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이트가 만든 휴거신학(神學)
[ 프리메이슨과 로마카톨릭주의 ] 에서 인용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주할 곳이 많으니라. 만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한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라. ” (요 14:1-2)
지상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프리메이슨과 로마 카톨릭의 두 가지 전략에 있어 주요 양상은 지상에 그리스도의 재림 이전에 지상왕국을 건설함에 있다.
스코필드(Soofield)는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하였으나 증거문헌이 필요했다. 이 교리의 역사적인 발달과 휴거라는 용어의 시작을 살펴보자. 먼저 “ 던칸 맥도날 ” 목사가 쓴 소책자 ? 성도의 휴거? 라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 책은 뉴저지의 O.F.P.M 출판사에서 1970년에 출간되었다. 맥도날(Macdougall)은 스코틀랜드의 자유교회(Free church) 목사로 임명되었는데 그곳은 오랫동안 성경의 가르침을 굳게 고수하는 곳으로 유명하였다.
“ 수백만의 진실한 신자들은 ‘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라고 하는 가르침과 그들이 휴거된 후 지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관한 가르침을 받아왔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주님은 성도들에게 도적같이 임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공중에서 그분을 맞기 위해 들림받는 것(휴거)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 채로 남아있게 된다. 그 후에 ‘적그리스도’란 사람이 나타나서 세계의 지도자로 군림하면서 10개의 국가를 연맹으로 하여 고대의 로마제국을 부활시키고 그곳을 지배하며 유대인이 예루살렘 그들의 희생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약속을 해주고는 3년 반이 끝난 후에는 그 약속을 깨뜨리고 그들을 핍박한다.”
“7년 후 예수님은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지상에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돌아온다. 이 모든 것들은 성경의 실제적인 가르침이며 약간의 사람들도 성경이 실제적으로 그것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영향을 받고 있다.”
이 개념의 근원, 더 정확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항한 ‘음모’를 살펴보자. 그들 주위를 소용돌이친 바벨론의 신비주의를 처음으로 분별할 수 있었던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의 손에는 종교개혁으로 인한 성경이 들려있었다. 계시록은 무효화되었으며 제수이트(Jesuits)는 이와 관련한 일련의 이론들을 세웠고 당시 교회서도 모두는 서로 모순되고 혼동에 빠졌다.
① 로마황제에 대한 이론:
스페인 제수이트인 알카자(Alcazar)는 사도요한이 그의 시대로부터 수백년 후에 일어날 일을 예언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개념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는 단지 그의 생애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일만을 기록하였기에 그가 말한 ‘적그리스도’는 아마 네로황제이거나 다른 초기의 핍박자 일 것이다(이 이론은 계시록에 나와 있는 카톨릭의 유혈 박해와 종교재판소의 견해에서 보는 카톨릭을 포함하여 많은 기독교인, 로마카톨릭교회와 교황을 탄압한다는 것이다. 즉 로마 카톨릭도 함께 고난 받는다는 설이다.)
미래주의를 정립한 리베라와 함께 주창했던 벨라민 추기경
② 미래인물에 대한 이론:
또 다른 스페인 제수이트 회원인 리베라(Ribera)는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계시록 전체는 예수님의 재림 시점에 일어날 일과 관계된 것이기에 미래의 일이란 것이다. ‘적그리스도’란 이 통치의 끝에 가서야 나타나서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교황청 제수이트에 의해 자행된 바돌로메 대학살은 1572년에 일어났고 리베라(Ribera)는 그의 이론을 1580년경에 내놓았다. 하나님은 증명하셨다. “사악한 것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오늘날의 수천의 ‘성경 교사’들은 리베라의 미래의 적그리스도란 개념에 여전히 머물러있다.
“250년 동안(1580-1830) 미래의 어느 날 나타난다는 적그리스도의 개념은 로마 교회의 승인된 가르침이었다.”
임마누엘 라쿤자(Emanvel Lacunza): 랍비 벤 애즈라(Rabbi Ben Ezra)의 별명 그는 스페인계 칠레인으로 16세인 1747년에 교황청 제수이트가 되고 제수이트주의 계열인 장미십자회 비밀결사요원이 되어 수사(수녀)의 감독관이 되었다.
