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현 국정원 3차장 진술조서 - 2003년 6월11일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지만, 1억 달러 정도 주는 것은 해빙무드 조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월간조선
김보현 국가정보원 3차장 특검 진술조서
성명 : 김보현(金保鉉)
주민등록번호 : 431015-0000000
주거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직업 : 공무원
연령 : 60세
2003. 6. 11. 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사무소 1510호 조사실에서 임의로 아래와 같이 진술하다.
1. 저는 위 주거지에서 처와 장남 차녀 함께 살고 있으며 장녀는 결혼하여 따로 살고 있습니다.
1. 저는 1997. 6월부터 2000. 6월까지 국가정보원 제5국장(대북전략국장)으로 재직한 사실이 있으며 2000. 7. 3자로 3차장으로 승진하였고, 2000. 3. 9.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예비접촉에 당시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보좌하여 참석한 것을 비롯하여 그 이후 3차례의 본회담에 참석한 사실이 있습니다.
1. 2000. 6.초경 현대상선의 2억불 대북송금에 대하여는 당시 임동원 원장에게 실무부서인 기획조정실에서 편의를 제공할 수 있도록 건의하여 동 자금이 북한측 구좌로 송금되게 한 사실이 있는데, 금일 이 부분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모든 것을 사실대로 답변드리겠습니다.
이 때 검사는 위 진술의 취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임의로 다음과 같이 문답하다.
문 : 진술인이 김보현인가요.
답 : 제가 김보현 본인이 맞습니다. 필요하시다면 신분증을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때 검사는 진술인이 제시하는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 이를 사본하여 본건 조서말미에 첨부하다.
문 : 진술인의 학력 및 경력은 어떤가요.
답 : 1963. 제주사범학교(고등학교과정)를 졸업하고 6년정도 교사로 재직한 뒤 군복무 3년을 마치고 1972. 2. 국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을 수료하였습니다. 1972년 중앙정보부(이후 국가안전기획부, 국가정보원으로 명칭 변경)에 입사하였으며, 1997. 6.부터 2000. 6.까지 제5국장(대북전략국장)으로 근무하고 2000. 7.경부터 제3차장(북한분야)으로 재직하다가 2003. 4. 30. 제3차장으로 연임되어 현재까지 재직하고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이라 한다) 제5국장으로서 담당하였던 업무는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대북전략업무와 남북교류협력지원업무를 담당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이 제5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남북당국자간 회담에 참석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예, 그런 사실이 있었습니다.
문 : 그 당시 남북당국자간 회담 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예비접촉, 같은 해 17.부터 같은 달 18.까지 중국 상하이에서 1차 회담, 같은 해 3. 23. 중국 베이징에서 2차 회담, 같은 해 4. 8. 중국 베이징에서 3차 회담 등 1차례의 예비접촉과 3차례의 회담이 있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남북당국자간 회담에 참여하게 된 경위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2000. 3월경 저는 임동원 국정원장의 명을 받아 대통령 특사인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을 수행, 전략보좌를 담당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관여하여 왔으나, 2000. 3. 9.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이 성사되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본인이 직접 관여하지 않아 직접적으로는 알지 못하는데 박지원 장관 및 임동원 원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을 말씀드리면
1999. 12. 말경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 현대측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에 대하여 의사타진을 받았으며, 박지원 장관은 현대측에 북측의 정확한 의사를 타진해 줄 것을 부탁하였으며, 2000. 1.말경쯤 현대로부터 정상회담개최가 가능하다는 북측의 의사를 통보받자, 2000. 2. 초경 이 사실을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김대통령께서는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이에 대한 검토를 지시하였으며, 임동원 원장은 이에 대한 검토결과를 같은 해 2월 중순경 대통령께 보고하였고, 그 주요 내용은 북측의 호응 가능성이 있는 바, 직접 접촉을 통해 의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는 것이었으며, 그 이후 저는 상관이던 임동원 원장의 지시를 받아 박지원 장관을 전략 보좌하면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회담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문 : 위와같이 검토지시를 받은 것은 언제쯤인가요.
답 : 2000. 2. 중순경 임동원 원장의 사무실에서 검토지시를 받았고 3~4일정도 검토를 하였습니다.
문 :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전략적으로 박지원 장관을 보좌하라고 지시를 받은 것은 언제이고 박지원 장관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2. 하순경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지시를 받고 북측의 협상전략과 예상태도 등에 관한 자료를 준비하여 정확한 일시에 대하여 기억은 없습니다만 2000. 3. 3~4경 강북에 있는 프라자호텔 객실에서 박지원 장관에게 브리핑을 한바 있고 싱가폴 가기전에 1~2회 정도 더 만난 사실이 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과는 이전에도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그 이전에는 공·사를 막론하고 한번도 만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현대측이 어떤 경로로 북한측에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의사를 타진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는가요.
답 :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고 싱가폴에 가서 처음으로 정몽헌, 이익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현대사람중에서 제가 아는 사람은 김윤규 사장이 전부이고 1998년부터 금강산사업과 관련하여 자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를 아는가요.
답 : 2000. 2. 중순경 가능성검토를 하면서 요시다를 알게 되었고, 요시다는 김정일위원장의 의전비서인 전희정(현 이집트대사)과도 잘 안다고 하여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요시다는 싱가폴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고 한국말도 다소 서툰편으로 그 뒤에 개인적으로 접촉하거나 한 바는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은 당시 현대의 대북사업을 위한 남북관계의 긴장완화를 위하여 남북간 정상회담을 성사시킬 필요성을 느꼈으며, 1999. 12월 말경. 1998년부터 대북사업을 위해 북측과 접촉을 하였던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에게 우리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하였으며, 이익치 회장이 한국계 일본인 요시다의 중개로 다시 북측의 아태 부위원장 송호경과 접촉을 하였고, 이익치 회장으로부터 북측에서 남북정상회담 추진에 대하여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보고를 받았다는데 이러한 내용에 대하여 들은 바가 있는가요.
답 : 정몽헌과 이익치 사이 그리고 이익치가 어떻게 활동을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특별히 들은 바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이 특별히 남북정상회담개최를 위한 회담에 참여하게 된 이유라고 있는가요.
답 : 1972년부터 북한정보분석업무를 담당하고 1984~1986사이에는 정보학교 교관을 하고 1986년부터는 대북전략업무를 담당하였고 특히 1990년부터 1992까지 남북총리회담의 실무를 담당한바 있어 대북협상의 전문가라는 점이 발탁된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문 : 임동원 전 국정원장은 김보현 제5국장을 박지원 장관 보좌역으로 추천한 이유에 대하여 특사로 임명된 박지원 장관이 남북협상 경험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대북전략국장을 담당하고 있으면서 북한에 대하여 많은 내용을 파악하고 있는 김보현 국장이 협상의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하여 김보현 국장으로 하여금 박지원 장관을 보좌할 수 있도록 추천을 하였던 것이다 라고 진술하고 있는데 진술인과 같은견해라고 볼수 있지요.
