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이트

[스크랩] 사탄의 실체 (16) - 예수회 2 / 지상 최고 비밀 정부

그리운 오공 2011. 12. 17. 18:01

 
  예수회 (Jesuit) (18)
 ▣프리메이슨/세계의 비밀조직



1930년대의 경제 공황과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 블록화는 식민지가 부족한 독일을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1937년 독일과 이탈리아와 일본은 3국동맹을 맺고 영국, 프랑스, 소련에 대항하였습니다.
1937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체코를 병합함으로써 중부 유럽의 세를 넓혔습니다.
히틀러는 산업을 발전시켜 전 후 보상금 등으로 피폐한 경제를 일으켰고 군사력을 대폭 증강하였습니다.

1939년 독일은 소련과 불가침 조약을 맺음으로써 서부전선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은 폴란드와의 영토 협상이 결렬되자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침공하였고,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은 발발합니다.
히틀러, 괴벨스, 히믈러 등은 카톨릭 신자였고, 중대사를 결정할 때는 항상 교황청과 협의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은 나치와 교황청이 힘을 모아 유럽을 정복하려 했던 전쟁입니다.
교황청은 2차 대전을 전후해서 독일의 무력을 이용해 비 카톨릭 교도를 제거하고, 세력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병합 때 비엔나의 대주교인 이니찌(Initzer) 추기경은 "히틀러 총통은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고 있으므로 신도들은 독일 제국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선언문을 발표해 독일군을 환영했습니다.

독일과 병합된 체코 의원 중 일부는 카톨릭 사제였고, 그들은 교황청의 허가로 공직을 겸할 수 있었으며,
그들 중 한명은 국가 원수로 임명이 되었고, 최고 영예인 철십자 훈장을 받았습니다.

1941년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크로아티아 독립국'이란 위성국을 만들었고 루이 바소
(Louis Barthou)라는 테러리스트를 수상으로 앉혔으며, 크로아티아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그리스 정교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이 결과 30만명의 세르비아인과 유대인이 추방되었고, 50만명이 학살되었으며, 24만명의 정교회 신자가
고문과 협박으로 개종되었습니다.
이를 주도한 경찰총장 등 공직은 카톨릭 사제들이 차지했으며, 가장 끔찍한 수용소인 자세노바크(Jasenovac)의
소장인 미로슬라프 필리포비치(Miroslav Filipovitch) 또한 사제 출신입니다.

슬로바키아 공화국의 수상이 된 예수회 회원 티소(Tiso) 경은 "카톨릭 정신과나치주의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함께 세계를 개조하는데 힘을 모았다."고 선언했습니다.
1940년 6월 바티칸은 라디오로 티소의 선언문이 교황의 승인을 얻었다고 발표하였고, 티소 정권은 국민의 20%에
해당하는 개신교도에 대해 탄압을 가했고, 정교회 신자들을 카톨릭으로 개종시켰습니다.

프랑스에서는 F.N.C.(카톨릭 국민 연합회)가 조직되어 드 카스텔노(de Castelnau) 장군이 선임되었고,
3백만명의 지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78세의 이 군 장성은 파시스트적인 교회 선전 전략의 기수가 되었습니다.
F.N.C.는 카톨릭의 행동대원으로 예수회 신부들이 창설에 일조하였습니다.

예수회는 '예수 성심회'를 통하여 F.N.C.를 결성, 조직하였습니다.
교황 피오 11세는 "카톨릭 행동대는 신념에 찬 사도들이다."라고 하며 F.N.C.를 지지하였습니다.
또한 프랑스 파리의 카톨릭회 회장 보드릴라르 추기경은 "히틀러의 전쟁은 유럽 문화를 수호하고자 착수한
숭고한 사업이다." 라고 언급하였습니다.

