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와 나찌에 대한 왜곡

[스크랩] 북아프리카군단 전사 : 1942년

그리운 오공 2012. 6. 1. 17:08

1. 1942년 여름 롬멜의 전성기

1942.1월초 영국군을 토브룩까지 밀어낸 롬멜은 다시 공세를 시작합니다.

 

1942. 5.26-6.15 [가마솥 전투](전투명은 ebs다큐 근거: 영국군이 그렇게 불렀다 함.)

=> 영국군 8군단 와해되서 이집트 국경까지 후퇴. 엘 알라메인(알렉산드리아에서 조금 동쪽에 위치.)을 최후저지선으로 삼음.

 

1942. 6.15- 1942. 6.22 토브룩 포위 공격, 토브룩 함락시킴.

'롬멜' 독일최연소 원수로 승진.

 

*승리 요인*

1.[가마솥전투]는 치열했다고만 다큐에 나올 뿐 구체적 승리전술 등은 안 나와 있습니다.

대신 독일군 슈트카의 맹폭격 지원을 받았다고 하네요.  이 전투는 아프리카군단도 출혈이 무척심한 혈전이었습니다.

 

2. 토브룩 요새공격은 롬멜의 기만전술의 승리였습니다.

먼저 "남서쪽에 공격할 것이다."라는 정보를 흘린 후. 남동쪽의 방어전력이 그 쪽으로 이동한 틈을 타서

남동쪽을 보병들이 맹공격하여 공격할 틈을 확보하고 그 후 전차가 진군한 식으로 공격하였다 합니다.

전리품으로는 5.000톤의 식량, 2,250,000리터의 석유, 2,000대의 차량 등을 획득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독일은 이 승리를 대대적으로 선전하였습니다.

 

2. 1942년 롬멜의 좌절

1942.7.1 엘 알라메인 공격에 나섬.

 그러나 폭격기의 공습에 아주 큰 손실만 입었고 방어진지에 막힘. 

 

1942. 7.10 사브리나의 이탈리아군 괴멸.

 

1942. 8.8 '버나드 몽고메리'가 영국8군 사령관에 취임.

이 당시 엘 알라메인의 영국군은  재정비를 완료해서 그 규모가 독일군의 3배가량이었음.

 

1942.9.29- 10.25 북아프리카에서의 과로로 위장병을 앓고 있던 '롬멜'  독일본국으로 소환됨.

원수계급장을 받음. 그리고나서 즉시 복귀하지 않고 요양함.

 

1942. 10 몰타에서 출격한 영국군 이태리 남부 항구 맹폭격.

 

1942.10.23 영국군 총 공세 시작.

'롬멜'은 '히틀러'의 사수 명령을 무시하고 튀니지까지 퇴각

이 때쯤에 롬멜에게 남은 전차는 10여대뿐이었다 합니다.

사실 퇴각한 것도 지뢰등을 이용해서(롬멜은 매우 뛰어난 보병장교 출신입니다.) 퇴각하였다 합니다.

 

1942. 11 미,영연합군 튀니지 서쪽의 알제리에 상륙 [횃불작전]

롬멜의 군대는 양옆으로 포위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1942.11 북아프리카에서 완전퇴각하기 위해 '히틀러'와 담판 지으러 독일로 날아감.

그러나  독일공수부대와 티거전차만 받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옴.

 

 

*패배원인*

1. 지중해 상공의 독일의 제공권은 어떻게 된거야??

위 내용 중 사브리나의 이탈리아군이 괴멸했다는 것이 보일 겁니다. 또한 이태리 남부 항구가 폭격을 받고요.

'롬멜'은 엘 알라메인 공격 중 "하루종일 계속된 적폭격기의 폭격으로 보병과 전차 모두 큰 피해를 입었다.'라고 적고 있습니다.(ebs다큐)

이 얘기가 전부 맞다면 지중해 상의 독일 전투기들은 없었다는 얘기인데,  그렇담  독일 공군은 어디로 가 있었을까요?