답 : 그렇다고 봅니다.
문 : 진술인이 그 이전에도 북측과 접촉을 한 사실이 있었는가요.
답 : 1985. 9.경 남북이산가족방문행사때부터 접촉을 하기 시작하여 수십회이상 접촉을 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이 박지원 대통령 특사의 보좌역으로서 담당하였던 구체적인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사전에 포인트별로 메모를 만들어 주고 협상테이블에서는 보조발언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문 : 남북당국자간 예비접촉에 대한 국정원 또는 진술인의 준비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대북전략국에서도 극비로 준비한 관계로 제가 거의 대부분을 준비하고 간혹 서00 단장의 도움을 받거나 현장에 갈때는 서00과장을 수행하도록 하였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예비접촉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예, 2000. 3. 9. 오전 싱가포르 Marina Mandarin호텔에서 남북당국간 예비접촉이 있었습니다.
문 : 예비접촉의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우리측에서는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 국정원 대북전략국장이던 본인, 수행원 2명(서00, 박장관의 수행인 하00)이 참석하였으며, 회의장에는 3명이 참석하였습니다(하00은 방에서 대기). 북측에서는 송호경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이하 아태 라 한다) 부위원장, 황철 참사, 실무자 1~2명(권민참사) 정도가 참석하였습니다.
문 : 예비접촉을 위한 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2000. 3. 8. 저와 박지원 장관이 싱가포르 Ritz Calton호텔에 도착하였으며, 3. 9. 오전 우리측 박지원 장관과 북측 송호경 아태 부위원장간 접촉을 한 후, 같은 날 저녁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문 : 진술인에 대한 개인별 출입국현황을 보면 진술인은 박지원 장관보다 하루 빠른 2000. 3. 7. 출국하였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사실인가요.
답 : 하루 먼저 간 사실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하루 먼저 싱가포르에 도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하나는 현지준비를 하기 위한 점이었고 둘째는 보안문제로 박장관과는 다른 일자에 출발한 것입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 논의된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김대중 대통령이 신임하는 박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이 신임하는 송호경 등 쌍방 당국자가 정상회담 개최 의지 및 이를 위한 협상의사 여부를 직접 확인하였고, 향후 쌍방이 남북정상회담을 본격 협의하는 한편 접촉일시 및 장소는 추후 통보키로 하는 의견의 일치를 보았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 진술인도 직접 참석을 하였는가요.
답 : 저는 예비접촉은 물론 이후의 회의에서도 계속 참석을 하였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 현대측 관계자들은 참석하지 않았는가요.
답 : 현대의 정몽헌 회장, 이익치 현대증권 회장 등이 접촉장소인 회의실에 나와 양측을 소개하고서 약 10분간 덕담을 한 후 퇴장하였으나, 남북간 논의 과정에는 전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문 : 예비접촉 결과에 대하여 당시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보고가 되었는가요.
답 : 돌아온 직후에 바로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예비접촉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일시 및 장소는 추후 통보키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통보는 어떤 경로를 통하여 받기로 하였는가요.
답 : 2000. 3. 14.경 임원장으로부터 일시장소를 통보받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혹시 박장관으로부터 받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임원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문 : 북측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접촉을 하자는 통보를 직접 받은 사실은 있는가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1차 회담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예, 2000. 3. 17.부터 18.까지 중국 상해 Grand Hyatt호텔에서 모두 4차례에 걸친 남북당국간 만남이 있었습니다.
문 : 회담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예비접촉시와 같은 사람들이 참석하였습니다.
문 : 1차 회담일정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2000. 3. 17. 박지원 장관을 수행하여 중국 상해에 도착 Grand Hyatt호텔에 여장을 풀고서 같은 호텔에서 남북당국자간의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회담이 있었으며, 저희는 3. 19.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문 : 이때도 진술인은 박지원 장관보다 하루 빠른 3. 16. 출국한 것으로 확인이 되는데 함께 출국하지 않은 이유라도 있었는가요.
답 : 마찬가지로 현지준비와 보안상의 고려로 먼저 출국하였던 것입니다.
문 : 박지원 장관을 수행하였던 수행비서의 진술에 의하면 박장관이 현지 공항에 도착하면 국정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영접을 나와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영접 나온 사람들의 안내로 모든 일정이 진행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공항으로 영접 나왔던 국정원 직원중에 진술인도 포함되어 있었는가요.
답 : 저와 서00 과장 2명이 영접을 하였고 택시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문 : 1차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떠하였는가요.
답 : 우리측은 회담 모두에서 정상회담 개최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2000년대를 맞아 남북간 대결구도를 상생의 공존관계로 바꾸어야 할 시점이 도래하였으며,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후 2년 동안 화해·협력정책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미·일·중 등 관련국의 전폭적 지지를 얻고 있는 만큼, 지금이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최적기임을 강조하였고, 따라서 정상회담을 개최하여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교류·협력을 확대시켜 나가는 것이 남북이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또한,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기본구상을 제시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으로 5~6월중 평양을 방문하여 1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되, 2차 정상회담은 9월경 김정일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여 개최하며 앞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정례화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북측은 1차 정상회담을 평양에서 개최하되 구체적인 시기는 계속 협의하며, 2차 정상회담 개최 문제는 1차 정상회담에서 결정하자고 주장하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형식과 관련하여는 김정일 위원장의 초청 에 따라 이뤄진다는 사실을 명기하지 말자는 대응으로 결국 양측은 초청자(김정일 위원장) 명기 문제, 정상회담 개최 일정 등에 대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가운데 협상이 종료되었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남북당국간 회담이 끝난 직후 현대와 북측간에 접촉결과에 대해서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는 자리에서 남측에서 베를린선언을 이야기하면서 정상회담이 잘되면 비료든지 쌀이든지 지원할 수 있고, SOC(사회간접자본시설)사업을 하는데 남측이 도와 줄 수 있다 는 제의를 했다는 말을 들었고, 다음 회담은 2000. 3. 23. 중국 북경에서 갖기로 하였다 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는데 그러한 제의를 한바 있는가요.
