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목사와 신도 관계로 만난 두 사람. 그 신도가 결혼할 때 주례를 맡기도 한 목사. 두 사람은 모두 가정이 있는 상태에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고 지금은 철창신세를 지고 있다. 지난 13년간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아내와 주례 목사는 평일 낮 시간에는 모텔이나 자동차에서 만나 서로를 탐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만났다. 양쪽 가족은 교회에서 매주 마주쳤지만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남편 김씨는 개척교회를 운영하느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목사를 위해 신용카드도 빌려줄 정도로 믿음이 깊었다
2011년 11월 22일, 한 지방 법원 재판정, 목사 이준규(가명, 50세)씨와 집사 박지숙(가명, 40세)씨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 징역 1년이 선고됐다. 죄목은 간통이다. 간통은 대부분 집행유예가 선고된다는 점에 비추어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다. 담당 판사는 “목사인 이씨는 내연녀 박씨와 박씨의 남편인 고소인 김춘수(가명, 45세)의 혼인을 주례한 사람으로서 그 누구보다 부부가 꾸릴 가정의 행복을 기원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자신이 주례를 선 남편의 부인을 취해 사회적 근본을 크게 해쳤다. 목사는 그 남편의 용서를 받기가 쉽지 않다”며 높은 형량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목사 이씨와 집사 박씨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건의 고소인인 김씨를 어렵게 수소문해 만났다. 김씨는 아내가 주례 목사와 13년 동안 불륜을 저질러온 데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자를 만난 김씨는 지나간 21년의 결혼생활을 때론 격앙된 목소리로, 때론 회한에 잠겨 회고했다.
김씨와 박씨는 1991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 박씨는 김씨의 식사를 챙기거나 빨래 등을 도와주기 위해 그의 자취방에 드나들다 자연스레 혼전동거를 하게 됐다. 본가는 타지이지만 김씨를 따라 A시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박씨. 어느 날, 박씨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는 말을 들은 동네 주민은 그녀에게 B교회를 추천했다. 박씨는 흔쾌히 B교회에 등록했다.
“아내가 A시에 내려온 지 수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B교회 이 목사가 자기가 (주례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이 차이가 아내와는 10살, 저랑은 5살밖에 안 났고, 교회를 다닌 지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아 당황스럽긴 했지만, 직분이 목사라 믿고 맡겼죠.”
이후 조용히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김씨 부부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고, 목사 부부도 슬하에 자녀 셋을 두었다. 김씨 부부가 B교회가 입주해 있는 빌라의 같은 층에 거주하면서 친해진 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문제의 사건은 1998년 11월에 일어났다.
“그날 저는 동원 예비군 훈련에 가서 하루 종일 집을 비웠어요. 오후 11시쯤 목사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합니다. 아내가 문을 열자 목사가 들어와 아내를 강제로 범했다고 하더군요.”
박씨는 목사를 거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출산한 지 1백 일도 안 된 여자의 몸으로 30대 중반 남자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둘의 육체관계는 시작됐다. 박씨는 자술서에서 강간을 당한 것은 억울하지만 목사와 교인 관계이고, 남편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어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내는 목사를 강간으로 고소한다는 데 심적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강간은 범죄인데 당연히 바로 말을 하거나 조치를 취했어야죠. 아무리 직분이 목사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빌라에 교회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건 신앙심과는 별개의 문제잖아요.”
그 일이 있은 후 목사와 박씨는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은 평일 낮 시간에는 모텔이나 자동차에서 만나 서로를 탐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만났다. 양쪽 가족은 교회에서 매주 마주쳤지만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김씨는 개척교회를 운영하느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목사를 위해 신용카드도 빌려줄 정도로 믿음이 깊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날아든 것은 2천6백만원이 연체된 카드고지서였다. “저는 이제 신용카드도 한 장 못 만드는 저신용자입니다. 그때 목사가 진 빚 때문에요. 10년이 넘게 제 계좌에 한 달에 20만원씩을 송금해서 2009년에야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김씨의 직장 생활로 인해 부부가 C시로 잠깐 집을 옮겼을 때는 이 목사가 일요일 아침마다 직접 차를 몰고 C시로 왔다. 신앙심이 깊지 않던 김씨는 그 당시 아내만 교회에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요일에 가장 바쁜 목사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C시까지 와서 아내를 챙기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그때는 주례를 한 목사이니 신도의 신앙심을 지켜줘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2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세 남매를 키우면서 한 번도 아내를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박씨에 대한 김씨의 믿음은 컸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김씨의 수입이 많진 않지만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부부 사이에 특별한 갈등이 불거진 적도 없었다.
