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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피우는 건 肉食(육식)이 아니라 菜食(채식)입니다』 |
월간조선(2000년1월호) |
●『(백담사로) 쫓아낸 사람 미워하는 마음에 6개월간 이를 갈았더니 내외 모두 이빨이 못 쓰게 됐어요』 (1999년 2월 초 일본 방문 때 明月寺에서 신도들을 앉혀 놓고) ●『두 분이 다 대머리이신데 나와 셋이 나가면 주변이 환해질 겁니다. 야간경기 때 우리가 나가면 선수들이 행복해 하겠어요』 (1986년 9월 국제 스포츠 요인들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崔鍾賢 회장, 이쪽은 「할렐루야」 팀이래요. 어때요, 「나무아비타불」 팀을 한 번 만들어서 같은 崔씨끼리 잘 해 보시는게』 (1980년 말 프로축구를 출범시키고 싶다는 崔淳永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건의를 듣고) ●『지도자의 요건으로 마지막 욕심을 부린다면 인간적 魅力이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맛이 당기는 사람, 한 번쯤 더 만났으면 싶을 정도의 매력이 있으면 좋다』 (1988년 2월3일 대통령 이임 기자회견 문안에 대한 지침을 내리면서) 金炯植 月刊朝鮮 기자 矛盾의 등식 「全斗煥(전두환)」하면 대개의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新軍部(신군부), 쿠데타, 철권통치, 백담사, 감옥… 그의 주위를 맴도는 낱말들은 총구의 화약 냄새와 권력의 쓰라린 종말을 연상시킨다. 10·26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군복 차림의 육군 소장 全斗煥 합수부장의 매서운 눈초리, 「본인은…」이라고 시작되는 대통령 全斗煥의 자글거리는 쇳소리, 일반 국민의 시선에 비친 公人(공인)으로서의 全斗煥은 냉엄한 권위의 화신이었다. 그러나, 가까이서 그를 지켜보았던 이들의 私人(사인) 全斗煥에 대한 평가는 그 반대다. 그렇게 진솔할 수 없고, 그렇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다정함이 진할 수 없단다. 게다가 좌중을 편안하게 만드는 유머감각도 탁월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철권통치자였던 全斗煥은 유머를 아는 유머리스트라는 것이 맞는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왜 사람들에게 인간 全斗煥은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굳어졌을까. 권력의 추가 시시각각으로 뒤바뀌고 生死(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찰나를 헤쳐나온 그가 어떤 자질과 특성을 가졌길래 유머감각을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저런 궁금증이 들 만도 하다. 激浪(격랑)을 이기고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의 경험칙상 「내가 누군데」 식의 지나친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나머지 쓸 데 없는 엄숙주의, 다시 말해 괜히 목에 힘주는 경우가 많고, 그런 사람은 보통 유머를 잘 구사할 줄 모른다. 사고의 유연성, 감성의 폭이 없고서는 유머란 지펴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철권통치자 全斗煥=유머리스트 全斗煥」이라는 등식은 좀체 성립될 수 없는 경우의 수, 矛盾(모순)에 가까운 소린데 그것이 도대체 가능하다는 말인가. 이 글은 그러한 호기심에 대한 小略(소략)의 스케치를 해보고자 시작되었다. 그러나, 호기심은 단지 호기심일 뿐 대단한 연구를 하려는 것도 아니니 독자들은 눈을 부라리며 이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허리띠 구멍을 한두 개 늦추고 푹신한 의자에 기댄 채 느긋한 기분으로 읽으면 제격이겠다. 읽다가 웃으면 스트레스는 조금 덜 테니 그걸로 족하겠다. 소가 뒷걸음치다 쥐 잡는다 1988년 11월23일 全斗煥 전 대통령이 유배 비슷하게 백담사로 찾아왔을 때만 해도 백담사는 크기만 컸지 시설이 형편없었다. 1999년 2월 초 나카소네 전 총리의 초청으로 일본을 방문한 全대통령이 明月寺(명월사)란 절의 법당에서 신도들을 앉혀 놓고 그 당시의 소감을 밝힌 바 있다(月刊朝鮮 1999년 3월호). 『요즘 같은 겨울이면 화장실에서도 동태가 되어버리거든요(웃음). 거기(백담사)서 2년 1개월을 살았지요. 그곳에서 부처님 말씀 가운데 우리 내외가 배운 것은 남을 증오하지 말자, 미워하지 말자는 거였습니다.…남을 원망하지 않으면, 남을 미워하지 않으면 큰 道(도)를 통해 옆에 있는 이 주지 스님보다도 나을 수도 있지요(좌중 웃음). 남을 미워하면 오장육부가 썩어요. 얼굴이 새까매지고 몸이 뒤틀리고 절밥도 왜 그리 맛이 없는지. (절밥을 짓는) 보살님 중 제일 솜씨 없는 분이 선발됐는지 김치 한 번 잘못 먹으면 하루종일 물을 먹어야 했지요. 