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뽕 등소평

펌)공산주의와 페미니즘, 혹은 문화혁명과 슬럿워크

그리운 오공 2012. 5. 1. 19:24

공산주의와 페미니즘, 혹은 문화혁명과 슬럿워크 - 전지구적 제국주의적 반문화 운동,,,  자유정신  2011/07/19 04:18

 
 

'슬럿워크'라 해서, 화냥년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역사/정치의 중심지인 광화문 덕수궁 앞에서 벌거벗고 설쳐댔다. 이런 짓을 하는 이론적 근거는 '여성해방'과 '자유의 권리'라는 현대의 민주주의나 자유주의적 원리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운동 속에서 '명백히' '제국주의적 반문화' 혹은 '제국주의적/세계화적'인, '지역 전통/문화 전면파괴운동'을 본다. 마치 지난 세기에 중국 공산당에 의해 자행되었던 '노동자 해방'을 명분으로 자행되었던 아시아 전통/역사/문화에 대한 전면적 파괴운동인 '문화혁명'이 새롭게 반복되는 것 같다.

 

단언하건데, 이런 여성해방과 그에 따른 슬럿워킹이나 모든 남자들에 대한 잠재적 범죄자화는 지난 세기 노동해방과 그에 따른 문화혁명이나 모든 전통/역사/문화를 인민에 대한 브르조아적 착취와 억압의 유산으로 낙인찍음 사이에는 분명하고 본질적 관련성이 있어 보인다.

 

과연 이 시대가 많은 바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민주세계'일까? 단언컨대, '결코 아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상식적으로, 가장 자유민주의가 발전했고, 인권이 보호받는 국가로 단연 '프랑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사실은 프랑스에서는 '부르카, 히잡, 니캅, 차도르'로 대표되는 이슬람 복장 착용이 '법적으로' 전면 금지되었고, 이를 위반시에 형법에 의해 다스려 진다. 곧 이슬람 복장 착용은 '범죄'인 것이다.

 

이 황당한 법의 명분은 역시나 '이슬람 여성의 인권'이다. 정말 가소롭고 역겨울 뿐이다. 이슬람 국가도 아닌, 프랑스에서 과연 누가 이슬람교 여자들에게 이슬람 복장을 '강제할 수' 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누가 그들의 '종교적 신념'을 강요할 수 있을까? 그들이 프랑스에서 이슬람 복장을 했던 것은 철저히 자신들의 선택이라고 봄이 보다 사실적이다. 그런데 무슨 얼어죽을 여성인권인가?

 

또한 이슬람 복장들 중에서, '부르카'나, '니캅'은 좀 전근대적 복장으로 보이지만, '히잡'은 얼마든지 현대적 패션으로 보일 수 있을만큼 가리는 데가 거의 없다. 그저 머리에 수건 하나 두르는 것이다. 얼굴 다 나온다. 그리고 차도르도 마치 가톨릭의 수녀들 복장과 매우 유사하다. 그래서 얼굴 다 다온다. 단 옷 단이 머리에서 다리까지 내려갈 뿐이다.

 

그런 이유로, 명분이 '여성인권'이라면 '히잡'과 '차도르'는 굳이 법으로까지 금지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럼 이런 금지법의 실제 이유는 단 하나다. '이슬람 전통/역사/문화'에 대한 부정일 뿐이다. 이슬람이 폭탄테러를 해서? 그런 식이면, 남미 사람들이나 태국 사람들은 입국금지 당해야 한다. 왜냐면, 남미에는 수 많은 마약생산자들이 살고 있고, 태국 사람들 중에는 에이즈 환자가 엄청 많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가 도달하게 되는 유일한 결론은 현대 세계가 '인권', 특히 '여성인권'을 빌미삼아 전 세계의 토착적이고 지역적인 전통/역사/문화를 파괴/제거/금지함으로써, 전 세계를 제국주의적으로 '세계화'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으로써 전 세계를 획일적으로, 문화적 황무지 상태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 떠나서 그렇게 '화냥년들이 다 벗고 다닐 권리'가 있다면, '이슬람 여자들이 다 뒤집어 쓰고 다닐 권리도 있는 거' 아닐까? 왜 전자는 되고 후자는 안 되는가? 벗는 것만 해방이고, 입는 것은 억압인가? 그래서 입겠다고 하는 여자들에게 법적으로 협박하면서 벗으라고 하는 것인가?