제수이트가 칠레에서 추방되었을 때 라쿤자(Lacunza)는 북부 이태리에 머물면서 “영광과 위엄의 구세주 오심”이란 책을 썼다. 제수이트와 교회가 "미래의 적그리스도" 리베라(Ribera)의 이론을 가르쳤을 때 라쿤자(Lacunza)는 이 가르침에 대해서 성도들의 ‘휴거’와 영광중에 나타날 실제적인 "메시야", 이 둘 사이에 간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두 번 오시는데 한 번은 그의 성도들을 위함이고 또 한 번은 그의 성도들과 함께 후일에 오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라쿤자(Lacunza)는 그의 책에서 이상한 말을 하였다. 그는 적그리스도가 로마에 나타나서 교회의 본부가 있는 곳을 강타할 것이라고 암시하였다. 그는 또한 평범하게 서술하기를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은 로마교회의 성직자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들은 진정한 교회라고 위장할 것이라고 기록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적그리스도에 관한 카톨릭의 가르침에 의문을 품고 개신교의 주장에 동의를 하면서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는 한 사람이 아니고 한 영에 의해 고무된 사람들의 집단 또는 강력한 체계로써 교회의 본부를 휩쓴 한 사령부가 통치하며 로마에 주둔한다는 것이다. 또한 라쿤자가 개신교에 동의하는 부분은 계시록 11:3-11의 ‘두 증인’은 두 개인이 아니고, 두 무리의 하나님의 신실한 성직자들로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대항하여 결국에는 그를 이기는 자들이란 것이다.
다음으로 라쿤자는 리베라와 같은 제수이트 이론을 제시하였다. 1. 적그리스도의 출현: 두 증인들과 그에 관한 모든 예언의 성취는 여전히 미래의 일이다. 2. 매우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질 그 모든 일들은 주님이 영광중에 재림하시기 직전에 일어난다.
라쿤자(Lacunza)가 시도한 것은 무엇인가? 맥도날 목사가 라쿤자의 저서를 주의 깊게 보고 발견한 것은 그가 하나가 아닌 두 개의 견해로 계시록을 보았다는 것이며, 이 둘은 누군가가 “왜 그는 이 책을 썼는가?” 하는 물음이 나올 정도로 초지일관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영에 의해 기름부음을 받은 세계적 권력자인 적그리스도가 있는 로마교회에 그의 이런 이론이 영향을 끼쳤다면 논법의 냉혹한 힘은 로마 카톨릭으로 하여금 역사가 이미 하나의 세상 권력을 만들어 냈기에 그것에 강제로 응해야함을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든다. 다시 말하자면 로마는 개신교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조정한 것처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프로테스탄트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가 이르기 몇 년 전에 나타난다는 견해를 수용하게 만들었다면, 이것은 동일하게 프로테스탄트가 적그리스도를 한 개인으로 나타내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즉 프로테스탄티즘은 로마의 핑계를 받아들이도록 강요받게 되는 것이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라쿤자의 목적일까?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라쿤자의 책이 그 자신이 속한 교회의 믿음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신실한 로마 카톨릭이 읽어서도 안되고 읽을 수도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로마의 가르침과 달라서 바티칸의 금서 목록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제수이트 사제가 개신교 독자들을 얻을 수 있었을까? 간단하다. 자신의 구세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한 유대인이 그의 교우의 견해로 쓴 것 밑에 가명으로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ar)”라고 썼다. 얼마나 많은 신실한 현세의 작가와 교사와 목회자들이 단지 제수이트의 사제인 라쿤자가 가명을 붙여 쓴 책에 의해 영향을 받았나가 궁금하다. 그 책이 출판되기 전인 1801년에 라쿤자는 죽었다. 그 책은 1812년 스페인의 레온섬에서 처음으로 출판되었고, 즉시 이단 종교재판소의 공공연한 공격을 받았으며 결국엔 로마의 금서 목록에 남게 되었다.
다음에 그 책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화국의 외교상의 지점인 런던에서 1816년 출판되었고, 저자는 여전히 “랍비 벤 에즈라(Rabbi Ben Ezar)”로 되어 있었다. 그 책은 4권으로 쓰여 졌으며 신비하게 풀이된 그것은 컨터베리 주교의 도서관에 보관되었다.
로마는 매우 인내심이 강하다!! 1826년에 컨터베리 주교의 도서관원인 “메이트란드(Maitland)” 박사는 제수이트의 유혹으로 이미 제수이트가 250년간 가르쳐왔던 그 이론을 제공하는 일련의 예언서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메이트란드 박사의 생각은 유대인 지도자인 벤 에즈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었으나, 그는 모든 독자를 논리적인 예정설 결론에 이끈 라쿤자(Lacunza)의 두 가지 견해의 지혜로운 계획에 말려든 희생자가 되었다. 그 내용은 계시록 전체는 몇 년간의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지게 되며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세계의 지도자가 된다는 개념은 자연적으로 뒤따르는 것이었다.
메이트란드 박사가 그의 소책자를 통해 숨겨진 제수이트 가르침에 몰두하기에 바쁠 때 젊은 스코틀랜드의 장로교파 목사인 신비주의자 에드워드 어빙(Edward lrving)이 런던에서 스페인어로 편집된 랍비 벤 에즈라의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에 힘썼다.
어빙(Irving)의 번역판은 1827년에 나왔으며, 그 책의 서문에서 그는 1816년 런던에서 인쇄된 스페인어 편집 후원자가 밝힌 것처럼 제수이트인 라쿤자를 실제 저자로 소개하였다.