무엇보다도 날 쫓아낸 사람 미워하는 마음에 6개월간 이를 갈았더니 내외 모두 이빨이 못 쓰게 됐어요』 「동태」 「주지보다 낫다」 「솜씨 없는 보살」 「6개월 이를 갈았더니」 등 全 전 대통령이 구사하는 용어는 투박하다. 세련되지 못하다는 것인데 그 점이 오히려 청중들에겐 진솔하게 비쳐지기도 한다. 一國(일국)의 최고 권력자, 大統領(대통령)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시장 바닥의 아저씨같은 말을 해대니 친근감을 느끼는 것이다. 백담사의 또 다른 예화 한 토막. 백담사를 찾아 온 불교신도들 앞에서 全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들 중에는 전직 대통령이 어떤 꼴로 지내고 있는지 구경하려고 오신 분들도 있을 겁니다.…바깥에서는 재임기간에 나쁜 짓만 한 사람이라고 저를 욕하고 있는데, 사람이 실수로써도 잘한 일 하나는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식으로 말입니다』 全대통령의 퇴임 후 비서관을 지냈던 閔正基(민정기)씨는 全대통령의 유머감각은 「솔직하고 陽性(양성)적인 성격」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어려운 지경에 처하더라도 그는 자신감과 여유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全 전 대통령의 백담사 생활과 관련, 閔비서관은 이런 예화를 소개했다. <백담사 유폐 생활 초기에 全대통령은 거처하는 방에다 「스님 日課表(일과표)」를 붙여 놓았다. 새벽 3시부터 시작되는 수도승들의 고되고 빡빡한 일정을 따라 했지만 수십년 동안 피워 온 담배는 끊기가 어려웠다. 스님들이 『이왕 우리와 똑같은 생활을 하기로 하셨으니 담배도 끊으시죠』라고 全대통령에게 권유를 했다. 그러자 全대통령이 말했다. 『절에서 지내려면 肉食(육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 담배는 고기가 아니라 잎으로 만든 것이다. 그렇기에 담배를 피우는 것은 肉食이 아니라 菜食(채식)이다』 全대통령은 이 응수로 스님들의 금연 권유를 그 자리에서는 물리쳤지만 며칠 안 가 담배를 끊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담배를 태우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들어가지 마쇼』 全 전 대통령의 여유와 낙관은 가끔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큼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7년 12월, 2년여에 걸친 감옥생활을 끝내고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하던 때였다. 全 전 대통령이 교도소 문을 나서자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의 질문들이 쏟아졌다. 막바지에 한 기자가 물었다. 『교도소 생활이 어땠습니까』 씩 웃음을 지어 보인 全 전 대통령 하는 말, 『여러분들은 (교도소에) 들어가지 마쇼』 순간, 취재 현장에 있었던 기자들이나 TV로 이 장면을 시청하고 있던 일반 국민들은 아랫배 근육이 당겨질 수밖에 없었다. 웃음이 터진 것이다. 이날은 군사 반란 및 내란죄의 首魁(수괴)로 법정의 판결을 받고 死刑(사형)선고까지 당한 인물이,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자신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시위하는 듯한 28일간의 단식투쟁을 한 사람이, 정권이 바뀌자 赦免(사면)되어 나오는 때였다. 최대한 당겨진 고무줄처럼 팽팽한 긴장이 현장이나 TV화면에 꽉 들어찬 순간인데 이같은 問答(문답)이 오갔으니 그의 발언은 고무줄을 탁 끊어놓는 것이었다. 일부 언론은 全 전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아직도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맥락을 뺀다면 그의 말은 인간적인 솔직함의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所感(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구구절절이 정치적인 修辭(수사)를 늘어놓지 않고 단 한 마디로 「솔직히」 모든 걸 대변해 준 셈이다. 全 전 대통령의 솔직함과 관련해서는 다음 例話(예화)를 한 번 보자. 1987년 5월경 全대통령이 平統(평통) 간부 2백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베푼 자리에서다. 『우리나라도 대머리협회를 하나 만드는 게 좋겠어요. 미국에서도 그런 모임을 결성했는데 아이젠하워 대통령도 회장은 못 했다고 해요. 대머리의 경제성도 무시 못 합니다. 비누나 샴푸를 쓰는 양이 보통 사람의 10분의 1도 안 돼요. 머리기름을 바르는 경우가 없어요. 나는 아무 물이나 바릅니다. 요새는 면도를 하고 난 다음에 스킨 로션을 바릅니다. 그게 끈적끈적해서 얼굴에다 바르고 머리에도 바르고…. 30년 동안 머리기름을 안 바른 돈을 모으면 빌딩 하나 지을 수도 있을 겁니다(참석자들 웃음). 이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마찬가지야. 