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학살과 인디언 학살에의 추억
유대인 학살에의 추억 미국에서 풀기 힘든 법률문제가 있거든 유대인 법률가를 찾으란 말이 있습니다. 미국 상류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대인들의 권력은 Stephen Walt의 책 [Taming American Power]라든가 다소 노골적인 서제로 논란이 되기도 했던 Norman Finkelstein의 [Holocaust Industry],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2008년에 화제가 되었던 John J. Mearsheimer의 [The Israel Lobby and U.S. Foreign Policy]로 인해 이미 식상할 정도입니다. 유대인들의 권력과 그들의 처세는 미국 경제와 정치를 움직이는 큰 힘이 되고 있으며, 이는 소위 ‘기독교 국가’라 하는 미국 사회가 결과적으로 유대교에 종속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할 것입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의 유대인들, 독일 나찌의 전제주의적 폭력 앞에 600만 명이라는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살인에의 추억에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치를 떨고 있습니다. 누구하나 유대인 학살 앞에 이견을 달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신학교 시절 대표적인 신학적 화두가 바로 유대인 학살이었으며, 이는 “힘과 권력”, 그리고 “차이와 권력”의 역학관계를 신학적으로 풀이하고자 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성서의 하나님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참 뜻이 무엇인지를 씨름하며 묻는 시간으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은 그 어떤 경제적, 정치적 이유를 반론으로 제시한다 하더라도 희생자 중의 희생자이며, 그러한 역사는 절대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당연한 귀결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위, '인디언'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들, 곧 유대인의 학살을 알리고 그 사건의 전말을 복구하며 그로인해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바로 미국 한복판에서 일어났다는 사실, 곧 자유와 인간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말하는 미국 건국과 통치 이념에 가장 잘 맞아 떨어지는 이러한 움직임에 저는 인디언 선교사로서 아쉬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미국 내에 본래 이 땅의 주인인 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소위 ‘인디언’Indian이라고 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며, 도리어 미국 원주민에 대한 역사를 왜곡하거나 아니면 무시하려는 경향이 지배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은 현재 3억의 미국 인구 가운데 인디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도 채 되지 않는 250만 명 정도로 집계되고 있는 형편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의 본래 주인인 인디언들은 이 땅에서 이민자들보다도 못한 인구 통계를 보이고 있고 그로 인해 소수 민족 취급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형편은 그나마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결과라는 것이 더더욱 인디언 선교사의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곧 1900년 대 후반에만 해도 북미 인디언 인구는 25만 여명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최근 러셀 톰턴Russell Thornton의 연구 [American Indian Holocaust and Survival]에 따르면 유럽 이주민들이 서반구 곧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당시인 1492년의 원주민 인구수를 7500만 여명으로 잡고 있는데, 5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25만 명이 돼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인구수가 감소한 원인으로는 유럽 이주민들이 지니고 있는 각종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전염병으로 사망한 경우, 그리고 대표적으로 콜럼부스Columbus의 예처럼 인디언들을 노예처럼 부리다 잔인하게 죽인 경우, 또한 이런 역사를 뒤로 하고 원주민들과 이주민들 사이의 마찰로 인해 벌어진 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들과 더 나아가서는 부족 전체를 대상으로 종족 말살을 꽤하며 사냥에 나섰던 백인들의 학살로 인해 죽어갔던 것을 그 이유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7500만 명에서 25만 명, 인류 역사 이래로 이러한 인구수의 감소는 찾아 볼 유래가 없습니다. 또한 이러한 인구 감소가 자연적 이유가 아니라, 인종 차별의 역사 그리고 식민주의적 역사에 따른 결과라는 점에 이견을 달리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배태했던 사상적 면모가 드러나야 할 것입니다. 곧 서양 역사의 사상사적 흐름에 있어서 이러한 역사를 가능케 했던 이념적 배경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며, 흔히 말하듯 "Manifest Destiny"(명백한 운명)라고 하는 명백한 위선의 철학적 바탕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주민과 원주민들 사이에 있었던 오해와 곡해는 무엇인지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면, 당시 유럽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철학 사조를 비판적으로 성찰해볼 수 있으며 아울러 미국 원주민들의 영적 고결성과 생태적 삶의 처세에 대해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디언 학살에의 추억 그러나 이러한 배경적 접근은 잠시 뒤로 물러두기로 하고, 유럽 이주민들의 정착과 그에 따른 원주민들의 소멸, 그런 역사의 과정과 결과에 대해 왜 미국 주류 사회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일까요? 전 세계 인문학 그리고 문화 예술계까지 변화시켜 놓았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유대인 학살에의 역사”가 바로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고 하는 이 나라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왜 그들은 그토록 애써 “인디언 학살에의 역사”를 왜면하고 있는 것일까요?
