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나찌에 대한 왜곡

[스크랩] 히틀러에 대한 평가와 나치, 히틀러에 대한 왜곡 (4편)

그리운 오공 2011. 11. 21. 15:05
  • 히틀러에 대한 평가와 나치, 히틀러에 대한 왜곡 (4편)
  • Guenther von Blumentritt 독일 육군소장영국군과 프랑스 잔여 병력을 생포할 수 있었으나 이들 병력의 영국 탈출을 허락했던 히틀러의 덩케르크 정지명령에 대해 영국의 저명한 역사가 Liddell Hart는 독일군 장성 블루멘트리트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인용했다: “영국군의 궤멸이 눈앞에 있는 시점에서 총통은 대영제국의 위대함을 칭송하는 말로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는 대영제국의 존재는 세계질서를 위해 필수적이며 영국이 이 세계에 가져온 문명에 대해 얘기했다. 그는 어깨를 움츠리며 대영제국은 대게 잔혹한 군사적 정복의 결과로 만들어졌으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영제국을 카톨릭 교회와 비교하며 세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양자의 존재는 꼭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가 영국에게서 바라는 것은 오직 영국이 대륙에서의 독일의 입장을 인정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이 독일의 舊식민지들을 반환해주면 좋은 일이나 그렇지 않다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으며, 만약 영국이 지구 어디서 곤경에 처해있다면 독일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도울 것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 Basil Liddell Hart, The Other Side of the Hill, 1948 30년대 내내 스포트라이트에서 밀려나 있었던 처칠은 1940년 5월 전시수상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처칠과 버나드 바룩과의 관계에 대해 영국 역사가 윌리엄 맨체스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 이는 윈스턴이 바룩에게 지녔던 큰 호감을 부분적으로 설명해준다. 바룩은 미국인이었고 또한 유태인이었으며 강대한 독일을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공유했다. 또한 처칠은 바룩이 베푼 각별하면서도 매우 계산적인 호의에 큰 빛을 진 일이 있었다. 윈스턴은 30년대 초의 대공황과 월가의 주가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만약 바룩이 아니었다면 그는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을 빛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며 보내야 할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는 도박에 있어 타고난 승리자라기보다는 타고난 호구였다. 뉴욕을 방문할 때마다 바룩의 5번가 맨션에 머물렀던 윈스턴은 대공황이 닥치기 몇 년전 바룩의 조언에 따라 주식에 손을 대게 되었다. 그가 리비에라 도박장의 룰렛바퀴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주가의 등락 앞에서 노심초사하며 값이 떨어질때마다 그는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결국 몬테카를로에서처럼 그는 월가에서도 실패했다. 최악의 상황에 이르러 바룩과 대면했을 때 그는 울고 있었다. 그는 자신은 이제 빈털터리가 되었으며 차트웰의 저택은 물론,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을 처분해도 빛을 갚지 못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그는 빛을 청산하기 위해서는 정계를 떠나 사업을 시작해야 할 지경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거물 투자은행가는 그가 정계를 떠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윈스턴이 아무런 손해도 입지 않을 것이라고 다감하게 위로해주었다. 바룩은 처칠이 파는 주식은 무조건 사들이고, 그가 사려는 주식은 무조건 팔라는 지시를 그의 비서들에게 남겼다. 결국 윈스턴은 대공황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은채 월가에서 고스란히 본전을 건져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이는 바룩이 그의 수수료까지 대신 지불해주었기 때문이었다.” (William Manchester, The Last Lion: Winston Spencer Churchill; Alone 1932-1940, 1988) Lothrop Stoddard 미국 언론인“독일인들은 이 전쟁을 혐오한다. 이런 인상은 제 3제국에 머무는 동안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어디를 가든 사람들의 얘기는 한결 같았다. 전쟁에 대하여 내가 접한 베를린 시민들의 생각은 라인란트에 이르는 중서부 독일과 북해연안의 도시들, 그리고 남쪽으로는 비엔나를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것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러한 생각은 나치당원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이 전쟁을 혐오하는 감정은 정치적 신념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그들 자신이 서방국가들과의,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싸움에 휘말려 있음을 발견한 독일인들이 느낀 감정은 대게 두가지였다. 하나는 이 전쟁에 대한 철저한 혐오감과 이 전쟁이 전혀 필요가 없는, 매우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생각이었고, 두 번째는 이 전쟁이 초래할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만났던 각계각층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 전쟁을 비극적인 실책으로 낙인을 찍었고 일부는 그들 정부의 섣부른 대응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들은 좀더 능숙한 외교로 전쟁을 피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독일이 성취하려는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비록 그 방법에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이다. 히틀러도 그에게 열려 있었던 유일한 길을 선택한 것이며, 결국에는 독일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했던 열렬한 나치당원들조차도 다른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이 전쟁에 대한 침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들은 이렇게 설명했다,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한창 새 나라를 만드는 일로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쟁 때문에 우리가 구상했던 계획들을 모두 옆으로 밀쳐두고 저 빌어먹을 영국놈들과 싸우러 가게 되었으니 그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면에서, 독일인들의 지금 심정은 이제 막 포...더보기
출처 : Daum 지식
글쓴이 : 선악의 사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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