머리 한 오라기 한 오라기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이발하는 분이 대머리 이발이 제일 어렵대요. 머리털이 없으면 사람 많은 데서 가족이 찾기에도 좋습니다. 훤한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참석자들 웃음)』 땜쟁이論 대개의 사람들은 자신이 「대머리」라는 사실을 되도록 감추고 언급하기 꺼려하지만 全 전 대통령은 오히려 「대머리」라는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유머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그는 대머리 얘기를 국내 인사와의 모임뿐만 아니라 외국 사람들을 초청한 자리에서도 써먹었다. 1986년 9월17일 사마란치 IOC 위원장 등 국제 스포츠 요인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였다. 全대통령의 말. 『이 자리를 함께 한 IOC의 티토프씨는 내가 소련인과 오찬을 같이하는 최초의 손님입니다. …독일의 바이츠 부위원장은 내가 독일을 방문했을 때 대통령 오찬 때 이어 오늘이 두 번째 오찬입니다. 두 분이 다 대머리이신데 나와 셋이 나가면 주변이 환해질 겁니다(참석자들 웃음). 야간 경기할 때 우리 세 사람이 나가 있으면 선수들이 행복해 할 것입니다(참석자들 폭소)』 솔직함의 핵심은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언뜻 보면 자신의 威信(위신)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행위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선뜻 솔직해지기가 어렵다. 그러나 「솔직함은 최선의 정책」(Honesty is the best policy)이다. 상대의 共感(공감)을 사기 때문이다. 全 전 대통령의 솔직함도 이같은 힘을 발휘한다. 퇴임 후 자신의 母校(모교)인 大邱工高(대구공고)를 방문했을 때다. 『흔히 工高(공고)를 인문계 명문고에 비교해서 「땜쟁이 학교」라고 합니다. 그러나 지난 30년 동안의 산업화 과정에서 우리 「땜쟁이 학교」 출신들이 땜쟁이 역할을 훌륭히 해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오늘의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 앞으로 우리 동문들은 국민화합이 시대적 요청이 되고 있는 요즘, 지역간의 갈등과 간격을 땜질하는 국민화합의 촉매 역할을 해나가길 부탁드립니다』 全 전 대통령의 「땜쟁이論(론)」이 끝나자 뭉클한 박수소리가 계속 이어졌다고 한다. 유머는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나온다. 유머는 시간(Timing)과 장소(Place)의 상황예술이기도 하다. 유머는 순발력이 필수다. 全 전 대통령의 순발력은 어떠할까. 1999년 2월 초의 일본 방문 때 일이다. 全 전 대통령 일행은 오사카(大阪)市의 네야가와(寢屋川) 홍수조절용 지하 하천 건설현장을 시찰했다. 현장에서 브리핑을 하고 안내하던 직원들이 계속 긴장하고 있자 全 전 대통령이 말했다. 『사실 이런 지하시설 공사는 한국 사람들이 일본 사람보다 훨씬 잘합니다. 이곳을 시찰할 필요도 없는 일인데…. 여러분들이 진작 金日成(김일성)한테 땅굴 파는 기술과 경험을 배워왔더라면 훨씬 쉽게 빨리 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순간 일본측 인사들이 폭소를 터뜨리고 분위기는 곧장 부드러워졌다. 업체 임직원들은 다투어 全 전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요청하고 얘기를 나누는 등 친밀감을 보였다. 「할렐루야」팀 대 「나무아미타불」팀 또 다른 예화. 全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비서관을 지냈던(1980∼1981년) 李相周 (이상주·강원대 총장, 울산대 총장 등 역임) 「한국방문의 해」 추진위원장의 목격담이다. <1980년 말이다. 프로야구 출범 일정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崔淳永(최순영) 신동아 그룹 회장이 당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崔회장은 프로야구 출범에 자극을 받았던지 프로축구 출범에 대한 관심을 여기저기 나타내었다. 한 번은 새마을 성금을 낸 기업가들과 全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오찬을 가졌다. 崔회장이 『프로축구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고 운을 뗐다. 육사에서 골키퍼를 했던 全 대통령은 축구라면 대단한 열의를 가진 분이었다. 李順子(이순자) 여사도 『(全대통령은) TV에서 축구만 하면 TV 앞에 앉아 눈을 떼지 않는다. TV를 부술까 겁날 정도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하튼, 崔회장이 『제가 이미 「할렐루야」라는 실업팀도 갖고 있습니다. 