답 : 저의측에서는 북측을 협상의 자리로 나오게 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하였는데, 2000. 2.경 대통령께서 김정일 위원장을 식견이 높다는 등의 방법으로 대접해주기도 하고, 물자지원 등의 방안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1차 회담에서도 인도적 차원의 지원방안과 SOC사업지원 약속 등의 선제공격적인 제안을 한바 있습니다.
문 : 1차 회담에서 북측은 경제적인 지원방안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보였는가요.
답 : 구체적으로 계량화하여 말한 적은 없지만 가급적 많이 도와달라고 하였습니다.
문 : 1차 회담에서 현대측 관계자들은 참여하지 않았는가요.
답 : 참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문 : 현대측이 참여하지 아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남북당국간 회담에 사기업이 참여한다는 것이 적절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문 : 현대측은 소개를 해준 다음에는 1차 회담부터 참석할 이유가 없다고 보이는데 계속 참석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현대측으로서는 한번 시작한 이상 정상회담협상이 끝날 때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생각에서 온 것이라고 보입니다.
문 : 정부측에서 계속 와 달라고 요구한 적은 있는가요.
답 : 제가 요구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정부차원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하면 촉매차원에서 사기업이 필요한 부분도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의 진술에 의하면 남북당국자간 접촉이 끝난 직후에 항상 북측과 현대간의 접촉이 있었다는 것인데, 현대로부터 북측과의 접촉 내용에 대하여는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보고 받거나 설명을 들은 사실도 없습니다.
문 : 회담을 전후하여 박지원 장관과는 어떻게 의견조율을 하였는가요.
답 : 주로 회담을 전후해서 박장관의 방에서 포인트별로 메모를 해가면서 의견조율을 하였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과의 의견조율 과정에서 임동원 국정원장의 의견도 반영이 되었는가요.
답 : 회담이 종료되면 국제전화로 박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때로는 임원장과도 직접 전화를 하는 방법으로 의견을 조율하였습니다.
문 : 회담결과에 대하여는 임동원 국정원장에게도 보고가 되었는가요.
답 : 귀국즉시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회담에 참석한 것인데, 대통령에 대한 보고는 누가 하였는가요.
답 : 박장관이 직접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였고 저는 임원장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문 : 1차 회담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한채 종결되었다고 하였는데, 다음 회담일정에 대하여는 언급이 없었는가요.
답 : 2000. 3. 23. 중국 북경(베이징)에서 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를 하였습니다.
문 : 실제 2차 회담이 이루어졌는가요.
답 : 예, 2000. 3. 23. 중국 베이징 차이나월드 호텔 회의실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2차 회담이 있었습니다.
문 : 2차 회담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1차 회담시와 동일하였습니다.
문 : 2차 회담일정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3. 22. 오후 저와 박지원 장관 수행원이 함께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후 장성 쉐라톤 호텔에 투숙하였으며, 다음날인 23. 북측과 회담을 마치고 바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문 : 2차 회담에서 논의되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북측은 정상회담을 조속히 성사시키자는 기본입장을 갖고 있다면서도 합의문 초안 작성에 있어서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과 박지원 장관은 서로(읽을 수 없음) 다음과 같이 합의한다. 툭측은 남측의 희망을 고려, 올해 편리한 시기에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을 공식 요청한다. 평양 방문날짜는 서로 합의하여 결정하되, 평양 방문과 관련한 실무적인 문제들은 차후 협의한다라는 것이었으나,
우리측은 정상회담 일정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2박 3일간으로 제시하고 합의문 초안 작성에 있어서 초청자를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 명확히 표현해야 한다는 입장 견지하였으며,
북은 정상회담 일정은 6월 중순으로 일단 합의한 뒤 준비회담에서 최종 확정하자고 수정안을 제시하면서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당연히 김대중 대통령의 상대역이 될 것이나, 북측 외교관례상 합의서에 김정일 위원장을 명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을 들어 곤란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여 결국 양측은 초청자 명기문제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2차 회담을 종료하게 되었습니다.
문 : 회담을 종료하면서 다음번 회담날짜를 정하지 아니하였는가요.
답 : 네 다음번 회담 날짜를 잡지 못하였습니다.
문 : 왜 다음번 회담날짜를 잡지 못하였는가요.
답 :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차후에 연락을 다시하자고만 하였습니다.
문 : 이러한 이견차 이외에 다른 문제는 없었는가요.
답 : 회담을 하던 중에 돌연히 북한측의 송호경이 정상회담을 하게되니까 남측당국에 경제협력자금으로 5억불을 현금으로 요구하였습니다. 이런 말을 듣고 저와 박장관이 거의 동시에 어떻게 그런 큰돈을 줄 수 있겠느냐고 강하게 우겼습니다. 북측은 재차 같은 내용을 요구하였고, 저의 당국자들은 그러면 우리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이날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끝난 직후 현대와 북측간에 접촉이 있었으며,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으로부터 남쪽에서 비료든, 쌀이든 인도적인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였고, 잘 되면 SOC사업을 지원해 줄 수 있다 고 하였다면서, 남측이 향후 잘되면 10억불이든 20억불이든 몇 년에 걸쳐서라도 지원해 줄 수 있다 라고 하더라는 말을 들었다고 하였으며, 정몽헌 회장이 당신들은 뭐라고 했느냐 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캐쉬(현금)를 요구를 했다 라고 하여, 얼마나 요구했느냐 라고 하니까 캐쉬로 5억불을 요구했다 라고 하여, 자신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정부가 어떻게 돈을 줄 수 있겠느냐. 그것은 불가능 할거다 라는 말을 하였다고 하는데, 진술인도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정몽헌과 송호경이 어떠한 내용으로 말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정부측은 현금을 줄 수는 없고, 인도적 차원의 식량, 비료지원과 SOC 사업지원은 하겠다고 제안을 하였던 것입니다.
문 : 그러면서 송호경이 정몽헌 회장에게 그 동안의 논의되어 오던 사업권을 줄 테니 그 대가로 10억불을 내놔라 라는 말을 하여, 무슨 소리냐 그 동안 논의되어 오고 있는 사업권의 가치를 따져보더라도 2억불 정도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렇게 줄 수 없다 라고 한 후, 더 이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은 채 접촉이 종료되었다고 하는데, 현대로부터 북측과의 이러한 접촉 내용에 대하여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이러한 내용의 이야기를 들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습니다.
문 : 회담 후에 어떠한 보고를 하고 대책을 강구하였는가요.
답 : 박장관과는 회담 후에 북측의 무리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 앞으로 북측의 태도를 지켜보자고 논의한 후, 저는 돌아와서 회의결과를 임동원 원장에게 보고를 하고, 대통령께는 박장관이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확실하지는 아니합니다.
