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각하

[스크랩] 검찰도 확인한 전두환의 억울한 누명

그리운 오공 2007. 3. 3. 18:50

1996년 3월 검찰은 "5.18측 주장이 있지만 사실을 지배하지는 못한다.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진압 작전에 관여하는 것은 행정적으로 불가능하다. 5.18측 주
장을 사실로 성립시킬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하였다. 김대중 정권 때 광
주일보가 광주항쟁 20주년 특집을 위해 다시 시도하였지만 오로지 김대중의 사람
정웅 소장이 단독으로 진압작전을 결정하고 명령 내렸다는 사실만 재확인하였을
뿐이다. 광주학살을 주장했던 한홍구에게는 역사학자로서 생사가 걸린 문제였으
므로 노무현 독재정권의 과거사위원회도 여태껏 전국을 샅샅이 뒤졌지만 김대중
의 사람 정웅 소장이 단독으로 광주폭동 진압작전을 결정하고 명령 내렸다는 엄연
한 사실을 뒤집을 단서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겉보기에 사기꾼들의 목소리 큰 유언비어가 지난 27년 승리한 듯하지만, 점차
로 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문명인들이 나타날 것이다. 야만인들은 유언비어
에 선동되나, 문명인은 객관적 사실 성립을 위한 근거를 묻는다.

여기 5월 26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를 방문하기 하루이틀 전쯤에서야 광주사
태 소식에 접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광주사태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으
되 오천 명을 힉실히였다는 누명을 썼다. 사실, 5.17긴급조치 확대는 최규하 대통
령 정부의 결정이요, 전두환이 관련된 일이 아니었다. 모 기자의 말에 따르면 북한
이 남한 친북좌파와 자생 간첩단들에게 보내는 무신이 미국 정보부에 포착되었다
고 한다. 즉, 남한에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고 김일성이 서울에 무혈 입성할 계획
이 진행되고 있음을 미국이 한국 정부에 통보하고, 5월 16일 전국학생회장연속회
의차 모인 이화여대강당에 모인 학생들이 그날 오후 6시에 김대중의 5월 22일로
예정된 쿠데타 거사 계획에 대하여 경찰에 알려 주었기에 중동 순방 중이었던 최
규하 대통령이 급히 귀국하여 5.17비상국무회의를 소집하고 비상계엄을 확대하였
다.

(동영상: 5.18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선포하시는 최규하 대통령)


5월 18일 10시경 오십 명 내지 백 명의 학생과 노동자들과 들불야학 청소년들이 전
남대 앞에서 7명의 공수부대원들에게 돌을 던졌다. 경비 근무 중이던 공수부대는
이열 종대로 부동자세로 선 채로 날아오는 돌을 맞고도 피하지 않고 있었다. 7명
이 무슨 학살을 하는가? 그러나 윤상원은 한편으로는 계속 돌을 던지도록 선동하
면서 한편으로는 녹두서점의 전화로 전국 운동권에 공수부대가 지금 학살극을 자
행하고 있다고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 소문은 당시 서울대 3학년 유언비어 제조
기들을 통해 다시 확대되어 공수부대가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시민을 향해 무차별
사격하고 있다고 퍼져 나갔다.

11시에 몇몇 전남대 학생들과 윤상원이 이끄는 노동자들과 들불야학 청소년들이
다시 금남로에 모였으며 그 수가 300명으로 늘었다. 그러나 학생회장이 보이지 않
으므로 해산하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경찰이 박관현 학생회장을 죽였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윤상원은 아침 8시에 박관현이 광주 외곽 산장으로 피신한 것을 알고 있
었다. 그럼에도 그는 거짓 유언비어를 이용해 파출서에 돌질하도록 했다. 그리고
평소에 미리 화염병 만드는 방법으로 화염병을 제조해 시위대에 나누어 주었다.
아마, 이것이 광주에서 시위 때 화염병이 처음 사용된 때였을 것이다. 그리고, 잘
못 알려진 것과 달리 처음에 과잉진압을 한 공권력은 공수부대가 아니라, 경찰이
었다. 광주시민이 기억하는 과잉진압은 광주경찰이 한 여대생을 연행하였다는 것
이다. 그것이 과잉진압의 전부였다.

MBC의 "두 개의 내란"에서 숨기는 시위진압 작전 시간은 오후 5시 40
분이다. 그 전에 시위대의 온종일 계속되는 방화와 파출서 파괴가 있었다. 5.18 단
체들이 인정하는 완전 파괴된 파출서들의 수만 6개였다. 그리고 엠비시가 조작하
듯이 게릴라 소탕 작전을 위해서가 아니라, 광주경찰서장과 광주시장과 전남도지
사의 요청으로 광주향토사단의 정웅 소장이 2개 대대에 시위 진압 명령을 내린 것
이었다. 그러나 광주애서 벌어지는 일을 전두환이 서울에서 무슨 도리로 알고 있
었겠는가? 광주시 경찰서로부터 치안 유지 능력을 상실했다는 보고를 받은 내무부
가 처음에 시위 진압을 위해 노력했지만 전두환에게 알려 주었을리 만무하다. 전
두환은 적어도 광주사태 초창기에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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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검찰도 확인한 전두환의 억울한 누명
글쓴이 : 시사논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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