그 책은 여전히 랍비 벤 에즈라란 이름 하에서 출판되었다. (어빙을 추종하는 어빙교파들이 후에 방언 성령운동을 시작했다. 역자주).
1827년: 바로 이때 어빙은 하늘로부터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를 설교하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이 목소리에 복종하여 그는 그리스도가 두 번 오심을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는 ‘살며시 그의 성도들을 위해서, 그 후에 7년간 적그리스도의 통치가 있은 후 그의 성도들과 함께 영광스럽게 적그리스도를 쳐부수고 통치하기 위해 오는 것이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제수이트인 라쿤자의 영리한 작업은 영국의 개혁교회 내에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에드워드 어빙은 1832년에 런던에 카톨릭 사도교회(Catholic Apostolic Church)를 설립하였다.
동포교회 운동: 아일랜드로 넘어가면 라쿤자의 비밀스런 휴거의 ‘씨앗’이 계속 잘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로마 카톨릭으로 자란 에드워드 크로닌의 지도하에 첫 번째 교우모임이 더블린에서 형성되었고 로마교회는 반은 카톨릭 나머지 반은 개신교 운동을 벌임으로써 자립하려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말이다.
1. 동포교회란 용어의 견해: 로마교회와 같은 입장인 것이며 만약 당신이 동포교회에 속해있지 않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의 자녀가 아니다.
2. 보이지 않는 교회는 크로닌이나 그의 지지자에게 결코 용납되어지지 않았다. 루터가 말하기를 신약에서 언급된 모든 개인교회는 각각 외적으로 볼 수 있게 조직된 것으로 진실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이 그리스도의 진실한 몸체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그들은 함께 할 수 없는 사람들로 진실한 교회임을 증명할 수 없고 진실로 보이지 않는 몸체는 하나님 한 분이시다. 크로닌은 밀과 독보리는 여기서 구분된다고 생각하였다.
3. 코로닌과 교우들은 로마와 같이 모든 개신교 기독교인을 경멸하였다.
4. 동포교회는 로마와 같이 파문을 행하였다. 크로닌은 그 자신이 가르침의 희생물이 되었고 교회로부터 추방당했으며 만약 비밀의 휴거가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그들은 남게 되기에 상심하게 되었다.
5. 동포교회 운동은 J.N.다비(Darby)의 지도하에 그들 교인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노력하였다. 이 운동에 참가한 사람들은 로마와 금지된 책의 목록과 같은 타 종교의 견해에 대해 전혀 무지하였다. 이것을 강행할 수 있는 한 가지 길은 동포교회 작가들이 그들 회원만이 읽을 수 있도록 자료를 분류하여 보관하는 것이었고 또 그들은 그렇게 행하였다.
1827년: 동포교회운동, 또는 플리머드 동포교회의 창시자로 언급되는 J.N.다비는 더블린 회합에서 뉴먼 에드워드 크로닌을 만났다.
1833년: 죤 뉴먼(John H. Newman)과 옥스퍼드 운동: 뉴먼은 1801년 런던에서 태어나 1890년에 사망했다. 그는 1825년 미국의 사제가 되었다. 똑똑한 젊은 청년인 그는 1828년 옥스퍼드 대학교회의 성 마리의 교구목사가 되었으며 1832년 말타, 나폴리, 로마와 지중해를 여행하였다. 시실리 섬에서 열병에 걸려 거의 죽을뻔 하기도 했다. 옥스퍼드 운동이 시작될 무렵 뉴먼은 런던에 돌아와 즉시 그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다.
옥스퍼드 운동은 영국교회로부터 개신교의 잘못과 로마교회의 무절제한 잔해들을 근절하는 역할을 하였다. 사실 이것은 국민들에게 카톨릭 사상을 가르치기 위한 시도였고 이 일은 뉴먼이 쓴 미래의 카톨릭과 숨겨진 카톨릭의 음모에 관한 수많은 소책자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들이 취한 입장은 영국교회는 최고의 정치 권위자로써의 교황은 거부하나 로마교회의 종교적 최고 우위성은 수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배후에 그들이 남겨놓은 중요한 것은 우리의 생애 동안에 이루어지는 일들이다.
뉴먼은 성 마리의 영국교회에서 1843년 2월 2일에 교우 목사로서의 마지막 설교를 한 후 사임하였다. 1845년 10월 9일에 카톨릭교회를 받아들이고, 1846년 로마로 가서 신학공부를 계속하다가 1847년 5월 30일에 카톨릭 사제가 되었다. 1879년 교황 레오13세는 뉴먼이 ‘우리의 생애 중 거둘 수 있는 씨앗을 뿌렸다’ 해서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1833년: 다비와 ‘비밀휴거’- 맥도날 목사는 ‘성도의 휴거’란 그의 저서에서 비판적인 질문을 제기하였다. “성도들의 비밀스런 휴거란 다비에게 내린 성령님의 특별 계시인가? 그를 통해 동포교회운동이 내려진 것인가? 아니면 어빙으로부터 다비가 단순히 유추해 낸 것인가? 제수이트인 라쿤자로부터 얻은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님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제수이트에 의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비가 6년 전 동포교회운동에 가입한 후에 지도자가 되어 1833년에는 일 년의 예언에 관한 모임에 초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 모임의 창시자 에드워드 어빙은 1827년 이후 계속 비밀스런 휴거를 전파했다. 그의 영감은 1801년에 죽은 제수이트인 라쿤자가 쓴 책으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실, 비밀스런 휴거의 이론은 1827년에 어빙에 의해 영어로 번역되었다. 카톨릭으로 개종한 랍비 벤 에즈라의 이 가공적인 책은 비카톨릭에게도 받아들여졌으며 그 책 서문의 실제 저자는 제수이트인 라쿤자임을 밝혔다.
