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실

[스크랩] 미즈노 씨 사태의 이면에 숨져진 진실(3)

그리운 오공 2013. 2. 13. 10:17

 앞에서는 미즈노 씨가  가명으로 책을 썼다고 비판하고 있는 장팔현 강사가 일본 대학 재학 중에 가명으로 책을 썼고, 그 내용은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http://blog.daum.net/paedalbu/12539299

 

 일단 장팔현 강사가 필명으로 책을 썼다는 부분에 대한 비판은 접어두자. 본명으로 쓰든 필명으로 쓰든 일본에 대한 비판이 타당성과 객관성을 갖추고 있다면 별로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장팔현 강사의 주장을 검토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미리 밝혀 두겠지만 나는 일본에 대해 상당히 비판적인 인간이다. 일본을 좋아하지도 않고 일본인의 역사 인식에 공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일본을 비판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 근거가 정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우리가 거짓을 가지고 일본을 비판하는 허술함을 보이면 너희들도 역사를 왜곡한다는 식의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절대로 일본인에게 그런 구실을 주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것이 일본을 비판할 때 갖추어야 하는 기본 자세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팔현 강사는 (지금은 어떨지는 몰라도) 그 당시에는 그러한 기본 자세가 전혀 안 돼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에 장팔현 강사가 쓴 “한국인이 쓴 왜인전”을 인터넷 고서점에서 어렵게 구해 읽어 보았다. 그런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오류 투성이인 것이다. 가령 장팔현 강사는 책의 75쪽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일본이 개항을 하고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키면서 나온 말이 한국을 정벌해야 한다는 정한론(征韓論)이다. 메이지 유신을 이끈 인물들이 사쓰마항(가고시마)과 쵸슈항(나카사키) 출신들이다. 반목하던 두 지역 정치가들이 손잡도록 주선했던 인문이 사이코 다카모리로 그는 시코쿠 도사 출신이다. 이 두 지역이 연합함으로써 메이지 유신은 성공할 수 있었고 두 지역 출신들이 메이지 시대 번갈아 가면서 일본 정치를 이끈다. 이토히로부미(出口현), 사카모토 류마 등 당시 정한론자들의 대부분이 이 지역 출신이다......이들이 메이지 시대의 인물 중에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인기순위 1, 2, 3, 4위를 차지한다. 모두 정한론자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쓰마항은 규슈 남단에 있는 지역으로 일본역사에 보면 가장 강한 왜 선주민 왕국으로 한반도계인 야마토 정권에 가장 오랫동안 저항했던 지역이다. (75쪽)
 
 일본 역사에 관한 지식이 없으면 장팔현 강사가 무엇을 주장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일본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다면 장팔현 강사의 주장이 얼마나 허무(허구)맹랑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장팔현 강사의 주장은 19세기 말에 도쿠가와 막부(幕府, 군사정권)를 쓰러뜨리고 새로 메이지(명치) 유신 정부를 세운 공로자들은 모두 한국 침탈을 노리는 정한론자(征韓論者)였다는 것이다. 장팔현 강사가 쓴 내용 가운데 잘못된 부분을 하나씩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①메이지 유신을 이끈 인물들이 사쓰마항(가고시마)과 쵸슈항(나카사키) 출신들이다.→‘쵸슈항’(한문으로는 ‘長州藩’이라고 쓴다)은 나카사카(長崎, 정확한 발음 ‘나가사키’)가 아니라 현재의 야마구치(山口) 현에 위치했다.

 

 ②반목하던 두 지역 정치가들이 손잡도록 주선했던 인물이 사이코 다카모리로→반목했던 두 지역(‘쵸슈’와 ‘사쓰마’)를 손잡도록 주선했던 인물은 사이코(정확한 발음은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아니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이다.

 

 ③그(사이고 다카모리)는 시코쿠 도사 출신이다.→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시코쿠(四國) 도사(土佐) 출신이 아니다. 그는 사쓰마(薩摩, 현재의 가고시마 현) 출신이다.

 

 ④이토히로부미(出口현)→‘出口현’이 아니라 ‘山口県’이다.

 

 ⑤사카모토 류마→류마가 아니라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이다. 그는 명치(메이지) 유신 이전인 1867년에 죽었고 정한론(征韓論)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⑥......모두 정한론자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사쓰마항은 규슈 남단에 있는 지역으로 일본역사에 보면 가장 강한 왜 선주민 왕국으로 한반도계인 야마토 정권에 가장 오랫동안 저항했던 지역이다.→물론 정한론의 중심 인물이었던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사쓰마(薩摩) 출신이었으나 기타 이타가키 다이쓰케(板垣退助), 에토 신페이(江藤新平), 고도 쇼지로(後藤象二郞) 등은 도사(土佐) 출신, 소에지마 다네오미(副島種臣)는 사가(佐賀) 출신이다. 따라서 정한론자들이 왜 선주민 욍국의 후손이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들은 다 명치(메이지) 유신의 주도자들이다. 그런데 장팔현 강사의 주장대로 이들이 7세기 야마토 정권과 싸운 선주민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정한론을 주장했다면, 이들은 왜 자기들 조상을 괴롭힌 야마토 정권 출신의 왕(천황)을 추앙하는 명치(메이지) 정부를 수립했을까?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장팔현 강사의 말대로 일본인들이 선호하는 역사 인물 중에 이들 정한론자가 포함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들이 정한론자들이기 때문에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명치 유신이나 명치 정부의 공로자라는 점에서 선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컨대 우리나라에도 박정희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들은 그가 일제 시대 친일파였기에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의 리더십이나 그가 이룩한 경제 성장을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같은 부분에서 장팔현 강사는 “1만엔 짜리 초상화 주인공인 후쿠자와 유키치 또한 유명한 정한론자다”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가 주장한 것은 ‘정한론’이 아닌 ‘탈아론(脫亞論, 아시아 세계를 벗어나 서구 열강과 겨루자는 주장)’이다.

 

 이와 같이 장팔현 강사가 주장에 간과할 수 없는 문제점이 수없이 발견된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은 불과 반 쪽 분량인데도 이렇게 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장팔현 강사의 책에 나타난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일본의 역사 인물의 이름이 엉망이다. 물론 인쇄 과정에서 오자나 탈자는 있을 수 있으나 그런 것들은 교정 과정에서 다 잡아내야 한다. 적어도 역사에 관한 논처에서 지명이나 인명의 오류는 치명적이다. 

 둘째로 기초적인 사실에 관한 착각이 너무 많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기본적인 역사적 사실조차 파악이 안 된 경우가 눈에 띈다. 장팔현 강사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거기서 강의까지 맡고 있다는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 내용들이다. 

 셋째로 전혀 다른 시대 상황을 아전인수격으로 연결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19세기에 대두된 정한론의 근원을 7세기의 정치적 상황과 연관하고 있는데 독창적인 차원을 넘어 견강부회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점은 이 책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러한 부실한 주장은 아무리 일본을 비판하기 위한 좋은 의도에서 나왔다고 해도 일본인들에게 한국 비판의 구실을 만들어준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만약 일본인 학자가 한국에 대해 이와 같은 오류가 많은 책을 썼다면 우리나라 학자나 언론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강팔현 강사는 자기 주장에 대해 제기된 비판을 몹시 불쾌하게 여기고 있는 모양인데 그러기 이전에 자기의 주장의 허술함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할 것이다. (계속)

출처 : 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상을 밝힌다
글쓴이 : 배달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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