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실

[스크랩] 장팔현의 야망과 숨겨진 진상

그리운 오공 2013. 2. 13. 10:15

  지금까지 미즈노 씨 사태의 이면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장팔현 충북대 시간 강사의 행적에 대해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사태의 추이에 맞추어서 이번 사태에서 장팔현 강사가 담당한 역할에 대해 검증하고자 한다.

 그의 저서에 따르면 그는 1962년 충북 연기군에서 출생했다. 동네 국민학교 및 중학교를 거쳐 청주기계 공고를 졸업한 후 기업체에서 근무, 그 후에 충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학사장교로 입대 육군대위로 제대해 현대 자동차에 근무한 후 1994년, 일본에 유학을 떠났다.

 

 도시샤(同志社) 대학과 리쓰메이칸(立命館)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을 밟아 03년에 리쓰메이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귀국하고 나서 그는 지역 언론이나 인터넷 언론(오마이 뉴스 등도 그의 주요 활약 무대였다)에 등단(?)하면서 일본 유학 경력이나 일본 대학에서 수요된 박사 학위를 바탕으로 학계 진출, 특히 모교인 충북대 전임 강사를 넘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충북대는 그의 모교인데 정치외교학과 학생회장을 지낸 적도 있어 교수들하고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 강사 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후가 문제였다. 그는 여기저기 학회지나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는데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의 주장이나 논지가 재야 학자인 김성호 씨나 원광대 소진철 교수가 쓴 기존 연구의 재탕에 불과했고 기존 학회에서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다. 나이도 40살을 넘어 대학 전임 강사 자리를 얻기도 힘들어지자 그는 다른 방향으로 관심 분야와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그가 벌여왔던 언론 활동에서 이외로 큰 ‘건수’를 올렸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 유학 중에 [한국인이 본 왜인전]이라는 일본 비판서를 가명으로 썼는데, 미즈노 씨가 저서에서 자기의 책 내용에 비판을 가했던 것이 반감을 품어, 미즈노 씨가 가명으로 한국인을 비방을 책을 썼던 것처럼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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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충남도 일원의 지역 언론에 비교적 신중한 논조로 투고 형식으로 기고했는데, 유명 인사의 행적 폭로라는 비판의 성격과 반일 감정 때문에 이외로 좋은 반응이 나타나자, 비판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가 주변 사람이나 언론사 기자들에게 한 말 가운데는 [미즈노 씨가 전남대의 비리를 다 알고 있으니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말했다]거나 [미즈노 씨는 사이비 종교 신자의 스파이였다]라는 황당무계하고 사실무근의 내용까지 있었다고 한다. 항간의 소식에 의하면 그는 일반인들에게 종용해서 그러한 내용을 미즈노 씨가 근무하는 대학 게시판이나 학과 게시판에 올리도록 유도했다고 하는데 사살이라면 도저히 이성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없는 행적들이다. 만약 일본인들이 일본에 있는 한국인 교수에게 비슷한 짓을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05년은 주한 일본 대사가 독도 관련 망언을 계기로 반일 분위기가 크게 고조되었던 시점이었다. 미즈노 씨 비판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장팔현 강사는 드디어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전국방송을 타게 되었다. 이 토론 프로에는 미즈노 씨는 참가하지 않았으나 장팔현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장팔현 강사는 그 여세를 몰아 월간 신동아의 취재에 협조하거나 미즈노 씨를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쓰기도 했다. 광복절 때는 다시 KBS 방송에 출연해서 미즈노 씨를 비난했는데 취재진이 장팔현 강사의 말을 적당히 편집해야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비난의 내용과 수준을 짐작해 볼 만하다. 이 시기에 장팔현 강사는 미즈노 씨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기 이름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좌우를 불문하고 반일감정이 고조돼 있었던 시기라 미즈노 씨가 무슨 반론을 제기해도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거라는 치밀한 계산도 깔려 있었다. 미즈노 씨를 비판하면 할수록 인지도(인기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낀 그는 광복절이나 삼일절 등 가장 효과적인 시기를 노려 미즈노 씨 저서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자극하거나 반감을 살 만한 부분을 적당히 짜깁기한 다음 언론에 미즈노 씨 비판을 퍼뜨리고 왔는데

그 비판 내용이 상당히 자의적이고 허위 사실도 섞여 있다는 사실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다.

