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인디언이 같은 종족인 것은, 언어,혈액형,치아 모양 등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이미 밝혀졌으며 미국의 고고학자들이나 인류학자들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또한 윷놀이, 실뜨기 같은, 인디언과 인디오의 풍습`유물 등이 한민족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2006년 2월에 시카고 인근의 미첼 인디언 박물관에서 발견한 블랙풋 인디언들의 윷과 윷말판은 한국윷과 같은 모양이고 그들은 상투까지 했다. 이것은 현재까지 확인된 한국윷과 가장 유사한 인디언 윷이다.
<인디언들의 상투(左)와 고구려 각저총 벽화의 상투(右)가 일치>
![](https://t1.daumcdn.net/blogfile/fs13/20_blog_2008_02_19_01_39_47b9b4b35eef2?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0dsc05000-2.jpg)
*한국 윷말판과 유사한 인디언들의 윷말판들
![](https://t1.daumcdn.net/blogfile/fs10/10_blog_2008_02_19_01_39_47b9b4d3218c6?x-content-disposition=inline&filename=0DSC05020-3.jpg)
[인디언]
15000~6000년전 구환 또는 구이족의 한 갈래가 얼어붙은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를 거쳐 남,북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했다고 재야 사학계에서 추정.
[서적]
영국 '대영백과사전'- 멕시코에 있는 마야 문명이 한민족과 같다고 기록 영문판 '의학대사전'- 아시아인들이 미주로 이주했다고 기록
[공통점]
<언어>
인디언어 : 주어 + 목적어 + 동사(만주어, 몽골어, 퉁구스어, 에스키모어, 터키어, 일본어등과 같이 한국어와 어순이 같다)
* 그네(한국) - 그네(인디언)
* 꽃신 - 코신 * 낫 - 낫 * 네 가람 - 나이아가라 &여자 - 가시나 또는 딸 * 저네들 - 데네 &신주 - 신즈 * 지붕 - 덮이 &허깐 - 허갠 * 도끼 - 토막 &나막신 - 막히신 * 여보시오 - 보시오 * 이쁘다 - 이쁘나
* 마을 - 리 * 아버지 - 아파치 &
* 나 - 나,노이,누이 * 네 개의 바다 - 네 바다
→언어는 대체적으로 같습니다.
<문화, 유물 등>
* 도자기, 꼬막단지, 맷돌, 팽이, 물레, 베틀, 물두레박을 사용할 뿐 아니라, 물을 이고 다님 * 나무를 묶는 것을 다바리(다발의 경상도 방언)라고 하는 것도 같음 * 같은 놀이 풍습인 자치기, 실뜨기, 윷놀이, 고누 등을 함 * 새를 쫓을 때 짚으로 꼬아 만든 새끼를 휘휘 돌려서 새를 쫓는 소리가 우리의 풍속과 같음 * 멕시코와 남미 안데스 산맥 원주민에게서 윷놀이가 발견(현재 아리조나 대학 박물관에 보관) * 북미에서 오래 전 오리건 주에서 짚신 75켤레가 발견됨(9000~10000년 전의 것으로 당시 베링 해협을 건너갈 때 가지고 갔던 우리 선조들의 유품이라 추정) →이러한 사례를 들어 미국의 맥킨토슈 교수는 '인디언들은 한국에서 건너왔다!'고 주장 * 잉카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 새긴 나무 인형이 남아있음 * 미국 아이오아 주에서 오리 모양의 목기 발견(한국의 오리 모양 토기와의 유사성) * 알래스카의 박물관에 향로, 곡옥, 촛대, 청자기 등 많은 유품들이 보관되어 있음. * 인디언 무당과 한국 무당이 굿 하는 모습이 너무 똑같음 * 막걸리를 빚어 마심 * 산끈을 잡고 서서 아이를 낳고 아이를 업어서 키운다. * 팔짱을 끼는 생활 습관 * 말을 타고 달리는 기상(말을 타면서 활을 쏜다)
<신체>
* 혈액소 공유(HB 카우스타) * 엉덩이의 푸른 반점 * 외모가 쉽게 구별할 수 없을만큼 같은 점
<사상>
*고산 숭배 사상, 검(?), 곰 숭배 사상 *산신이 점지해 준 아이, 즉 인걸이 지령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참고도서 한재규 교수님의 만화 한단고기에서 읽은 내용을 참조.
