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도 프리메이슨 -- 보천보 전투가 수상하다.
2011-02-17
보천보 전투란 일제 때인 1937년에 김일성 부대가 보천보라는 지역을 습격한 전투이고 이를 동아일보와 아사히 신문이 크게 보도함으로써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조선민중들에게 크게 알려졌다.
이 보천보 전투가 매우 수상하고 김일성 패당과 북한정권이 유대놈들의 똘마니이며 프리메이슨이라고 의심해야 할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보천보 전투 소식을 당시 조선일보인지 동아일보인지 국내신문이 대대적으로 보도해 줬다는 것. 일제탄압과 검열이 극심한 시기에 말이다.
2. 보천보 전투 소식을 당시 일본의 신문인 <아사히 신문>도 크게 보도했다는 점.
"나의 팔도구시절의 잊을수 없는 친구 김종항은 일본 도꾜에서 신문배달을 하며 고학을 할 때 《아사히신붕》지면을 통해 보천보전투 소식을 알게 되였다고 한다. 어느날 새벽 《아사히신붕》지국에 나간 그는 주인으로부터 오늘은 책임량외에 100부의 신문을 더 배달해야겠다는 지령을 받았다. 무엇때문에 지국이 그런 지령을 내리는지 알수 없어 신문을 펼쳐보니 거기에 김일성부대가 보천보를 쳤다는 놀라운 기사가 실려있었다." (개일성 왈왈)
상식적으로 당시 일제의 입장에서는 보천보 전투 소식이 크게 보도되지 못하도록 검열을 더 강화해야 했다는 것. 그런데 오히려 대대적으로 보도되도록 방치하거나 조장한 냄새가 풍긴다는 것. 왜 그랬을까? 그건 보천보 전투가 유대놈들의 지휘하에 김일성이와 일제가 짜고 친 고스톱이었기 때문이다. 유대놈들이 김일성이를 키우기 위한 수단 중의 하나가 바로 보천보 전투였다. 보천보 전투가 크게 보도됨으로 해서 <김일성>이라는 이름이 조선민중들 사이에 크게 알려졌으니 말이다. 첩자는 원래 그렇게 키우는 법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김일성부대가 보천보를 쳤다는 기사가 실린 날에 아사히신문 지국이 책임량외에 100부의 신문을 더 배달해야겠다는 지시를 내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왜 그랬겠는가? 바로 김일성이를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나그네
pansori2000@gmail.com
출처 :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글쓴이 : 라디오시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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