=> 저는 요렇게 판단합니다. 독소전에 전부 가 있었다는 얘기이죠.

 

2. 롬멜 자신의 패착

2-1. 지나친 전선 확대: 다큐의 영국사가들은 하나같이 롬멜의 보급문제 무관심을 지적합니다.

 

독일의 보급항 트리폴리에서 엘 알라메인까지는 1.300마일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도착해서 전차의 연료는 보급트럭으로 싣고 날라야 하는데, 보급트럭의 연료에 20-30%의 석유가 날아갑니다.

또한 북아프리카의 지형은 모래가 굳어진 돌, 자갈, 바위 등지라서 여기에 마모되는 기계류가 엄청났습니다.

탱크는 또 어떤가요?  탱크의 보급은 유럽전선에서는 철도로 실어날라와 진 다음에 거기서부터 탱크가 움직입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는 트리폴리에 도착하자마자 최전선 엘 알라메인까지 탱크스스로 움직여야했습니다.

 

단순히 연료와 탱크 보급만 해도 이 정도로 비효율적입니다. 엄청난 전선확대는 그야말로 독이었지요.

그런데 롬멜 자신은 보급문제는 "자신의 일이 아니다."라며 자신은 전쟁터에서 잘 싸우면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롬멜이 공세를 준비하던 1941년 초반에는 지중해상에 u-보트의 활동이 증가하기도 하였습니다. 전쟁 초반에 롬멜이 양질의 군대를 가지고 있던 이유 중 하나라 보기도 합니다. 저는.  그리고 1941년 중반에 이집트국경에 도달하기 전까지  북아프리카군단은 열악한 보급품 수송문제로 인해  영국군이 버리고 간 차량을 노획해서(영국군은 1941년 중반까지 대패해서 급하게 도망가느라 탱크까지 버리고 갔습니다.) 보급품을 운송합니다.

[손자병법]에 나온, "적국 내에서는 물자는 적의 것을 쓰라"는 것이지요.

 

 

2-2. 위의 내용을 보면 롬멜이 병 요양차 독일로 간 다음(원수계급장 받으러 간 것도 있지만요.)

바로 복귀하지 않았습니다.

=> 한 마디로 전쟁터에 장수가 1달동안 시간을 비워놓았다는 얘기입니다. ㅡ.ㅡ;;

롬멜외 이탈리아군 장성들은 무능력했고 이탈리아군은 사기또한 상당히 의심스러웠습니다.

 

3. "울트라 시스템"에 의한 이탈리아 보급선의 격침 횟수 증가

전에 제가 "애니그마"해독 얘기 한 거 아시죠?

ebs다큐에서는 "울트라 시스템"이라고 소개되는 게 있습니다. 요게 뭐냐면, "애니그마"의 독일 암호를 단 몇 시간만에 해독하는 시스템이랍니다. (출처:nardly님 블로그.)  사실 다른 글에 나중에 쓰려고 한 내용이지만, 이탈리아 보급선격침 문제는 단순 이 시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북아프리카전쟁내내 있었던 얘기입니다. 몰타섬의 존재때문이었죠.

 

*몰타섬: 이탈리아 정남부에 위치한 작은 섬.  고대로부터 그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군사적으로 중시되왔던 섬이다.(출처: 위키백과)*

=>트리폴리까지 가는 해상보급로는 몰타섬에서 출격한 영국폭격기에 노출되기 쉬운 위치였습니다. 또한 지중해상의 제해권을 영국이 가지고 있던 터라 영국군 잠수함에 걸리기도 쉬웠죠. 

 

참고) ebs다큐 대서양해전, 파란의역사 u-보트 편을 보면, "애니그마"의 해독때문에  u-보트는 점점 연합군에게 위치가 노출되서 작전수행이 어려워집니다.