[출처 : 네이버 오픈사전]
위 내용은 한재규 교수님의 만화 한단고기中 제 1편인 환인천제편에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만화한단고기를 보면 몽골리안 루트를 아주 잘 파악할 수 있으며 우리역사의 시원 및 기원 그리고 메소포타미아, 유태인, 일본인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역사성을 가지고 정리를 해놓은 필생의 역작이라 할만합니다. 꼭 필독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한민족과 인디언의 공통분모
인디언들도 상투를 했다.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를 우리나라 문화와 유사한 수많은 것들 중에 인디언들도 상투를 튼다는 사실은 상당수 한국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세계에서 우리 민족만이 상투를 트는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상투문화에 대하여 신기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머리털을 길게 하는 민족은 아무래도 동양에서도 우리민족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의 청나라 때의 변발은 이른바 돼지꼬리(pig tail)만 남겨두고 머리를 밀었고, 일본인들은 사무라이들에게서 보듯이 이마로부터 머리의 중앙을 넘어 면도를 해버려 머리털을 없애는 중국과 궤를 같이 했다.
그러나 청나라 이전의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장발이었며 추마계(말에서 떨어진 듯한 모양), 고계(높이 틀어올린 모양), 쌍환(양쪽에 둥글게 모은 머리, 어린이 머리모양) 등의 머리 스타일을 했다가 청나라 시기에 남자들은 변발을 하게 된 것이다.
중동인들은 전통적으로 머리에 모래먼지를 막기 위하여 터번을 썼지만 이집트에서는 신분이 높으면 머리를 다 밀어버리고 가발을 여러개 번갈아 쓰기도 했다. 영화 <십계>에 나오는 파라오의 머리털은 마치 청나라의 변발처럼 보이기도 한다. 서양에서는 중세이래 남자의 머리는 짧고 여자의 머리는 길게 규정했다는 면에서 중국과 일본에 연결되지만 면도를 한 것은 아니었다. 서양인들은 20세기 들어와서 여자들도 단발을 하게 되었다.
1994년이래 태국의 북부 ‘치앙마이’ 지방에 고구려 후손이 산다는 소개가 된 후 치앙마이 사람들은 절구나 디딜방아는 물론 상투를 하고 있기도 하여 대단히 놀라운 관심을 끌기도 했다. 같은 아시아권에서만이 아니라 한민족의 상투문화는 동아시아에서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데서 흥미로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멕시코 시티의 챠풀테팩 인류학 박물관(Museo Nacional de Antropologia)에 가면 인디언들이 상투를 한 내용들을 전시하고 있다. 멕시코 시티의 조칼로 광장 옆의 마요르 신전 박물관에도 인디언 상투의 모습을 전시해두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잉카문명에도 상투문화는 전달되어졌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 있는 황금 박물관(Museo de Oro del Peru)에도 상투튼 남자상이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우리 민족과 DNA가 같은 선상에 놓인다는 것 말고도 문화적으로 상투문화가 같이 존재한다는 면은 여러모로 새롭게 조명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상투문화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구려고분의 무용총의 태권을 하는 역사, 삼실총 제3실 동벽벽화의 장사, 각저총의 씨름하는 장사, 통구 제 17호분 고분 연도동벽의 수문신장 등에서 상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한민족의 상투문화는 크게 만연해 있었기 때문에 아메리카로 건너간 인디언들에게 상투가 발견된다는 것은 한민족 문화 - 아메리카 인디언 문화의 그 어떤 연결고리가 더욱 다양하게 이어져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사진은 필자가 소장하고 있는 책 [Indian by William Brandon, Houghton Mifflin Co. Boston, New York, 1961, P. 320에 나오는 사진이다.
![](http://www.omaha.lib.ne.us/transmiss/clean/tmi00455c.jpg)
인디언들의 상투 모양이 너무 투박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대 상투는 이와 비슷했다는 것을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youni.biz/beutyfull/goguryo/200401190017_06.jpg)
고구려 각저총 벽화에서 씨름하는 장면은 Blackfoot 인디언 상투와 유사하게 투박하다.
![](http://youni.biz/beutyfull/goguryo/200401190024_03.jpg)
안악 3호분 전실 동쪽 벽면에 있는 수박놀이하는 역사(力士) 벽화.
상투를 머리 뒤로 묶고 아랫도리 일부만을 가리고 있다.
고구려 뿐만이 아니라 신라에서도 경주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에 상투가 나타나 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나이가 어려도 결혼을 하면 상투를 틀었다. 나이가 들어 결혼하지 않은 채 트는 상투는 ‘건상투’라 하였다. 삼국시대 상투는 머리 건사 방법으로 다양한 기원이 있겠으나 불교적인 영향도 있을 수 있다. 서역 지방의 불상의 계 또는 공양상의 계에서도 상투문화와 연계되는 내용을 볼 수 있고 특히 후대의 것이지만 경주 석굴암의 인왕상의 계는 고구려의 장사, 중국의 신장의 그것과 흡사하다.