 

인간의 순전한 육체, 누드는 일종의 문화적 공백상태와 관련된다. 그래서 인간은 역사시대 이래 줄곧 누드를 피하고 몸을 덮었던 것이다. 이는 '단순히' 여자들을 억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문화/역사/전통'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여성해방'이라는 이유로 화냥년들이 우리나라의 유서깊은 궁궐들 앞에서 발가벗고 행진을 하고 있다. 이는 지난 세기 '계급해방'이라는 이유로 무식한 농부들이 홍위병으로 되어 기존의 문화유산들을 싸그리 파괴시킨 '문화파괴폭동'인 '문화혁명'을 자행했던 것과 다를 바 없다.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우면 인간은 서로 획일화된다. 마찬가지로 인간들이 옷을 벗으면 서로 같아진다. 역사도 없고, 문화도 없는 인간,,,그것은 다른 그 어느 말들로 현혹을 한다해도 기껏해야 '영혼'이 제거된 '좀비가 됨'을 의미할 뿐이다.자기 애비/애미도 모르고, 옷도 다 벗고 다니면서 영어만 지껄이는 것들,,,이게 바로 '좀비'의 구체적 모습이다.

 

문화혁명과 슬럿워크,,,계급해방과 여성해방,,,좋다! 그것이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모든 것을 다 파괴하는데 환장하겠는가!
  
  

  
 슬럿워크(Slut Walk)? 'ㅗ'  자유정신  2011/07/19 00:53


 

슬럿워크(Slut Walk)? 내가 이 따위 저질 표현을 따라해서 공연히 유행을 시키는데 일조를 하기 원치 않았지만,,,

 

여론과 대중문화의 일방적 폭격과 세뇌에 사람들이 혼란을 느낄 것 같은 불안감이,,,,,,,,

 

슬럿워크(Slut Walk)라,,,;잡년걷기'라 해석할 수 있지만, 보다 정확한 표현은 '화냥년 행진'이다. 캐나다의 어느 경찰이 여자들더러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옷차림을 가지런히 하라"고 한 것에 일단의 페미들이 격분해서 반기를 든 운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우리나라의 일단의 년들이 '광화문 거리'(덕수궁 앞)에서 벌였다고 한다.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을 정당화하지 않는다"가 이들의 주된 주장이다.

 

이런 식의 주장은 전형적인 대중적 선전선동의 예라 할 수 있는데, 상대의 발언이나 생각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켜서 매도하면서 그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 자신을 정당화하는 치졸한 수법이다.

 

'옷을 야하게 입었다.'라는 사태가 곧바로 '성폭력'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없다. 다시 말해, '야한 옷차림'이 '성폭력'의 '원인'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동시에 그렇다고 해서 "여성은 떄와 장소 불문 자기들 맘대로 옷을 입을 권리가 있다"라고 주장할 그 어떤 근거도 없다는 것도 명백하다.

 

이들은 이런 주장을 하면서 여러 가지 개념과 이미지의 왜곡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원인'이라는 개념을 '직접적 원인'으로만, 곧 두 사태가 동질적이고, 서로 필연적 연관이 있는 것으로만 왜곡/축소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원인을 이렇게 사용하면, 세상에 수 많은 것들이 왜곡된다.

 

예를 들어,

A

"저는 어릴 적 가난해서 크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어요." 

"저는 어릴 적 가난해서 크면 반드시 성공해서 부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저는 어릴 적 가난해서 그때부터 세상과 사람들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어요."

 

B

"나는 술이 취해서 그냥 잠들었다."

"나는 술이 취해서 평소와는 달리 크게 소리치고 노래를 불렀다."

 

C

"비가 하루종일 와서 친구에게 전화를 해서 소주와 부침개를 먹자고 했다."

"비가 하루종일 와서 모든 계획을 취소하고 그냥 집에 들어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가 하면,

D

"길거리에서 어떤 녀석이 괜히 허공에 발차기를 하고 주먹질을 해대서 무서워서 다른 길로 왔다."

"길거리에서 어떤 녀석이 괜히 허공에 발차기를 하고 주먹질을 해대서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내줬다."

 

 

우리는 이런 예들에서 보듯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의 '원인'은 '직접적이지도, 동질적이지도, 획일적이지도 않음'을 알 수 있다.

