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린적 없는 글 "올렸다" '보수'는 '수구'로 바꿔… MBC "요약 과정의 실수" 방통심의위 9일 징계 심의
MBC '100분 토론'이 상습적으로 시청자 의견을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이르면 9일 소위원회를 열어 '100분 토론'의 방송 심의 규정 위반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시청자 의견 조작 의혹이 불거진 시점은 지난 5월 14일 '보수, 진보 갈등을 넘어 상생으로' 편이 나간 직후다. '100분 토론' 사회자인 손석희성신여대 교수는 "시청자 서모씨가 게시판에 올린 의견"이라며 "진보 진영이 민주화 발전에 기여한 바가 큼에도 불구하고…"라는 내용을 읽었다. 그러나 방송 직후 서씨가 시청자 게시판에 그런 글을 올린 적이 없다며 해명을 요구했다.
또 손 교수는 같은 날 시청자 조모씨가 올린 "진보든 보수든 다 나라 사랑하고…"라는 내용의 글을 소개하면서 진보는 '좌파'로 보수는 '수구'로 바꿔 읽었다. '좌파'에 대응하는 단어는 '우파'다. 일반적으로 적의를 품고 보수를 부를 때 쓰는 표현이 수구다. 이에 대해 MBC는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다.
논란이 일자 '100분 토론'은 지난달 21일 방송분에서 "원문을 요약하는 과정에서 서씨와 조씨가 언급하지 않은 문장이나 표현이 삽입돼 두 분의 본뜻이 왜곡될 수 있는 실수가 있었다"며 "두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하고 노력하겠다"는 사과 공지를 내보냈다.
▲ ‘100분 토론’사회자인 손석희 교수가 5월 21일 방송을 통해
시청자 의견 왜곡에 대 해 사과하고 있다./MBC 방송화면
그러나 시민단체인 미디어발전국민연합은 '100분 토론'이 14일 방송뿐 아니라 여러 차례 시청자 의견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법원장 이메일 왜 논란인가'(3월 12일) 편에서 '100분 토론'측은 이모씨가 "집회시위 사건은 컴퓨터 배당을 자주 한다는데 왜 굳이 보수적인 판사에게 임의 배당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원문은 "신속한 판결을 독려하기 위해 법원장이 보낸 메일이라면 그 신속함으로 억울한 국민이 생긴다는 것도 생각해야 되지 않을까요"였다. 원문이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맞지만 원문과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소개된 것이다.
100분 토론은 또 'PSI 참여와 남북관계'(4월 17일) 편에선 이모씨가 "대량살상무기 차단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 경색만 초래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PSI 전면 참여로 인해 만약 국지전이 불거진다면 누가 책임지겠는가"라는 의견을 올렸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원문은 "우리 국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평화이다. 평화로운 생활 터전이다. PSI 전면적 참여는 그런 국민의 바람과는 거리가 있다. 국제도 좋지만 진정 국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였다.
논란이 점차 커지자 '100분 토론'측은 28일에도 방송을 통해 "시청자 의견을 방송한 내용을 조사한 결과 10건 가까이 글쓴이 글과 똑 같지 않게 방송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시인했다. "시청자들이 공통적으로 제기하는 의견을 채택해 소개하면서 비슷한 내용의 글을 묶어 '아무개씨 외 다수' 의견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이름으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설명도 붙였다.
방통심의위는 현재 학계·변호사·시민단체 대표가 참여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100분 토론' 시청자 의견 조작문제를 논의 중이다. 지상파방송심의팀 김종성 팀장은 "MBC에 사실관계를 밝히라고 통보한 상태"라고 말했다. '단순 실수'인가 '상습적 날조'인가에 대한 법정기구의 판단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일보 / 백강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