 

d) 히틀러 측근과 예수회

대주교 세자르 오르세니고(Cesare Orsenigo)
주독 교황청 대사가 1936년 1월 베를린에서 열린
공식 만찬에서 히틀러와 담소하고 있다.

1934년 새로운 성직자-파시스트 정관 선언 입회한,
작은 돌푸스(Dollfuss-오스트리아 독재자)와
오른편의 인니체르 추기경(Cardinal Innitzer)

스페인 카톨릭 성직자들이 1937년 산티아고
드 콤포스텔라에서 파시스트들(독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스페인 시민 전쟁동안 카톨릭 “개종작업”
(신부들이 대포와 총을 들고 시민을 사살하고 있다).

히틀러는 교황청과 반 카톨릭주의자들을 섬멸하기로 조약을 체결하고, 자유주의자와 유대인을 가둘 수용소를
건립했습니다.
그 곳에 수용된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강제 노동에 시달리거나 학살당했습니다.

히틀러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SS(독일 친위대)는 예수회의 영성훈련과 규칙을 본받아 히믈러가 조직하였습니다.
SS의 조직은 카톨릭 교회의 성직제와 거의 유사하며, 베벨스보르크(Webelsbourg)라는 SS의 본부는
'SS 수도원'이라고 불리웠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교황의 밀사 폰 파펜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제 3제국은 교황의 숭고한 정신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실천으로 옮긴 첫 번째 세계적 권력이다."
여기서 '실천으로 옮긴다'란 말의 의미는 반 카톨릭교인을 척결한 것을 의미하며 UN의 공식 집계로 무려
2천 5백만명이 수용소에서 희생되었습니다.
폰 파펜은 나치와 교황청의 연결 고리 역할을 했으며, 교황이 제시한 안을 나치 수뇌부가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나치 정권의 열렬한 선전장관이었던 조셉 괴벨스는 예수회 대학에서 신학을 교육을 받았고, 로욜라가 주장한
도덕적 상대주의를 주장하였습니다.

유대인 학살의 주범이자 나치 독일의 2인자인
히믈러 역시 예수회 출신입니다.
히틀러는 "나는 히믈러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로 보인다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친위대와 게슈타포와 독일 경찰의 사령관인 히믈러가 가장 성직자다운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히믈러의 부친은 카톨릭 학교 교장이있고, 형은 수도사이며, 삼촌은 예수회 회원이었습니다.

예수회의 총재 폰 레도코브스키 백작은 예수회와 독일 사이에 작전을 수행할 첩보기관을 기획합니다.
그 결과 친위대의 중앙 안전부 안에 한 기관이 창설되었는데 대부분의 요직은 검은 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이 차지했고,
최고 요원 중 한 사람은 예수회 신부 히믈러였습니다.
히믈러는 전쟁이 끝난 후 도망다니다가 1960년 이스라엘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교수형 당했습니다.

 

e) 죽음의 강제수용소와 바티칸

아유슈비츠 수용소

독일 작센하우젠 강제수용소

독일 예나의 수용소

독일 바이마르의 시체소각장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설치한 강제수용소를 KZ(Konzentrationslager)라고 합니다.
KZ는 A.히틀러의 나치스 독일이 구금·강제노동·살육을 위하여 국내외에 설치한 감옥으로 1933년 2월 제정된 ‘국민과
국가의 방위령(防衛令)’에 의하여 그 해 수십개 지역에 설치되었습니다.

공산당원·사회주의자·민주주의자 등 모든 반(反) 파쇼주의자와 나치스체제에 순응하지 않은 자들을 일반국민으로부터
고립시켜 말살하고, 나아가서는 전국민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에서, 반대파나 교도소에서 만기석방된
반 파시스트의 대부분이 아무런 재판절차도 거치지 않고 SA(나치스돌격대), SS(나치스친위대) 등에 의하여 수용소로
끌려가 기한도 없이 구금되었습니다.

