시키려는 노력도 있었다.  



필라델피아 해군기지에서 USS Eldridge호를

전자기장을 이용해 레이더망을 피하는 실험이 진행. 
전자기장을 이용해 군함 주변에 특수한 전자기망을 형성시킴으로써
레이더 신호를 혼란시킨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전자기장을 군함 주변에 형성시켰을 때 예기치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배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배는 수백km나 떨어진 버지니아주 근처 해안으로 이동했다.

그런데,전혀 예기치 않았던 무시무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갑판위에는 승무원들의 시체가 있었고

포탑주위에는 쇠의 일부가 되어 버린 채 죽어있는 승무원들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실험을 위해 1500억 볼트의 전기가 75Kwh발전기 두대를 통해 유입됐다고 하는데,
그 양이 상당해 실험후에도 위험 방사능 수치를 보여
갑판위에 올라간 해군 관계자들을 급히 대피시켰을 정도라고 한다.


실험당시 USS Eldridge호에는 176명의 선원과 민간과학자 5명을 포함해
총 181명이 탑승했는데 사라졌다 되돌아 왔을 때 생존자는 21명에 그쳤다.
40명은 방사능에 노출돼 죽거나 감전사로 타죽고 나머지 120명은 실종됐고,

생존자들도 대부분 정신이상자가 되어 강제제대를 했다.


전쟁의 와중에 개발을 서두르다가 안전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승무원들이 타고 있는 실제의 선박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게 되어 피해는 더욱 컸다.
물론 이 실험에 대해 선원들은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임했다고 한다.


정부는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프로젝트(일명 레인보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1948년 미국 정부는 전자기망에 대한 연구를 다시 추진했다.
노이만 박사는 다시 프로젝트의 책임을 맡았다.
프로젝트의 대부분은 군함이 이동한 원인을  밝히고
전자기장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물체가  전자기망 안에 갇히게 되면 
그 물체는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빠지게 되고,
결국  사람들은 정신적인 혼란을 겪게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연구의 핵심은 정신적인  혼란을 극복하고
두 차원 간의 연결을 원만하게 이루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것으로 옮겨졌다.
사람의 의식과 전자기장이 어떤 관계를 갖는가가 중요한 변수였다.


그러나 1969년 미국 의회는 이 연구가 더욱 진전돼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한다면 위험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연구를 중단시켰다.

의회의 결정에 낙담한 과학자들은  군대에 눈길을 돌렸다.
만일 이 기술을 군사적으로 이용하면 상상할 수 없이 막강한 무기를 개발할 수 있다.
이 계획에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폭격기인 스텔스기 기술과 함께

인간의 마음을 조종하는 기술까지 포함됐다.
특히 과학자들은 '인간 연구'를  위해

4백25-4백50 MHz 대역에서 작동되는거대한 송수신기를 필요로 했다.
이 주파수 대역이 인간의 의식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이 주파수를 내는 장비는 롱아일랜드의 몬톡에 있던 군부대에  있었다.
과학자들은 이곳에서 전자기망과 시간여행, 공간이동,

인간의 의식, 영혼간의 상호작용을 주로 연구했다.
==>이것이 인공영혼을 만드는 연구로 진행된것으로 추정됨,


일명 '몬톡 프로젝트'라고 불린 이 연구는 1983년 완전히 중단됐다.
그 사이에 어떤 연구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필라델피아 프로젝트로인해 자신이 1900년쯤에 발명했던
전기추진비행접시가 공간을 뛰어넘는다는것을 알게 깨달았다고한다,
공간을 뛰어넘을수 있다는 말은
즉,, 광속을 뛰어넘을수 있다는 말과 같다,
그로인해 자신이 발명한것이 광속의 수백배이상,광속의 무한배로 날아가는
초광속전기추진비행접시란것을 알게 된 그였다,
후에 우주전함을 발명했다고하는데,
자세한것은 알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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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이 정말로 진짜라면?
미국정부는 테슬라의 타임머신기술을 이용해 과거와 미래를 정복했을것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은 과거와 미래를 정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는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말은 테슬라의 타임머신발명은 실제로는 되지 않는다는것을 말한다,


타운젠트 브라운의 말인즉,

시간여행은 없었고 단순한 뇌의 기억이 지워져서 생겨난 환각효과라고 밝힘,


그가 과거와 미래를 보았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그의 두뇌가 일으킨 일종이 착각현상일것이다,
아니면 신의 계시이던가,,,


타임머신이 가능하려면?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시간대가 하나의 시간대로 겹쳐져서 존재해야한다,
그런데 지구는 항상 회전,자전을 한다,
과거로부터 현재,먼 미래까지의 시간은 엄청나게 많다,
그 많은 양의 데이터가 서로 겹쳐져 존재한다는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즉,시간여행은 단순한 착각이거나 망상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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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의 뛰어난 재능과 낭만적인 생애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지금 현재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그가 설계한 날개 없는 디스크 터빈엔진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재질들로 제작될 때
지금껏 설계되었던 가장 효율이 좋은 모터에 속한다고 증명되어지고 있다.