다만 다른 팀이 없어서…』라며 프로축구에 대한 관심을 계속 나타내자 全대통령은 마주앉은 崔鍾賢(최종현) 전 SK(당시 선경) 회장을 보며 말을 건넸다. 『崔회장, 이쪽은 「할렐루야」 팀이래요. 어때요, 「나무아미타불」 팀을 한 번 만들어서 같은 崔씨끼리 잘 해 보시는게…』 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후 SK 子(자)회사인 유공에서는 축구팀이 만들어졌다> 축구와 관련해서 朴鍾煥(박종환) 전 국가대표 감독은 全 전 대통령을 이렇게 기억한다. 『프로축구 일화팀 감독을 맡아 1993년 시즌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全 전 대통령께서 「한 번 더 우승하면 감독과 선수를 모두 초청해서 갈비를 실컷 먹여주시겠다」고 하시더군요. 1994년 일화가 또 시즌 우승을 했습니다. 全 前 대통령께서 연희동의 한 갈빗집으로 선수들을 모두 초청하셨어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게 실컷 먹고 잘 뛰면 우승하는 거다」고 그러세요. 소탈하고 어린이처럼 순진한 면이 많으신 분입니다』 全 전 대통령은 고교 축구 결승전에 가끔씩 참석하여 선수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그럴 때 全 전 대통령이 양팀 주장의 어깨를 툭 치며 『축구는 골을 많이 넣어야 이기는 거다』라고 말했다. 朴감독의 말은 이어진다. 『1996년쯤 해서 일화팀도 그만 두고 집에서 쉬고 있을 때입니다. 한 번은 이주일씨와 함께 연희동으로 찾아 뵈었죠. 어른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鄭의원(이주일을 지칭), 난 정부에 있던 돈, 없던 돈 다 내놓았어요. 여기 있는 朴감독이나 나나 실업자 신세이고 하니 鄭의원 용돈을 우리 셋이서 좀 나눠 씁시다」 웃고 말았지만 속으로 찡하더군요』 자신에 대한 솔직함과 타인에 대한 개방성. 이는 보통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全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대통령 공보비서관을 지내면서 통치사료담당도 했던 金聲翊(김성익)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全대통령은 국정 수행에 자신감을 가진 뒤로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 全대통령의 유머는 결국 이러한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오랜 기간 軍(군) 지휘관 경험을 통해 국가와 공공선에 대한 확신이 서 있었다는 점도 자신감의 한 축을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選擧(선거)를 치르지 않고 權座(권좌)에 올랐기 때문에 선거로 인한 빚이 없었다. 국정운용의 비용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全대통령은 인재들을 등용, 適材適所(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국정 수행 능력을 높여나갔다. 全대통령은 이같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유머를 점차 구사해나갔다. 全대통령의 화법은 서민적이고 개방적이다. 투박한 말투와 구수한 입담으로 상대를 편안하게 해준다. 딱딱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全대통령 스스로가 먼저 유머를 끄집어 내었다. 사실 全대통령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특히 비공식 모임에서는 참석자들이 말을 하지 않아 全대통령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자신부터 나서는 것 같았다. 화술이나 순발력 등에 스스로 자신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젊은 시절부터 軍 지휘관으로 남 앞에 나서서 얘기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全대통령은 말을, 사람을 다스리는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생각했다』 『용갑이, 열심히 하고 충성스러우면 되는 거야』 全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게 하나 있다. 全 전 대통령은 「보스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보스 기질이란 사람을 끌어들이는 능력. 그는 구수한 말투와 다감어린 화법, 때론 유머러스한 분위기로 부하들의 마음을 샀다. 金容甲(김용갑)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들어본다. <안기부 기조실장 자리에서 물러난 뒤 미국으로 1년간 유학을 떠났다. 그 후 한국에 돌아오는데 청와대로 오라는 연락이 왔다. 全대통령이 나에게 민정수석직을 맡길 것이라는 얘기였다. 나는 그 일을 맡을 마음이 없었다. 청와대에 들어서자 全대통령이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야, 용갑이. 너 얼굴 참 많이 좋아졌어. 