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정치인이 보여준 악어의 눈물
- 정명수와 정청래의 시작과 끝
우선 글쓰는 사람의 신원부터 알려드립니다.
1990년 말 정명수씨가 전대협동우회 회장, 정청래씨가 전대협동우회 부회장으로 있을 때 전대협동우회 사무국장으로 일했습니다.
1. 전대협동우회 부회장 임명.
당시 전대협동우회 부회장으로 정청래의 임명은 파격이었다. 실무진이라면 몰라도 부회장까지는 적어도 지역 위원회 의장 이상이 부회장으로 임명되는 것이 관례였다. 총학생회 집행간부 출신이었던 정청래의 부회장 임명에 대해 내 기억으로는 전체회의에서 약간의 설왕설래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회장으로 임명된 정명수씨가 전대협동우회가 총학생회장만의 모임이 아니기에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야 한다는 논리로 이미 학원으로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던 정청래 의원을 전대협동우회 부회장으로 임명하였다.
2. 전대협동우회 시절
파격적으로 임명된 후 정청래 의원은 재정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말이 문제였다. 사무국장인 나를 만나면 의례적으로 “내가 정명수에게 빌려준 돈이 얼마인지 알아!” 혹은 “누가 술사달라고 와서 내가 얼마나 쐈는지 알지!” 등 언제나 내게 자랑스럽게 귀에 거슬리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6.15공동선언 이후 그는 가칭)임수경을 사랑하는 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술을 사며 내가 챙기지 누가 하냐며 말하면서 자기과신속에서 금강산에서 열릴 제1회 남북공동행사에 당연스럽게 전대협동우회 부회장으로 참여한다.
이후 평양에서 열린 8.15남북공동행사에서 순서상 다른 부회장이 가기로 내정되어 있었지만 항상 그랬듯이 돈자랑 속에서 그 자리를 빼앗아 평양을 방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 경력은 그가 처음 출마했던 17대 국회후보 경력에 항상 첫 자리에 넣었었다.
3. 노사모 활동
노사모 활동을 정청래 의원이 처음부터 한 것은 아니었다. 노사모 활동이 일정부분 괘도에 오르고 개혁당이 지역위원회를 갖추면서 커지게 되자 그는 이전에 자신이 만들었던 인터넷 정당인 ‘정정당당’의 대표 자격으로 마포 지역 개혁당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17대 총선이 다가오자 ‘미키루크’와 함께 ‘1219’인가 하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개혁당과 노사모를 분열시키고 이후에 이 조직을 그대로 정동영에게 바치게 된다. 이후 정청래 의원은 정동영의 오른팔이 된다.
4. 17대 총선 출마 준비
당시 마포을에서 정청래 의원은 다른 예비후보에 비해 경력 등 모든 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러나 마포에서 터진 성미산 배수지 사건에서 지역 주민들의 총회 장소를 정명수 등의 도움으로 자신의 학원에서 개최하면서 지역의 개혁 진보세력에게 입지를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전대협 출신 출마자의 공동 세미나 역시 정명수의 도움으로 자신의 학원에서 개최하면서 전대협 출신 후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5. 17대 출마 경선
경선에서 그는 밖으로는 개혁세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명수와 지역에서 활동하던 김종호의 도움이 매우 컸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과거 마포지역의 맹주였던 노승환 전 의원의 세력들을 규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정청래 후보가 돈으로 사람을 매수한다’는 고발을 받는다.
이에 당시 경선관리위원장이었던 오경환 위원장이 이 사실에 대해 조사를 하자 오경환 위원장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 오경환 위원장과 인간관계를 정리시킨다.
이 사건 역시 오경환 위원장과 동기였던 정명수의 도움으로 유야무야 넘어가게 된다.
개혁당 당원들에게는 입에 발린 말처럼 자신은 국회의원 두 번이상 안하겠다고 선언하고 다음에는 후배들이 해야 한다고 인심을 얻는다.
그리고 통일운동의 대선배였던 조성우 당시 후보측에서 이번에는 양보하고 다음 선거에 출마하라는 권유 역시 친구였던 정명수를 앞세워 거절하고 경선을 치르게 된다. 이 경선에서 김철 후보는 선거법 위반으로 낙마시키고 조성우 후보, 윤영규 변호사를 이기고 후보로 선출되어 국회에 입성한다.
그의 국회 입성은 친구였던 정명수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다.
6. 국회의원 이후
지역에서 그가 당선되는데 도움을 준 개혁당을 자기 사람과 개혁당을 지키고자 하는 사람으로 나누고 자기 사람외에는 철저히 무시하고 지역 노사모와 개혁당을 분열시켰다. 그리고 마포의 진보개혁적 사람들은 철저하게 무시해 지역의 구태적인 사람들과 철의 장벽을l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정동영의 오른팔로 당시 정동영계의 최대 라이벌인 김근태 의원 계열의 사람들에게 막말로 브리핑을 하는 등 악명을 높이게 된다.
당선 뒤에 그는 전대협동우회 행사를 알리러 간 나에게 전대협동우회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런 조직이 살아있냐”며 전대협동우회에 대해 비아냥대기 일 수 였다.
7. 국회의원의 낙선
18대 선거에서 낙선 역시 그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문화일보와의 소송에서 승소를 했으나 그의 말은 어디서나 거침이 없었고 지역에서는 그의 말투에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8. 낙선 이후 지방선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지방선거는 출마할 사람들도 없었고 출마해도 당선되기 힘들었기에 정청래 의원이 그렇게 힘을 쓸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그러나 그가 지역위원장으로 있을 당시 지방선거는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야당에 상당히 유리한 시국이었다.
