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 테슬라

니콜라 테슬라 이야기 3 (펌)

그리운 오공 2011. 6. 25. 17:44

잊혀진 전기 자동차.

이 자동차는  구동 에너지를 기존의 자동차와 같이 화석 연료의 연소로부터가 아닌 전기에너지로부터 얻는 자동차보다 더뛰어나고, 지금으로서도 새로운 기술로 탄생된 " 에테르 연료 자동차 "는 테슬라 의 평판과 그 자동차의 실용성에 의문을 품었던 "피어스-애로사" 와의 알수없는 협상을 통해 결국 완전분해된는 결과를 맞이한다.

정말 알고싶은건 그 미스테리한 자동차가 실존했으며 왜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사용되는 그 신비한 자동차를 "피어스-애로사"는 왜 무시했는가 이다.

단지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피어스-애로사"는 이 자동차의 존재를 절대 인정치 못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본적인 에너지원을 바꿔야한다는 결론은 그 들 뿐만이아니고 ,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는 다른 생산업체도 인정치못했을 테니까..............

세계의 화석연료가 고갈되어 가고 있으며 피할 수 없는 '연료 대란'을 목전에 둔 현실에서, 테슬라가 영원히 무료로 사용할수 있는대기 중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고성능의 자동차를 버팔로 시내에서 질주 했다는 것은 생각 있는 과학도들에게 자극제가 될것이다.

근래에 와서 건전지를 이용한 전기자동차가 한참 대두되더니 요즈음에는 연료전지(fuel cell) 를 이용한 전기자동차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10여 년 전에 한국 내연기관 제조업계에 연료전지 연구를 촉구한 일이 있으나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는 무심한 반응에 포기하고 만 일이 있었다. 그때 캐나다 발라드(BallardPower System)사가 세계 최초로 연료전지 개발에 착수하여 일본이나 독일 유수 자동차 회사들과 합작으로 기술개발을 진행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한국의 대기업 중에도 많치는 않지만 대체에너지 연구에 뛰어든 곳도 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그랬든 앞으로 향후 최소 3~40년간은 석유에 의한 에너지원으로 갈것이며, 그 이상이 될것이다.

그리고 그 전에 세계는 에너지확보라는 문제에 봉착하고 있으며, 석유의 확보가 밑바탕으로한  새로운 전쟁이 야기될지 모른다.

어찌되었던 니콜라 테슬라는 이 석유라는 문제에 있어 이미 60여년전에 우리에게 문제를 제기했고 그 해답을 제시했다.

하지만, 에디슨 의 직류전기가 테슬라 의 교류전기보다 더 상업적으로 활용돼었듯(물론 나중에 교류전기도 상업적으로 인정받았지만..)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잘 알려지지도 못한채 창고에서 분해되고 말았다.

테슬라와 함께 사라진것이다.

하지만...........아직 그 의 애기는 끝난것이 아니다.
아직 그 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인정받지 못한 과학 의 진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알려지지 않은 천재 과확자 " 테슬라".



현대사회에서 전기라는 것은 인간생활과 분리시킬 수 없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이 전기의 발전에는 에디슨을 위시해서 패러데이,헤르츠, 볼타 등등 많은 과학자들의 공헌이 있었지만 전기발전에 누구보다 큰 공헌을 하고도 숨겨진 사람이 있다.

19세기 후반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 가 이세상에 나왔을 때는 지금과 비교해 전기가 매우 원시적인 상태였다. 기초적인 전기이론은 어느 정도 확립되었지만 직류전기밖에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

그런데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배터리에서 생성되는 전기 외에는 대부분이 교류전기이다. 교류전기가 보편화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는데, 교류전기는  그 이론에서부터 실용화까지 완전히 테슬라의 공적이었다.