문 : (읽을 수 없음)
답 : 박지원 장관과 본인이 현대의 정몽헌 회장과 이익치에게 화를 내면서 일국의 장관을 협상테이블로 모셔다놓고 이럴수가 있느냐고 힐책을 한바 있습니다.
문 : 귀국해서도 현대측 사람과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귀국 후에는 저는 현대측 사람과 접촉을 한 바 없고, 박장관이 현대측 사람을 만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3. 23. 2차 회담이 결렬된 이후에 박지원 장관이 3. 25. 일본을 방문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박장관이 문화행사 참석으로 일본에 간다는 사실을 박장관으로부터 들은 바 있습니다.
문 : 무슨 내용의 행사인지를 알고 있었나요.
답 : 무슨 내용인지를 자세히 몰랐습니다.
문 : 박장관이 일본을 방문할 당시 정몽헌 회장이 일본에 체류중에 있었는데, 남북당국간 회담이 풀리지 않게 되자 정몽헌 회장 또는 요시다를 만나기 위해 출국하였던 것은 아닌가요.
답 : 제가 모르는 일입니다.
문 : 박지원 장관이 일본을 방문한 이후, 2000. 3. 29.부터 30.까지 정몽헌 회장, 이익치 회장이 함께 중국 베이징을 방문하여 아태 송호경 부위원장을 접촉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렬과 전혀 무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3. 29.부터 정몽헌 회장 일행이 중국에 간 사실을 오늘까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문 : 이날 접촉에서 정몽헌 회장이 송호경에게 그럼 이제 더 이상 회담을 하지 않을거냐 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은 더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라면서 여운을 남기기에 그럼 내가 돌아가서 정부측의 입장을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 라고 한 후에 바로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전혀 몰랐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2000. 3. 30. 귀국 직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에서 박지원 장관을 자기 혼자서 만났으며, 박장관에게 결렬되었다고 하는데, 그쪽에 대고 다시 한번 해볼 용의가 있느냐고 물어보니까, 더 할 용의가 있다고 하는데, 장관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라고 하니까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나중에 가부간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라는 말을 들었으며, 그리고 몇일후에 자신이 박장관에게 전화를 하여 박장관으로부터 한 번 만나보기로 했으니까, 그쪽에 연락을 해서 일정을 잡으십시요 라고 하였다는데,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가요.
답 : 4. 8. 회담을 앞두고 박지원 장관으로부터 박장관이 정몽헌을 만났다는 말을 들었는데 정확한 일시, 장소에 관하여는 기억이 없습니다.
문 : 그러면 2000. 4. 8. 회담은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가요.
답 :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회담 3~4일전에 받은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박장관으로부터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북측으로부터 2000. 4. 8. 중국 베이징에서 회담을 갖기로 하자는 통보를 받고서 이를 박지원 장관에게 통보를 해주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정몽헌 회장이 박지원에게 연락을 어떻게 하였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2000. 4. 8. 회담을 앞두고 북측에서 남측정부에게 현금을 달라고 요구한 상황에서 어떠한 협상조건을 준비하고 가셨는가요.
답 : 기본적인 지원이외에 북측의 5억불은 과다하다고 판단하였으나 남측당국이 지원할 수 있는 범위 첫 정상회담기념으로 북측이 주민선물용으로 쌀과 생필품을 줄수 있도록 현금 1억불을 정상회담 전에 줄 수 있다 는 입장을 정리하였습니다.
문 : 이러한 입장을 박지원이나 임동원과도 협의한 내용인가요.
답 : (읽을 수 없음) 2000. 4. 5~6경 시내 호텔에서 저와 임동원, 박지원 3명이 만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도출된 의견이었습니다.
문 : 위 1억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가요.
답 : 그 당시에 돈을 마련하는 방법까지는 미리 상정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문 : 돈을 직접 주는 것에 대한 문제점은 있지 아니한가요.
답 : 돈을 직접 주는 것은 첫째 국민적 비판여론을 감내하기가 어렵고 둘째 혹시 북측이 군사비로 전용할 우려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1억불 정도를 주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을 열어서 해빙무드를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3차 회담에 참석하였지요.
답 : 예, 2000. 4. 8. 중국 북경(베이징) 차이나월드 호텔에서 열린 3차 회담에 제가 참석하였습니다.
문 : 3차 회담 참석자는 어떠하였는가요.
답 : 1, 2차 참석자와 동일하였습니다.
문 : 3차 회담일정은 어떻게 되었는가요.
답 : 2000. 4. 8. 중국 북경(베이징)에 도착하여 차이나월드 호텔에 투숙하였으며, 같은 날 북측과 남북정상회담 합의문을 작성한 후, 장안구락부에서 양측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였으며, 다음날인 4. 9.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문 : 3차 회담에서 논의되고 합의된 내용은 어떤 것이었는가요.
답 :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방문 일자는 2000. 6. 12.부터 14.까지 2박 3일간으로 하고, 초청자 문제는 남측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 에 따라, 북측은 김대중 대통령 요청에 따라 로 각기 별도 표기하기로 절충안에 동의하여 남북정상회담 최종협의 〈4·8합의서〉를 마쳤습니다.
공식발표 시점은 이미 양측이 합의한 상태에서 대외 보안유지가 어렵다는 점을 감안, 최대한 빠른 시점인 2000. 4. 10.(월) 10:00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발표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문 : 3차 회담에서는 현금 지급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는가요.
답 : 논의되었습니다. 합의문 작성을 하기 전에 북측에서는 5억불을 요구하다가 우리측의 1억불이 맥시멈이라는 주장을 듣고 다시 2~3억불이라도 주었으면 좋겠다고 줄다리기를 하다가 약 1시간반 정도가 경과될 무렵 우리측의 1억불 지원을 수용하였습니다.
문 : 기타 인도적 지원방안 등에 대하여는 어떻게 논의가 되었는가요.