무선 에너지 전송 기술, 그리고 죽음의 광선
딱딱하고 고정된 필라멘트를 쓰지 않는 네온등은 길이와 모양에 관계없이 제작할 수 있다.
무한 동력 장치, 번개 충전용 코일, 무선 전기전송, 지진 발생기 등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연구를 하여 그의 이름이 붙은 여러 가지 장치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전자의 부분 전하를 갖는 입자를 제안하게 되었던 실험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1977년에야 비로소 과학자들이 발견하게된 것으로서 바로 쿼크(quarks)를 뜻한다.
테슬라 코일은 TV 세트, 사진기의 플래시, 자동차의 점화장치,
그리고 예술적 창작 등에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테슬라는 태양광선보다 50배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을 개발했다고 말한 적도 있다.
그는 또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도 영상을 포함한 모든 통신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에 의하면,

햇빛은 태양에서부터 9천 4백만 마일 되는 거리를 통과해

지구에 도달하는 진동에 의한 것으로서,

자기가 태양광선을 형성하는 진동과 흡사한 진동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태양광선과 비슷한 광선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더군다나 이 광선은 구름이나 다른 방해물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태양광선은 우주의 공간 ‘에테르(ether)에서 1초에 500조 번 진동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진동을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이미 자기의 기기로 어느 정도까지 진동을 만들었으니
조금 더 개량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바로 동적전자감응전구를 말한 것이다.


*죽음의 광선무기(death ray):

1891~1900년 사이 발명,

그이후 죽음의 광선무기를 보다 발전된 형태로 발명,


테슬라 코일을 실험하는 중에 죽음의 광선무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음,

다른 말로는 입자광선무기라고 함,

발전소 수십기의 수조와트(=수십억Kwh)의 전력을

머리카락보다 가늘게 실어서 발사하는 무기,


아원자 입자들이 에너지 장에 의해 자극되어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특정한 목표를 향해 가는 것입니다.

테슬라는 입자광선을 엄청난 양의 전자 광선이 번개와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입자광선은 강력한 전자기 펄스(EMP)도 발생하기 때문에

적의 인공위성이나 미사일의 중력장에 혼란을 일으켜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이중의 파괴력을 지닌다,


태양광선보다 50배나 빠른 속도를 가진 빛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


그이후,,,,

*원격제어 어뢰  
1907년 3월 20일 <뉴욕타임스>에 ‘테슬라의 무선어뢰’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그 내용은 테슬라가 멀리서 전파로 조종할 수 있는 어뢰를 만들어 실험도 끝냈지만,
무선으로 전파를 보내 직접 파괴하는 것이 훨씬 더 위력이 크다면서,

자기가 만든 기구로 전기에너지를 농축시켜
원하는 지점 어디에나 낙하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레나(Lena)라는 프랑스 선박이
이상하게 전기불꽃이 튀면서 폭발한 사고가 있었는데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를 때 <뉴욕타임스> 기자가 테슬라에게 질문을 했던 것이다.
테슬라는 이어서 어뢰를 원격조종하기도 하지만
같은 방법으로 어뢰를 공중의 비행체나 수중 잠수체로 변형시켜
이곳으로부터 강력한 전파를 발사하여 목표물을 폭발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1915년 테슬라는 5천만 볼트의 전기에너지를
무선으로 원거리에 보내 목적물을 파괴하는 것이 가능하며,
자신은 이미 그 무선송신기를 만들었음을 증명할 수 있고,
이 기구는 세계 아무 곳이나 원하는 목적물을 정확하게 겨냥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너무나도 황당하게 여겨져
그의 발표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표면적으로는 아무도 없었다.  


테슬라는 송전시스템을 무기로 사용하려면,

지구의 전기 상황을 조작, 변형시켜야 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지구에 대전된 전기의 진동을 송전기와 맞추면 나침반도 다르게 작용할 것이고,
대기 상층부는 마치 그의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전구 속에 들어 있는

가스와 같은 성질을 띠기 때문에
지구 전체를 하나의 전기 부속처럼 취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 그는 일반 전기송전과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송전의 차이는

다만 시간의 차이일 뿐이라고 했다.


워든클리프 타워로 전압 1억 볼트에 전류 1천 암페어까지 실험을 해본 그는,

만약 이런 전력을 아주 짧은 시간에 방출하게 되면

TNT 수백만 톤을 터트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며,
이런 전기 덩어리를 지구 어디든지 원하는 곳에 빛의 속도로 보낸다면
그 지역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The Tesla's High Frequency Oscillator",Winfield H. Secor,The Electrical Examiner, March, 1916. p. 615.)  