이것만이 테슬라의 업적은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아직 소개되지 않은 그의 이론과발명품들이 너무도 많다. 만약 그의 업적이 교류전기 하나로 그쳤다면, 우리는 지금 전기에 관해 에디슨보다 테슬라를 떠올리고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말은 언뜻 듣기에 모순처럼 들릴 것이다. 그의 업적이 한두가지에 그쳤다면 잘 알려졌겠지만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모른다니, 납득하기 어려운 말 아닌가, 그러나 그것이 사실이고, 인간세상에서는 이런 모순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을 테슬라의 경우를 보고 재차 확인하게 될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의 발명품들은 대단한 것들이었지만, 누군가의 돈벌 수 있는 기회를 빼앗기도 할뿐더러, 자기네들만의 무기로 사용할 만한 가공할 위력을 가진 것이기에 세상에 숨긴 것이 아닐까 한다.

인류를 위해 좋은 발명을 하고도 매장된 이가 테슬라만은 아니지만, 테슬라의 경우는 전자기파 비밀무기와 너무나 중요한 관련이 있기에 여기 소개한다.

테슬라는 역사 속에 묻혀 버린 무명의 여느 과학자가 아니다. 이 사람은 제2의 산업혁명을 일으킨 장본인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과학자란 소리를 들을 정도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세상에 그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는 마차 시대에 살면서 달에 로켓을 보낼 수 있는 이상의 미래를 개척한 과학자였다. 그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을 산 사람이지만 , 21세기인 지금에도 세상 사람들이 아는 최첨단 과학기술보다 훨씬 더 앞선 과학을 만들었다.

과학소설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90여 년 전에 녹음기, 마이크로피쉬, 홀로그램, 팩스 따위의 필연적 발명을 예견했고, 1928년 이미 텔레비전 설계도를 잡지에 발료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에나 올듯 싶은 미래사회를 묘사한 [랄프124C41 +] 라는 소설을 쓴 휴고 건스백(Hugo Gernsback, 1884~1967)은 이런 테슬라를 가리켜 인류 역사상 세상에서 가장 훌룡한 과학자라고 평했다.

아르키메데스나 페러데이 또는 에디슨보다도 훨씬 훌룡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발명이란 것이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지식을 토대로 만든데비해서 니콜라 테슬라는 두번 다시 생각할 필요도 없이 과학을 창조했다.

그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자일 뿐 아니라 미래에도 그를 능가할 과학자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대담무쌍한 담력으로 이룩한 기초 지식과 혁명적인 과학 발견은 지식세계에서 또다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위대한 과학자가 어째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가.

여기에 소개하는 테슬라의 자취는 수박 겉핥기밖에 안되지만, 읽어 가면서 그 원인을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조작하고 왜곡한 사실을 절대 진리이자 진실한 역사인 양 믿는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현대의 인류문명은 전기 없이는 상상할 수 없다.

우리가 그전기의 해택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발명왕 에디슨 덕택이라고 흔히들 알고 있다.  미국의 스미스 소니언 박물관의 에디슨관에는 이런 에디슨의업적을 기리는 전시품들이 가득하고, 그곳은 항상 방문하는 이들로 붐빈다. 물론 에디슨이 훌룡한 발명가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또 하나의 커다란 역사 왜곡일 뿐이다. 그는 과학자로 알려졌지만,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사업가로서 더욱 실력을 발휘했음을 알 수 있다.

자기 자신이 직접 발명했다는 수많은 발명품은 대부분 그의 사업 지도력 으로 고용인들이 발명한 것들로,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기 때문에 기록상 그의 발명품으로알려진 것뿐이다.
여기서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지 않는가. 테슬라의 과학지식과 발명품은 에디슨이 상상하고 이해할수있는 범위보다 몇 차원 더 앞선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에디슨이 사실 이상으로 과대포장되어 영웅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이런 나의 의문을 뒷받침해 주는 실례가 하나 있다.


미국 미시건 주 앤아버의 초등학교 교사인 와그너(John Wagner)는 3학년 학생들에게 테슬라에 대해 가르치고 그의이름을 되살리기 위해 구리로 그의 흉상을 만들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전시해 줄 것을 요구한 일이 있다. 테슬라가 받은 특허번호와 모터가 에디슨관에서 에디슨의 흉상과 함께 전시되고 있어 관람객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동상은 박물관에 진열되지 못하고 예일 대학교에 진열되었다.

이들의 진정에 의해 레빈(Carl Levin) 이란 상원의원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압력을 넣어 겨우 남자화장실 옆 복도 어두컴컴한 구석에 테슬라의 유물이 담긴 작은 유리상자 하나가 진열되었을 뿐이다.  