답 : 정부의 임기내에 많이 지원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고 구체적 액수를 정한바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합의 후에 계속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문 : 그런데 정몽헌 회장은 이날 같은 호텔의 다른 객실에서 회담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송호경 부위원장이 자신이 기다리고 있는 객실로 찾아와서 하는 말이 남측의 입장이 지난번과 바뀐 것이 없어서 더 이상 회담을 진행할 수 없어 끝내고 왔다 면서 사실상 회담이 결렬되었음을 알려주었으며, 그러면서 현대측에 다시 대북사업권에 대한 대가 10억불 이야기를 꺼내 놓으면서 송 부위원장이 현대에게 7억불을 요구하였으나 현대가 이를 거절하자 다시 5억불을 요구하였다가 결국 현대가 4억불을 지급키로 합의를 하였으며, 북측은 이 자금을 언제까지 줄 것인지를 놓고 다시 논의를 하였는데, 북측은 4억불을 정상회담 전까지 달라고 요구하여, 정몽헌 회장이 회담 전까지 4억불을 주는 것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이 그럼 정상회담추진을 그만두겠다 면서 지급 시기를 회담 전까지로 못을 박으려고 하여, 이왕 4억불을 주기로 하는 마당에 정상회담은 성사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럼 회담 전에 이 자금을 주면 우리 정부측과 계속 협의를 하겠느냐 라고 하니까, 송 부위원장도 그렇게 약속을 한다면 계속하겠다 라고 하여, 저희는 한발 더 나아가 이 돈을 이달 전까지 주는 대신에 금액을 3억 5천만불로 제의하여 그 부분까지 합의가 이루어져 그날 결렬되었던 남북당국자간 회담이 재개되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현대가 북측과 합의한 내용에 대해서 그 당시에는 들은 바가 없고 현대와 북측이 잠정합의서를 만든 2000. 5월 초순경 김윤규로부터 들었습니다.
문 : 그리고 정몽헌 회장은 송호경이 남북당국간 회담을 재개하고서 한참 시간이 흘러서 정몽헌 회장이 머물고 있는 객실로 다시 찾아와서 남측이 한 장(1억불)을 주기로 했다 면서 남측이 안줄 경우 너희가 대신 지불하라 는 말을 하였고, 그래서 자신이 정부가 주겠다고 했으면 그쪽에서 줘야지 어떻게 우리가 대신 내놓느냐 라고 하니까, 송호경 부위원장이 그럼 당신들이 보증을 서라 고 하여, 제가 그건 거기(정부)꺼고, 우린 우리껀데, 어떻게 우리보고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거냐 면서 거절을 하니까 송호경이 정부의 보증이 되지 않으면 정상회담도 할 수 없다 면서 강경입장을 보이기에 한발 물러서는 척 하면서 좋다. 남측 정부가 못줄 경우 우리가 책임을 지겠다. 그렇다면 당신들도 우리에게 주기로 한 사업권에 통신사업을 추가하여 포함시키고, 독점권까지 넣어달라 라고 하니까, 북측에서도 자기들 쪽에 연락을 하는등 고심을 하다가 결국 현대측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었으며, 다시 남쪽 당국자간 테이블로 돌아간 이후에 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한 합의문 에 서명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러한 과정을 저는 전혀 알지 못하고, 당시 회담이 수차례 정회를 반복하다가 합의에 이른 것은 사실입니다.
문 : 그 뒤에도 들은바가 없는가요.
답 : 그 뒤에도 들은바가 없고, 조사를 받으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문 : 4. 8. 합의를 본 후에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 사이에 합의문 외에 경제지원이나 금전에 관한 별도의 합의서 등을 작성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합의가 된 후에 식사 등을 한 바 있는가요.
답 : 호텔에서 박지원 장관과 송호경이 기념촬영을 하고나서 저녁에는 베이징 시내에 있는 장안구락부에서 식사를 하였습니다.
문 : 위 각 회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대측 사람들을 만난 적은 있는가요.
답 : 각 회담시마다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정몽헌, 이익치 회장이 잠깐 와서 각 대표단에게 덕담을 하였습니다. 그 외는 별도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문 : 귀국 후에 4. 8. 합의를 이행하기 위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였는가요.
답 : 귀국 후에 저는 본연의 업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실무준비를 위해서 청와대, 국정원, 통일부 등을 중심으로 실무작업에 착수하였고, 위 1억불을 마련하는 업무에 대하여는 제 자신이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2000. 5. 초순경 현대가 북측과 북한내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건설 및 기간산업 투자를 위한 7대 경협사업에 잠정합의하였는 바, 30년간 사업독점권을 확보하여 국내외 기업들과 컨소시엄을 형성·진출하며, 토지사용은 무상제공 받는 등의 혜택을 보장받고, 그 대가로 5억불을 지불키로 잠정합의했다 는 내용의 정보보고를 한바 있지요.
답 : 제가 김윤규로부터 관련서류 여러장을 팩스로 받았는지 직접 전해 받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를 즉시 임동원 원장에게 보고한바 있습니다.
문 : 위 보고를 받은 임동원 원장이 누구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아는가요.
답 : 대통령에게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박지원 장관, 이기호 수석 등에게도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가요.
답 : 다른 분들에 대한 부분은 제가 알지 못합니다.
문 : 현대가 통일부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요.
답 : 승인을 받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민간기업의 경협을 장려하는 것이 정부방침이었고 현대가 정상회담 성사에 기여한 점도 있어서 제 입장으로는 무어라고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문 :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4억불 지급에 관하여 검토를 하여보라는 지시를 받거나 검토를 하여 보고를 한 적이 있는가요.
답 : 지시를 받거나 보고를 한바 없습니다.
문 : 그런데 임동원 원장은 대통령에게 4억불 지원에 대한 보고를 드리면서 4억불 송금에 대한 실정법상의 문제점과 그에 반해서 현대측이 취할 수 있는 이익 등에 대한 논의 결과를 보고를 드렸다고 하는데, 그러면 이러한 검토를 임원장이 단독으로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검토를 시킨 것으로 보아야하겠네요.
답 : 저는 검토한 기억이 없습니다.
문 : 실정법상의 문제점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답 : 북한으로 투자자금 등의 송금을 위해서는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읽을 수 없음) 대가로서 4억불이라는 자금을 지원하는 것은 정상적이지 못하여 결과적으로 통일부장관의 승인을 받을 수 없는 사항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자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지급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실정법을 위반하지 않고서는 지급할 수 없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결국 정부가 이를 묵인해주지 않고서는 송금자체가 불가능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 : 이러한 문제점에 대하여 임원장이 당시 김대중 대통령께도 보고를 드린 사실을 아는가요.
답 : 현대의 4억불 문제를 보고한 것으로 아는데 실정법상의 문제점까지도 보고를 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보고를 받으신 대통령께서 실정법에 다소 어긋나더라도 현대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볼 때 인정해 줄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면서 사실상 묵인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셨다는 말을 들은바 있는가요.
답 : 그러한 말을 들은 바 없습니다.