 

 http://blog.daum.net/paedalbu/1253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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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년의 삼일절에는 장팔현 강사는 독립기념관에서 친일파 작가 김완섭 씨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김완섭 씨의 책에 대해서는 나도 할 말이 많고 그는 우리나라 사람 앞에서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에서는 일단 접어둔다) 김완섭 씨의 책이 문제가 된 것은 04년의 일이며 06년 당시에는 그에 대한 비난 규탄, 고소 고발이 일단락된 시점이었다. 나는 그 당시 왜 이제 와서 언론사에 크게 알리면서 규탄 대회를 열려고 하는지 약간 의아감을 느껴졌다. 

 

 왜 그가 그 시기에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이름을 알리기에 부심했는지 그 이유는 06년 4월이 되어서 밝혀진다. 06년 4월에 장팔현 강사는 충남 연구 군수 후보에 열린우리당 공청을 받으려고 신청을 한 것이다. 장팔현 강사는 연기군 출신이다. 그리고 그 당시 연기군은 노무현 정권에 의해 수도 이전 후보지로 선정된 상태였다. 수도 이전이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땅 투기 바람이 부는 바람에 연기군의 땅값이 뛰고 지역 주민들이 들뜨고 기대에 부풀리고 있었을 때였다. 말하자면 그러한 시기에 연기군 군수가 된다는 것은 미래의 서울 시장이 된 셈이고, 앞으로 이권과 편의로 엄청난 이익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잡는다는 것이다. 장팔현 강사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규탄 대회를 열며 기자 회견이나 방송 출연을 자청한 것은 이 군수 선거가 목적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미즈노 씨 비난과 김완섭 규탄으로 전국구 유명세를 탔다고 확신한 그는 자신 있게 가장 당선 가능성이 높은 열린우리당에 후보 공청을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뜻밖이었다. 4월 11일에 열린우리당 충남도당이 연기군수 후보자를 발표했는데 장팔현 강사는 다른 한 명의 신청자와 함께 탈락한 것이다. 장팔현 강사는 공청자 선정 과정에 비리 의혹이 있다고 검찰에 진정서까지 제출했으나 허사였다. 열린우리당에서는 공천에 아무런 절차상 하자가 없다고 밝히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그 자세한 내막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한다. 공천에 탈락한 장팔현 강사는 “원리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겠다던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여 현 정권 탄생에 기여해 왔으나 현 정치상황은 정체성 없이 여당에 몸담으며 구태 정치를 일삼는 정상배들 때문에 혼돈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남기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사진은 열린우리당 충남 연기군수 공천과정에서 불공정한 의혹이 있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성태규[왼쪽], 장팔현[오른쪽] 후보)

 

 

 그에 말에 따르면 02년의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것 같지만 원래 그는 신한국당 지지자였던 것 같다. 그가 가명으로 쓴 [한국인이 본 왜인전]에서는 신한국당(한나라당)에 대해 부정적인 논평을 한 재일 교포 언론인을 친일파 매국노로 심하게 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후 장팔현 강사는 지역 언론사에 활동의 무대를 옮겨 인터넷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등 언론계에 전념하게 되었지만 열우당에서 탈당한 장팔현 강사는 다시 정치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 어쨌든 그 언행을 보면 노무현 대통령을 백지니 매국노니 심하게 비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완전히 열우당하고는 인연이 끊긴 것이나 다름이 없다. 2007년에는 자기의 독창적인 (무령왕이 왜무왕였다는) 고대사를 소재로 한 [무령왕]이라는 소설을 펴내는 등 역사 소설가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 같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는 인터넷 공간의 여기저기에 미즈노 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면서 자기 소설책을 사도록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태의 경위를 봐도 장팔현 강사가 제기한 미즈노 씨 비난은 다분히 계산적인 것이며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학문적으로 순수한 동기로 비난을 했다면 [미즈노 씨가 가명을 책을 썼다]든가 [미즈노 씨가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글을 썼다]든가 있지도 않는 사실까지 만들어가면서 비난을 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리고 미즈노 씨의 비판에 진지하게 답변하거나 반론하면서 자기 주장을 보다 타당성과 객관성 있게 발전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의 미즈노 씨 비판은 개인적인 원망, 즉 자기가 한국에서 가명으로 쓴 책에 대한 비판에 보복하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미즈노 씨가 한 때 유명 인사였기고 반일 감정 때문에 뜻밖의 효과를 올리자 자기의 이름을 알리는데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 내용도 중상과 개인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그 유명세와 지명도를 바탕으로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방 군수 공천 실패 후 그는 몇 권의 고대사 관련 책과 일본 비판 책을 집필 출판했으나 모두 판매가 시원치 않자 이번에는 고대사를 소설로 꾸며 07년에 출판하기도 했던 것이다. 내용은 그가 논문에서 주장했던 칠지도와 왜왕무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소설의 수준이나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논평하지 않겠다. 아직 1판 1쇄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역시 판매는 저조했던 모양이다. 장팔현 강사는 자기의 책의 선전 문구를 언론이나 지자체의 게시판 등 여기저기에 남기고 있으나 그 내용에는 약방의 감초 같이 “우익 미즈노의 정체를 밝힌......”과 같은 문구가 어김없이 들어있다. 그가 일련의 미즈노 씨 비판을 어떤 목적으로 해왔고 어떤 의도로 활용하려고 하는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다. 학회 활동이나 저술 활동에서 크게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장팔현 강사는 지역 언론과 인터넷 언론에 활동 무대를 옮긴 모양이다. 신수도 시장의 꿈은 접어야 했지만 요즘 들어 연기군이 다시 행정복합도시 후보지로 선정돼 지역에서 계속 이름을 날리면 모종의 정치적인 이익을 쟁길 수 있다는 계산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까지 미즈노 교수 사태의 추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으나 혹자는 장팔현 강사의 행적이 순수한 동기에 의한 것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한국을 비판한 미즈노 씨의 입을 막았기 때문에 그 공로(?)는 인정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발상이다.