여기서 그는 그의 특유의 갈라치기로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잘못 보였던 사람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우선 열린우리당 시절 시의원으로 출마하여 당에서 서울지역 최다득표로 낙선했던 오경환 후보를 17대 총선 당시 자신을 조사했던 경선 위원장이라는 이유로 이유없이 탈락시켰다. 그리고 이 자리에는 새누리당 출신 후보를 출마시켜 당선시킨다.
구청장 후보 역시 새누리당 출신 구청장 후보를 경선에서 당선시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그는 친구를 배신한다.
9. 친구 정명수에 등에 칼을 찍을 사람
당시 지방선거에서 구청장 후보로 나온 사람은 정명수씨의 부인이었던 이은희 전 청와대 제2부속실 실장이었다.
당연히 정명수는 친구였던 정청래 지역위원장을 찾았고 정청래 위원장은 ‘경선에 오른다면 당연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은희 후보가 최종 경선에 오르자 그 약속을 바로 벌렸다. 그것도 경선 전날까지 정명수와 술을 마시면서 “내가 돕지 누가 돕냐”며 약속을 하고는 뒤로는 당원들에게 “절대 이은희를 찍지말고 새누리당 출신인 박홍섭을 찍으라”고 주문했던 것이다.
친구에 대한 의리도 자신의 필요에 의해 언제든 쉽게 배신했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정명수와의 친구 관계는 끝나게 된다.
10. 19대 총선 출마
친구에게 배신당한 뒤 정명수는 정청래와 경선을 준비하게 된다. 당시 정명수의 사무실 개소식에 우상호 전 의원이 참여한 것에 대해 왜 “지역위원장 개소식도 아닌데 우상호가 그리가냐”며 역정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우상호에 대해서 정청래의 17대 시절 평가는 “전대협 출신 의원들 대부분이 별볼일 없는데 우상호만 그래도 좋다”고 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런 평가 역시 상대편 후보에게 가자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경선에서 정청래는 김유정, 정명수 3인 경선 끝에 간신히 정명수 후보를 누르고 19대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하게 된다.
11. 19대 국회의원 이후
이후 정청래는 지방의원 한명 없이 지역에서 홀로 당원을 만들어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정명수의 저력에 정명수 죽이기를 시작한다.
정명수 후보가 새롭게 입당시킨 당원은 연락도 안하고 자기 당원 중심으로 지방선거와 지역을 꾸려가기 시작했다.
12. 6.2 지방선거에서
지방선거에서 정청래는 지역위원장으로 자신있게 자기 사람들에게만 공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자신의 오른팔이던 채재선 의원이 정치자금법 혹은 뇌물(?) 위반으로 12년간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자리에 자신의 오른팔이 출마 할 수 없게 되자 궁여지책으로 만든 것이 회사다니던 20대의 채재선의 아들을 공천하고자 한 것이다.
지역에서 채재선의 아들이 출마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안좋아 지자 그는 시의원 자리에 그의 충복 구의원을 출마시키고 비게 된 구의원 자리에 다시 채재선 의원의 아들을 공천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당시 합당분위기 속에서 당연히 출마배제 이유로 충분했다.
또한 다른 지역 시의원을 정청래 의원이 공천했지만 그 시의원 후보는 새누리당 출신으로 당적을 옮겼던 문제가 지적된 것이었다. 당연히 이 두 후보는 공천에 배제되었다.
이후 이 지역의 시의원 후보와 또 다른 구의원 후보는 정명수를 지지하는 후보가 후보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자기당의 이 두 후보가 자신이 공천할려고 했던 후보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신이 공천하려고 했던 후보들을 무소속으로 출마시켜 당원들에게 무소속 후보들을 지원 할 것을 강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 정청래는 자신과 친분이 있는 국민TV 진행자 김용민을 시켜 SNS로 지원하게 하게 한 것이다.
13. 20대 경선
지방 의원 하나 없는 상황의 경선에서도 선전했던 정명수 후보는 언제나 정청래에게 눈엣가시였다. 정청래는 자신이 단수 공천되기를 학수고대 했지만 그의 막말과 해당행위 등은 그를 낙천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낙천 후 마포을 지역에서 유력한 후보였던 정명수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로 지명되면 자신이 심어놓은 사람들이 밀려나고 다시는 이 지역에서 재기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그는 당에 절대 정명수와 김기식을 마포을에 공천하면 안된다고 건의하고 세상물정 모르고 자신에게 우호적인 멘트를 날리던 손혜원을 공천해 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악어의 눈물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인 손혜원이 공천된다면 정청래에게는 차기 총선에서 다시 자신의 왕궁을 건설할 수 있기에 가능한 시나리오였던 것이다.
14. 맺으며...
쇼위도 부부.
언제나 방송에서는 잉꼬부부인 것 같지만 그런 부부들이 이혼하고 나면 얼마나 나쁜 부부였는지 대중은 이후에 알게된다.
그 쇼위도 부부는 연예계에만 있는게 아니다.
정치에서도 이런 쇼위도정치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정청래가 대표적인 쇼윈도 정치인일 것이다.
지면상 더 많은 내용이 있지만 이만 줄인다.
더 이상 쇼윈도 정치인이 판치지 않기를 바라고...
정청래 의원이 과거를 되돌아 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https://www.facebook.com/okchj/posts/1128871110487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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