문 : 현대가 북한에 사업권 취득 대가로 주기로 한 4억불은 정상적으로 정부의 승인을 받지 못하는 자금이라는 것을 알고도 임동원 (한 줄 읽을 수 없음) 결론을 내렸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가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그러나 정몽헌 회장의 진술은 이건 잠정합의서에 의하여 5억불을 지급키로 한 것이 아니고, 남북정상회담에 임박하여 자신들이 4억불을 부담하게 되고, 정부측의 1억불까지 보증을 하는 마당에 자신들이 그동안 추진해 왔던 대북사업권을 보다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어서 급하게 사업계획 등을 검토한 이후에 작성된 것으로서 잠정합의서에 기초하여 그 대가로 5억불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4. 8. 회담때 현대가 4억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말을 들은 바가 없어서 그에 대하여는 아는바가 없습니다.
문 : 그러면 현대가 4억불을 주기로 하였다는 사실은 위에서처럼 5. 초순경에 처음 들었다는 것이네요.
답 : 그렇습니다.
문 : 당시 현대는 왕자의 난사태 이후에 자금난이 극심해서 4억불을 지급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던 점을 알지요.
답 : 알고 있습니다.
문 : 그런 현대가 5억불을 지급한다는 말을 듣고 현대측에 확인을 한 (한 줄 읽을 수 없음)
답 : 현대가 어떻게 자금을 마련하겠지라고만 생각하였고 확인을 한 바는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2000. 5월 중순경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 객실에서 박지원 장관을 만났으며, 이 자리에서 박장관이 정부에서 1억불을 보내야 하는데, 여의치 못하니 현대에서 대신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라는 말을 하였고, 당시 현대도 4억불의 자금 마련에 고심하고 있던터라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니까, 박장관이 정부도 나름대로 노력을 하고 있는데 문제가 있어서 그럽니다 라면서 현대가 협조해 줄 것을 요청하기에 마냥 거절할 수만 없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저희도 자금이 여의치 못하니 자금지원을 부탁드립니다 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저는 박장관과 정몽헌 회장이 만난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가 정부의 1억불을 대신 지급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요.
답 : 정상회담을 하고 온 직후인 2000. 6. 중순경부터 김윤규가 사무실로 찾아오거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수차례에 걸쳐 현대가 정부 몫 1억불을 도와주었으니 현대를 도와달라는 부탁과 떼쓰기를 한 바 있습니다.
문 : (한 줄 읽을 수 없음)
답 : 저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을 하였으나, 내심으로는 현대가 대신 지급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현대를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하였습니다.
문 : 정부 몫에 관한 이야기를 다른 사람과 나눈 적이 있는가요.
답 : 저는 김윤규 외에는 말한 사실이 없고, 다만 2003. 1.경 참여정부인수위 시절 신정부쪽 인사로부터 대북송금액 중 1억불이 정부 몫이라는 말을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문 : 그러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있고 극히 소수일텐데 누구로부터 들었다는 것인가요.
답 :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아니합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은 현대가 정부의 1억불을 부담하는 대가로 박지원 장관에게 자금지원을 부탁하였다고 하는데, 정부의 1억불을 대신 부담하는 대가로 정부측으로부터 단순 자금지원 차원이 아닌 보다 확실한 대가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 어떤가요.
답 : 확실한 보장책을 요구했으리라는 짐작은 가나 그 점에 관하여는 제가 아는 바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가 보내온 잠정합의서를 보고 그 내용이 부실하다는 생각을 한 바 있는가요.
답 : (한 줄 읽을 수 없음) 였습니다.
문 : 진술인이 직접 현대의 남북정상회담 대북송금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측 인사에게 협조를 요청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이기호에게 남북사업을 하는 현대를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은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정확히 기억은 없으나 현대가 잠정합의서에 따라 4억불을 송금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이후였던 것으로 기억되나 대북송금 때문에 자금지원을 부탁한 것은 아니고 일반론적으로 현대를 위하여 부탁을 한 것입니다.
문 : 2000. 4. 이전에도 이기호에게 현대의 자금지원을 부탁한 적이 있었나요.
답 : 없었습니다.
문 : 국정원의 5국장의 위치에서 경제수석에게 자금지원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요.
답 : 국정원법에서도 직권남용을 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있고 해서도 안되는 줄을 알지만, 김윤규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들어서 제 스스로 판단하여 자발적으로 한 것입니다.
문 : 그런 정황만으로 이기호에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잘 납득이 안되는데 박지원이나 임동원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바 있는가요.
(492페이지 누락)
문 : 이기호는 무엇이라고 하던가요.
답 : 어떤 때는 도와주어야 하지요 라고도 반응을 보이고 어떤 때는 어렵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문 : 이기호는 그 당시에 현대를 구조조정하는 방침을 세운 사람으로서 현대에 지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으면 부담을 가졌을 텐데요.
답 : 부담을 가졌으리라고 예상은 되지만 저로서는 그 이상 대북사업이 중요하였습니다.
문 : 그러면서 이기호는 진술인이 대북관계에 있어서 실무적인 총 책임자로서 대북업무를 주도하였다 라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국정원에서 실무책임자는 본인인 점은 틀림없습니다.
문 : 위 정상회담 이전에 북한의 김정일, 송호경, 김용순 등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는가요.
답 : 제가 주로 상대한 사람은 전금진(아태 책임참사)이었고, 김정일은 2000. 6. 3. 방북시 1회 만났고 송호경은 싱가폴에서 처음 만났고 김용순은 2000. 5. 27. 방북시 처음 만났습니다.
문 : 또한 남북정상 회담의 특사로 파견된 박지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답 : (한 줄 보이지 않음)
문 : 진술인은 위 북측 인사와 남측 박지원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남북정상 회담 성사를 위해서 수차례 박지원과 만나서 대북송금 자금 관련 이야기를 했었을 것 같은데, 어떠한가요.
답 : 2000. 4. 10. 박장관의 기자회견 자료를 만들어준 뒤로는 정상회담때까지 만나거나 특별히 연락을 한 적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실질적으로 정상회담 이전 위 대북송금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이기호에게 대출 청탁 등을 한 것이 사실인 것 같은데, 어떠한가요.
답 : 저는 전반적으로 현대를 도와달라는 취지로 부탁을 한 것인데,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송금문제로 부탁을 한 것으로 오해를 받을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 : 진술인이 현대건설 김윤규 사장으로부터 대북송금에 관한 협조요청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2000. 6. 초순경 김윤규가 전화상으로 협조요청을 받은 바 있습니다.
문 : 김윤규와 직접 만난 사실은 없는가요.
답 : 제 기억에는 직접 만난 적은 없고 전화상으로 환전편의를 부탁받(한 줄 보이지 않음)
문 : 2000. 6월 초경 임동원 원장에게 환전편의 요청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김윤규로부터 부탁을 받고 임원장에게 보고를 하게 되었습니다.
문 : 김윤규가 액수도 말한 적이 있는가요.