1934년부터 히틀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SS가 수용소의 관리를 맡아, 정치적 반대자에 이어 인종적·종교적 이유에서
유대인과 불복종하는 그리스도인을 구금하고, 나중에는 일반범죄자·변절자 등도 수용하였습니다.
개전(開戰) 후, 파시스트와 그 배후의 융커들은 폴란드와 소련의 일부를 독일인의 이주지역으로 만들기 위하여 그
지역의 원주민을 전멸시키려고 그들을 점령지구에 설치한 절멸(絶滅)수용소에 구금하는 등, KZ는 타국민 특히
슬라브인·유대인의 조직적 근절시설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 실례로서 폴란드에 설치되었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루블린 근교 마이다네크의 가스실(室), 시체소각장 등을
들 수 있습니다.
KZ는 처음 수용인원 1,000명 안팎의 소규모 시설로서 수십 개소에 산재해 있었으나, 그 뒤 세계여론이 두려워
작센하우젠을 비롯한 5~6개소의 대수용소로 통합하였고, 1938년 H.W.괴링이 유대인의 절멸을 제의한 이래,
1100만명의 유럽거주 유대인 중 약 600만 명이 학살되었고 그 중 180만명이 어린이였습니다.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 남부 비엘스코주(州)의 도시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건립되었습니다.

1940년 4월 27일 유대인 절멸(絶滅)을 위해 광분하였던 H.히믈러의 명령 아래 나치 친위대(SS)가 이곳에 첫번째
수용소를 세웠으며, 그해 6월 이 아우슈비츠 1호에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습니다.
그 뒤 A.히틀러의 명령으로 1941년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어 아우슈비츠 2호와 3호가 세워졌고, 1945년 1월까지
나치스 이곳에서 250만∼400만 명의 유대인을 살해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로 인해 ‘아우슈비츠’는 나치스의 유대인 대량학살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수용소를 40개의 캠프로 나누었는데, 피수용자는 강제노동과 영양실조·전염병으로 죽거나 또는 ‘욕실·청결·건강’이라는
등 거짓 푯말이 붙은 독가스실로 연행되어 학살되었으며, 일부는 의학실험 대상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학살된 자의 금니·모발 등은 자원으로서 회수되었습니다.

이러한 학살은 히믈러가 지휘하는 SS와 게슈타포에 의해 자행되었습니다.
1942년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탄압하는 조치가 내려지자 프랑스의 카톨릭과 개신 교회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카톨릭
당국자에 의해 거부되었습니다.
히틀러는 카톨릭 람바흐 학교를 다녔고, 수도원 성가대원이었으며, 나치의 기장인 철 십자가는 수도원 원장
하겐(Hagen) 신부의 전령관의 표지에서 따 온 것입니다.

 

"나는 죽는다...제수이트를 공격하는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교황 끌레망13세-


"매우 위험한 자들!그들은 절대로 제국에서 용납되지 않을것이다" -나폴레옹 1세-


"진리의 우물에 독약을 탄 자들" -토마스 칼라일-


"제수이트들은 영원히 박멸되어야 한다" -교황 끌레망14세-
 
옥스퍼드 대학 토론회는"로마 카톨릭교회는 서방세계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크게 위협하는 종교"라는 동의를 구하는
가부투표에서 387명중220명이 이에 동의하였다.The Times"1960.1.29.
 
"제수이트들은 피의 행동에는 명수들이다."
"포교하겠다는 미명 하에 날마다 우리 영토로 상륙한 로마 카톨릭 사제와 성직자들이 학교와 병원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남북의 프로테스탄트들이 안다면 힘을 합쳐 그들의 손아귀에서 권력을 박탈할 것이다. 그들은 교황이나 유럽
전제군주의 대사로서 질서를 해치고 우리 국민의 마음을 헌법과 법률에서 멀어지게 하며, 아일랜드·멕시코·스페인 등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이 있는 곳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무정부 상태를 도모하고 있다."
-아브라함 링컨-