미국 양식이 좋은 모양이지』라고 말했다. 全대통령의 구수한 말투에 「절대로 일을 맡지 않겠다」는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용갑이, 민정수석 자리 너를 위해 비워뒀어』 『능력이 없습니다』 『능력 알아. 열심히 하고 충성스러우면 되는 거야』 대통령이라는 체면도 내세우지 않고 친근한 선배처럼 권유했다. 『일주일 여유만 주십시오. 짐도 싸고 미국의 知人(지인)들에게 인사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갑이, 짐은 부인이 알아서 꾸리라 그러고, 미국 사람들한테는 그냥 편지로 때워. 지금 얼마나 급한데 일주일을 주나』 나는 거절은커녕 그날부터 민정수석이 되어버렸다> 『자네는 나랑 동갑이야』 全 전 대통령은 자신의 死生觀(사생관)과 관련, 1987년 4월21일 故 李炳注(이병주)씨와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이렇게 토로한 적이 있다. 『나에게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뚜렷한 死生觀이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일개 병정도 자기가 맡은 땅을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압니다. 장교 때도 나는 그러한 생각을 가졌었어요. 패튼 장군이 한 말에 「병사는 말발굽에 밟혀 죽는 것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이고 적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이다」라는 것이 있어요. 이 경우 말발굽이라는 것은 지금으로 말하면 자동차 사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는 이렇게 결심했어요. 「소대장, 대대장, 연대장으로 軍에서 싸웠지만 그 자리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도 목숨을 언제든지 바칠 각오로 싸웠는데, 나라 전체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목숨을 버릴 수 있고 그것이야말로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냐」고 생각했어요. 대통령이 된 후 그렇게 뛰니까, 내가 진두지휘하고 모든 일을 진정으로 하니까 나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全 전 대통령은 연대장으로 참전했던 월남전 당시 헬기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하고, 1983년 미얀마에서 아웅산 테러를 당할 때도 오히려 다친 사람들을 걱정했다고 한다. 아웅산 테러 당시 대통령 공보비서관으로 수행했던 崔在旭(최재욱) 전 의원은 이렇게 얘기한다. 『1999년 10월9일 아웅산 테러로 순직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해 국립묘지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全 전 대통령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네랑 나는 동갑이야」라는 거였습니다. 자기나 나나 이미 그 때 죽었던 목숨이니 이제 나이가 열여섯 살로 동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全 전 대통령의 유머는 분위기를 풀고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드는 것에만 그치질 않았다. 國益(국익)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으로서의 소신과 고집을 밝히는 방편으로 유머를 사용하기도 했다. 물론 그쯤되면 유머는 웃음보다는 메시지에 무게중심이 쏠리게 마련이다. 1980년대 초 미국은 우리 정부가 소련과 혹시 비밀접촉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冷戰(냉전)이 절정기에 이르렀던 시기였기 때문에 이 문제는 美(미) 정부 당국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미국 정부의 한 고위 인사가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였다. 이 인사의 물음. 『요즘 소련에서 (한국 정부에) 연락 오는 일이 없느냐』 은근히 한국과 소련 간의 접촉 여부를 떠보는 질문이었다. 이에 全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소련이 우리에게) 1천억 달러를 줄 테니 우리와 관계를 갖자는 제의가 올 것으로 우리는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소식이 없다』 美 정부 인사는 머쓱해하면서 그 후론 다시 그런 유의 질문을 하지 않게 되었다. 1980년대 초 프랑스에서는 미테랑의 사회당이 정권을 잡았다. 북한과의 수교 움직임이 일었다. 그때 全대통령은 「프랑스가 울진에 건설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안전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즉각 공사를 중단하고 설비를 뜯어가라」는 통첩을 보내도록 지시했다. 