그뿐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발간한 [발명책(The Smithsonian Book Invention)] 에도 니콜라 테슬라는 나와 있지 않았다. 이 책에는 에디슨이나 경질고무 발명가인 굿이어(Charles Goodyear) 를 위시해 전동칫솔이나 자동토스트기의발명은 물론이고심지어는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요리법을 특허낸 샌(Sanders)대령 같은 사람까지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테슬라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미국 고등법원에서 라디오 발명가는 마르코니(Guglielmo Marconi) 가 이니고 테슬라임을 오래 전에 판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르코니가 라디오 발명가로소개되고 있을 정도다. 일련의 사건들로 볼때 이것은 고의적인 행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니콜라 테슬라는 세르비아 혈통으로현재 크로아티아의 스밀리얀이라는 곳에서 1856년 7월 9일 태어나 1943년 1월 7일 미국 뉴욕호텔 에서 아무도 모르게 혼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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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텔 뉴요커에 있는 테슬라를 기념하는 동판-

그가 태어난 19세기 후반 동유럽은 터키가 대권을 장악하고잇었고 이에 대항한 독립운동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세르비아 정교회의 신부인 아버지로부터 지적인 지도를 받았고, 학교교육을 받지는 않았으나 지혜로웠던 어머니에게는 세상의 근본원칙과 인간의 기본적 도리를 배웠다. 그가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잘 드러나고 있다.

그는 수학자이자 과학자이기도했지만, 훌룡한 음악가였고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피아노 연주를 즐겼고, 세르비아의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살면서가장 친한 문학가이며 언론인이었던 친구 부인과 죽을 때까지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었고, 소설 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이나 음악가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y) 같은 사람들과친분을 나누고심지어는 이들과 동업으로회사를 차리기도 했다.

그가 다섯살 때 만든 물레방아가 있는데, 그의 물레방아는 보통 시골 농가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물레방아가 아니었다. 그것은 걸름막이가 없고 밋밋한 것이었지만 , 물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돌아갔다. 훗날 에 그는 같은 원리로날개 없는 터빈을 발명했다. 그의 시도가 모두 성공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번은 지붕 위에서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각도를 맞추어 우산을 폈다 . 몸이 가벼워짐을 느낀 그는 분명히 우산을 이용하면 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몸을 날렸다. 그러나 땅바닥에 정신을 일고 누워 있는 그를 그의 어머니가 방으로
옮겨야 했을 뿐이다.

또 한번은 풍뎅이를 잡아서 엔진을 만든 일이 있다. 16개의가는 막대기로 부챗살 모양의 수레바퀴를 만들어 가운데 축을 고정하여 가볍게 돌게 하고 각 살 끝에 풍뎅이의 발을 풀로 붙여 놓았다. 한방향으로향한 16마리의 풍뎅이들이 날기 위해 안간힘을 쓸 때 수레가 돌아가는 엔진을
고안 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이웃의 한 친구가 들러서 병 속에 가득 잡아 놓은 풍뎅이들을 마구 먹어 치워 버렸다. 그것을 보고 테슬라는 그 다음부터는 아예 이런 발명은 하지 않았다.

그는 시인으로서도 대단한 경지에 있었다. 스티아치치(Stijiacic) 라는 세르비아의한 신부가 세르비아 연방의 젊은 작가 시절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 시카고 공립도서관을 찾았을 때의 일이다. 그 도서관에서 당시 유명했던 세르비아 시인 즈마이-요한 (Zmaj-Jovan) 의시집을 찾은 그는 번역자가 니콜라 테슬라임을 확인했다.

훗날 스티아치치 신부가 라도박사의 안내로 메트로폴리탄 빌딩 20층에 있는 테슬라의사무실에 서 그럴 만났을 때 "테슬라 씨, 당신이 시에도 능통한 줄은 몰랐습니다." 했더니, 그는 눈을 크게 뜨고 매우 재미있다는 정으로 ............."세르비아 사람들 중에는 노래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아무도 들어 주지 않는 것이지요" ..................라고 대답햇다고 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