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mason and Illuminati

김대중 비정규직

그리운 오공 2009. 3. 1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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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를 어둠으로 몰아가는 비 정규직 제도(2)



비정규직 제도는 아르바이트, 파트 타이머, 파견 근로자등으로 역사가 오래되었지만 우리나라 기업이 본격적으로 정규직을 해고하고 계약직으로 대체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국제사회(실제로는 투기자본)가 요구하는 대로 정리해고를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법안을 시행하였다.  이른바 국제적 흐름에 적합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수용한 것이다.  노동의 유연성은 성장이 분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현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부분과 주주가치극대화 사조만 놓고 보면 극우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틀림없다.  이는 대다수 근로자들의 고통을 바탕으로 모두가 제 몫만을 챙기는 데 혈안이 되어버린 천민자본주의 풍조에서 찾을 수 있다.


비정규직 확산의 아이러니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40% 수준이라는 통계가 있었다.   비정규직 제도는 앞서 말한대로 영세한 소기업이나 광범위한 의미의 서비스업등 꼭 필요한 업종과 단순 반복적인 업무에는 매우 유용하다.  또 노동의 질적수준이 낮은 사람이나 임시로 일자리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우량기업까지 인건비 절감을 목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도입함으로써 문제를 발생시켰다.  정상적인 대학교육을 받은 우수인력 조차 열악한 근로조건의 비정규직으로 밖에 진출할 수 없다면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혹자는 비정규직의 확산은 노동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의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겠지만 세상의 제도는 언제나 여론을 형성하고 칼자루를 쥔 측이 유리하게 만들어 왔다.  그것은  강자와 약자가 고통을 같이 분담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약자에게만 고통의 전부를 전가시키고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국제적인 흐름에 적합한 정리해고제도를 도입하였는데 이름하여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매우 듣기 좋은 말이다.  이 법률은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을 때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운용하도록 규정 하였지만 실제 기업에서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다.  오죽하면 사오정이나 오륙도 등 숱한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기업은 고임금의 정규직을 내쫓고 그 빈자리를 비정규직으로 메웠다.  애매모호한 법조항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정리해고, 명예퇴직,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눈물을 흘려야만 했던가.  퇴직과 관련하여 아직까지도 소송이 끊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 법이 얼마나 무원칙하게 악용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사실은 야당시절 그토록 반대하고 근로자와 서민을 위한다던 김대중 정부에서 이를 시행한 점이다.  정리해고제는 사실 그 보다 1년전인 김영삼 정부에서 날치기 통과까지 하였지만 노동계와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좌초한 정책이다.  결과적으로 우파 정부에서 못한 일을 좌파정부에서 한 셈인데, 국제 투기자본과 대기업을 위한 극우의 노동정책은 옳은 선택이었다.  적어도 외환위기를 타개한 부분에서는 디딤돌이 된 것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던가. 외환위기를 극복한 김대중정부업적은 참여정부에 양극화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김대중 정부는 대한민국 양극화의 주범이다.


신 자유주의 경제의 환상에서 깨어나자


자본주의 경제의 아킬레스 건은 독점, 그리고 부의 편중현상이고 이것은 필연적으로 공황이라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 한다.  신 자유주의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하여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온 경제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기능은 제한하면 할수록 경제는 활력을 잃었고 장기불황이 계속되었음은 학습효과로 증명되었다. 

신자유주의 경제는 이른바 성장이 분배를 개선할 수 있다는 이론에서 출발한다.  자본주의는 완전 자유주의에서 통화관리를 중심으로 한 정부의 개입시대를 거쳐 다시 신자유주의로 발전해 왔다.  성장과 분배사이를 방황하다가 다시 성장이론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경제의 탄생 배경이며 그 수단으로 노조의 힘을 무력화 하기위한 노동의 유연성이 추가 되었다. 


실제로 이 흐름을 선택한 미국은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였고 영국은 수십년간의 장기불황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또한 이 사조는 세계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와 경영의 귀재 잭 웰치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 경제사조를 모든 국가에서 채택한 것은 아니다.  일본이나 대부분의 유럽국가는 아직까지 수용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일본은 종신고용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세계일류국가가 되었음은 미국에서는 미스터리로 생각하고 있을 정도이다.

신자유주의는 기업의 자율성과 무한경쟁을 통해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  아니 살아남는 것이 강한 것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었다.  기업의 체질을 개선하고 경쟁력을 키웠고 국민 총생산을 증가시킨 점이 공이라면, 반대로 비정한 밀림의 법칙을 만들어 내어 문명의 시계를 뒤로 돌린 것이 과이다.   그 과정에서 최대의 피해자는 수십만 정리해고자와 이들을 대신해 취업한 수백만 비정규직 근로자임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맞지 않는 옷, 비정규직 제도


정리해고가 자유롭고 비정규직 근로가 보편화된 미국은 그 배경부터가 우리와 판이하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소위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끊임없이 이민이 몰려오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불법이민이며 히스패닉이나 동양계. 흑인등 유색인종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미국 주류사회의 구성원 보다 교육수준이 낮아 숙련된 노동을 필요로 하는 고임금의 정규직에는 부적합하다.