소위 ‘섭리의 진실’이라고 불리는 비밀스런 휴거론은 다비 자신의 계획에 아주 잘 맞았다. 거의 250년이 지난 후에 다비는 예언서 모임에서 제수이트의 미끼를 받아들였다. 이것은 성령님에 의한 하나님의 계시라기보다는 250년간의 로마교회의 제수이트의 고안이었다.
1833년 제수이트 교리인 비밀휴거는 두 개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1. 옥스퍼드 운동은 로마를 위한 공감을 일깨우는 것으로 영국과 로마의 교회가 함께 하나의 목적과 뜻을 갖기 위하여 로마식 예배를 영국에 도입함으로써 비밀스럽게 영국과 로마교회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2. 동포교회운동은 개신교 교회의 지지를 움츠러들게 하기 위해 가장 영감 있는 멤버를 꾐으로, 로마에 저항하는 것을 약화시켜 그들의 에너지를 헛된 싸움으로 돌리는 것이다. 복음적인 교회와 로마 사이의 구별을 가능한 한 모두 말살시키고 하나님이 바벨론의 우상숭배에 관해 경고하신 그릇된 것에 대한 적용도 없애자는 것이다.
그리고 로마에 대한 공감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한 옥스퍼드 운동 교리는 ‘동포교회운동은 과거의 모든 성도들에게 특히 개신교 교회들에게 보내진 하나님의 계시에 환호를 보낸다’는 것이다. 또한 그 교회는 성도들이 휴거된 후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미래에 관한 것이었다.
1833년의 제수이트 전략은 여전히 계속 되어갔다. 그들의 영리한 계획은 1909년 출판된 것으로 시러스 스코필드(Cyrus I. Scofield)박사의 ?하나님이 기록한 말씀?한 부분에 넣은 ‘섭리의 진실’과 잘 혼합되었다. 그 계획은 미국에서 성경을 믿는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진정한 양식이라기보다는 하늘로부터의 ‘음식’으로써 받아들이게 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스코필드’가 주석한 이 부분의 강력한 암시는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 거짓 왕국을 건설하도록 만들었다.
아! 만일 그들이 처음에 진정한 양식의 몫을 받았더라면 그들은 결코 속지 않았을 것이다. 스코필드의 주석은 성경을 해석하고 증거하는데 사용됐다. “단단한 음식은 성숙한 자들의 것이니, 그들은 자기의 감각을 단련시킴으로 활용하여 선과 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히 5:14).
라쿤자가 가명으로 랍비 벤 에즈라를 사용한 것이 다비에게 섭리의 진실을 이용해 유대인 메시아왕국의 견해를 주기에 충분한 암시가 되었다.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이 미래의 환난과 개인적인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게 될 때 휴거를 기다리도록 유도되었다. 어떻게 그들은 교묘하게도 제수이트인 라쿤자에 의해 만들어진 이 세상 왕국 속으로 자신들을 넣고 문을 닫았을까?
플리머드 동포교회는 모든 다른 기독교인들에게 증오와 경멸을 보냈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 중 하나는 그라 알시터 크로울리(Aleister Crowley)라는 것이다.
프리메이슨의 고위 지도자이며 사탄주의자인 크로울리(1875-1947)는 플리머드 동포교회 교역자의 아들로 다른 기독교인에 대한 사랑이 결핍된 자인데, 그는 결국 배도자가 된 것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성공했다. 신비주의 운동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없애려는 그의 가르침에 의해 잉태된 것이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 안에 있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며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두움이 그의 두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이라.”(요일 2:11).
수백만의 크리스챤들은 1833년 다비가 제수이트의 미끼로 축연을 베푼 이래 고문당하고 박해를 당했다.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세주로 고백함으로 기독교인들은 죽임을 당하게 된다.
프리메이슨의 새 시대는 세속적인 인본주의를 이용하여 스코필드가 주석한대로 미국 내에서 그리스도의 형제? 자매들은 조용히 잠을 자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 메이슨과 카톨릭의 두 방향의 전략은 1957년판 미국백과사전 19권에 나와 있는 대로 천년왕국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천년왕국은 세상의 혁신으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 기다린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미래에 있을 가능성의 범위 내에서 물질적인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들이 가르치기를 모든 민족은 자연히 무기력해짐과 질병의 비확산에 의한 개선과 갱신을 기대해야 하며 삶의 계급제도에 있어서는 계속적인 전진 속에서, 우리민족의 최고의 요소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한다.