목사 이씨와 집사 박씨 사이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사건의 고소인인 김씨를 어렵게 수소문해 만났다. 김씨는 아내가 주례 목사와 13년 동안 불륜을 저질러온 데 대한 분노와 배신감으로 피폐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기자를 만난 김씨는 지나간 21년의 결혼생활을 때론 격앙된 목소리로, 때론 회한에 잠겨 회고했다.
김씨와 박씨는 1991년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전 박씨는 김씨의 식사를 챙기거나 빨래 등을 도와주기 위해 그의 자취방에 드나들다 자연스레 혼전동거를 하게 됐다. 본가는 타지이지만 김씨를 따라 A시에서 외롭게 생활하던 박씨. 어느 날, 박씨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는 말을 들은 동네 주민은 그녀에게 B교회를 추천했다. 박씨는 흔쾌히 B교회에 등록했다.
“아내가 A시에 내려온 지 수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주례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B교회 이 목사가 자기가 (주례를) 해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이 차이가 아내와는 10살, 저랑은 5살밖에 안 났고, 교회를 다닌 지도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아 당황스럽긴 했지만, 직분이 목사라 믿고 맡겼죠.”
이후 조용히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김씨 부부는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았고, 목사 부부도 슬하에 자녀 셋을 두었다. 김씨 부부가 B교회가 입주해 있는 빌라의 같은 층에 거주하면서 친해진 이들은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문제의 사건은 1998년 11월에 일어났다.
“그날 저는 동원 예비군 훈련에 가서 하루 종일 집을 비웠어요. 오후 11시쯤 목사가 초인종을 눌렀다고 합니다. 아내가 문을 열자 목사가 들어와 아내를 강제로 범했다고 하더군요.”
박씨는 목사를 거부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출산한 지 1백 일도 안 된 여자의 몸으로 30대 중반 남자의 힘을 이길 순 없었다. 그렇게 둘의 육체관계는 시작됐다. 박씨는 자술서에서 강간을 당한 것은 억울하지만 목사와 교인 관계이고, 남편에게 고백할 용기가 없어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아내는 목사를 강간으로 고소한다는 데 심적 부담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내의 말을 곧이곧대로 다 받아들이기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강간은 범죄인데 당연히 바로 말을 하거나 조치를 취했어야죠. 아무리 직분이 목사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빌라에 교회가 있더라도 그냥 넘어갔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건 신앙심과는 별개의 문제잖아요.”
그 일이 있은 후 목사와 박씨는 연인이 됐다. 두 사람은 평일 낮 시간에는 모텔이나 자동차에서 만나 서로를 탐했고, 주말에는 교회에서 만났다. 양쪽 가족은 교회에서 매주 마주쳤지만 어느 누구도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지 않았다. 김씨는 개척교회를 운영하느라 경제적 여유가 없는 목사를 위해 신용카드도 빌려줄 정도로 믿음이 깊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날아든 것은 2천6백만원이 연체된 카드고지서였다. “저는 이제 신용카드도 한 장 못 만드는 저신용자입니다. 그때 목사가 진 빚 때문에요. 10년이 넘게 제 계좌에 한 달에 20만원씩을 송금해서 2009년에야 그 빚을 다 갚았습니다.”
김씨의 직장 생활로 인해 부부가 C시로 잠깐 집을 옮겼을 때는 이 목사가 일요일 아침마다 직접 차를 몰고 C시로 왔다. 신앙심이 깊지 않던 김씨는 그 당시 아내만 교회에 보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요일에 가장 바쁜 목사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C시까지 와서 아내를 챙기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그때는 주례를 한 목사이니 신도의 신앙심을 지켜줘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20년이 넘는 결혼생활 동안 세 남매를 키우면서 한 번도 아내를 의심하지 않을 정도로 박씨에 대한 김씨의 믿음은 컸다.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김씨의 수입이 많진 않지만 가족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부부 사이에 특별한 갈등이 불거진 적도 없었다.
13년간의 외도 고백
그러던 2011년 6월, 김씨는 아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아내가 13년간 불륜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상대 남자가 이 목사라는 말을 듣고 더 경악했다. 그제서야 김씨는 이 목사와 아내의 불륜관계가 1998년에 시작되어 2010년 4월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월 초순까지만 해도 자동차에서 성관계를 했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둘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거죠. 아내가 이 목사에게 또 다른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같았어요.”
김씨의 말에 따르면 이 목사에겐 또 다른 내연녀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여자만 해도 다섯 명이라고 한다. 한번은 이 목사와 교회 여신도가 내연관계라는 소문이 났고, 이 목사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전도사를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자 아내는 이 목사에게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선언했고, 교회도 옮겼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서로 헤어진 후에도 이 목사는 아내를 찾아왔다.
