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실

[스크랩] 미즈노 씨는 왕인 박사의 존재를 부인한 적이 없다(2)

그리운 오공 2013. 2. 13. 10:01

 지난주에는 미즈노 씨가 그의 저서에서 왕인 박사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다만 왕인 박사라는 인물이 전라남도 영암에서 출생했다는 영암군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견해는 대체로 우리나라 국내 학자의 견해와 일치한다.

 

 그리고 뜻밖의 사실이지만 우리나라 학계에서도 왕인 박사의 실존 여부에 대해 신중한 의견을 가진 연구자가 많다. 그 원인은 왕인 박사라는 인물이 오직 일본 쪽 사료([일본서기] [고사기])에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일본서기] [고사기] 8세기에 일본에서 편찬된 역사서로 왜곡 날조된 부분이 아주 많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같은 우리나라 역사서에는 왕인 박사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다.

 게다가 [고사기]에는 왕인 박사가 천자문을 일본에 가져갔다고 적혀 있는데 왕인 박사가 일본에 간 4세기 초에는 아직 [천자문]이 성립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왕인 박사의 실존 여부는 지극히 애매한 상태다. 더구나 왕인 박사의 생가가 전라남도 영암에 있다든지 왕인 박사의 묘지가 오사카에 있다든지 하는 기록은 어느 역사서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이 시기에 백제가 왜(일본)에 여러 가지 문물을 전수해 주고 그들을 개화시킨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왕인 박사 같은 인물이 있었던 가능성까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일본 쪽의 사료를 100% 믿어도 된다거나 전라남도 영암을 왕인 박사의 생가 터를 만들어도 된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는 왕인 박사에 관한 일본 사서의 내용 그대로 옮겨 [왕인 박사가 일본에 논어와 천자문을 전했다]라고 서술되고 있다. 그런데 국사 교과서의 서술과 달리 국사의 부교재 격인 [한국사신론]에서는 아예 왕인에 관한 기술이 빠져 있다. 이것은 왕인 박사의 실존 여부에 대한 학계의 신중한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왕인 박사의 존재 여부에 관한 학계의 입장도 이렇게 불확실한 마당에 왕인 박사의 출생지가 영암이라고 주장하는 연구자는 전무한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참고로 2003년에 경인문화사에서 [구림 연구 -마을공동체 구조와 변동]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는데 거기에는 영암의 이른바 왕인 박사 생가 터가 처음에는 일제의 식민지 지배 합리화에 이용되었다가 해방 후에는 유적지(관광지) 조성에 이용된 경위가 상세히 나와 있다. 미즈노 씨 역시 이 책의 내용(정확히 말하면 이 책을 쓴 김모씨의 발표)을 참고로 했다고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그리고 02 4 13일자 조선일보는 [왕인 영암 출생설 검증 필요]라는 내용의 기사를 실어 왕인 유적지의 역사적 근거가 희박하고 과거에 일제의 신민지 지배 합리화에 이용된 경위가 있다고 상세히 보도했다. 이것 역시 미즈노 씨의 주장과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영암군의 왕인 박사 출생지(생가 터)는 그 출처가 아주 의심스러운 것이며 미즈노 씨는 저서에서 그 점을 지적한 뿐이다. 그리고 그의 주장은 우리나라 연구자의 견해와 대체로 일치한다.

 

 진정 비판받아야 하는 자는 일제의 잔재로 관광지를 만든 영암군의 공무원과 그들의 동조자가 아닐까? 친일파 후손을 혼내는 것만이 역사 바로 세우기가 아닐텐데 말이다.
출처 : 미즈노 교수 사태의 진상을 밝힌다
글쓴이 : 배달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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