답 : 김윤규가 액수까지 부탁을 하지는 안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다만 정상회담전에 보내야한다고 다급하게 부탁을 하였던 것입니다.
문 : 임동원 원장은 당시 제5국장이던 진술인으로부터 현대측으로부터 2억불을 북한으로 보내려고 하는 과정에서 환전편의 제공요청이 왔었다 면서 자신에게 실무부서에 가능여부를 하문해 달라 는 건의가 있었으며, 최규백 실장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보고와 함께 실무자의 연락처를 받아서 진술인에게 건네준 기억이 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임원장에게 2억불이라고 보고를 했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위와같이 보고를 하여 임원장을부터 실무자인 김00, 김00의 전화번호를 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리고 나서 김윤규에게 전화번호를 가르쳐준 적이 있습니다.
문 : 현대건설 김윤규 사장에게 실무자들의 연락처를 건네준 것은 이(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그렇습니다.
문 : 국정원 직원이 현대측 관계자를 만나서 송금과 관련하여 협의를 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요.
답 : 협의를 잘 했으리라고만 생각하였고 더 이상 확인은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문 : 진술인은 당시 송금편의를 어떻게 받아들였는가요.
답 : 저로서는 민간기업의 편의를 봐준 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절차상 무슨 문제가 있는가보다 라고만 생각하였지 적법한지 아닌지 하는 점에 대하여는 깊이 살펴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문 : 이 점에 대하여 진술인은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나요.
답 : 제가 좀더 깊이 있게 확인하지 못한 관계로 임원장이나 최근에 기소된 최00 그리고 국정원에 누가 된 점에 대하여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문 : 진술인은 단지 대북송금을 위한 환전요청만 받은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현대측 인사와 접촉하여 송금까지를 부탁받았고, 송금과정에 주도적으로 간여하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아닙니다. 저는 전화번호를 넘겨준 사실밖에는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현대측으로부터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액 2억불 뿐만 아니라 현대건설의 (한 줄 보이지 않음)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요.
답 : 아닙니다.
문 : 진술인은 6. 10. 남북정상 회담이 하루 연기된 전문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 6. 10. 오후 4시경 국정원 상황실을 통해서 전문을 받아서 알고 있습니다.
문 : 위 전문을 받은 부서는 진술인이 국장으로 있던 대북전략국이 아닌가요.
답 : 5국이 중심이 된 별도의 상황실에서 전문을 받았습니다.
문 : 위 전문 내용에 회담이 연기된 사유에 대해서 기재가 되어 있었는가요.
답 : 기술적인 준비관계로 하루 연기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문 : 회담이 하루 연기된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2000. 6. 3. 임원장과 저가 수행원(서00 당시 과장)을 대동하고 극비리에 판문점을 통하여 방북을 하여 그날 저녁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김정일 위원장이 김대통령의 신변안전을 확실히 해야한다. 12일 방북을 하루 앞당기거나 하루 늦추는 방안도 생각해서 혼돈을 주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에 임동원 특사가 일정을 (한 줄 보이지 않음) 고려할 때 하루를 앞당길 수는 없다고 답을 하였고 서로 결론을 내지는 아니하였습니다. 그리고 6. 4. 귀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6. 10. 연락을 받고나서 직감적으로 하루를 늦추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문 : 최근까지 이 부분은 알려지지 아니한 부분이지요.
답 : 임동원과 북측의 김용순사이에 이점은 극비에 부치기로 합의된 내용인데 최근 언론 보도로 곤혹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6. 3. 외에도 정상회담을 앞두고 방북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2000. 5. 27.에도 임원장, 저, 서훈 3명이 판문점을 통하여 방북하여 대남담당사업비서인 김용순(67세)을 만나서 정상회담진행문제와 공동선언문채택문제를 협의하였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당일 돌아온 사실이 있습니다.
문 : 5. 27. 방문과 6. 3. 방문 모두 김대중 대통령께 보고를 한 사안인가요.
답 : 임동원 원장이 모두 보고를 한 사안입니다.
문 : 회담을 앞두고 급히 북한을 2회에 걸쳐 방문한 것은 현대가 송금하기로 한 돈이 지연되자 이를 북측에 설명하기 위하여 방문한 것(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정말로 아닙니다.
문 :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이미 정상회담준비 선발대가 평양에 가 있었고 정상회담이 공식적으로 발표가 된 마당에 극비리에 갈 이유가 없지 아니한가요.
답 : 정상회담의제나 구체적인 공동선언문과 같은 내용이 전혀 준비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이를 논의하기 위하여 방북을 한 것입니다.
문 : 극비리에 갔다면 통일부도 모르게 다녀온 것인가요.
답 : 통일부도 모르게 다녀온 것입니다.
문 : 2000. 4. 20.자로 남북정상회담추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그 위원장이 통일부장관이었는데, 위원장에게 보고를 하지 아니하였지요.
답 : 아니하였습니다.
문 : 다녀온 목적이 진술인이 말한 바와 같다면 당연히 추진위원회나 그 위원장에게 보고를 하여야 할 내용으로 보이는데 보고를 안한 이유가 있는가요.
답 : 별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여 보고를 안한 것입니다.
문 : 다녀온 후에는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였는가요.
답 : 임원장이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 연기가 된 실질적인 이유는 현대상선이 송금할 2억불을 2000. 6. (한 줄 보이지 않음)로 송금된 4,500만불이 계좌번호를 잘못 기재하여 북한측 계좌에 늦게 입금된 것 때문 아닌가요.
답 : 관련이 없다고 봅니다.
문 : 정상회담 이후 현대건설이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이기호 수석에게 부탁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현대건설이라고 특정한 것은 아니지만 정상회담 이후에 현대의 금강산관광사업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을 한 적은 있습니다.
문 : 이기호 수석의 진술에 의하며, 6. 15. 정상회담 이후 같은 달 20. 사이에 국정원에서 회담후속조치 관련 회의를 2~3회 정도 하였다고 하는데, 당시에 참석자는 어떠한 사람들인가요.
답 : 저는 기억에 없습니다.
문 : 위 회의의 주 안건은 무엇이고 토의한 내용은 무엇인가요.
답 : 마찬가지로 지금으로서는 기억에 없습니다.
문 : 위 회의석상에서 진술인은 국정원의 입장이 현대건설이 남북정상회담의 일등공신 역할을 했는데, 지금 현대건설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러니 현대건설에 지원을 해줘야 앞으로 대북사업이 원활히 추진되고 대북사업이 원활이 추진되어야 남북정상회담 이(한 줄 보이지 않음)요하다 라는 것을 강조했고, 이기호도 이에 동조하여 산업은행 총재에게 대출 요청하였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렇게 말한 적이 없습니다.