“집사람이 교회를 옮겨서 전화하는 줄 알았죠. 원년 멤버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맡은 일도 있으니까요. 목사로서, 그리고 결혼 주례자로서 우리를 특별히 신경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이야기한 적도 있고요. 아내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함께 나가곤 했는데, 별로 신경 쓰진 않았죠. 교회 일이겠거니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밤 12시까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싶어요.”
아내는 헤어진 이후에도 교회에 나오라고, 다시 관계를 시작하자는 이 목사의 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목사가 남편이 있을 때도 집으로 찾아오는 대담함을 보이자 아내는 무척이나 불안해했다. 결국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김씨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그날 밤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세 자녀와 83세의 시어머니를 내버려둔 채였다. 아내가 주례를 해준 목사와 13년간이나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김씨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김씨는 배신감에 온몸을 떨며 이혼서류를 작성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어 늘 만취해 있었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를 데려오라고 아우성치다 엇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딸은 학교를 가지 않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던 중학교 1학년 아들은 가출했다. 20년간 피땀 흘려 지켜온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내가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기 한 달 전에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거든요. 한 달 만에 이런 상황을 맞은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아이들 망가지는 거 봐라. 너는 한 명이지만 애들은 세 명이지 않냐’고요. 섭섭하더라고요. 어머니도 제삼자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가출한 아내를 찾아가 설득해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김씨에겐 생지옥과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이혼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고 싶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김씨는 이 목사를 만나 B교회를 사임하고 다시는 목회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면 조용히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용서를 빌지도 각서를 쓰지도 않았다. 이 목사는 김씨를 피하기만 했다. 결국 김씨와 박씨는 2011년 7월에 이혼을 했고, 김씨는 두 사람을 간통으로 고소했다. 13년간의 불륜을 고백한 아내도, 목사의 인면수심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소장이 접수되고 조사가 시작되자 이 목사의 부인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가정을 지키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두 번 바람을 피웠다면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13년 동안이라뇨. 더구나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계속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목사도 김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만하자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수감되면 아내뿐 아니라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밝혀진 후에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 한번 안해보고 책임감 없이 13년간 불륜만 즐겼다는 겁니까. 용서를 빌고 각서를 쓰라고 할 때는 그렇게 버티더니…”
그러던 2011년 6월, 김씨는 아내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는다. 아내가 13년간 불륜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다. 상대 남자가 이 목사라는 말을 듣고 더 경악했다. 그제서야 김씨는 이 목사와 아내의 불륜관계가 1998년에 시작되어 2010년 4월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4월 초순까지만 해도 자동차에서 성관계를 했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둘 사이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거죠. 아내가 이 목사에게 또 다른 내연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헤어진 것 같았어요.”
김씨의 말에 따르면 이 목사에겐 또 다른 내연녀가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여자만 해도 다섯 명이라고 한다. 한번은 이 목사와 교회 여신도가 내연관계라는 소문이 났고, 이 목사는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전도사를 내쫓은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자꾸 반복되자 아내는 이 목사에게 관계를 청산하겠다고 선언했고, 교회도 옮겼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서로 헤어진 후에도 이 목사는 아내를 찾아왔다.
“집사람이 교회를 옮겨서 전화하는 줄 알았죠. 원년 멤버이기도 하고, 교회에서 맡은 일도 있으니까요. 목사로서, 그리고 결혼 주례자로서 우리를 특별히 신경 쓰는구나 생각했어요.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이야기한 적도 있고요. 아내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면서 함께 나가곤 했는데, 별로 신경 쓰진 않았죠. 교회 일이겠거니 생각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밤 12시까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나 싶어요.”