프랑스는 부랴부랴 陳謝團(진사단)을 보내고 해명을 했다. 프랑스의 對北(대북) 수교 움직임은 무산되었다. 재임 당시 對日(대일) 무역 적자 문제가 심각하다는 보고를 들은 全대통령은 이렇게 강조한다. 『우리가 일본의 경제 예속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흑자가 나서 기분이 좋은데 일본에 진 적자를 생각하면 소화가 안돼요. 우리 경제의 전체 무역 역조에서 72%를 일본에 지고 있으니, 이런 피를 토할 일이 있나』 「주막 강아지」 대 「골목 강아지」 全 전 대통령의 거침없는 발언은 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한다. 대표적인 사례는 金泳三(김영삼) 전 대통령과 벌였던 「주막 강아지」 「골목 강아지」 논란. 1999년 새해 들어 金泳三 전 대통령이 金大中(김대중) 대통령을 비판하는 발언을 계속 해대자 全 전 대통령이 金 전 대통령을 가리켜 「주막 강아지처럼 짖어댄다」는 말을 했다고 언론에 보도되고, 이를 받아 金 전 대통령은 全 전 대통령을 가리켜 「골목 강아지」라 받아쳤던 것. 이를 두고 개그맨 김형곤은 코미디 연극 무대에서 『그러고 보니 우리가 강아지들에게 나라를 맡긴 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라고 조크를 하기도 했다. 全 전 대통령의 「주막 강아지」 발언과 관련, 閔正基(민정기) 전 대통령 비서관은 발언의 내용이 와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1999년 2월 초 신임 金正吉(김정길) 청와대 정무수석이 인사차 연희동으로 찾아왔다. 金정무수석이 여야 대치로 정국이 안 풀려 걱정이라면서 「한 말씀 해주시면 (정국을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해서, 全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은 국가에 중대사가 있을 때 국가원로로서 한 마디 하면 국민이 경청할 수 있는 그런 큰 얘기를 해야지 輿野(여야)간의 政爭(정쟁) 등 현실 정치에 일일이 참견하고 발언을 해서는 안된다. 발언해야 할 일과 침묵할 때가 따로 있지 「주막 강아지」처럼 시도 때도 모르고, 사람 가릴 줄도 모르고 짖어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일반론을 얘기한 것인데 마치 金泳三 전 대통령의 당시 언동을 비난한 것처럼 언론이 보도했다』 1988년 2월3일 全 전 대통령은 金聲翊 공보비서관을 불러 이임 기자회견 문안에 대한 지침을 내리면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여섯 가지 요건을 꼽았다. 첫째 건강, 둘째 결단력, 셋째 신뢰감, 넷째 표현능력, 다섯째 인내심, 여섯째 안보지식이다. 그리고 여기다 한 가지를 덧붙이면서 이렇게 얘기한다. 『마지막으로 욕심을 부린다면 인간적인 매력이 있으면 좋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맛이 당기는 사람, 한 번쯤 더 만났으면 싶을 정도의 매력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작은 단체는 물론, 나라의 지도자는 항상 남을 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이것이 곧 국민을 위하는 마음가짐이다』 유머는 휴머니즘 유머는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참된 유머는 휴머니즘을 바탕에 깔고 있다. 누군가를 깎아내리며 즐거움을 느끼는 가학적 웃음은 유머가 아니다. 듣고나면 그뿐인 말재간도 메시지를 담은 유머의 格(격)에 이르지 못한다. 남을 깔보지 않고 존중해주는 인간적인 폭, 남이 나를 공격하더라도 허허롭게 받아넘기면서도 할 말은 따끔하게 해주는 餘裕(여유)와 知性(지성)의 바탕이 있어야만 제대로 된 유머가 나온다. 휴머니스트만이 유머리스트가 될 수 있다. 全 전 대통령의 유머, 혹은 우스개 얘기들이라고 여기에 모아 본 것들이 그 수준에 닿아 있는지의 여부는 독자들이 판단할 몫이다. 다만, 기자는 이번 취재를 통해 全 전 대통령의 다른 면목을 볼 수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밖에 없다. 蛇足(사족)이지만 버리기 아까운 全 전 대통령의 유머 어록을 두세 개 적어 둔다. 별개의 토막이지만 서로 오버랩이 되니 묘한 여운을 느끼게도 된다. 『우리나라 사람,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전을 펴놓으니 구름같이 모여 솎아내기 바빴어요』 『공직자들이 제 할 일은 안하고 언론에 밥만 사고 잘 써달라고 하니 언론이 「달나라 경제」에 살고 있어요』 『개각한다 할 때에는 머리가 팍삭 셉니다. 나 같은 경우는 빠지지. 사람 찾는데 등불 아니라 헤드라이트를 켜고 다녀도 시행착오가 나면 안돼요』● |
출처 : 전두환 대통령을 사랑하는 모임
글쓴이 : 5공 재조명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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