문 : 정상회담 이후에도 위와 같은 모임에서 박지원 전 장관과 임동원 전 국정원장이 이기호를 볼 때마다 현대에 대한 지원을 강조했고, 현대가 일등공신이니 지원을 꼭 해주어야 한다는 취지로 강조, 그런 와중에서 진술인을 통하여 강력하게 현대지원을 요청하였던 것이고, 그래서 진술인이 그러한 내용을 강조할 때는 그것이 국정원의 뜻이고, 박지원 특사도 같은 뜻이고, 이러한 것들이 대북라인의 대체적인 입장이라고 하였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런 적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전 산업은행 총재였던 엄낙용을 현대상선 4,000억원 대출금과 관련하여 만난 사실이 있는가요.
답 : 만난 적은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은 언제, 어디서 어떠한 경위로 위 엄낙용을 만났나요.
답 : 2000. 8. 하순경인지 9. 하순경인지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인터콘티넨탈 호텔 950호 객실에서 만났습니다. 엄낙용으로부터 직접 전화를 받고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 : (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가끔 사용한 장소라서 기억합니다.
문 : 위 엄낙용을 만나서 어떠한 이야기를 하였나요.
답 : 산은총재로 부임을 해서 인사차 만났고 남북관계, 금강산관광 등이 잘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였고 약 1시간 정도 만났습니다.
문 : 전에도 엄낙용을 만난 적이 있는가요.
답 : 2000. 7. 하순경에 남북장관급회담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는데 그 10일전 모의회담을 하면서 당시 재경부 차관인 엄낙용을 처음 만나서 알게 되었습니다.
문 : 엄낙용의 진술에 의하면, 김충식으로부터 위 4,000억원은 정부에서 쓴 돈이기 때문에 갚지 못하겠다는 말을 듣고, 위 사실에 대해서 확인하기 위해서 임동원 국정원장에게 만나자고 하자, 임동원 원장이 진술인을 만나라고 하여 진술인을 만났다고 하는데, 어떠한가요.
답 : 임동원 원장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사실은 없고 엄낙용이 제기한 현대상선 대출문제에 대해서는 제가 아는바가 없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문 : 또한 엄낙용의 진술에 의하면 진술인에게 김충식 사장이 현대상선의 대출금 4,000억원은 정부에서 사용한 돈이기에 갚지 않는다(한 줄 보이지 않음)치하겠다. 걱정하지 말아라 로 말을 하였다는데, 어떠한가요.
답 : 그런 말을 제가 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저는 김충식도 모르는 사이고, 현대상선의 산은대출을 몰랐기 때문에 제가 조치하겠다고 말한 바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걱정스러운 문제라고 말한 것은 기억납니다.
문 : 그러면 신임 산은총재인 엄낙용이 국정원 당시 3차장을 업무상 관련이 없음에도 특별히 만난 이유가 무엇이었다고 보는가요.
답 : 저는 인사차 만난 것입니다.
문 : 진술인은 엄낙용의 위와 같은 말을 듣고 어떠한 조치를 취했나요.
답 : 특별한 조치를 위하거나 임동원 원장에게 보고를 한 바도 없습니다. 그날 이후에는 엄낙용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은 바 없습니다.
문 : 위 이후 현대상선 김충식은 위 대출금을 갚겠다고 종전의 입장과 다른 태도를 취하였는데, 진술인이 김충식 사장이나 현대 관계자에게 어떠한 압력을 넣은 것이 아닌가요.
답 : 그런 사실은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2000년 하반기경 현대 정몽헌 회장을 만난 사실이 있는 (한 줄 보이지 않음)
답 : 현재로서는 기억에 없습니다만, 혹시 정상회담에 함께간 일행들의 모임(주암회, 정상회담시 남측인사들이 묵었던 북측의 주암초대소를 따서 만든 모임, 회원 약 30여명)에서 만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문 : 김충식 사장의 진술에 의하면, 2000. 6. 7. 현대상선이 산업은행으로부터 4,000억원을 대출받은 이후에 이를 변제하지 못하게 되자 자신이 정몽헌 회장에게 거의 매일 같이 가서 돈을 돌려받기 위해 당시 국정원장 임동원과 만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스케줄을 잡으라고 종용하였으며, 임동원 국정원장측에서 3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진술인을 만나라고 하여서 정몽헌 회장이 진술인을 만나고 왔었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점은 모르고 정몽헌을 만난 사실이 없습니다.
문 : 정몽헌 회장이 진술인을 만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재정문제이므로 이기호 수석과 이야기해보라 고 했었다고 하였다는데 어떤가요.
답 : 그 점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문 : 진술인은 특검수사가 시작된 이후에 사건 관련자들을 만난 적이 있는가요.
답 : (한 줄 보이지 않음)를 1회 만난 적이 있습니다.
문 : 구체적으로 나눈 말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답 : 2003. 4. 하순경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 인터콘티넨탈호텔 1250호에서 제가 연락하여 저녁식사 후에 박지원을 만나서 당시의 여러 가지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결국 1억불에 관해서는 조사를 받더라도 말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점이 알려지면 정상회담을 돈주고 샀다는 오명을 들을 것이고 남북관계에도 나쁜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2003. 5. 중순경 저녁에 임동원, 박지원씨에게 제가 연락을 하여 같은 장소에서 만나서 걱정을 함께 하고 역시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2003. 5. 하순경 저녁에 같은 장소에서 임동원을 만나서 같은 이야기를 나눈 바 있습니다.
2003. 5. 24경 이기호로부터 연락을 받고 저녁에 같은 장소에서 만나 하나(1억불)는 없다고 다짐을 한 바 있습니다.
문 : 진술인이 말하기 어려운 점을 오늘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답 : 첫째는 특검에 나와보니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둘째는 제가 진술을 하지 아니하면 제 부하직원들이 나와서 (한 줄 보이지 않음)고 생각하였습니다.그러나 이런 말을 한 것에 대하여 자책감을 가집니다. 다만 특검에서 남북관계를 고려하셔서 지혜로운 판단을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문 : 이상 진술이 모두 사실인가요.
답 : 예, 모두 사실대로 진술하였습니다.
위 조서를 진술자에게 보여준 후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날(무)인케하다.
진술자 : 김 보 현
2003. 6. 11.남북정상회담관련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등의진상규명을위한특별검사사무소
특별검사보 : 박 광 빈
검찰주사보 : 김 행 식
[ 2003-12-01, 14:14 ] 조회수 : 4
출처 : 월간조선
[출처] 본 기사는 조갑제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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