 

 미즈노 씨는 95년(한국어판은 96년)에 출판한 “일본인이 본 반일 이야기”에서 “한국인들은 주제가 ‘반일’이라면 그 내용이 거짓이더라도 무조건 반기고 받아들인다”라는 지적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내용을 읽었을 때 상당히 기분이 상했고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는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지 못한 존재가 아니라는 자신감과 우리의 반일 감정이 상당 부분 역사적 사실에 근거했다는 믿음으로 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곧 내 분노는 냉소로 바뀌었다. 소위 민족 작가인 김진명은 있지도 않은 문서를 날조하고 명성황후 시간(屍姦)이 있었다고 강변하고, 일본은 부도덕한 나라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 국가 일본은 없다고 소리 높이 외쳤던 전여옥의 저서는 남의 원고를 표

절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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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진실한 애국자도 아니었고 항일투사도 아니었다. 개인적인 모종의 이익을 의해 우리의 아픈 역사, 우리의 반일 감정을 이용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을 국민 작가로, 국회의원으로까지 등극시켜준 것은 다름이 아닌 바로 우리였다.

 장팔현 강사의 행적과 그것에 대한 반응과 효과를 보는 한 유감스럽게도 “한국인들은 주제가 ‘반일’이라면 그 내용이 거짓이더라도 반기고 받아들인다”라는 미즈노 씨의 지적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장팔현 언행과 그 반응은 그것을 미즈노 씨 주장을 스스로 증명해 주는 꼴이 되고만 것이다,

 증오심으로 흥분돼 일본을 깔아뭉개는 것과 일본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타당성 있게 비판하는 것은 분명 별문제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냉철하지 못한 일본 비난 때문에 일본인에게 얼마나 트집 잡히고 손해를 보았는가를 여기에서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본 비판자는 다 애국자여 일본 비판이라면 다 정론이라는 사고 방식은 스스로 반일을 타락시키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는다.

 

 나도 과거에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 큰 분노를 느꼈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일본을 좋아하지도 않고 일본을 옹호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더욱 분노를 느낀 것은 대중적인 인기를 의식해 어설프고 부족한 지식으로 일본을 비난하는 자, 그리고 모종의 이익을 위해 일본을 비난하는 자,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피해 의식이나 반일 감정을 이용해 먹는 자들의 존재였다. 나는 이 나라에서 반일 감정만은 순수하다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내막을 좀 들려다보면 사정은 뜻밖이었다. 내가 보아도 일본에 대해 제대로 지식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려운 인사들이 너도나도 반일 감정에 편승해 일본에 대한 부정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논평을 대량 생산하고 있었다.

 

 무식은 죄가 아니지만 무지는 죄가 된다. 
 
 일본인이 과거에 벌인 행각을 정확히 지적하고 비판해도 그들이 제대로 반성할까 말까인데 우리 스스로가 부정확한 비난을 (그것도 장삿속으로) 계속 되풀이한다면 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결과는 일본인들을 이롭게 해 줄 뿐이다. 그들이 우리를 우습게 보는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처단하지 못했던 친일파 매국노 때문일 수도 있지만, 흥분만 하면서 빗나간 일본 비난을 퍼붓고 있는 우리 자신 때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제 알아야 할 때이다.  

출처 : 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상을 밝힌다
글쓴이 : 배달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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