이런 면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의 장사, 신장의 상투는 서역지방에 원류하는 것으로 특히 힘센 장사 또는 역사의 계양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바이블 구약에 다윗의 아들로 아버지에게 대항하다 도망하는 중에 상투가 참나무에 걸려 죽은 압살롬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상투'가 과연 어떤 의미로 번역되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유태인들이 머리 스타일에서 상투와 유사한 머리 매무새를 했을 개연성은 있다.
그러나 그 상투문화를 가장 오래도록 지켜온 민족은 우리 민족이며 그 상투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발견되는 것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한민족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상투를 튼 것은 삼국시대에 깃털을 머리에 꽂는 절풍 문화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머리에 깃털 꽂는 것과 같은 맥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각저총의 씨름하는 힘센 역사상은 머리를 빗어 올려 상투를 틀었다. 상투에는 정수리에 한 개의 상투를 트는 것이 일반적이나 머리 좌우에 쌍상투를 틀어 올리기도 했다.
상투를 한 아메리카 인디언 Blackfoot이란 이름은 그 종족이 발을 검게 칠하고 다닌다 하여 서양인들이 그렇게 닉네임을 붙인 것이고 상투를 튼 인디언 자신들의 이름은 Siksika라고 불렀다. 그 이름을 가만히 필자가 생각해보니 상투를 틀면 성인이 되는 것이고 결혼을 했다는 면에서 '씩씩한 사나이' 기분을 주는 '씩시카'라는 음운상의 유사성은 더욱 흥미를 끈다. '씩시카' 인디언들은 주로 옐로우스톤 국립공원과 사스캐치완(Saskatchewan)북쪽으로 글레이셔 국립공원을 넘어 카나다 쪽까지를 중심무대로 하고 활동했다.
![map](http://www.cr.nps.gov/history/online_books/berkeley/steward/fig2t.jpg) Figure 2. Range of the Blackfoot Tribes.
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와 같은 핏줄
연합뉴스 기사전송 2008-06-09
(대전=연합뉴스) 윤석이 기자 =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 인디오가 우리 민족과 같은 핏줄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배재대 스페인.중남미학과 손성태 교수는 9일 배재대에서 열린 학술 세미나에서 `아메리카로 건너간 우리 민족의 언어적 증거'라는 논문을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의 고어인 `나와들어(語)'와 우리말의 `고어(古語)' 사이에 어순과 발음, 문장의 구조적, 형태론적인 면 등이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실례로 "우리 고어의 순경음인 `비음이응(ㅸ)'이나 복수형 어미인 `~들, ~께', 땅을 의미하는 `달' 등의 단어와 15세기까지의 억양 등이 나와들어에 그대로 쓰이고 있으며 `내 지이(내 집)=ne chii', `내 곳(내 꽃)=ne kotz'i'j' 등 구(句) 역시 유사했다"고 소개했다.
또 "'나 나아 트홋타(나와들어)=ni naa tihota', `야히 있다(약이 있다)= nahi-ta' 등 문장에서도 큰 유사성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특히 "지금까지 정확한 뜻이 밝혀지지 않은 아리랑의 후렴구 `아리 아리랑 아리 아리랑 아라리가 났네'의 뜻을 나와들어로 풀어본 결과, '지금 그렇게 해서 지금 그렇게 해서 이겼네'로 해석된다"고 주장했다.
즉 "`아리=ari'는 `지금'이라는 뜻으로, `아리랑=alariga'는 `그렇게 해서'라는 뜻으로 해석되는 데, 민요 아리랑은 고대 우리 민족이 어떤 축제나 전쟁 등에서 이겼을 때 불렀던 `승전가'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손 교수는 아울러 "멕시코 아스텍인의 역사서에 조상들이 `사막 근처인 아스달란과 두 개의 나라에서 왔다'라는 기록도 우리 선조들인 부여와 고조선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조선의 첫 도읍이 `아사달'이었고 고조선의 위치가 중국 요하강 서북쪽인 고비사막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다는 중국 문헌을 그 증거로 들었다.
손성태 교수는 "아스텍인들과 언어, 역사, 풍습이 일치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직접 아메리카 대륙으로 넘어갔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증거"라며 "신라시대의 유물로 발견된 토우 가운데 중남미에서만 서식하고 있는 개미핥기가 있는 것도 우리 선조들이 베링해협을 건너 멕시코까지 왕래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우리 민족의 이동 시기는 기원 전후 또는 초기 삼국시대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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