"마피아와 여러 비밀단체들이나 정보기관이 한 통 속이 되고, 거대 기업들이 바티칸과 손을 잡고, 비밀스러운 목적을
위해서 거액의 돈이 뿌려지고, 정치와 종교와 첩보와 금융과 조직범죄 사이의 경계선이 희미해져서, 마침내 무엇이
무엇인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렀다."
-아브라함 링컨-

"내 목숨을 노리는 그토록 많은 음모들이 꾸며졌었기에, 그 모든 것이 실패했다는 것은 정말 기적이다. 특히 거의 대부분이
숙련된 로마 카톨릭의 살해자들, 명확하게 예수회에의해 훈련된 자들의 손에서 꾸며졌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예수회는
피를 흘리는 임무에 매우 전문적이어서, 헨리 4세는, 그들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고, 그리고비록 그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에게 희생되었다. 그들의 손아귀에서 내가 벗어나는 것은,
제퍼슨에게 쓴 교황의 편지가 나의 가슴을 찌르는 백만 비수를 갈게하였기에, 기적을 훨씬 뛰어넘는 일일 것이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들의 죄들로 인해, 그가 요단강을 건너가기 전에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모세의 입술에서
나오는 어떤 불평도 듣지 않으셨던 것처럼; 그렇게, 내가 내 나라를 위해 쓰러질 때, 그분께서 나의 불평을 듣지 않으시길,
다만, 나는 소망하고 기도드린다."

-아브라함 링컨-
 

"제수이트...흑암,잔인,배반,전재독재제,죽음" -존 아담스 대통령- 


"만약 미국이 자유를 박탈하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로마 카톨릭체제를 통하여 올것이다." -죠지 워싱턴 대통령-


"우리를 압도하는 한 역사적 교훈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것이니 당신의 자녀들을 카톨릭교 사제들로부터 피신시켜라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당신의 자녀들을 인류의 적으로 만들것이다."
 -W.K.클리포드 교수

"나는 제수이트의 부활을 기뻐하지 않는다. 대다수는 더욱 가장을 하게 될 것이므로 인쇄업자, 작가, 출판업자,
학교 교사 등과 마찬가지로 보헤미아의 수장도 받아들일 것이다. 영원한 저주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면
바로 이 로올라 협회이다." (John Adams, 1816)

"나는 예수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세상에서 카톨릭 교회의 성직자 제도보다 더 위대한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이 조직을 대대적으로 수용하고자 한다. 비밀리에 사람들을 유도해 갈 기관을 설립할 것이며, 그 기관을 이용해
젊은이들을 선동하며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다."
-히틀러-

'나폴레옹의 세인트 헬레나섬 포로 생활에 대한 기억'(제 2권)이라는 책에서, 프랑스 장군 Montholon은 예수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예수회는 종교 단체(order-질서)가 아니라 군대 조직이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군대의
장군이지, 단순히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 아니다. 그리고 이 조직의 목적은 권력이다. 가장 전제적으로 행사되는 권력
절대권력, 우주적 권력, 한 사람의 의사에 따라 전세계를 통치하는 권력. 예수회 사상은 최고로 절대적이고 전제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장 거대하고 가장 엄청난 폐단이다.'

 

'우리가 카톨릭 교회와 일치되어 한마음으로 함께 하기위해서는, 만일 카톨릭 교회가 어떤 사물을 검다라고
확정한다면, 우리의 육안으로 희게보이는 것도, 그것은 검다라고 단언하는 그런 자세를 지녀야 한다.'
-로욜라-

 

* 참고 서적: 예수회의 비밀역사 (에드몽 파리, 말씀보존학회)

* 참고 사이트:
http://www.biblenews.co.kr/
(이 곳의 만화간증에서는 예수회를 탈퇴한 알베르토 리베라 박사의 간증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주님의 임재앞에..
글쓴이 : 주님의나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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