이 새로 만들어진 철학에 따르면, 천년왕국은 초자연적인 예수님에 의해서가 아닌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 히틀러와 알버트 파이크는 재빨리 아멘! 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주기도문: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마 6:10, 요 17:5을 읽으시오).
세상에 있는 “왕”은 느부갓네살(바벨론의 왕 B.C 605-562)의 환상의 꿈을 가진 자다. 6은 사람의 수이다. 성경에서 우리가 6번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탄왕국의 건축자들이 모퉁이의 머릿돌이며 진정한 돌인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손 없이 산을 제거하는 것이다. 시편 118편 22절과 마태복음 21장 42절을 주의 깊게 읽은 후 마태복음 21장 44절을 주목하시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부서질 것이요, 이 돌이 누구 위에 떨어지든지 그를 가루로 만들 것이니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하는 말씀은 다니엘 2:44로 돌아가게 한다.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그리고 다니엘 2:45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산산조각 내는 것을”
다시 우리는 건축자가 거부하는 돌을 포함하고 있는 4군데의 다른 성경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마가복음 12장 10절, 누가복음 20장 17-18절, 이사야 4장 10-12절과 베드로전서 2장 4-8절이다. 이 ‘반석’은 그리스어로 “페트라”(Petra)인데 이것은 바윗덩어리를 의미한다. 또 이것은 고린도전서 10장 4절의 “그들의 뒤를 따르던 그 영적인 반석…”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모퉁이 머릿돌이 되심으로”(엡 2:20-21). 세월이 지남에 따라 다니엘의 말이 얼마나 진실 되었는가를 보게 된다. 진정한 크리스챤들은 그들이 읽고 들음으로 삶과 육적인 죽음을 직면했을 때 평화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또 한 번이라는 이 말씀은 만들어진 것들로서 흔들리는 것들을 제거하고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들로 남아있게 하려하심이니라.”(히 12:27-28).
진정한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로 반석이신 한 모퉁이 머릿돌이시다. 그분은 신약에서는 제자들에 의해, 구약에서는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반석이시다(엡 2:19-22, 롬 9:31-33).
오순절 목사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
여기에 소개된 편지는 1988년 9월 29일 쓴 것으로 헤럴드 브레드슨(Harald Bredesen)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보낸 편지이다. 브레드슨은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며 충고자이자 기독교방송을 운영하는 잘 알려진 인물 중의 하나이다. 브레드슨이 제창한 ‘평화의 왕자’(Prince of Peace)라는 계획은 사탄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카리스마 성령운동가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많은 이들이 교항에게 ‘평화의 왕자’라는 상을 수여하기 위한 브레드슨의 노력에 박수갈채를 보내며 이 상이 ‘영적인 평화조약’(Spiritual Peace Treaty)의 체결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헤럴드 브레드슨은 그가 그리스도인들을 변질시키고 있으며 또한 적그리스도에게 충성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우리의 입장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의 편지를 공개하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했다. 전화로 그와 통화할 때, 그는 다른 카리스마 성령운동가들이 자신의 이러한 계획을 지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브레드슨은 또 전화상으로 잭 헤이로드(jack Haylord)가 1989년 1월 14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게 ‘평화의 왕자 상’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기 위해 보낸 편지의 내용 일부도 읽어주었다.
* 다음은 브레드슨이 교황 바오로 2세에게 보낸 편지이다.
John Paul Ⅱ Apowtolic Palace 00120 Vatican City(Europe)
1988년 9월 29일
친애하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
지난 8월 31일 저는 특별한 교황님의 알현식에 참여할 특권을 누렸습니다. 그 경험은 제가 앞으로 두고두고 기억할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당신을 만나보기 원했습니다. 또한 당신은 열과 성의를 다하여 그들을 대하였습니다. 저는 당신이 개인적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당신의 메시지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이 로마 카톨릭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를 확고히 한 이후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당신의 역할은 이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현재 카톨릭과 개신교 내에는 서로 마찰을 일으키는 두 개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즉 한 바람은 복음을 향해가고 있고 나머지 바람은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해방신학은 후자에 들 것입니다.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은 그러한 바람을 개신교 내에서 목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카톨릭을 볼 때, 그들은 카톨릭교도들의 믿음을 흔들고 있는 현상만을 보려합니다. 그들은 카톨릭 내에도 강력한 복음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합니다. 이러한 잘못된 인식은 그들로 하여금 카톨릭과 복음주의는 서로 모순된 별개의 것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또한 그것은 그들이 카톨릭 교회에 자유스럽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교황님, 제 마음은 다음과 같은 꿈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미 데이비드와 저스투스 뒤플리세즈, 빌리 그래함, 팻 로버트슨, 리차드 뉴하우스, 토마스 리드와 다른 이들이 카톨릭 교리의 풍부함과 그 깊이에 관해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세계 복음주의적 개신교에 알려야만 합니다. 모두가 이 사실을 개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거친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에 탄 동료입니다. 서로 싸움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는 함께 배에 들어오는 물을 퍼내며 거친 파도를 헤쳐가야 합니다.