아내는 헤어진 이후에도 교회에 나오라고, 다시 관계를 시작하자는 이 목사의 말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 목사가 남편이 있을 때도 집으로 찾아오는 대담함을 보이자 아내는 무척이나 불안해했다. 결국 정신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아내는 김씨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그날 밤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세 자녀와 83세의 시어머니를 내버려둔 채였다. 아내가 주례를 해준 목사와 13년간이나 불륜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김씨는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김씨는 배신감에 온몸을 떨며 이혼서류를 작성했다. 맨 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어 늘 만취해 있었고,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아이들은 엄마를 데려오라고 아우성치다 엇나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 딸은 학교를 가지 않았고, 말썽 한 번 부리지 않던 중학교 1학년 아들은 가출했다. 20년간 피땀 흘려 지켜온 가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아내가 자신의 불륜을 고백하기 한 달 전에 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셨거든요. 한 달 만에 이런 상황을 맞은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아이들 망가지는 거 봐라. 너는 한 명이지만 애들은 세 명이지 않냐’고요. 섭섭하더라고요. 어머니도 제삼자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김씨는 아이들을 위해 가출한 아내를 찾아가 설득해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아내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김씨에겐 생지옥과 같은 날의 연속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이혼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고 싶었지만 아직 미성년자인 아이들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김씨는 이 목사를 만나 B교회를 사임하고 다시는 목회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면 조용히 넘어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목사는 용서를 빌지도 각서를 쓰지도 않았다. 이 목사는 김씨를 피하기만 했다. 결국 김씨와 박씨는 2011년 7월에 이혼을 했고, 김씨는 두 사람을 간통으로 고소했다. 13년간의 불륜을 고백한 아내도, 목사의 인면수심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소장이 접수되고 조사가 시작되자 이 목사의 부인이 김씨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가정을 지키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한두 번 바람을 피웠다면 실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13년 동안이라뇨. 더구나 목사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계속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 목사도 김씨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만하자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수감되면 아내뿐 아니라 초등학교 2학년인 딸과 중학교 2학년인 아들은 어떻게 하냐고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밝혀진 후에 어떻게 될까 하는 고민 한번 안해보고 책임감 없이 13년간 불륜만 즐겼다는 겁니까. 용서를 빌고 각서를 쓰라고 할 때는 그렇게 버티더니…”
C시로 잠깐 집을 옮겼을 때는 이 목사가 일요일 아침마다 직접 차를 몰고 C시로 왔다. 지금 생각해보니 일요일에 가장 바쁜 목사가 차로 1시간 이상 걸리는 C시까지 와서 아내를 챙기는 것이 의심스럽지만 그때는 주례를 한 목사이니 신도의 신앙심을 지켜줘야겠다는 책임감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목사와 박씨의 제2라운드
간통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자 이 목사와 박씨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아내 박씨는 그동안의 관계를 인정했지만 이 목사는 경찰 조사와 검찰 1차 조사에서 박씨와 관련된 일을 부인했다. 소송을 제기한 김씨뿐 아니라 이 목사와 13년간 정을 통한 박씨마저도 이 목사의 매정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에 박씨는 기념일과 생일 부근에 모텔과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맺은 일을 조사관에게 털어놓았다. 결국 이 목사는 검찰 2차 조사에서 간통 사실을 인정했다.
처음 성관계를 한 그날에 관해서도 박씨와 이 목사는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 박씨는 이 목사가 강간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 목사는 박씨가 먼저 유혹했다고 맞섰다. 김씨는 두 사람의 흙탕물 싸움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이 목사는 내연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신도인 김씨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행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참고인 조사 때문에 법원에 갔다가 이 목사를 만났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 때렸죠. 그런데 2주 진단서를 끊어서 소송을 걸었더라고요. 제가 그 정도는 때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는 맞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건 당사자인 이 목사와 박씨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수감된 상태라 접촉이 쉽지 않았다. 박씨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면회를 일절 거절했다. 이 목사 측 관계자들은 행적을 감춘 상태다. 이 목사가 사용하던 휴대폰은 수신이 정지돼 있었다. 이 목사가 실형을 받기 전까지 목회한 B교회를 찾아갔다. 이 목사가 사임하면서 교회 이름이 바뀌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 이 목사는 사임을 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주소나 전화번호 등은 따로 남기지 않았다. 한 교회 관계자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사임하시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워낙 꼼꼼하신 분들인 거 같아요. 오랫동안 목회를 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흔적이 없습니다. 저희도 바뀐 주소와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할 방법이 따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서울 강서구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이 목사 가족들의 행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B교회 신도들이 말을 아끼는 상황에서 이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 상가 상인들뿐이었다. B교회 앞에서 7년째 외식업을 하는 한 사장은 “소송에 휩싸였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했어요. 나이에 맞게 머리도 약간 벗겨졌고요. 주일 교회 예배가 끝나면 앞에서 신도들과 인사하는 모습, 신도들과 주변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만 잠깐잠깐 봤죠. 마지막으로 본 건 6~8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다른 소문도 들리던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와 이 목사의 13년간의 내연관계가 드러나면서 두 가정이 무너졌다. 특히 기자가 찾은 김씨의 집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평일 오후 5시, 아들과 손자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노모와 컴퓨터 게임만 하는 중학교 1학년 막내. 아늑한 소파와 대형 TV가 있는 거실은 황량하기만 했다.
