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특수부대

남침 땅굴로 북한 특수부대가 침입하면 어떻게 될까요 ?

그리운 오공 2011. 5. 24. 14:38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교와 신학대학원을 거쳐서 

목사가 되기까지, 교육전도사 시절을 거쳐 내 생애 처음 
28살 젊은 나이로 경기도 안양시 안양4동 710-32호 지하 15평에서 
알콜중독자들 여러명과 처음으로 개척교회 담임전도사가 되어 시작한  
목회라는 시간이 18년이란 길고 긴 시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김진철목사 목회 현장에서 화성남침땅굴이란 진실을 
2002년11월28일날 기무사령부 수사반장 출신인 <고 정지용선생님>을 
통하여 현재 김진철목사가 시무하고 있는 매송영락교회에서 약 700m 
떨어진 곳에서 만난 것이 시대의 고난의 십자가를 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도저히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신 분들을 외면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역주민들과 일부 교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교회에서 아침, 점심을 준비하고 일부 선교헌금까지 현장 
관계자들에게 제공을 했습니다. 

그런데, 
화성남침땅굴현장에서 큰 환난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화성남침땅굴을 발견하신 <고 정지용선생님>께서는 현장에서 의문사로 
순직을 당하시고, 그 뒤를 이어서 일을 하신 최민용씨까지 현장에서 
쓰러져서 수원중앙병원에 입원을 함으로써 더이상 화성남침땅굴 현장을 
이끌어 갈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습니다.. 

화성남침땅굴현장을 3개월동안 지켜보았던 김진철목사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동안 모아둔 건축헌금을 화성남침땅굴현장에 드려서 중단되어진 작업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성도들에게 설득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성도들은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그러나, 
담임목사님 뜻에 공감하는 성도들을 데리고 화성남침땅굴현장에서 일을 
할때에 담임목사는 현장본부장이 되었고, 성도중에 최집사님이란 분은 
현장작업을 책임지는 작업팀장이 되었습니다. 

3개월동안 죽을 힘을 다해 일을 해서 화성남침땅굴현장에서 많은 
증황물들을 건져올리는 쾌거를 올렸습니다. 

그런데, 
건져올린 진실마져 당시,15대 대통령후보로 나오신 김한식목사님에게 
진실을 확산시키기 위해서 화성땅굴현장에서 건져올린 땅굴증황물들을 
주었지만, 자신이 건져올린 땅굴증황물로 둔갑하게 되었고,초기 정지용 
선생님과 최민용씨가 현장에서 일을 할때에 크고 작은 저명인사들이 
많이 찿아왔습니다. 
김한식목사님이 어느날 갑자기 물증을 가지고 왔을때 당시, 화성남침땅굴 
현장에 없었던 증황물들이 발견 되어졌다고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산 호미, 북한산 우비조각, 와샤부품, 산화실리콘,역대책에 사용 
되어진 화강암돌, 밧데리, 쇠파이프>가 발견 되어진 과정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3개월이후 애국모임에서 알고 
그때 부터 친히 김진철목사가 발로 뛰어다녔던 세월이 지금 7년이란 
세월이 흘려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은 시국전단지 사건으로 수원지방검찰청에서 
김진철목사가 조사를 받을때 검찰에 증황물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김진철목사가 화성남침땅굴현장에서 발견한 물증을 김한식목사에게 
요구했을때에 단호하게 거절했답니다. 

그뿐만아니라, 화성남침땅굴 산증인으로 지역주민이자, 지역에서 목회하는 
목사로써 얼마나 지역 주민과 지역유지들에게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심지어 정신병자 목사, 이단교회 목사라는 소리까지 듣고서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한번 생각을 해보세요. 

그것도 모자라서 김한식목사님을 따르는자들을 통하여서 상상 할수 없는 
협박까지 당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던 서글픈 시절도 있었답니다. 