교황청과의 대화를 통해 기초석이 놓여졌고, 우리는 그 위에 새로운 세계를 세울 수 있습니다. 은밀하게 이루어진 모든 대화들을 이제는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교황님, 우리가 앞으로 바라는 것은 전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평화의 왕자 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서 로마의 교황을 선발하는데 복음주의적 개신교도와 카톨릭교도가 함께 참여하는 형태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후에 열릴 ‘Prince of Peace Celebration'(평화의 왕자 수여식)을 개최함으로써 초기 기독교시대 이래 가장 극적인 그리스도교의 일치에 대한 중요한 분기점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비록 중요한 신학 교리의 차이점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가까워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서로 대적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전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배도와 이교들 그리고 많은 혼란들과 대적해야만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바라는 새로운 영적연합의 시작을 나타내는 일입니다.
우리는 이 기념식을 대부분 국가 간의 평화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그 평화란 하나님, 가정, 그리고 사람이 경험하는 모든 관계에서의 평화도 됩니다. 이 기념식은 여러 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평화중재자들에게 용기를 북돋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교황님이 ‘평화의 왕자 상’을 받을 때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지도자들이 이러한 국제적인 평화모임에 참석하기를 원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그 기념식에 자신들의 국기를 게양하고 또 자기 국가의 대사나 대표가 직접 참석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교황님, 그 때에 평화의 메시지를 들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단지 평화와 기독교의 일치에 대해 전 인류에게 말할 수 있는 그 전례가 없는 굉장한 무대를 당신에게 제공할 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존경과 사랑을 보내며
헤럴드 브레드슨 평화의 왕자 상의 창시자 The Board of Trustess의 사장
헤럴드 브레드슨은 신실한 사람처럼 보이나 영적으로는 장님이며 속고 있다. 이 ‘평화의 왕자 상’ 계획이 계속 진행될 때, 어떤 기독교 지도자가 전혀 부끄러움도 없이 시류에 편승하고 세상 왕과 짝하는지 또 어느 복음주의자가 자신의 양들에게 거기서 나오라고 촉구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 8:11-12절의 말씀을 기억하기 바란다. “또한 그들이 내 백성의 딸의 상처를 조금 고쳐주고 말하기를, 평화로다, 평화로다, 하지만 거기에는 평화가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짓을 범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그들은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아니하였으며 그들의 얼굴이 붉어지지도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그들이 쓰러지는 자들 가운데 쓰러질 것이요, 그들의 감찰(鑑察) 받는 그때에 그들이 넘어지리라. 주가 말하노라.”
디모데후서 3장에는 주로 말일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나와 있는데 디모데의 시대에도 있었던 문제였지만 “말일”이라고 언급한 것에 주목해보자.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고통하는”이란 말의 헬라어는 “샬레포스”로스 “사리우며 극도로 위험하며 해로운”이란 뜻이다. 말세에 큰 괴로움을 가져다주는 고통이란 말이다.
또한 “때”는 “십년”이라고도 해석되어져서 10년 동안 받았던 고통에 대한 기준점을 만들어 그 다음에 이러지는 십년 또 십년 이렇게 이어져 그들 나름대로의 세상에 기준을 둔 철학이 나온다는 것이다. 20년대에도 30년대에도…70년대에도 그와 같은 일을 보아왔고 80년대를 지나 90년대에 들어섰으며 벌써 전 세계적으로 미국 방방곡곡에 크리스챤의 배도의 징조가 보인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무법지대로 변하고 있으니 주님의 재림이 한시 바삐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눈앞에 일어나야 하겠다.
확산되고 있는 신비주의 운동
릭크. 라이너
얀네와 얌브레에 있었던 악한영(The spirit of jannes and jambress)
십수년을 지나며 그들이 기울였던 노력의 주요한 결과로 해로운 새 시대운동이 탄생되었고 나 자신은 이것을 가리켜 얀네와 얌브레의 영이라고 이름 지었다.
급속히 이 세대에 증가하고 있는 것은 마법사들, 술객들이다. 당신이 신실한 종교적인 동네에 살거나 마을 밖으로 나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였겠지만 여행을 해보면 그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옮겨 갈 때 마다 꼭 그 동네의 책방에 들려 어떠한 책이 가장 잘 나가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을 알 수가 있으며 또한 나는 공공기관의 파일의 기록에 올라온 교회연합단체를 체크해 본다. 그러면 새 시대운동에 속한 교회 수를 알 수 있으며 당신이 나만큼 이 나라 구석구석을 다닌다면 얼마나 놀라운 속도로 새 시대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알 것이다.