그리고 9년 후,,,,
1924년 갑자기 세계 여러 곳에서 살인광선을 발명했다는 과학자들의 발표가 잇따랐다.

1924년 5월 19일 영국의 과학자 그린델매튜스(Harry Grindell-Matthews)는
파리에서 원거리의 비행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가공의 전자방사선 기구를 발명했으며,
이 가공할 방사선(한국어로 광선 또는 방사선이라는 것은 영어로 ray,
또는 beam을 말한다. ray를 흔히 ‘광선’이라고 번역하지만
‘광선’이란 용어는 빛을 가진 선이란 선입관을 가지게 되는데
반드시 우리 눈에 보이는 빛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radiation, 즉 방사(放射)하는 파(波)를 말하기 때문에
위에서 death ray를 ‘살인광선’ 또는 ‘죽음의 방사선’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살인광선’은 빛이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선(beam)도 포함한다.)은
전 군대의 행동을 마비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그의 발표가 너무 과장됐으며,
4마일이나 7~8마일 정도의 거리라면 몰라도
그 이상의 거리는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에
전 군대의 움직임을 마비시킨다는 말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그린델매튜스는 이미 독일군은 이러한 장비를 가지고 있다고 재반박했다.


그리고 같은 달 24일에는 독일의 과학자 볼레(Herr Wolle)가
독일은 ‘죽음의 커튼’이라고 부르는 전자무기를 세 개나 만들었다고 발표했으며,
다음날인 25일 미국의 과학자 월(T. F. Wall)은 전기에너지를 사용하여
무선으로 비행기나 자동차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특허신청하면서
같은 원리를 외과수술이나 다른 과학 부문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5일 후인 5월 30일 그 전날 뉴욕에서의 발표를 인용한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신문에는 테슬라가 1900년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있을 때
이미 발명한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선에 접촉되면
운행중인 비행기가 그대로 추락하게 된다고 설명한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만 있었지 실제로 사용한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1928년에 이미 텔레비전 설계도를 잡지에 발표,


10년이 지난 1934년 테슬라의 78세 생일날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 ‘살인광선’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3백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비행기 1만대를 단번에 떨어뜨릴 수 있는 살인광선을
2백만 달러만 있으면 3개월만에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함,

그 죽음의 광선은 완전히 새로운 물리학의 원리를 이용한 것으로서,
1억만분의 1센티미터에 불과한 이 방사선으로
250마일 거리에 있는 비행기 1만 대를 단번에 떨어뜨릴 수 있으며,

이 장치를 만드는데 드는 비용은 200만 달러 정도이며
건설하는데 3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설명에 따르면,

미국 전역 12곳에 이런 기지를 설치하여 전자망을 치면
마치 중국에서 만리장성을 쌓아 국가를 보호하듯이
미국은 어떠한 외세의 침입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방사선은 가스, 디젤, 오일 등 어떠한 연료를 사용하든지 관계없이
모든 엔진을 녹여 버리므로 이 방사선에 대한 방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방사선을 농축하여 사용하면 지나간 자리에 있는 군인이나 장비는
모두 삽시간에 죽고 파괴된다고 한다.
망원경의 조망권 내에서 또는 지평선의 범위 내에서
정확하게 목표를 겨냥하고 파괴하며,
소리도 없고 흔적도 없는 효과적인 무기라고 한다.  


1935년 2월호 <리버티>지에 테슬라가 살인광선에 대해 간결하게 설명한 일이 있다.  

“나의 발명에는 큰 시설이 필요하다.
그러나 일단 그 시설이 완공되면
200마일 이내에 접근하는 적의를 가진 사람이나 기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파괴시킬 수 있다.
우리보다 강한 어떠한 적이 침략해 온다고 해도
이들을 막아낼 장막을 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는 계속해서 자기의 발명과 다른 사람들이 만든 살인광선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다른 사람들의 살인광선은 다량으로 만들 수도 없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약해지지만 자신의 것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에 의하면 당시 뉴욕에서 소비되는 총 전력량이 200만 마력(15억 와트)이었는데
이 전력을 모두 사용해도 20마일 밖의 사람은 죽일 수 없는 미약한 양이었다.


후에 다른 과학자들은 테슬라가 말한 다른 살인광선은
그린델매튜스의 것과 비슷한 종류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린델매튜스의 살인광선은
높은 전류로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해 자외선을 이용한 것이었고,
자외선 서치라이트의 성능 한계는 테슬라의 것에 비해 훨씬 약했던 것으로 여겨졌다.