대신, 사람에 따라서,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단순히 인격과 별개로, 서로 다른 결과를 일으킴을 알 수 있다.

곧 하나의 원인이 하나의 결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결과를 모두 설득력있게 야기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악질 저질 페미들은'하나의 원인은 직접적으로 다른 하나의 동일한 결과'만을 야기한다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부조리하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오늘 모여고 교문 앞에 바바리맨이 나타났었대!"

"정말 짜증나! 그런 변태들 너무 무서워!"

"그래서 경찰들이 와서 잡아갔어!"

"그래! 그런 것들은 아예 잘라버리거나 영원히 콩밥먹게 해애 돼!"

 

우리는 이런 대화를 쉽게 하곤 한다.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말이다.

이때, 법적으로 그 바바리맨은 '공연음란죄'로 기소되며, 사람들은 그를 '변태'라고 이해한다.

 

그리고 그 바바리맨이

"사실 사는 자이나교 신자로서, 교리에 따라 평소 누드로 다닙니다. 그런데 우연히 여고 앞을 지나가게 된겁니다."라고 해도

현대 한국 사회에서 그의 주장은 정당화되지 않는다.

현대 한국인들은 그의 종교와 별개로 그의 누드에 불쾌감과 두려움과 위협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생물도 그렇고, 생물도 그렇고, 사람들도 서로 지속적으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산다.

그 어느 것도 홀로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존재'는 '관계'속에서 형성된다.

현실적으로, 여자들보다 남자들이 시각적으로 더 민감하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성적 흥분도 남자들은 대게 시각적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외적인 것에 더 반응하며 더 부담스러워 하곤 한다.

 

여자들이 화냥년처럼 하고 다니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들이 원치 않는 성적 흥분을 강요받게' 되며, 그것으로 극심한 부담감과 불쾌감을 느끼게 된다.

 

심지어 남자건 여자건 '강간'을 당할 때조차, 이성적으로는 극도의 고톹을 느끼지만, 신체적으로는 '흥분'하곤 한다. 이런 이유로, 성관계 할 때, '흥분했다는 이유'만으로 강간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은 이미 폐기된지 오래다.

 

사람도 관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건 아니건 간에, 서로간에 상대를 배려하며, 상대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현실적으로도, 누군가가 온 몸을 보석으로 덕지 덕지 붙이고, 돈지갑을 다 보이게 하고 다니다가 도난을 당했을 때, 혹은 누군가가 자기 집 대문과 현관문을 열어놓고 외출을 해서 도둑을 맞게 되었을 때, 비록 법적으로는 도둑질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것을 당한 사람 역시 도덕적으로건, 혹은 인간적으로 비난이나, 비웃음을 면할 수 없음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화냥년 행진'? 지금 장난하냐? 그런 식으로 안하무인 격으로 자기들 맘대로 하고 다니면서 세상 어지럽히고 남자들 붎편하게 만들면서 그것에 대해서 자신들은 문제가 없다고? 위의 예에서처럼 괜히 길거리에 껄렁대고 다니면서 허공에 발길질, 주먹질 하면서 다녀봐라,,,그럼 조만간 맞지 않아도 될 주먹 세례만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맘대로 벗고다녀봐라,,,결국은 개변태라는 욕먹고 경찰에 끌려가거나,,,,,,

 

도대체가 되먹지 못하고, 배워먹지 못한 개화냥년들이 세상 좋아져서 때와 장소, 사람 안가리고 마구잡이로 나대는 꼬락서니 하고는,,,

니네들에게는 그저 'ㅗ'다.

 

제 아무리 니년들이 자신들을 정당화하려 애써봤댔자,,,결국은 상놈의 집안의 화냥년잂 뿐이다. 오히려 사람을 철저하게 '외모'로 평가하면서 돈이 없어보이거나 어딘가 수줍어 하기나 하면, 어이가 없게도 완전 루져취급 개무시하, 모욕하는 것들이 누군데,,,니네들이 바로 '외모지상주의'의 주체들이 아니던가!

화냥년은 화냥년일 뿐이고, 그래서 화냥년들은 다른 교양있는 여자들과는 다른 대접을 받게 되는 거다.

 

 

가져온 곳 : 
카페 >프리메이슨 연구모임(프.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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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지나가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