“그러나 악한 사람들과 미혹하는 자들은 갈수록 더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리라.”(딤후 3:13). 여기서 “미혹하는 자”란 헬라어로 “고스” 즉 “주술을 외우며 술법과 마술을 하는”이란 뜻이다. 악한 이들과 속이는 자들이 술법을 동원하여 더욱 더 악하고 악하여져서, 라는 비교법을 사용한 것이며 이 문장은 “디모데야 네가 지금 악한 것을 보느냐 말세에는 악이 극에 달하리니, 속이는 영들이 가득하리라”라고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바울은 악령을 따르는 신비주의가 서서히 일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게끔 서서히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지금가지도 교인들은 이 악한 영들의 움직임에 주목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탄의 영의 활동을 폭로하는 자들을 “극단주의”라고 비웃으며 “마녀! 마녀라고? 하하하! 우리를 해롭게 할 수 없어”라고 말해왔다.
사탄의 내면적 흐름(The Sataric Undercurrent)
그간의 사탄 영의 활동은 내면에 많은 속임수를 지니고 있다. 성경에서 예시된 것과 같이 갑자기(아무도 어떻게 해서 그렇게 빨리 변화가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급상승하며-말세의 멸망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악령 신비주의는 문명사회라고 자처하면서 이 시대에 서슴없이 침투해 들어온 것이다.
13절에 술사들이 쓰던 술법들이 전 세계에 확장될 것을 얘기했는데, 온 지구를, 교육계에도, 정치계에도, 가정과 가족들에게도, 어린이들에게까지 침투하는 것이다. TV를 켜보라! 어린이들이 보는 만화에도 사탄의 영이 꽉차있음을 볼 수 있다. 새로이 만들어지는 모든 만화영화가 새 시대운동의 신부주의를 담고 있으며 당신이 어린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당신 자녀들이 이러한 만화 영화로 세뇌되어 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매주 토요일 아침 수개의 프로그램으로부터 속이는 영이 우리 어린이의 맑은 영까지도 삼키려하고 있다. “릭리너, 당신은 놀라운 소리만 하는군!”라고 독자는 말 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경종을 울려야만 한다.
교회는 잠에서 깨어나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 무서운 사탄의 신비주의 전략이 우리 바로 코앞에서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슬픈 것은 새 시대운동이 행하는 기사와 표적들이 더욱 더 기승을 부려 초자연적 능력으로 병자를 고치기도 하는데, 사람들의 생명을 그 악한 영의 힘을 얻기 위해 내놓는다.
교접자의 새로운 칭호(A New Name For Mediums)
영매들은 그들이 무당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를 채널스(영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앞서 내가 3장에서 밝혔던 것과 같이 이것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데, 이유인즉 나는 교회의 “저를 도구로 써 주옵소서. 저는 도구로 쓰임받기 원하나이다” 하고 기도하며, 찬송 하는데, 이 좋은 말을 새시대운동가들이 따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구속하시며” 하는 그것이 바로 우리 성령님이 원하시는 바다. 그분은 우리를 구속하여 주님 앞에 인도하여 가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그 자신이 우리를 구하는 도구로 쓰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새 시대운동가들이 이 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악한 영들의 음흉한 도구가 되고 있으며 그들의 말이 그럴싸하여 대중에게 점점 더 파고드는 것이다. 영매라는 말은 심령치료자들이 즐겨 말하는 단어가 되었고 어림잡아 LA만도 그와 유사한 활동을 하는 영매만도 약 1,000명이 된다. 헐리우드는 더 하다. 그들은 영매에게 달려가 그들의 조언을 들으며 또한 영매와는 항상 결탁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고 있다. 물론 그들이 여기에 숨어있는 속임수와 위험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이제 스스로 매개체(영매)라고 칭하는 그들에게 깊이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자주 TV쇼에도 영매에 대해 다루어지는데 나는 개인적으로 오프라 윈프레이와 필 도나무의 모습을 본적이 있다. 크고 작은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그들은 자주 고정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성경에는 명백히 금지된 사항들에 대해 심취하게 만들어간 것이다.
“또 (만일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것, 즉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길들을 행하라는 이 모든 계명들을 네가 지켜 행한다면) 너는 이 셋 외에 너를 위하여 세 성읍을 더하여, 그 무죄한 피가 주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상속으로 주시는 네 땅에서 흘리지 아니하게 하며, 그 피가 네 위로 흘리지 아니하게 하라.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 이웃을 미워하여, 그를 엎드려 기다리다가 일어나 쳐서 그를 죽이고서 이 성읍 중 한 곳으로 도피하면, 그때에 그 사람의 성읍의 장로들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그곳에서 데려다가 그를 피의 보응자의 손에 넘겨 그를 죽이게 할지니라.”(신 19:9-12).