사람은 있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에서, 남은 사람들은 배신감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박씨와 이 목사의 불륜이 드러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벽 2~3시면 깨어나 다시는 잠을 못 이룬다는 김씨. 이 목사와 박씨가 항소한 소식을 들었냐는 질문에 “아마 그 사람은 이번에도 실형이 나오면 상고까지 할 거다”라며 한숨을 쉰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이번 일은 양쪽 가정에 지우지 못할 상흔으로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집을 나서는 기자를 응시하는 막내의 텅 빈 눈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간통에 대한 소송이 진행되자 이 목사와 박씨 사이에 치열한 공방이 시작됐다. 아내 박씨는 그동안의 관계를 인정했지만 이 목사는 경찰 조사와 검찰 1차 조사에서 박씨와 관련된 일을 부인했다. 소송을 제기한 김씨뿐 아니라 이 목사와 13년간 정을 통한 박씨마저도 이 목사의 매정함에 혀를 내둘렀다. 이에 박씨는 기념일과 생일 부근에 모텔과 자동차 안에서 성관계를 맺은 일을 조사관에게 털어놓았다. 결국 이 목사는 검찰 2차 조사에서 간통 사실을 인정했다.
처음 성관계를 한 그날에 관해서도 박씨와 이 목사는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 박씨는 이 목사가 강간을 했다고 주장했고, 이 목사는 박씨가 먼저 유혹했다고 맞섰다. 김씨는 두 사람의 흙탕물 싸움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이 목사는 내연녀의 남편이자 자신의 신도인 김씨에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폭행 혐의로 김씨를 고소했다.
“참고인 조사 때문에 법원에 갔다가 이 목사를 만났습니다.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얼굴을 몇 대 때렸죠. 그런데 2주 진단서를 끊어서 소송을 걸었더라고요. 제가 그 정도는 때릴 자격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 정도는 맞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사건 당사자인 이 목사와 박씨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싶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수감된 상태라 접촉이 쉽지 않았다. 박씨는 가족을 제외한 그 누구와도 면회를 일절 거절했다. 이 목사 측 관계자들은 행적을 감춘 상태다. 이 목사가 사용하던 휴대폰은 수신이 정지돼 있었다. 이 목사가 실형을 받기 전까지 목회한 B교회를 찾아갔다. 이 목사가 사임하면서 교회 이름이 바뀌고, 새로운 목사가 부임했다. 이 목사는 사임을 하면서 서울로 이사를 간다는 말만 남긴 채 주소나 전화번호 등은 따로 남기지 않았다. 한 교회 관계자는 “목사님과 사모님이 사임하시고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워낙 꼼꼼하신 분들인 거 같아요. 오랫동안 목회를 해오신 걸로 알고 있는데 흔적이 없습니다. 저희도 바뀐 주소와 전화번호를 몰라 연락할 방법이 따로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목사의 주민등록상 거주지인 서울 강서구를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이 목사 가족들의 행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B교회 신도들이 말을 아끼는 상황에서 이 목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주변 상가 상인들뿐이었다. B교회 앞에서 7년째 외식업을 하는 한 사장은 “소송에 휩싸였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했어요. 나이에 맞게 머리도 약간 벗겨졌고요. 주일 교회 예배가 끝나면 앞에서 신도들과 인사하는 모습, 신도들과 주변 식당에서 밥 먹는 모습만 잠깐잠깐 봤죠. 마지막으로 본 건 6~8개월 정도 된 것 같아요. 다른 소문도 들리던데 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와 이 목사의 13년간의 내연관계가 드러나면서 두 가정이 무너졌다. 특히 기자가 찾은 김씨의 집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평일 오후 5시, 아들과 손자를 위한 저녁을 준비하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는 노모와 컴퓨터 게임만 하는 중학교 1학년 막내. 아늑한 소파와 대형 TV가 있는 거실은 황량하기만 했다.
사람은 있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에서, 남은 사람들은 배신감과 외로움을 견디고 있었다. 박씨와 이 목사의 불륜이 드러난 지 6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새벽 2~3시면 깨어나 다시는 잠을 못 이룬다는 김씨. 이 목사와 박씨가 항소한 소식을 들었냐는 질문에 “아마 그 사람은 이번에도 실형이 나오면 상고까지 할 거다”라며 한숨을 쉰다. 이들의 이야기가 어떻게 결론이 나든, 이번 일은 양쪽 가정에 지우지 못할 상흔으로 평생 남아 있을 것이다. 집을 나서는 기자를 응시하는 막내의 텅 빈 눈길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출처 : 우먼센스
글쓴이 : womansense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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