 

 몰타섬의 두번째 중요한 점은 영국군 항구요새 토브룩에 물자를 퍼다주는 중간보급기지 역할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토브룩은 북아프리카군단에게 둘러쌓여 고립되어서도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수에즈운하 돌파를 노리는 롬멜 입장에서는 이러한 후방의 큰 위협 토브룩을 내버려 둘 수 없었던 거지요.   롬멜은 1941년 사령부에 강력히 항의하여 독일공군이 몰타섬 폭격을 하기도 합니다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기록에 전하네요. 이후로도 롬멜의 작전수행에 있어서 토브룩과 몰타는 두고두고 후방의 골칫거리였습니다.

 

 

 

4. '버나드 몽고메리'의 필승 패턴

그는 엘 알라메인에서 보급, 병력 보충등등 모든 준비가 끝나기 전까지 엘 알라메인이라는 방어진지만 구축하고

only 방어전으로 일변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아프리카군단을 칠 때는 영국8군이 아프리카군단 병력의 3배가 넘는 규모였습니다.

또한 엘 알라메인은 가까운 곳에 보급창을 두었다고 하네요. (어딘지는 다큐에 안 나와서 모릅니다. 좀 알려주십시오.)

 

상대는 보급이 충분치 않고 병력도 많이 소모되었으며, 먼 길을 왔고, 거기다 사령관도 부재 중이며

우리는 병력이 상대의 3배이며, 보급은 충실하고 전투기 지원은 압도적이고 등등

=> 진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1942년 12월경의 상황

적색선: 아프리카군단

청색선: 영국군

녹색선: 미1군

 

 

*북아프리카 전선의 거시적 전략 목표* (1942년)

 

1942.3 Operation Blau(청색 작전) : 히틀러

=> 작전 목표: 카프카스 유전지대(석유)

 

1. 독소전의 남부집단군 : 카프카스 유전지대를 목표로 주공을 돌린다.

 파생된  전투: 크림반도섬멸전, 세바스토폴 요새 공방전(만슈타인 작품)

그리고 그 유명한 스탈린 그라드 전투가 이 '청색 작전'때문에 일어납니다.

2. 북아프리카군단

(1941년도에는 그냥 구색맞추기 부대였지만 이후 롬멜의 신화적인 활약에 의해 규모가 커짐. 그리고 거기에 따른 기대도 큰 듯 보임.)

: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돌파하여 팔레스타인 지방을 돌파, 아랍 유전을 차지하고 코카서스산맥을 통해 카프카스 유전지대에서 남부집단군과 만난다.

3. 이에 따라 터키를 추측국으로 유도한다.(외교전)

 

이 비현실적 전략을 대체 누가 입안했는지는 전 모릅니다.

북아프리카군단의 역할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롬멜이 입안했다는 얘기도 ebs다큐에 나오고, 같은 식으로 히틀러가 입안했다고 다른 ebs다큐편에 또 나오고해서요.

 

이제 왜 1942년도에 롬멜이 그렇게 '진격, 진격'을 외쳤는지 이해되시는지요??

=> 그 사람은 원래 성향 자체가 공격 일변도인 장군이기도 합니다.

 

p.s)전쟁군수책임자: 괴링

=> 독일의 전투기 생산대수는 오히려 대전초기보다 후반기로 가면 갈수록 떨어졌다. ㅡ,ㅡ;;;

 

 

p.s) 괴니히스 티거의 오류를 지적해주신 락 컴페년 오피서님의 애정어린 뎃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글의 오류를 고칠 수 있었습니다.  ^^;;;

아무래도 티거전차( 1942년말부터 1945년까지 사용되었다.출처: 위키백과)인 듯하여 그리 바꾸어놓았습니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책,다큐, 위키백과'내용 다 약간씩 차이가 있군요.  글 쓸 때 이 점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ㅠ.ㅠ);;;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Che_GueVaR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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