악마의 새로운 이름(A New Name for Demons)
내 아내와 나는 유명한 토크 쇼를 보고 있었는데 주제가 “새 시대운동과 채널링(도구?방법)”이었다. 주요 새 시대운동의 멤버들(영매들)이 나왔으며, 여자이든 남자이든 간에 그들의 생명을 악마에게 팔아버린 자들이었고 그들 스스로를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정신적인 지도자요, 정신적인 도움을 베푸는 자요, 영적으로 훌륭한 작가이며, 정신적인 인도자요, 정신적인 친구라고 그들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들 모임을 “참여한 자들(Wali-ins)”이라고 이름 지었다(앞에서도 말했듯이 당신이 이 악의 세력들에게 몸을 열어버린다면 그들은 당장 당신 몸 안으로 걸어 들어와 앉을 것이다).
갑자기 사회자가 바뀌어 영매인들 중의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는데 그는 그들 중에서도 훌륭하다고 꼽히는 사람이었다. “말해주세요 당신 스스로를 우리의 신에게 드릴 수 있는지, 그리고 지금 당신에게 우리의 신이 말할 수 있겠는지-----”잠깐 휴식 후에 보여 드리겠습니다.
선전이 끝나고 카메라가 그를 다시 비추었을 때 그는 의자에 정숙히 앉아 있었고 카메라는 그를 클로즈업 했으며 갑자기 그의 몸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어떤 초자연적 힘에 의한 것처럼 보였고 그것이 그의 몸을 통과하는 것 같았다.
그가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의 모습이 아닌 것같이 보였고 그의 얼굴 생김새도 전혀 달라져 있었고 유럽인들의 엉터리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남자는 캘리포니아에서 자나 난 사람이었다. 이것은 배우가 분장한 것과는 달랐다. 이 남자는 바로 악한 영들에게 사로잡혀 그들 마음대로 쓰여지는 도구임을 텔레비전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청중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는 사탄의 영으로 대답했다. 나는 그가 알지도 못하는 사탄에 완전히 그 자신을 바친 것을 보았으며 그 악의 영은 그를 통하여 청중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시작했으며 전국 방방곡곡에 방송되는 것으로 나는 놀란 채 보고 있었다. 너무도 자주 이제는 “영매”가 토크쇼에 등장하고 있다.
동부에 있는 한 책방에 가서 종교분야의 책을 뒤져보다가 “임마누엘 경고”라고 제목이 붙은 책을 보았다. 괜찮은 것 같기에 뽑아서 책을 폈더니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이상하고 기이한 예언의 말들이 적혀 있었다. 머리말의 설명을 읽어 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가 생각하는 임마누엘이 아니고 악의 영이 어떤 가정주부에게 들어가 이러한 임마누엘의 이름을 빌려 악하게 사용한 것을 알았다.
또 다른 재미있는 부분은 “엑톤, 마푸, 세스(seth), 람사(Ramtha)”와 같은 이상한 이름들도 있지만 성경에 나온 이름도 도용하고 그들 영에 이름뿐인 것도 있다. 이것은 분명 위의 이상한 이름들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종교성이 있는 사람을 유혹하기 위한 시도임이 명백하다.
악의 영들이 그 자신을 요나, 이사야, 엘리야, 라자루스, 임마누엘, 예수 또는 바울로 자신들을 소개하고 있음을 생각해보라. 당신이 만약 “라자루스”, “예수”, “바울”이란 이름으로 위장한 영을 가진 영매를 찾아가 그의 새로운 고객이 되었을 때 그 영의 이름들이 성경에 나온 이름이라 생각되어 당신의 두려움을 무마해주었을 것이다. 누가 그들 속에 있는 영이 진짜 성경에 나오는 라자루스이며, 예수이며, 바울인지 어떻게 알며, 다시 말하지만 사람들을 미혹하여 그들의 거짓의 덫에 걸려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진실된 교회를 향한 악마의 전략(Demonic Invasion Ahead for church)
사탄의 침투가 오늘날 세상의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딤전 4:1에 이러한 사탄의 전략이 말세 때에는 교회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이제 성령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때에 어떤 자들이 믿음으로부터 떠나, 미혹하는 영들과 마귀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리라, 하셨으니”(딤전 4:1). 여기서 바울은 세상에 대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교회 안에 있을 미혹의 영의 활동에 대해 얘기해 놓았다. “후일에(latter times)”에 주목해보라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말세중의 말세를 말함이다. 헬라어로는 후일(last)이 “휴스테로이스(husterois)”로 이 말은 항상 “끝(end of a thing)”을 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끝(the end)이란 말세중의 말세를 이르는 말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디모데후서 3장 1절에 성령님이 우리에게 후일, 곤고한 날에 세상에서 일어날 현상을 말해주고 있고, 디모데전서 4장 1절에는 위와 똑같은 때, 말세에 교회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성령님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출 처 : 바이블뉴스 www.biblenews.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