저는 화성남침땅굴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한국계 미국인 JAY 박사님을 통하여 부시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올렸습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에게 3번이나 탄원서를 올렸습니다.  
영국BBC TV, 일본 아사히TV, 홍콩스타 TV, 미주통일신문TV,뉴스포스트지 
화성남침땅굴과 관련해서 인터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내려온 최고의 고위급이신 황장엽선생님을 2004년6월14일날 
만나서 북한 남침땅굴은 김일성 특별지시로 1954년 부터 굴착한 사실을 
확인을 했습니다. 

그리고, 
북한에서 탈북자들을 통하여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남침땅굴을 통하여서 나오는 수많은  버럭(돌과 일부 흙)들이 
북한을 감시하는 군사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미리 파악한 후에 잘게파쇄 
해서 포대에 담아 야밤에 트럭에 실어서 댐건설과 고속도로 건설 자재로 
많이 사용이 되어졌다는 사실을 확인 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2009년 9월6일 새벽에 북한 김정일공산정권을 통하여서 수공침공을 당해서 
대한민국 국민 6명이란 귀중한 생명을 김정일공산정권에 빼앗겼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북한 김정일공산정권의 수공침공을 통하여서 
김정일공산정권은 적화통일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김정일공산정권이 이용한 황강댐과 그 주변을 한번 살펴보면 
김정일공산정권은 열악한 경제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휴전선에서 
30km~40km 근접한 전방 군부대 지역에서 대규모 댐 축조공사를 
강행한것은 수공작전 외 또다른 군사적 목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기습 남침을 위한 장거리 남침 땅굴 굴착과정에서 많은 
토사처리를 위장하기 위한 전략적 전술이란 사실을 탈북자들의 증언들이 
확인된 사건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참으로 한심한것은 국방부 탐지과와 2003년 5월9일날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국방부 탐지과 관계자가 어떠한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북한은 절대로 임진강을 넘어오는 장거리 땅굴을 팔수 있는 능력이 없는 
집단이란 부정적으로 일관했고, 화성남침땅굴을 정밀조사를 하지도 않고 
2003년 10월23-26일 동안 노무현정권은 땅굴현장을 매립 해버렸습니다. 

우리 애국시민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미얀마 군사정권에서 지하 150m 깊이 대형땅굴을 굴착할수 있는 기술력을 
제공한 집단이 북한 기술자라는 사실을 스웨덴 린트너 기자가 특종보도를 
통하여서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2009년 1월 15일 국가정보원 산하  國家情報大學院 교수 겸 첩보학 팀장 
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김영환 씨가 A4용지 70여 매에 이르는 
대국민 안보보고서 라는 논문을  각 언론기관과 기자들에게 배포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김영환교수님의 주장중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김정일이가 핵무기보다 더 위력적인 타격수단은 대한민국 후방 
깊숙히 파내려온 장거리남침땅굴을 의미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이에 대한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김영환교수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시절 김정일 요구대로 
경의선과 동해선 연결을 구실로 비무장지대 지뢰제거가 완료 된 상태에 
대하여서도 북의 남침에 악용될 소지가 크다고 경고 했습니다. 

결국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자신의 직책과 밥그릇까지 내놓고 양심고백을 
하셨던 국정원 교수겸, 해외첩보팀장이신 김영환씨는 현직에서 떠나서 
야인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 대한민국의 안보의 현실이 아닙니까? 

이명박정부는 이번 황강댐을 통하여서 수로 남침 도발을 한 김정일공산정권 
만행을 묵과한다면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악의 심판의 대상이 될것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왜! 친북좌익세력들과 단체들은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습니다. 
뭔가 김정일공산정권을 향하여서 강한 논평을 내놓아야 하지 않습니까? 

만약에 미군이 관리하는 댐이였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요? 
서울시내 뿐만아니라, 전국적으로 촛불민중봉기라도 일어나지 
않았겠는지 한번 물어보고나 싶습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님! 
남침땅굴로 22만명의 북한 특수부대원들이 기습 침공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깊이깊이 생각해보시길 간절히 소원을 드립니다. 

존경하는 이명박대통령님! 
더늦기전에  대한민국 국가안보와 자유수호를 위해서 
화성남침땅굴의 진실을 규명하시길 강력하게 촉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