[1890년 12월29일의 운디드 니 크릭의 라코타 수우 인디언 학살]
이 글을 쓰는 제가 인디언 선교사란 점을 이해해 주시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저는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인간의 소중한 가치 즉, 인류애, 사랑, 평화, 정의 등등의 관점에서 접근했던 수없이 많은 노력들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 학살의 역사에 대해 누가 감히 토를 달아 흠집을 낼 수 있겠습니까. 다만, 이것을 묻고 싶은 것입니다.
“유대인 학살의 역사를 그대들이 참된 ‘진정성’을 가지고, 곧 이념이나 정치, 또는 경제적 상황 등의 제반 사항 등은 별도로 하고 그 참혹한 역사를 보편적 인간애적 관점에서 모든 세대와 세대에게 새로운 향방을 제시하는 수단으로 삼았던 것이라면, 다시 말하면 그것이 노만 핑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이 꼬집어 비판하려 했던 것처럼, 학살Holocaust의 역사조차도 효과적으로 산업화시킴으로써 이념과 자본적 이득을 얻으려 했던 똬리 튼 욕망의 논리가 아니었다면, 왜 그대들은 유대인 학살에의 역사에 버금가는, 아니 비교할 수도 없는, 먼 나라 얘기도 아닌 바로 이 나라 이야기, 자유와 평화를 사랑한다는 이 나라의 이야기에 대해 그토록 외면하고 있는가?"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를 보는 이로 하여금, 뜨거운 인류애적 눈물을 흘리게 했던 그 순전한 예술가적 정신이 왜 인디언 학살에의 역사에는 구현될 수 없는가?"
"그대들이 그토록 비난해마지 않는 아돌프 히틀러조차도 미국의 인디언 정책을 벤치 마킹했다는 사실을 모르는가?”
유대인 학살은 과거 역사로 끝났지만, 인디언 학살에의 추억은 결코 과거형이지 않다는 점에서 이러한 질문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아니 근근이 살아내고 있는 인디언들의 녹록치 않은 현실의 절망은 차치해두고라도, 인디언들을 향해 날아오는 편협하고도 날이 선 시선들만으로도 이들이 설 자리는 보호구역(Reservation, 결코 보호구역이라 번역될 수 없을 것입니다.)에서라도 편할 날이 없는 신세인 까닭입니다.
** 이들에게 복음이 인디언 선교사의 눈에는 이런 것만 보이는가 봅니다. 몇 달 전, 우리 교회를 위해 보냈다는 구호물자, 콜로라도의 어느 백인 교회에서 트럭으로 보내 주었던 산더미 같은 쓰레기, 그네들의 아이들이 쓰다 버린 몽당연필과 스케치 북은 기본이고 심지어 빨지도 않은 채 보내졌던 속옷가지들과 다 찢어진 책들. 워싱턴 D.C.의 프로 풋볼 팀은 여러 인디언 단체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Red Skin"이라는 조롱 섞인 이름을 고수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지금의 미국의 현실이며, 인디언 인권의 현실인 듯합니다. 이러한 현실일진대, 선교사는 교회 안의 교인들의 문제를 대하기도 벅찹니다. 우선순위를 두고 일을 차차 진행해 나가려는 계획안을 재차 들여다 볼 시간도 부족합니다.
하지만 분명, 인디언 학살에의 추억도 유대인 학살에의 추억처럼 언젠가 모든 사람들이 식상할 정도로 공분할 수 있는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인문학과 인류학의 주류로 등장해야 할 것이며 문화와 예술로서 승화시켜야 할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소수의 외침으로 끝나버릴 수는 없습니다. 이름 없는 벌판에서 추위에 얼어 죽거나 팔과 다리가 잘려 나간 채로 죽을 날을 세어야 했던 사람들이 생생한 이야기로 되살아나는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전대미문의 학살의 방법, 즉 백인들에 의해 머릿가죽이 벗겨져 죽어갔던 그들을 도리어 머릿가죽을 벗겨 죽이는 잔인한 야만인으로 묘사했던 수없이 많은 헐리웃 서부영화 제작자들의 화인 맞은 양심이 인종차별 수업 시간의 주 교제가 될 날이 와야 할 것입니다.
호피 마을에서 한달에 한번 모이는 Day of Prayer의 모습
그러나 콜로라도 덴버에 있는 아일리프 대학교의 인디언 출신 교수 팅커Tinker가 말하듯, 이 모든 문제는 이방인의 몫이 아니고 인디언 그들 자신의 문제일 것입니다. 그들 자신이 깨어 있어야 하고, 그들 자신이 이런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것이며, 그들 자신이 그 옛날 이 대륙을 자유로이 그리고 평화로이 넘나들던 영혼으로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가운데 성심을 다해 협력하는 것이 이 땅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의 최소한의 바탕이자 근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다.”는 복음의 소식은 모든 땅마다, 모든 부족마다 재해석되어야 할 것이며, 그들 역사 속에 편편이 서려있는 의식과 무의식의 언어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이로써 제소리로 호흡하는 입장 분명한 복음의 꽃을 피우리라 믿습니다. <뽀비 에누 선교사 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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