저임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골라 쓸 수 있는 여건에서 구태여 고임의 정규직으로 채용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누가 그들보고 미국으로 오라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꿈을 찾아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들어온 사람들로서 마치 우리나라에 밀입국한 동남아인들이나 중국 동포와 흡사하다.  그 사람들이 무슨 찬밥 더운밥을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듯이.

 

한편 우리나라의 비 정규직은 대부분 대학까지 졸업한 양질의 노동력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 왔기에 떠날 수도 없는 나라에서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선착순으로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뒤에 오는 사람에게 나쁜 자리만 비워 둔 격이다.  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 맞이하는 일자리가 비정규직 밖에 없다면 이는 누가 보더라도 정상적인 시장구조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버려야 할 천민자본주의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두가지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돈을 버는데 고통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생활정신이고 또 다른 하나는 품위 있게 돈을 쓴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개처럼 번다는 데만 의미를 둘 뿐 번돈을 어떻게 쓰든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승처럼 쓴다는 것은 나눔과 절제의 미덕이다.  노동의 유연성과 주주가치 극대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경제는 결과적으로 경영 과실을 주주와 전문경영인들만 나눠 갖는 것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그토록 경멸하는 천민자본주의의 전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것은 돈을 버는데 자신의 고통 보다는 다른 사람의 고통 위에서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일자리 창출은 정부도 할 수 없는 오로지 기업가 정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실제로 신기술의 개발로 막대한 국부를 창출하는 기업도 있고 원가절감으로 경쟁력을 높인 경영능력은 높이 사야 한다.  다만 현재와 같이 비 정규직문제를 방치한 채, 주주이익을 높혀 주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규직 수백명, 수천명분의 연봉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몇이서 독식하는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무리 기업이 이윤 추구 집단이라지만 주주가치 극대화만이 최고가치가 되는 신자유주의 경제사조는 빈부차이가 극심한 우리나라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기업도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존재가치가 있는 것은 이윤의 뿌리를 우리 사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번 돈을 몇 사람이서 나눠 갖기 위하여 비정규직문제를 계속 볼모로 하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기업의 경영성패가 조직력에 의한 승부가 아닌 전문경영인들의 원맨쇼에 의존 한다면 우리사회는 아직까지 지.학.혈연에 의한 로비능력이나 뇌물등 금전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을 경영할 수 밖에 없는 후진국가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기업경영의 자율성을 해치는 분야에 대한 고강도의 개혁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얼마 전 국내 굴지의 제약회사 사장으로 취임한 전문경영인은 조직의 힘으로 이끄는 것이지 그 공로를 경영자만 독식하는 것은 시대정신에 부적합하다는 말에 가슴 뜨끔한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맺는 말


신 자유주의 경제의 핵심을 이루는 노동의 유연성은 기업의 생산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다만 그것이 정규직을 내쫓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편법운영의 구실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주주가치극대화론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의 메카 미국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는 데 오히려 사회복지를 중요시하는 우리사회가 왜 침묵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진보를 지향하는 국민과 참여정부에서 말이다.  양대 정부의 집권기간동안 빈부격차가 수배로 확대된 원인을 아직도 모르고 있다면 소도 웃을 것이다.  모든 것을 부동산가격 폭등 탓으로 돌리는 안일한 사고에서 벗어나 왜곡된 소득 배분기능을 정상화 시켜야 한다.


비정규직문제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명분으로 소수에게 분배되는 돈을 재원으로 하면 상당부분 해결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비정규직은 당초 취지대로 꼭 필요한 분야에만 국한시키고 나머지는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함으로써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를 동시에 해소 한다는 기업윤리헌장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만일 기업 스스로가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부가 나서야 할 때이다.

 

 

 

 

사이비 종교 김대중교 김대중 신도들은 아직도 김대중을 신격화하고 그가 마치 경제를 살렸다는 착각에 빠져 있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김대중은 IMF탈출을 핑계로 기업들에게 해고의 칼날을 쥐어주고 비정규직제도를 악용하여 국민경제를 수렁에 몰아넣은 지금의 수많은 대한민국 젊은 인력들을 집에서 놀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그는 우파냐 좌파냐를 떠나서 완전히 실패한 경제 무능력 대통령입니다.

 

그뿐입니까 김대중은 한국의 기업들을 외국기업에 종속시키게 만든 파렴치한 자입니다.

 

요즘 보면 저도 좋아하지 않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실정을 핑계로 김대중교도들이 이명박 정부를 핑계 삼아 은근히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소리입니다.

 

김대중이란 이름이 한국에서 떠나는날 대한민국 국민이 정신차리게 될것입니다.

 

창님을 선택하지 않고 김대중을 뽑아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서도 아직도 정신 못차리는 김대중 광신교도들보면 한심할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