문제는 벌써 20세기 초에 테슬라뿐만 아니라 많은 과학자들이 이런 발표를 여러 번 했는데,
지금은 그 아이디어가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어린이 공상과학만화에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당시 미국은 그가 완성했다는
'죽음의 광선' 관련 기술자료와 실험 데이터 등 모든 문서들을
페터슨 공군기지로 보내 거금을 투입해 '프로젝트 닉'을 추진하여
이 광선 무기의 실현 가능성을 연구함,
그 와중에 한때 테슬러의 광선 무기 문서들이 증발하는

기이한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해
그의 자료 카피가 국외로 유출된 것이 아닌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무기를 연구하던(현 워싱턴 DC에 소재한 국방분석 연구소 소속)
젊은 과학자 타운스(Charles Hard Townes)는
아주 짧은 초단파를 만들기 위해서 고심한 끝에 4년 만인 1950년에
메이저<MASER(Microwave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 광선을 만들었다. 이 원리를 이용하여 1958년 하워드휴즈 항공사에서는
레이저<LASER(Light Amplification by Stimulated Emission of Radiation)>

 광선을 만들었는데,


미국 역시 1958년 광선무기를 개발하는 '시소우' 급비 프로젝트에 착수함,
1960년 소련 수상 후루시초프는 '새롭고 환상적인 무기가 완성단계에 있다'며
가공할 광선 무기 개발을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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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레이건:

죽음의 광선무기를 휴대가능하게 작게 만든것을 말함,

전력공급방식:

무선송전방식,또는 지구에서 전기를 끌어내어 사용하는 무한동력발전방식,

휴대용발전기방식등이 있을것으로 추정됨,

휴대용발전기 방식:

테엽 또는 압축공기로 테슬라가 발명한 발전기를 돌리거나

또는 단극유도발전기를 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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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에 전자기파 등을 이용하여 지진을 일으키는 지진병기에 대한 연구에 몰두함,
인공위성 장착버젼과 지상에서 전파를 발사해

원격으로 인공지진을 일으키는 장치등을 발명,


남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기록하여
여러 개의 트렁크 속에 넣어 약 20여 군데에 분산 보관했다.
그가 살던 뉴욕 가버너 호텔에는 1만 달러를 들여 만든 금고까지 있었다.
그는 1943년 1월 7일 뉴욕의 한호텔에서 86세를 일기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외롭게 심장마비로 숨졌고, 시체는 호텔 청소부에게 발견되었다.
그가 미국에 온지 59년이 되는 해였다.


그가 죽자 FBI는 외국인 자산관리소를 시켜 그의 모든 소지품을 차압했다.
이에 대해 테슬라를 추모하는 단체들은

그가 남긴 모든 자료를 가져갈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이 길뿐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10년 후에야 유고슬라비아에 사는 그의 조카가
상속권을 인정받고 남은 물건들을 돌려받았다.
이 유물들은 지금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있는
‘테슬라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2천여 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참석하였다.
일생동안 800개 이상의 여러 특허권을 받음,
파산하지 않았다면 에디슨의 기록을 능가했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매우 적은 특허출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테슬라도 사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업적을 인정받게 되었으며
1943년 그가 죽은 후에 미국은 무선 전신에 대한 테슬라의 특허가
마르코니의 특허에 우선함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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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미시건 주 앤아버의 초등학교 교사인 와그너(John Wagner)는
3학년 학생들에게 테슬라에 대해 가르치고
그의 이름을 되살리기 위해 구리로 만든 그의 흉상을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해 줄 것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테슬라가 받은 특허번호와 모터가 에디슨관에서 에디슨의 흉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상은 박물관에 진열되지 못하고 예일대학에 진열되었다.
이들의 요청에 의해 레빈(Carl Levin)이란 상원의원이 압력을 넣어
겨우 남자화장실 옆 복도 어두컴컴한 구석에
테슬라의 유물이 담긴 작은 유리상자 하나가 진열되었을 뿐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서 발간한
<발명책(The Smithsonian Book of Invention)>에도
니콜라 테슬라라는 이름은 나와 있지 않다.

이 책에는 에디슨이나 경질고무 발명가인 굿이어(Charles Goodyear)를 위시해
전동칫솔이나 자동토스트기의 발명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요리법을 특허낸
샌더스(Sanders)대령 같은 사람까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테슬라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미국 고등법원에서 라디오 발명가는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가 아니고 테슬라임을
오래 전에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르코니가 라디오 발명가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이다.
일련의 사건들로 볼 때 이것은 고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출처

  http://wowe.co.kr/tt/maserkim/entry/%B4%CF%C4%DD%B6%F3-%C5%D7%BD%BD%B6%F3Nikola-Tesla185679194317


출처 : 황우석의 진실과 음모의 덫
글쓴이 : 이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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