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각하

전두환 시절을 그리워하게 하는 '불공정' 사회

그리운 오공 2013. 9. 14. 21:33


장관의 딸이 아버지의 회사(?)에 특채로 합격한 일 때문에 아버지까지 장관직을 그만두는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 부처를 자기 회사로 알고 딸을 취직시키겠다는 발상을 한 아버지도 문제지만, 그러한 사정을 알면서도 올바른 조언 한마디 하지 못한 외교부 관료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청년실업자가 수십만이 넘는 상황에서 이러한 행태가 수많은 국민들의 마음에 상처를 줄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국민들을 무시했거나 아니면 그 같은 특혜가 워낙 일상화되어 문제라고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둔감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부동산과 교육문제라고 한다. 특히 출신대학에 따라 평생의 몸값이 정해지는 학벌주의가 강한 우리 사회에서 좋은 대학을 들어가기 위한 대학입시는 무엇보다도 '공정'해야 하기에, 대학입시가 있는 날은 전 국민이 출근시간을 한 시간 늦추고 비행기의 이륙시간을 조정하는, 다른 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만큼 '평등'과 '공정'을 확인하는 절차로서 대학입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좋은 직장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상황이다 보니, 같은 대학을 졸업해도 어떤 부모를 만났는가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관 아버지를 둔 덕분에 외교부에 특채로 합격한 딸 이야기는 전 국민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장관 딸 특채보다 더한 일도 자주 일어나는데...

그런데 가만히 주위를 돌아보면, 장관의 딸이 외교부에 특채로 합격한 것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더 심하게 불공정하고 염치없는 일들이 이 땅에서는 엄청나게 자주 일어난다. 청문회에 나오는 장관 후보자들마다 어찌나 교육열이 높은지 자식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장전입을 하고, 하나같이 재테크에 재주 있는 부인들을 만나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동산 투기로 재산이 늘어나고, 십중팔구 군대를 면제받는 체력조건을 타고 나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하다. 

그보다 더 심한 것은 재벌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릴 때부터 기업오너로서의 수업을 받으면서, 일정 시기가 되면 재벌기업을 고스란히 물려받는 일이 우리 사회에서는 지극히 당연하게 여겨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생각하다보면 과연 '공정함'과 '정의로움'의 기준이 무엇인가 무척 혼란스럽다. 

자조적인 말이지만 이런 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기업을 경영하는 세상에서 외교부 장관이 딸을 그 회사에 특채한 일을 가지고 그렇게까지 비난할 필요가 있었는가. 그보다 더 큰 부정의와 불공정에 대해서는 둔감하면서 왜 우리는 사소한 일에만 분노하는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릴 때 주일학교에서 배운 성경이야기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있었다. 어느 포도원의 주인이 일꾼들을 불러 모았는데, 아침에 와서 온종일 일한 사람이나 점심에 와서 반나절을 일한 사람이나 저녁 무렵에 와서 잠깐 일한 사람이나 모두 똑같은 품삯을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주인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도 '공정함'에 대한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었던 모양이다. 

80년대 '공정'한 시절을 그리워하게 하는 불공정 사회

주일학교 선생님의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이야기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야 하느님의 정의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정함과는 다른 것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공정함'과 '정의로움'의 기준을 판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외교부 장관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날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우리 또래 몇 명은 전 국민 과외금지를 시켜 공정하게 사교육도 없었고, 전국 고등학생이 똑같은 시험 한번 치르고 점수 순서대로 공정하게 대학 가고, 공정하게 고시 합격해서 출세하던 그런 시절이 지금보다 차라리 공정했다고 자조하면서 술을 마셨다. 전두환의 시절을 그리워하게 만드는 불공정하고 부정의한 현실에 분노하면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이유정씨는 현재 변호사로 활동중에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주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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